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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무제
작가 : 시예랑
작품등록일 : 2017.11.19

가뜩이나 힘든 세상, 오지랖까지 넓어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고생하는 수호. 서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세상, 사람과 깊게 엮이는 것 자체가 질색인 재인. 완전 반대성향인 이 둘의 유쾌한 로맨스.

 
34화 술한잔(2)
작성일 : 17-12-16 20:21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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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제가 유학 생활을 좀 오래 해서요. 그런 문화는 좀 익숙한 편이에요. 그쪽 성향의 남자들 중 친구도 있었고요. 걔네들 중에는 결국 여자랑 잘 돼서 결혼한 친구들도 있어요. 그러니 가능성이 완전히 제로라는 건 아니죠. 저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한번 만나보는 것도 재인씨한테 나쁠 건…”

 

 “나쁠 건 많죠. 내가 왜 관심도 없는 그쪽을 만나서 시간을 허비해야 합니까? 지금도 시간 아까워서 죽겠는데…”

 

 “……네?”

 

 “하아…. 이만 돌아가시죠? 그쪽이 잘났든 못났든 저는 앞으로도 여자랑 엮일 마음 없습니다. 특히 댁처럼 독한 향수나 뿌리고 다니는 여자는 더 질색이니까..”

 

 

 여자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 듯 입술을 짓이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리에 돌아온 태민이 여자를 보고 살짝 눈이 휘둥그레 진 채로 호감을 갖은 목소리로 재인에게 물었다.

 

 

 “누구셔?”

 

 “아. 신경 쓸 거 없어. 네가 자리를 비우니까 이러잖아.”

 

 “뭐?”

 

 

 재인이 다정하게 태민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뱉자 태민이 의아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다정한 놈이 아닌데 왜 저러지…? 취했나? 그 순간 여자를 다시 쳐다보자 여자는 경멸 어린 표정으로 태민을 째려보더니 획 돌아가 버렸다. 잠깐… 이 웃기지도 않는 스킨 쉽… 이상한 발언… 그리고 찌라시!!

 

 

 “한재인 너!! 방금 저 여자 노리고 이런 거지 어?! 오해 받으려면 혼자 받던가!! 왜 나를 엮는 건데 왜?!!”

 

 “나도 너랑 엮기는 오해 토 나올 것 같거든? 네가 이런 곳에 데려오는 바람에 쓸데없는 여자한테 시간 뺏기잖아.”

 

 “야. 쓸데없긴.. 대충 봐도 저 여자 스타일 죽이던데…. 네가 싫으면 친구인 나한테 던져주던가 하지..”

 

 “다음 주에 맞선 보는 놈이 무슨.. 네가 극찬하던 칵테일은 다 마셨어. 여기 더 있다간 사람들한테 치여서 짜증날 것 같으니까 나 이만 돌아간다.”

 

 “버..벌써? 야 얼마 마시지도 않았구만.. 야! 진짜 가?!”

 

 

 태민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인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냥 그딴 북적거리는 곳에 가지 말고 집에서 쉬기나 할걸.. 괜히 짜증만 늘어난 기분이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지 한 손에는 통을 들고 소탈한 모습으로 수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그 여자와는 확실히 비교될 수밖에 없는 옷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몸은 좀 괜찮아요?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이는데…”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몸은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요? 좋아졌다니 다행이네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탑승한 후, 재인은 55, 56층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자신의 것까지 눌러준 재인에게 수호는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데 갇힌 공간이라 그런지 수호의 체향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인지하지도 못했던 향인데, 오늘따라 그 독한 향수를 썼던 여자 때문인지 유독 좋게 느껴졌다.

 

 

 “혹시 향수 쓰나요?”

 

 “네? 향수……요? 아무것도 안 쓰는데요.”

