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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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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을 공포로 떨게 만든 희대의 악마, 혈마존.
그의 영혼이 기억을 잃은 채 차원 이동을 한다.
한 소년과 몸이 바뀐 후 깨어난 혈마존.
기억은 지워지고 싸가지없는 본성만 남았다.
욱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살벌한 말투와 그의 독자무공.
살인광이었던 그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신관이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본성이 어디 가나….

 
4 화
작성일 : 16-07-07 10:11     조회 : 407     추천 : 0     분량 : 5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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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똑.

 노크 소리에 옷을 갈아입던 레온이 대답했다.

 “누구세요?”

 “나야, 루나. 들어가도 돼?”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레온이 채 대꾸도 하기 전에 루나가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럼 실례.”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서슴없이 들어왔다. 레온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서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빌어먹을. 왜 쓸데없이 한쪽 눈을 감는 거지? 사술인가!’

 윙크에 익숙하지 않은 레온은 심장이 벌떡이는 걸 느끼며 심호흡을 했다. 그는 이 와중에도 냉철하게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혈마존의 시절 몸에 배어버린 본능과도 같은 반응이었다.

 ‘심박 속도 상승, 체온 상승, 호흡이 가빠지고 있다. 좋지 않다.’

 그때 루나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너 몸이 좋아졌구나.”

 이번에는 루나가 오히려 발갛게 달아오른 표정이 되고 말았다.

 아직 레온이 미처 상의를 입기 전이었던 것이다. 레온의 상체는 여전히 마른 체구였지만, 군데군데 근육이 박혀 제법 탄탄한 모습이었다.

 언제나 유약한 체구의 동생으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본 레온은 어쩐지 훨씬 성숙해 보였다.

 “몸이 너무 약해서 운동하고 있었으니까.”

 “무슨 운동을 하면 한 달 만에 몸이 그렇게 좋아질 수 있는 거야?”

 “간단한 운기조식을 했을 뿐이야.”

 “운기조식? 그게 뭐야?”

 처음 듣는 단어를 생소하게 여긴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레온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루나를 보았다.

 ‘운기 조식이 뭐냐고? 이런 무식한!’

 하나 그는 곧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가 알기로는 루나는 상당히 똑똑한 여자였다.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고 방대한 지식을 가진 여자였다.

 그래도 그렇지. 운기조식을 모르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한 번쯤은 운기조식을 들어보긴 했을 텐데.

 기억을 잃더라도 지식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레온은 자신의 머릿속에 든 잡다한 지식이 중원에 있을 때 습득한 것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루나가 이상하게 느껴진 게다.

 “쉽게 말해서 체내의 내기를 운용하는 거야. 몸 안의 혈맥을 따라 기를 순환시키면서 호흡하는 방법이라고 보면 돼.”

 “내기? 그건 또 뭐야?”

 레온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태어나면서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기를 가지고 태어나. 더 쉽게 말하자면 살아가는 에너지 같은 것이지. 이 기를 선천진기(先天珍技)라고 해. 그리고 내공을 수련하면 기가 점점 몸에 축적되고 불어서 단전에 모이게 되지. 이렇게 몸 안에 잠재되어 있는 기를 내기라고 생각하면 돼.”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그런 걸 잘 알아?”

 “그건 본좌가… 본좌가…….”

 여기서 레온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러한 것들을 자신이 왜 알고 있는지, 어떤 경위로 알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사람들은 진기나 내가무공이라는 것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것 같았다.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이 이곳사람들과는 어쩐지 겉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레온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방을 둘러보던 루나가 돌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다 뭐니?”

 그녀가 가리킨 것은 벽 곳곳에 붙은 종이였다.

 ‘사람 죽이지 말자.’

 ‘이유 없이 사람 패지 말자.’

 ‘은혜에 보답하자.’ ‘

 ‘욱 하지 말자.’

 ‘귀찮다고 부수지 말자.’

 ‘착하게 살자.’

 그 외에도 황당한 글귀가 많이 붙어 있었다. 전부 감옥에 갇혀 반성중인 흉악범들이나 생각할 법한 문장이었다.

 레온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 서둘러 말을 돌렸다.

