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
 1  2  3  >>
 
자유연재 > 일반/역사
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네
작가 : 강서진
작품등록일 : 2016.8.22

평범하게 일제 시대를 살아간 못난 한 여자 아이.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국가와 나라에 해가 되었던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재산은 교육을 위해서 쓰였던 그런 이야기.

 
입궁(4)
작성일 : 16-09-06 19:46     조회 : 342     추천 : 1     분량 : 917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선영은 줄의 맨 끝 즈음에 지밀에서 친하게 지내는 벗인 소정금과 정숙양과 나란히 서있었다. 숙양은 늘 그렇듯이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숙양은 아침부터 먹던 것을 체하고 속이 더부룩하다 하소연을 하였지만 모든 아기나인들이 새 주인을 마중나간 마당에 혼자만 누워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금과 선영은 우리가 옆에 있을 테니 마음 잘 먹으면 괜찮다, 잠시 서있는 것인데 무엇을 그리 걱정하느냐며 숙양을 끌고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가마에서 나온 소녀는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고 큰 키에 태도는 우아하였으며 여윈 모습이 자뭇 예민해보였다. 새주인에 대한 압도감. 아마 그 곳에 서있는 대부분의 견습나인들이 느낀 것이었을 것이다. 소녀는 도도했고 고고했으며 그 예민한 무엇이 전투적으로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그녀가 걸어서 엄선영이 있는 곳까지 거의 왔을 무렵.

 “이 곳이 묵을 곳입니까.”

 소녀가 물었다. 상궁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하옵니다.”

 지엄한 상황이었다.

 숙양은 얼굴이 벌게지고 있었다. 그녀는 선영의 소매를 꽉 붙들었는데, 선영은 거기서 낌새를 채고 숙양의 살을 크게 잡고 꽉 꼬집었다. 참으라는 무언의 속삭임이었으나 거기서 일은 크게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뽀옹.

 숙양이 뀌고 만 것이다.

 푸훗. 어디선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상궁의 얼굴이 벌게지면서 시퍼렇게 날이 선 얼굴로 견습나인들을 보자 웃음은 금새 멈추었지만 중전이 될 민씨와 상궁의 노여움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숙양은 얼굴이 벌겋게 되어 고개를 숙였고 정금은 터진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가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선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살얼음판같은 때였다. 하물며 선배의 앞에서 뀌어도 벌을 내리는 판에 내명부의 최고 수장이신 중전의 앞이었다.

 “괜찮네.”

 문득 민자영이 빙그레 웃었다. 상궁은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숙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숙소로 돌아와서는 엄한 꾸짖음이 있었다. 해가 저 멀리로 넘어갈 때까지 아기나인들은 한 명도 숙소로 가지 못했다.

 “누구냐!”

 아기나인의 요청으로 아기나인들이 나선 것이라 꾸짖음은 더욱 살벌하였다. 숙양이 자진하여 나가 무릎을 꿇었다. 숙양과 친한 정금과 선영이 나서 숙양을 감쌌다.

 “아침부터 속이 좋다 하지 않았사온데, 저희가 가자하여……. 한 번의 실수이옵니다.”

 “본래 숙양은 얌전한 아이인데 피치 못한 일이었사옵니다. 가벼이 생각해주소서.”

 “그래! 엄가 선영! 네가 주동하여 이번 일을 하였으니 어찌 생각하느냐! 네게도 책임이 있다 스스로 말하였다!”

 숙양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진정 제가 죄인이옵니다. 저 아이들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절대 마마님을 거스르려 한 것이 아니오라 제 사정을 말하려 한 것이옵고 제가 잘못한 것이옵니다.”

 “아주 눈물나는 우정이구나!”

 정금과 선영이 나설수록 그녀의 노여움이 더욱 부채질되어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밤, 불이 켜져 일렁이는 어둠 속의 땅은 그 것만으로도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어두운 밤의 가운데서 또 하나의 횃불이 일렁일렁 다가오고 있었다. 따르는 나인들이 많고 위엄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다른 상궁마마님의 거행이 틀림없었다. 아이들은 무릎을 꿇은채 그 횃불을 구원의 불처럼 바라보았다. 불은 이윽고 근처까지 다다라 있었다.

 “아니, 이상궁아닌가, 이 밤에 무엇을 하시오?”