 

 

 씻을 때도 샴푸, 린스, 바디워시 이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며 게다가 바디 로션은 다 떨어져서 요즘 다인이 베이비로션 쓰는데 혹시 그건가? 수호는 괜히 자신의 몸을 킁킁대며 맡아보았다. 지금은 베이비로션 냄새도 희미해서 별 냄새도 안 나는데.. 오히려 지금 자신의 손 밑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통 때문에 살짝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수호는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쓰레기통을 재인과 멀리해서 들게 되었다.

 

 

 “근데 술 마셨어요? 술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데..”

 

 “네. 조금요.”

 

 “감기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닐 텐데 술은 마시지 말지… 술이 면역력 저하를 시키고 수면에도 도움이 안 돼서 감기 걸렸을 때는 피하는게 좋거든요. 과일 많이 드세요. 집에 한라봉 많다면서요. 그거 아직 남았어요? 그거 드세요. 비타민C가 좋으니까.. 그리고 탈수에도 영향을 끼치니까 물도 잘 섭취하시고요.”

 

 “……정말 진수호씨는 오지랖이 넓으시네요. 칵테일 두잔 마신 것뿐인데 이런 큰 걱정을 해주시는 걸 보니..”

 

 

 에이씨……..칵테일이었어? 생긴 건 독한 양주나 마시게 생겼는데 뭐 이렇게 상큼한 걸 마셨다냐.. 아무튼 멀쩡해 보이니 안심이었다. 저번에 아파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어울리지 않게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게 여간 신경 쓰였는데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듯 하였다. 역시 자신한테 친구하자고 했던 것은 머리에 열이 많아서 했던 헛소리인게 분명하지..

 

 

 “아, 그런데 친구하기로 해놓고 서로 연락처도 모르네요. 핸드폰 있으면 줘보시겠습니까? "

 

 “네?”

 

 

 그거 헛소리 아니었어? 마치 수호에게 어딜 빠져나가려 하냐 추궁하듯 친구 얘기를 다시 들먹거리며 이젠 연락처까지 공유하려 하고 있었다. 친구라니…. 이렇게 서로에게 정중한 높임말을 쓰는 친구가 어디 있다고… 게다가 친구라면 대충 어울리기라도 해야하는데 이렇게 안 어울리는 친구가 과연 있을까?

 

 

 “그게… 쓰레기 버리러 나온 거라 폰은 지금 없는데요..”

 

 “그러면 여기 찍어 주시죠.”

 

 “…..저기.. 정말 저랑 친구 하시게요?”

 

 “네. 수호씨도 저번에 좋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렇긴 하다만…. 저는 아프셔서 헛소리하시는 건 줄 알았거든요. 왜…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쓸쓸하고 외롭잖아요. 그래서 친구 찾는 건가 했는데…”

 

 “그렇다면 거절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순간 재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아니… 거절하는 뉘앙스 좀 풍겼다고 저렇게 쳐다볼 것까지야… 정말 거절했다가는 몇 주간의 이곳 생활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지내다 보니 김경복과의 일을 제외하면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이곳에 있는 동안 친구처럼 지내는 거면 뭐…

 

 

 “폰 주세요. 연락처 찍어 드릴게요…. 그나저나 뭔가 이색적인 조합이네요.”

 

 “뭐가요?”

 

 “아니… 이렇게 정중한 화법으로 서로를 대하는 친구는 없을 것 같아서요. 하하.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이색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화법은 천천히 생각해보죠.”

 

 “네. 그럼 전 이만…”

 

 

 55층에 도착한 수호가 고개를 살짝 꾸벅이고는 엘리베이터를 나왔는데 문 앞에는 어느 한 쭈구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무릎 사이로 파묻고 있었다. 순간 남의 집 앞에서 뭐하시는 거냐고 말할 뻔했지만 옷 스타일과 뒤통수, 그리고 처량하게 들고있는 갈색 가방이 워낙 익숙해서 누구인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김경복!! 얘가 왜 여기 있어?! 게다가 뒤에는 김경복과 있는 자신을 결코 봐서는 안 될 인물이 남아 있었다.

