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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광야에서
작가 : th쓰
작품등록일 : 2017.11.8

홀로 평원에 살아가던 사람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낯선 일행을 만나 시작되는 이야기.

 
1-19. 마녀의 평원
작성일 : 17-12-18 04:12     조회 : 288     추천 : 1     분량 : 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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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프는 울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흥건하게 젖어 어느 것이 눈물이고 어느 것이 술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실내는 적당히 어두웠고 벽난로가 데운 공기는 답답했기에 색을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아니, 그걸 분간할 정도로 열심히 쳐다보기에는, 그라프가 너무 웃겼다. 조금 심하게 웃겼다.

 

 “으허엉, 신이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나쁜 애예요! 그런데도 저에게 와주시다니, 아! 자비로우신 분!”

 

 그라프는 양 손을 모아 하늘 위로 높이 올리더니 다시 옆으로 활짝 벌렸다. 허공의 누군가를 껴안는 모양새였다. 아그나는 나와 싸우려는 생각은 던져버렸는지 완전히 신이 나 보였다. 그라프가 바닥에 무릎을 대기도 전, 진즉에 술잔이고 뭐고 던져두고 미친 듯이 웃으며 그라프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그라프와 아그나의 주위로 모였다. 아그나는 덥지? 라며 그라프의 로브를 받아 어딘가로 던져버렸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그라프가 술 취한 신관임을 알았다. 그것도 술에 취해 신을 보는 신관임을.

 

 내가 보기에도 퍽 웃긴 광경이기는 했다. 그라프는 신이 어찌 생겼느냐 물으며 놀리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가엾어 했고, 아그나는 자신을 가엾어 하는 그라프가 귀엽다며 또 깔깔대고 웃었다. 홧김에 도발을 해 대긴 했지만, 이렇게 되니 다행이군.

 

 남몰래 한숨을 쉬다가 시선을 느꼈다. 조금 놀라 돌아보니 이슈트반과 눈이 마주쳤다. 이슈트반은 이 소란스러운 풍경 안에서 유일하게 울며 신을 찾는 그라프를 보지 않았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꼬리를 가볍게 당겨 웃은 그는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네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그의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라프를 구경하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귀족들의 헛짓거리에 어울려 줄 시간은 없다.

 

 사실 나는 그라프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큰 관심이라고 해봤자 취한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정도지만, 신관이라면 노골적으로 학을 떼고 싫어했던(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과거에 비하면 대단히 열려있는 태도였다. 부엌과 홀을 오가며 일을 하던 네모는 아그나가 그라프의 로브를 벗기고 신관복이 드러난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와 그라프를 번갈아 보며 내 눈치를 살피기까지 했다. 당장이라도 내가 신 아르마디아에게 기도하는 그라프에게 혀를 차고 인상을 쓰며 방으로 올라가거나 여관을 뛰쳐나가지 않으면 마녀의 숲에서 사령이 들러붙었나 의심이라도 할 기세였다.

 

 물론 지금도 내가 그라프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그라프가 평원을 지나는 내내 없는 체력을 쥐어짜고 신성력을 써대면서까지 짐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아 늘 미안해했으며 꼴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고까지 한 좋은 사람이라는 점은 나에게 전혀 좋은 점수를 주지 못했다. 그라프가 내가 마녀족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할 때마다 없는 말재주로도 끼어들어 어떻게든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를 썼다는 점도, 내가 마녀족임을 안 후에도 일행에게, 심지어는 고용주인 이슈트반에게도 내 정체를 함구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양이가 쥐를 생각하는 모양새로 비추어져 거부감이 들었을 뿐이다. 애초에 소수민족이 박해받은 원흉인 신관들과 멸족된 소수민족의 후예가 친해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이는 그라프와 레오스 개인의 문제를 떠나 가해자의 교리를 따르는 신관과 피해자의 유족이자 당사자이기도 한 사람의 문제였다. 나는 그라프가 어떤 사람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가져 줄 이유도 없다.

 

 “아르마디아시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저는……. 아, 당신만을 이 몸에 섬기겠다고 맹세했건만!”

 

 아, 저 꼴을 보라지. 이마를 짚었다. 그라프는 진심으로 탄식하고 있었다. 눈에서는 터진 댐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신 아르마디아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내가 행한 주술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칭찬을 해주어야 할 판이다. 그라프는 바닥에 머리를 대고 흐느꼈다.

 

 그가 스스로가 범했다는 죄는 별 것이 아니다. 아르마디아만을 몸에 섬기겠다는 맹세를 어겼다는 말대로, 따르는 신 이외의 힘을 몸에 담은 것뿐이다. 자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악행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 치료를 받았을 뿐이다.