 최상궁이었다. 이상궁은 형님이 맡은 아이를 보시오! 소리를 치며 엄선영과 정숙양의 소행을 낱낱이 고해바쳤다. 최상궁은 지긋이 선영과 숙양을 보았는데 그 눈빛이 마치 쏘아보는 것같아 선영과 숙양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생각인가?”

 “벌을 받아야하는 것은 틀림없지요.”

 “내 회초리를 때리겠네. 괜찮겠는가?”

 “형님이 직접 손을 대시려고 그러우?”

 “엄가 선영!”

 엄선영은 최상궁을 보았다. 최상궁은 호통을 치고 말없이 보다가 다시 이상궁을 보았다.

 “저 아이는 내 직접 때려 혼내고 숙양은 방굿례를 해오면 되지 않겠는가. 계속 앉아있는 아이들이 불쌍하니.”

 “형님이 그러겠다면, 그러시오. 본래 그럴 작정이었는데 요즘 것들은 덜 되어 먹어서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기어오르지 않겠수. 형님이 너무 오냐오냐하시면 머리끝까지 기어오른다우.”

 이상궁은 영 마땅찮은 표정이었지만 일단은 최상궁의 말에 따르고자 하였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거라!”

 아이들은 그 말이 떨어지자 신속하게 흩어져 사라졌다.

 

 숙양은 방굿례를 지시받고 선영은 최상궁의 거처로 돌아가 종아리를 걷었다. 웬만해서는 큰소리내지 않는 것은 물론 화를 내지 않던 최상궁의 매였기에 매가 날아오기 전 정적은 더욱 사나운 것이었다. 선영은 눈을 꼭 감았으나 매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실수는 큰 것이로되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주의깊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라 하나, 그 것은 주의하면 될 것.”

 마마님의 말은 질책하는 것이 아니었으나 선영은 마마님의 얼굴에 서린 노기가 자신의 더 큰 죄를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스스로도 쉬이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밖에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단 말인가.

 “내 너의 재능을 아낀다. 네가 앞으로도 이렇게만 성실히 정진하여 준다면 이 내명부의 중추가 될 수 있으리. 허나.”

 선영은 매맞지 않는 시간이 더욱 길고 더디다고 생각했다.

 “내 몰랐던 것 같으냐? 어찌 함께 일하지도 않는 상직소환을 가까이 해. 왕실의 법도가 그 것을 허용치 않거늘!”

 “마마님……!”

 상직소환. 선영은 억울하여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 것은 단지 신지소지를 도왔던 것 뿐이었던 것이다.

 “네가 정분이 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러하기에 내 너에게 더욱 실망인 것이야!”

 최상궁은 차갑게 말했다.

 “걷어라.”

 선영은 종아리를 걷었다. 빠르게 회초리가 날았다. 빨간 선이 몇 개나 그인 채 빨갛게 부어올랐다. 스무대가 다하자 종아리에 피가 맺힌 것이 보였다.

 “너는 이성을 잃은 것도 아니요, 오히려 영리한데 다만, 법도를 모르고 있지 않느냐. 스스로 법도를 지키지 않으면 어찌 내명부를 이끌어가겠느냐? 모름지기 덕이 있어야 사람들은 그 덕에 이끌려 오는 것이다. 외도를 어찌 도울 수 있느냐! 법도는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회초리는 쉼없이 날았다. 선영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선영은 최상궁을 존경하고 또한 순종하였으나 그 어딘가에 선영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법과 도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르쳐오셨던 덕. 그 세 가지가 모두 중요하나 그 것은 모두 나라를 위한 것이며 나라에 위해가 간다면 그 것이 무어 중요한 것이며 가뭄이 들면 궁녀의 한이라 하여 궁녀를 방출시키는 이들이 궁녀의 한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도 아니거늘 조직만 잘 꾸려진다면 국가를 향하는 한을 돌리는 것도 국가를 위한 방법이 아닌가. 선영으로서는 그 것을 잘 운용하는 지혜로움이 법을 앞서나간다 생각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최상궁이 말씀하시는 것은 기쁨이기도 했다. 내명부를 어찌 이끄랴하는 것은 장차 그 것이 자신의 손에 맡겨진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대다수의 궁녀들이 상궁의 자리까지 오르지 못하고 40대에 궁궐에서 쫓겨나 외로운 인생을 살다 삶을 마감한다. 동료인 궁녀들조차 없으며 자식도 없고 밖에 나가서조차 연애가 엄금된 혼자인 인생. 그 것이 궁녀의 권력 속에 탈락한 자의 최후다. 선영에게는 그 권력 속에서 뒤지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상궁마마님이 이렇게 인정해주시지 않는가.