 “왜, 왜 온 거야?”

 “자, 네가 좋아하는 토마토 주스. 오늘 고생한 것 같아서 특별히 만들어왔어. 마시고 기운 내.”

 “보, 본좌를 주려고?”

 “그래. 너 마시라고 가져 온 거야. 사양 말고 드세요.”

 “고, 고맙다.”

 레온은 뻣뻣하게 대답하고는 주스를 한입 마셨다. 곱게 갈아진 토마토가 아삭아삭 씹히면서 새콤달콤한 맛이 무척 좋았다.

 ‘맛있… 군.’

 감격해 버린 레온은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나오는 말을 흘려버렸다.

 “네 이년… 제법 맘에 드는 짓을 하는구나.”

 불행히도 레온은 마시던 주스를 모두 뺏겼음은 물론이고, 머리에 혹이 나도록 두드려 맞고 말았다.

 

 ***

 

 데이먼과 루나가 우려했던 일은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레온이 가게 일을 돕기 시작한지 한 달이 되어가던 때, ‘그 녀석들’이 오고 만 것이다.

 “음? 우린 멧돼지 구이 시킨 적 없는데?”

 덩치가 산적처럼 큰 사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바로 제프리 일가의 장남, 버몬이었다. 며칠 전 데이먼과 루나가 걱정하던 양아치 이인조 중 한명이기도 했다.

 레온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도 음식이 잘못 나왔다고 해서 벌써 두 번째 내온 요리였다.

 “하지만 손님, 분명히 주문표에 적힌 건 멧돼지 구이라고.”

 “그 주문표 누가 적었지?”

 “그야… 제가 적었습니다만.”

 “그럼 잘못 적은 건 누구겠나?”

 이것들이 진짜…

 말도 안 되는 시비였지만 레온은 애써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 분명히 주문하실 때 멧돼지 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버몬과 함께 앉아 있던, 눈이 날카롭게 찢어져 올라 간 남자가 말했다. 그는 도시에서 두 번째로 재벌가인 할슈타르가의 외아들 그란이었다.

 “친구, 나도 분명히 들었지만 버몬은 멧돼지 구이를 시킨 적이 없어.”

 “이래도 우길 텐가?”

 버몬이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레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 진짜 성질 같으면 이것들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고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다.

 레온은 애써 분을 삭이며 브란을 돌아보았다.

 브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받아주자는 뜻이다.

 레온은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들은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가져 와. 양고기 스테이크로. 와인도 같이.”

 “양고기 스테이크랑 와인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

 버몬이 레온의 발길을 잡았다.

 “그건 두고 가.”

 “뭘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거. 멧돼지 구이.”

 “하지만 이건 주문하지 않으셨다고…….”

 “어차피 네가 실수한 것 아냐. 그거 버릴 거야? 그러긴 아깝잖아. 그리고 우린 네가 주문을 잘못 받는 바람에 또 한참 기다려야 할 것 아냐. 그러니 보상은 해줘야지.”

 레온이 다시 브란을 돌아보았다. 브란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드시면서 잠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버몬과 그란은 히죽 웃으면서 음식을 받았다.

 삼십 분 정도 지나서 레온이 다시 양고기 스테이크를 가지고 왔다.

 “손님 주문하신 양고기 스테이크랑 와인입니다.”

 “음? 무슨 소리야? 양고기 스테이크라니?”

 ‘설마 이번에도 또?’

 레온은 빠드득 이가 갈리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까 멧돼지 구이가 잘못된 거라고 양고기 스테이크를 시키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거 안 시켰어. 도통 멧돼지 구이를 먹고 나서 또 양고기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분명히…….”

 “우린 맥주 두 잔과 과일 안주를 시켰는데 왜 이렇게 늦나 했더니. 양고기 스테이크는 왜 가지고 온 거야?”

 그때 루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것 봐요! 적당히 좀 하세요!”

 버몬이 루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러다가 직원이 손님 치겠네.”

 “저도 들었다구요! 분명히 양고기 스테이크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란, 내가 그랬나?”

 “아니. 난 맥주 두 잔과 과일 안주밖에 못 들었는데.”

 “이 사람들이 진짜!”