 

 마녀족을 탄압한 주체는 카나르만이지만, 현재 이 나라의 국교는 카나르만도 아르마디아도 아니다. 그렇게나 신권으로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설친 결과로는 허무하다. 옛날, 카나르만은 이 나라의 국교로서 자리 잡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잡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신의 이름을 빌린 통제는 신앙이 우선되어야 했지만 카나르만이 국교로 자리잡은 과정은 지나치게 왕권과 결탁되어 국민들 사이에 자리잡지 못한 탓이었다. 카나르만은 나라에서 완전히 세력을 잃게 되거나, 한 발 물러서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지금 이 나라, 아마란다에는 두 종교 카나르만과 아르마디아가 공존하고 있다.

 

 수많은 종교들 중 카나르만과 아르마디아가 이 대륙에서 가장 득세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아마란다에서 두 종교가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카나르만과 아르마디아만이 왕권을 인정하고 귀족과 왕족의 권리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두 종교가 같은 신성을 바탕으로 한 두 신을 섬기는 덕이었다. 단순히 말하자면 그들의 교리 내에서 이 세계는 카나르만과 아르마디아라는 두 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그렇다고 두 신과 두 종교의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카나르만도 아르마디아도 단 하나의 신만을 섬길 것을 명령한다. 그들 교리는 그렇다. 유일하지 않아도 홀로 완전한 신. 그리고 완전한 신을 섬기는 신관은 신 이외의 힘을 몸에 담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 그라프는 마녀의 주술을 몸에 담았다. 나는 의식 없는 그의 몸에 주술을 사용함으로서 그가 스스로의 교리를 깨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 때 그라프를 치료하지 않았으면 그가 지금 저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었을까? 물론, 지난 일을 가정하는 것 큼 멍청한 짓이 없다.

 

 나는 지금 그저 그에게 나타날 주술의 완성이 궁금할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신관의 신성력은(어느 교의 어느 신을 따르는 신관이던 간에) 마법사의 마법이나 마녀의 주술, 부적은 물론이고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독자적인 힘과 어긋난다고 한다. 또한 현대에 섬김을 받는 대부분의 신들은 자신 외의 힘을 밀어내고 상충한다고 알려져 있다. 신관들 또한 섬기는 신 이외의 힘을 멀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개의 신관들은 외부의 힘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기 전 신성력을 발현해 외부의 힘을 거부한다. 거부하지 못한 자는 신전이나 신당에서 다른 신관들의 힘을 빌려 스스로를 정화하고 정화에 실패하면 파문 당한다. 파문당한 신관은 그 자체로 교리에 반하는 존재이므로 교단의 수치로 취급받는다. 그렇기에 신관이 섬기는 신 이외의 힘을 받아들였을 때의 반응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지금 그라프가 그러하듯이,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존재에 수치심을 느끼고 정화받기 전까지는 철저히 주변에 그 사실을 숨기기 때문이다.

 

 그라프에게 한 치료에 사심은 없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내게 해를 끼친 적도 없으니까. 오히려 그의 인간적인 면에는 호감마저 느끼고 있다. 그라프는 타인을 배려하고 친절하며 자신감은 부족해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용기는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의 눈 속에 깃든 배신감을 기억한다. 다친 다리에 주술을 쓴 나를 향한 배척을 보았다. 그는 마녀의 평원에서 나타난 수상한 길잡이에게도 망설임 없이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며 동시에 소수민족의 흔적에 선명한 적의를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라프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주술 중 내가 쓴 주술이 마녀족의 산물임을 알 정도로 똑똑하다. 돈 많은 귀족까지 뒷배로 둔 그가 당장 교단에 나를 고발하지 않는 오로지 하나, 자신의 몸 안에 주술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궁금하다. 그라프의 몸속으로 파고들어간 솔키아는 제 구실을 했을까? 그라프의 다리는 낫고 있을까? 아니면 그대로 굳어버린 채 그라프의 몸을 썩힐까? 혹은 주술이 실패해 아르마디아를 찾으며 울부짖는 신관의 몸에 영구한 고통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과연, 과연 신관들은 본인들이 그토록 강력히 주장하는 것처럼 신 이외의 것을, 부정한 것을 받아들이면 타락할까? 신성력이 아닌 힘은 배척받아 마땅한 것인가?

 

 그라프의 다리는 나을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그의 곁을 맴돌며 천천히 경과를 확인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평원에서 다친 자를 외면하지 않으리라 스스로에게 맹세했고 그는 우연히도 나와 마주쳐 부상을 입은 자였을 뿐이다.

 

 나는 웃으며 맥주를 마셨다. 낡은 맥주잔 너머로, 내 미소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가의 말
 

 ch. 1 마녀의 평원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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