 ‘마마님. 그 일은 후회하지 않사옵니다!’

 그 뿌듯함 속에도 선영은 마음 속에 드는 반발심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 날. 선영은 신지소지의 정표를 늘 그랬던 듯이 전해주었다. 선영의 속에서는 최상궁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지만 선영의 겉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천연덕스러웠다.

 한편 숙양은 벌로 내린 방굿례로 인해 울상이었다. 숙양의 심정으로는 차라리 선영처럼 피가 맺힐 정도로 회초리를 맞는 것이 낫겠다싶었다. 죽을 상을 하고 있는 숙양을 뒤로 하고 정금과 다른 아이들은 몇 번이나,

 “뽀옹!”

 하며 까르륵 웃어댔다.

 “어쩜 그 때 뀌어버리니.”

 정금이 몇 번 입을 막다가 참지 못하고 또 웃어버린다. 아기나인들이 이러는 광경을 항아님들이 보았다면 틀림없이 방정맞지 못하다고 또 벌을 내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오랜만에 터진 사고에 즐거워하기 여념이 없었다. 내명부 전체에 소문이 났다는 말에 숙양은 몹시 수치스러워했다. 상궁마마님들의 입에서도 중전마마 앞에서 방귀실수를 한 아이에 대한 것이 오늘의 화젯거리라 하였다.

 벌로 내린 방굿례란, 실수를 한 아기나인에게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내리는 벌로서 상다리를 휘어지도록 차리는 것을 말했는데 그 음식은 모두 친정에서 해와야만 했다. 일반적인 집으로서도 그 것은 가계에 큰 무리가 가는 일이었는데 숙양은 가세가 기운 집의 여식이었고 궁녀로 입궁한 이후, 조정에서 나오는 얼마 안되는 월급이 친정의 생활비로 쓰이고 있는 터였다. 방굿례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리 없었다.

 숙양은 자신이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눈 앞이 깜깜해져왔다.

 “흑.”

 숙양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눈을 훔쳐냈다.

 “얘. 울어?”

 아기나인들이 숙양을 둘러싸기 시작했으나 그런 관심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숙양은 연못 근처로 도망치고 말았다.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다.

 어제 회초리를 맞아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방의 침구를 갈고 나온 선영이 연못 근처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숙양을 발견하고는 느리게 다가갔다. 선영은 숙양의 집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선영 자신의 집도 방굿례를 치르게 된다면 가계 자체가 휘청거릴만큼 풍족치 않았기에 그 심정 또한 이해되지 않는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숙양은 중인의 가문이라 하나 평민인 자신의 집보다 더 몰락한 터였다. 선영의 뒤에서 선영을 치는 손길이 있었다. 정금이었다. 정금도 헐레벌떡 달려왔는지 가쁜 숨을 쌕쌕 내쉬고 있었다.

 “내가 놀렸다고 울면 어째!”

 정금은 숙양이 우는 것이 자신이 놀렸기 때문이라고 여긴 듯 고함을 쳤다. 헐레벌떡 뛰어온 것부터 선영의 등을 치고 고함을 지르는 것까지, 하나도 왕가의 예법을 준수하고 있는 것은 없었다.

 “정금아. 너랑 있으면 또 방굿례하겠다. 마마님들 보시겠어.”

 선영이 나무랐다.

 “뭐! 방귀를 숙양이가 뀌었지, 내가 뀌었어?”

 숙양은 정금의 말을 듣고 더욱 서럽게 울었다.

 “너희들, 거기서 뭘하지?”

 세 명이 그러고 있는 동안 멀리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나인인 최무희였다. 지밀에서 가장 귀여움을 받는 동시에 가장 시끄러운 선영의 일행을 늘 고깝게 보던 터였다. 특히 이번 아기나인들이 소집되면서 선영에게 불만을 품은 아기나인들이 아기나인들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인 그녀에게 일러바친 것이 틀림없었다.

 “많이 혼났는데 또 혼나야되나봐.”

 정금이 푹 한숨을 쉬자 최무희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엄선영, 네가 무엇이라도 되는 줄 아는데 회초리로 끝날 문제가 아니야. 이 번의 상차림, 두고 보겠어. 그리고 소정금! 어찌 그리 예법을 몰라! 예법을 모른다 생각되거든 궁궐에 있을 자격이 없을 줄 알거라! 정숙양! 그렇게 복이 떨어지도록 울라고 누가 가르치더냐!”