 “후후, 화내니까 더 귀여워 보이네.”

 버몬과 그란은 이 도시의 토박이었다.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어느 정도 아는 사이이기도 했다. 물론 레온도.

 그들은 요 근래 루나만 보면 음흉한 시선을 던지곤 했었다.

 버몬이 능글맞게 웃으며 루나의 엉덩이로 손을 뻗었다. 레온이 그 손목을 꽉 움켜잡았다.

 “윽!”

 레온이 얼른 버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물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손모가지 잘리고 싶나?”

 마주 앉아 있던 그란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 녀석이! 그 손 놓지 못할까!”

 이쯤 되자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술렁이며 이쪽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게 중 몇 명은 말썽을 부리는 자들이 버몬과 그란임을 알아보고 은근 슬쩍 자리를 뜨기도 했다.

 식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레온은 할 수 없이 손을 놓아주었다. 자칫 식당을 운영하는 데이먼에게 해가 돌아갈까 염려한 탓이었다.

 “건방진 놈!”

 버몬이 손목을 어루만지더니 돌연 주먹질을 했다.

 빠악!

 “레온!”

 얼굴을 얻어맞은 레온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입가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감히 종업원 따위가 손님을 협박해?”

 버몬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란도 일어나며 검을 뽑았다. 검신이 번쩍였다. 날이 잘 선 검이었다.

 “왜, 왜들 이러세요!”

 루나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남은 식당 손님들은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대신 숨죽이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데이먼이 주방에서 달려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왜들 이러십니까? 우선 침착하십시오.”

 버몬이 데이먼을 돌아보며 이죽거렸다.

 “방금 당신 딸과 종업원이 날 무시하더라고.”

 버몬과 그란이 횡포를 부린 게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데이먼은 고개를 숙였다. 이 두 사람을 자극시켜봐야 좋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한 번만 봐주십시오.”

 “난감하군. 주인장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주문하신 음식은 곧 준비하겠습니다.”

 “잠깐.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기분 나쁘단 말이지.”

 버몬이 레온에게 잡혔던 손목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레온이었나?”

 “그렇습니다만.”

 레온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지나가면 용서해주지.”

 아주 짧은 순간, 레온의 전신에 살기가 휘몰아쳤다.

 하나 막상 화가 날 순간이 오자, 오히려 그의 이성은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람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레온을 지켜보았다.

 루나가 나섰다.

 “레온, 하지 마! 그런 거!”

 “호오? 그럼 가게 한 번 엎을까?”

 버몬이 이죽거렸다. 그때였다.

 털썩!

 “레온!”

 레온이 두 손을 바닥에 짚고는 기어가기 시작했다. 버몬이 다리를 쫙 벌리고 섰다. 레온이 그 사이로 지나갔다.

 “후후, 이건 서비스야.”

 지켜보던 그란이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을 바닥에 쏟아냈다.

 “핥아먹어.”

 “이봐요!”

 루나가 다시 달려들어 소리쳤다.

 하지만 레온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바닥에 쏟아진 와인을 핥았다.

 “뭐야? 진짜 핥잖아? 하하하!”

 “이러니까 꼭 개새끼 같군. 킬킬.”

 “됐어. 이제 일어나도 좋아.”

 레온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가에 와인이 번들번들 묻어 있었다.

 버몬이 히죽 웃었다.

 “와인 맛이 어떻던가?”

 레온이 싱긋 미소 지었다.

 “생각보다 숙성이 잘 됐더군요.”

 버몬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애송이가 허세까지 부리나.

 “흥! 번개 처맞았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군. 가자, 그란.”

 “주인장,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시킨 게 나오지 않아서 안타깝군요.”

 두 사람은 계산도 하지 않고 식당을 나갔다.

 그제야 홀 곳곳에서 두 양아치를 욕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루나가 얼른 레온에게 달려갔다.

 “레온, 괜찮아?”

 레온은 의외로 밝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응, 괜찮아. 별 일도 아닌데, 뭐.”

 ‘어휴, 넌 속도 없니?’

 루나는 마냥 사람 좋은 레온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레온은 묵묵히 식당 구석으로 가서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녀석들이 어질러 놓은 음식들을 정리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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