 

 재인도 수상쩍은 인물이 문 앞에 죽치고 있는걸 봤는지 고개를 우측으로 까딱하며 의아하게 쳐다보았고 수호는 그 시선을 막기 위해 배구시합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어색한 블로킹 자세로 그의 앞을 막고 잘 가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짧은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그 소리에 김경복의 고개가 서서히 올라가자 수호는 입술 한가운데 검지를 올리고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위층에서 문이 닫히는 기계 소리가 들려오자 수호는 작은 안도의 한숨 소리를 내며 경복을 집에 들여보냈다.

 

 

 “아… 진짜 심장마비 걸릴 뻔했네. 너는 왜 내가 음식물 쓰레기 버릴 때마다 여기 나타나는 건데? 아니… 그것보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온 거야?!”

 

 “아래에서는 네 조카가 열어줬는데… 현관문 앞에서는 낯선 사람이라고 안된다고 하더라… 네 조카한테 농락당한 기분이야.. 이럴 거면 애초에 아래층도 열어주지 말지.. 고모 친구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는데.. 그래서 너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얼어 죽을!! 요즘 동성애자들이 왜 나한테 자꾸 친구 하자고 하는 거야 도대체! 내가 그들 세상에서는 친구 하기 좋은 스타일인가?”

 

 “왜? 다른 누가 너보고 친구 하재?”

 

 “몰라. 아무튼.. 다인이가 잘 했네. 내가 함부로 열어주지 말라고 가르쳤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래층을 열어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근데 너는 여기 왜 온 거야? 설마 나를 통해서 위층 남자 보려고 그러는 건?!”

 

 “…….”

 

 “이게?!!! 혹시나 해서 찔러봤는데 진짜였어!! 야,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내 뒤에 누가 있었는 줄은 알아?”

 

 “누구…. 혹시 재인씨 있었어?!!”

 

 “그래!! 다행히 내가 가려서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우리 집 앞에 있는 그림을 보게 되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둘이 다시 사귀는구나 생각할 거 아니야!! 나 이제 그런 오해 받기 싫거든?! 게다가 여긴 내가 사는 곳도 아니고 오빠가 사는 곳인데 어린 조카도 있으면서 집에 남자나 들락날락하게 한다고 소문나면 누가 책임질 거야?”

 

 “아… 오늘 퇴근이 늦었나? 보통 재인씨 칼퇴근한다고 들었거든… 일 많아도 회사에서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그래서 지금쯤이면 당연히 집이라 생각하고 온건데…”

 

 “……이제 완전히 스토커의 길로 들어 선 거냐?”

 

 

 뒤를 쫓는 것도 모자라 이제 윗집 남자 일정까지 조사하는 거로 봐서는 디자인을 접고 스토커의 길로 입문하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하지만 스토커는 발끈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죄를 지은사람들은 다들 먼저 그렇게 얘기하고는 하지…

 

 

 “스토커 짓을 할 거면 곱게 하던가. 왜 우리 오빠 집을 아지트로 사용하려고 그래? 당장 돌아가.”

 

 “아니라니까…! 그냥 요즘 재인씨 얼굴 보기 힘드니까… 근데 그런 얘기 들어줄 친구가 너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 전화했는데 연락도 안 되고… 그냥 한번 찾아와봤는데 네 조카가 바로 문 열어 주는 거야. 물론 현관에서는 막혀버렸지만…”

 

 

 허허… 김경복 마음속에 난 이미 친구가 되어 버렸나 보군. 누가 용서해준다고 했지 친구 먹자고 했나? 헤어진 마당에 친구가 어디 있다고… 그리고 이런 대화를 전 여친에게 하는 것도 비매너 아닌가? 하아… 어쩌겠는가.. 상대가 김경복인데… 저놈 성격을 모르고 1년이나 만났던 내가 바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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