 “알았사옵니다.”

 소정금이 꾸벅 허리를 깊이 굽혀 인사를 건네었지만 그 것이 장난처럼 보이는 것은 정금의 특기인 것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흠을 잡기에는 깍듯한 모양새였기에 최무희는 씩씩거리며 사라졌다.

 “여기에 오래 있으면 안되겠다. 최가 선배님은 항아님을 모시러 간 게 틀림없어.”

 선영의 말에 정금은 물론이고 숙양도 흐르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숙양이는 방굿례를 못하잖아. 쫓겨날 수도 없고, 내 머릿속에 딱 한 가지 해결책이 떠올랐어.”

 선영은 눈을 빛냈다.

 “무어길래?”

 “우리 집도 넉넉지는 않고 정금이 네 집에는 돈이 많잖니.”

 “내가 하라는 거야?”

 정금은 인상을 찌푸렸다.

 “나랑 반반씩 나누자. 숙양이 사정을 알잖아.”

 “엄가 선영. 내 의가 없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야.”

 정금의 뜻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선영도 알았다.

 “숙양의 집 사정도 내 알지. 그런데 우리 집이 돈만 많다 뿐…….”

 정금의 난처한 기색은 그녀가 본가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나이가 들며 궁녀들, 특히 지밀의 궁녀들은 하나 둘 깨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지엄한 궁궐에 들어온 것은 세상살이의 시각에서 볼 적에 버려진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대부분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이 생활에 적응하였으나 정금은 유달리 민감하였다.

 “나를 권세에 이용하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야. 아니 그러우?”

 하며 조소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 조소에 걸맞게 그녀는 머리가 도통 나쁜 것 같지는 않았는데도 낙제도 자주 하였으며 사고를 일으키는 것도 빈번하였다. 마마님들이나 항아님들에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상궁의 지위에 오르지 못할 문제아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어머님께서 매번 오시면서 그래.”

 “내가 어떻게든 상궁이 되기를 바라시는 게지. 만약 되지 못한다면 나같은 것은 필요없을 것이고 그저 나는 이용의 도구일 뿐이 아니겠니. 감시로 밖에 여겨지지 않아. 나더러 예를 모른다고 다들 말하나 한 번도 방굿례를 한 적이 없어. 그런 부탁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정금의 말은 딱 떨어졌다. 실제로 그 천방지축 정금이 방굿례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이한 사실이라 할 수 있었다. 숙양이 대화를 들으며 괜찮노라 하였다.

 “내 실수로 받은 벌을 어찌 너희가 하겠니. 말만으로 고맙다.”

 침묵이 흘렀다.

 사색이 된 숙양의 표정을 선영이며 정금이 모를 리 없었다. 선영은 정금을 툭 쳤다. 정금은 입술을 깨물다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돈이라면 얼마든지 차릴 수 있었으나 집에 부탁을 하는 것이 싫은 것이었다. 그러나 정금은 선영의 재촉에 저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만다.

 “알았어. 내 상을 차리지.”

 “나도 보탤 터이니.”

 선영이 정금의 등에 손을 얹었다. 정금은 어린 나이지만 키가 훌쩍 커있어 선영이 손을 내밀면 바로 그녀의 등에 손이 닿았다.

 “아니야. 정말로 괜찮아.”

 숙양은 손을 저었다.

 “방법이 없는데 그러지 말구. 나중에 궁궐에서 나가면 출세한 너희들한테서 톡톡히 받아낼테니 걱정말어.”

 일단 결정이 되자 정금은 시원히 말했다.

 

 엄선영은 한 가지 계략을 꾸몄다. 소정금의 본가에 정금이 쇠약해져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그 소식은 신지소지와 사귀는 환관이 아는 한 별감을 통해서 전해졌다. 어머니께 상을 차려와주었으면 한다는 소식을 전한 정금은 어머니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건강만 해다오.”라고 말하는 통에 얼떨떨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방굿례를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날이면 늘 꾸짖음만 전하던 어머니였다.

 상과 함께 보약이 들여와져서야 정금은 선영이 이 일을 꾸몄다는 것을 알았다. 선영 못지 않게 정금도 눈치가 빠르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웠다.

 “엄가 선영. 내가 아프다고 그랬지? 이 계략에 능숙한 처자야.”

 “어머니가 걱정하는 걸 보니까 영 내논 자식은 아닌가보오.”

