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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hair)헤어날 수 없는 탈모
작가 : 탈모인
작품등록일 : 2017.12.16

의대생 한지현은 탈모 강의를 듣고 7년 전을 떠올린다. 평범한 여중생이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급작스레 빠지게 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탈모 병변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암세포처럼 분열하고... 결국 지현은 대학병원 피부과에 내원한다. 열일곱의 나이로 모든 머리카락을 잃게 된 지현은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여느 때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진료를 받고 나온 지현은 '전신 탈모증'을 앓는 동갑내기 유청명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는 유일무이한 친구이다.
훗날 의대생이 된 지현은 자신의 힘으로 전신 탈모증을 치료하려 하는데...
가발부터 피부과, 동의보감, 심리상담까지 탈모의 모든 면을 다룬 메디컬 소설!

 
35~36장: 장애, 심리상담
작성일 : 17-12-16 17:31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7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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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장애(handicap)

 “띵 동, 띵 동.”

  원룸 초인종이 울린 건 토요일 오전 8시경이었다. 토요일 아침이라 나는 당연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대부분의 햇빛을 여과한 연노란 커튼 탓에, 이미 오전 8시를 넘어섰지만 원룸의 조도는 이른 새벽을 연상시켰다.

 “띵 동, 띵 동.”

  처음 몇 번은 꽤나 당혹스러웠다. 가발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벨소리가 원룸으로 울려 퍼질 때면, 맥박이 심장을 뚫고 가슴까지 용솟음쳤다. 지금은 괜찮았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찌뿌드드한 몸을 질질 끌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가발도, 모자도 착용하지 않은 민머리 상태였다. 현관문을 열기 전에 벨소리는 또다시 원룸으로 울려 퍼졌다.

 “띵 동, 띵 동. 나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내 방 벨을 누를 사람은 당연히 청명밖에 없었다. 모닝콜을 맞추지 않는 토요일엔 나는 이 소리를 기점으로 깨어나고 있었다.

  후드티 모자를 쓰고, 수건 하나만 들고 나타난 청명도 나와 비슷한 상태였다. 흐릿한 눈망울은 아직 잠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꾀죄죄한 얼굴을 보니 세수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졸린 눈으로 나는 양파슬러시를 제조했다. 냉장고에 머물던 양파의 차가운 감촉이 두피로 전해져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머리는 이내 양파로 하얗게 뒤덮였고 나도 청명에게 양파를 발라주었다. 여분의 양파슬러시는 검지에 묻혀 눈썹에다 바르며 우리는 양파슬러시 한 대접을 뚝딱 해치웠다.

 “나중에 점심 먹을 때 연락할게.”

 “그래. 조금 있다가 연락해.”

  아침을 먹지 않아서인지 11시가 되자 뱃속이 허전해졌다. 나는 카톡을 통해 앞집의 청명과 대화를 나눴다. 의논 끝에 아침 겸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나는 배달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대학로의 L분식집에서 비빔밥을 주문했다. 지갑에서 돈을 빼놓은 나는 책상 모서리의 가발 거치대를 침대로 옮겼다. 현관문에서 엿보일 수도 있기에 사각지대인 침대로 치운 것이었다. 행여나 배달원이 조금 들어오더라도 냉장고가 시야를 가로막아주기에 가발이 발각될 염려는 없었다.

  비니와 챙 모자를 착용하고 나는 후드집업 모자를 추가로 뒤집어썼다. 그 상태로 배달원을 맞이할 계획이었다. 사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가발을 착용하는 것이지만 매번 그러는 건 여러모로 불편하고 번거로웠다. 그리하여 집에서 배달음식을 받을 때는 그냥 모자 세 개를 착용했다. 대신에 고개를 거의 직각으로 숙여야 했다.

 “띵 동. 띵 동. 음식 왔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배달원은 비빔밥 두 그릇이 담긴 불투명한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이미 고개를 푹 숙여 시선을 피한 자세였다. 나는 그 상태에서 왼손으로 현금 1만 2천원을 내밀었다. 거스름돈이 오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만 원짜리 하나와 천 원짜리 두 개를 준비한 상태였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음식 봉투를 쥐었다.

 “맛있게 드세요.”

 “안녕히 가세요.”

  잠시 뒤, 나는 현관문을 열었고, 후드티만 머리에 걸친 청명이 잽싸게 내 방으로 넘어왔다. 나는 작은 상에다가 비빔밥 두 그릇을 올려놓았다. 청명은 냉장고에서 콩자반을 꺼내왔다.

 “공부는 잘 돼?”

  비빔밥을 오물거리며 내가 말했다. 대답 대신 청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볼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저작운동 중인 모양이었다. 10초도 안 되어 청명은 입을 열었다.

 “잘 안 돼. 사실 한숨 자다왔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구.”

 “나도 마찬가지야.”

  시험기간을 맞이한 우리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막막함을 토로했다. 간만에 먹는 비빔밥은 10분도 안 되어 뱃속으로 옮겨졌다. 식사를 마칠 무렵에 청명은 콩자반 하나를 젓가락 끝으로 아슬아슬하게 집으며 말했다.

 “밤에 산책 갈 거지? 대학교 운동장으로 말이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청명의 제안을 수락한 나는 떨어질 듯 말 듯, 위태로운 처지의 콩자반만 쳐다보았다. 콩자반은 결국 운송 도중에 상으로 낙하했다. 청명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콩자반을 다시 집어서 입에 넣었다.