 선영이 웃자 정금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병명이 있어 가져온 약이 아니구 원기를 회복하는 약이라니 지밀에 다들 나누어야겠다.”

 정금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으며 약을 추스렸다. 그 날, 그런 연유로 지밀의 사람들은 방굿례의 음식은 물론 보약 한 재씩을 나누어 마시게 되었다. 정금은 투덜거리면서도 보약의 반은 선영에게 넘겼다. 셋은 서로 한층 가까워진 것을 느끼고 있었고 숙양은 꼭 갚으리 그들에게 약속하였다.

 궁궐 안에는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히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해, 강화도에 들어온 프랑스의 함대가 포를 쏘아댔음에도……. 조정이 직접 목탄증기선을 개발하고 학 10만마리를 잡아 열기구를 만들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간 일에 조정의 몇몇 이들은 끊임없는 상소로 준비를 촉구하였으나 조정 안의 소수만의 문제였으며 대다수의 이에게는 큰 일 같아보이지 않았다.

 흥선대원군의 개혁이 조선에 사는 이들로서는 더욱 크게 피부로 닿아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이 들어온다고 하였으나 그 전투를 접한 이는 소수요, 타락한 탐관오리며 사원은 마을 곳곳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횡포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흥선대원군이라 함은 뭇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소문의 대상이었다. 소문이 좋지 않던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으며 그 것을 하나하나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흥선대원군.

 별볼일 없는 인물. 타락한 인물.

 분명 권세를 잡기 전까지의 이하응은 모두에게 있어 그런 인물이었다.

 그러나 권세를 잡은 그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뜻밖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외척을 없애고 노론, 소론, 남인, 북인으로 나뉜 당파싸움을 막기 위해 인재등용을 고르게 하겠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과 동시에 관리들이 백성을 약탈하는 것을 금지했다. 의복제도를 개량하고 일상용구의 사치를 금하였고 사원을 철폐하였으며 군제를 개혁하여 비변사를 없애고 삼군부를 두었다. 비변사를 없앤 것은 임진왜란 때, 정치의 중추기관으로 변한 비변사를 다시 정치로부터 분리하여 본래의 군사기능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호포세를 실시해 양반에게도 세금을 내게 하였으며 법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땅에 떨어진 왕권이 위엄을 되찾으려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그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시작에 대한 희망과 함께 엄청난 반발을 불러오고 있었다.

 궁녀들에게도 새로 재건되기 시작한 경복궁에 어떤 근무가 있을지가 가장 큰 화젯거리였고 외국인들이 나타나는 기이한 일은 차순의 화젯거리였다.

 “우리는 그러면 경복궁에 다시 돌아가게 되우?”

 “아직 다 완성되지는 않았으니까 여러 마마들께 배치되어 우리가 헤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수. 중전께서 합방하시면 돌볼 아기씨도 많이 생산될 것이고.”

 선영과 숙양은 수군거렸다.

 “오랑캐가 또 들어왔다하는데 그건 또 어쩔꼬. 전쟁이 또 터지는 것 아녀..”

 숙양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또 물리치지 않겠어. 이미 물리치기도 하였고.”

 선영은 대답했다. 엄선영은 비록 아기나인이었으나 번살이를 시작하여 있었다. 번살이란 궐 안에서 교대로 일하며 실습하는 것을 말한다.

 엄선영과 숙양은 밤에 순찰을 돌다 잠시 쉬며 서로 말을 나누고는 했다. 조선은 외국의 위협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분명 알고 있었다. 외국인들의 기이한 배를 처음 보며 위협을 느끼기는 했지만 강화도에서 격렬히 싸워 그 배를 퇴각시키고서 궁궐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싸울 수 있다!’ 백성은 물론 흥선대원군, 궁궐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며 위정척사비를 세워 그 뜻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대등히 싸울 수 있다면 그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이 어찌되려고 별 놈들이 다 들어오네. 그려.”

 숙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그 놈들의 무기는 궁금하기는 하다네. 엄청 세다고 했어.”

 선영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유, 자네도 참.”

 숙양은 허허 웃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5 입궁(4) 2016 / 9 / 6 343 1 9176   
4 입궁(3) 2016 / 9 / 5 359 1 5125   
3 입궁(2) 2016 / 9 / 4 356 1 5896   
2 입궁(1) 2016 / 8 / 30 453 1 5836   
1 인연의 실(1) 2016 / 8 / 29 583 1 564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손의랑 이야기
강서진
문신-외피와 내
강서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