 “밤 11시에 나가면 되지?”

 “응, 나중에 저녁 먹으러 올게. 그 때 봐.”

  아까 그 배달원과 다시 마주하기까지 대략 7시간이 걸렸다. 시험공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이 재밌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띵 동. 띵 동. 배달 왔습니다.”

  아까처럼 배달원은 아무 말 없이 음식이 담긴 불투명한 흰색 봉투를 내밀었다. 7시간 전처럼 나는 시선을 피하며 돈을 건넸다. 저녁으로는 오징어덮밥 두 그릇과 둘이서 나눠 먹을 떡볶이를 주문했다. 매웠다. 맵싸한 오징어덮밥과 떡볶이를 번갈아 먹던 청명과 나는 금세 땀으로 흥건해졌다. 매콤한 고추장에 혀는 얼얼하게 타올랐고 얼굴은 대추처럼 발그스름해졌다. 청명도 나도 목 윗부분이 온통 땀으로 뒤덮였다. 콧잔등과 볼, 이마, 그리고 머리카락이 사라진 두피까지 말이다. 마치 얼굴과 머리의 모든 땀구멍에서 땀이 배출되는 듯했다. 휴지로 땀을 닦아가며 우리는 음식을 마저 먹어치웠다.

 “후아.”

  입 속의 불을 끄기 위해서 한 잔의 물을 구강으로 투여했지만 알알한 혓바닥은 진정되지 않았다. 청명의 입술도 얼얼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관자놀이에서는 혈류를 머금은 얕은관자동맥이 마치 살이 오른 미꾸라지처럼 한껏 팽창한 상태였다.

  저녁을 먹고 연노란 커튼 너머 바깥을 바라보니 밤이었다. 초겨울의 어둠은 이미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한 상태였다. 땀을 닦은 뒤 청명은 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시험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밤 11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가장 활기찬 순간이었다.

  경험상 토요일 밤 11시는 N대학교 캠퍼스가 여느 때보다 호젓한 시간대였다. 고향이나 해산시의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대부분이고, 대학생답지 않게 이미 잠든 사람도 더러 있을 터였다. 학과마다 다르겠지만 동아리나 종강 모임도 이미 끝난 상태였다. 청명과 나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우리는 헌 가발과 비니 그리고 외투 모자를 쓰고 원룸을 나왔다. 운동할 때 벗겨지지 않도록 양면테이프로 비니와 외투 모자를 접합한 상태였다.

  삼삼오오 깔깔거리는 대학생 무리를 지나, 8차선 횡단보도를 건너 의대와 한의대를 넘어 청명과 나는 대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토요일 밤의 대학교 캠퍼스는 어둠에 휩싸여 시야가 완전하지 못했다. 불침번처럼 서 있는 가로등만이 눈을 부라릴 뿐이었다. 상대방의 얼굴을 온전히 인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안성맞춤이었다.

  학생회관 근처의 운동장에는 사람이 채 다섯 명도 되지 않았다. 추리닝 차림으로 조깅 중인 30대 남녀와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여자 두 명이 전부였다. 운동장의 육상트랙은 잔디 축구장을 빙 둘러쌌는데, 길이는 해산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00미터가량이었다. 청명과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트랙을 달렸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고 생각되는, 가볍게 땀이 맺힐 정도의 적당한 속도로 우리는 다섯 바퀴를 돌았다.

  조깅을 마치고 숨을 고르면서 우리는 내일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과 양말, 피부와 옷, 그리고 두피와 가발 사이에는 한 층의 축축한 땀이 맺힌 상태였다. 어느덧 4주 뒤였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출발하여 부산을 둘러본 다음, 대전과 광주를 경유하여 해산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여행코스와 숙소 다음 화두는 가발이었다. 우리는 헌 가발을 챙겨가기로 결정했다.

  청명의 현관문과 내 현관문이 닫힌 건 거의 동시였다. 땀에 젖은 옷과 양말과 가발을 벗고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의 물줄기는 문자 그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의 땀방울을 휩쓸어갔다.

 

 14. 심리상담(counselling)

 “Ya vas a ver como va La misma vida a decantar la sal que sobra del mar

 (너는 알게 될 거야. 바닷물에서 소금이 걸러지듯이, 삶에서도 여러 굴곡이 있을 거라는 걸.)

 Y aunque hayas sido un extranjero hasta en tu propio pais

 (비록 너는 너의 나라에서조차 이방인이었지만.)”

  하굣길에서였다. 휴대폰을 꺼내드니 010으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지현 씨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만. 누구세요?”

 “저번에 교문 신호등 앞에서 심리상담 그림을 부탁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한지현 씨가 당첨되셔서 연락드립니다.”

  그때 그 마스카라가 진한 단발머리가 떠올랐다. 내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심리상담사 선생님이 무료로 상담을 해준다고, 단발머리는 말했다. 단발머리는 내일 오후 6시에 시간이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간이 된다고 대답했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간 끝에 약속장소는 학생회관으로 결정되었다.

  털 없는 나무들이 하나둘씩 엿보이는 12월이었다. 햇빛은 한층 누그러졌지만 바람의 칼날은 좀 더 매서워졌다. 풍속이 10m/s을 상회하는 바람에 나는 옷깃을 세우고, 외투의 모자를 단단히 착용해야 했다. 학생회관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대부분은 1층의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약속장소인 학생회관 2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2층에 위치한 은행, 우체국, 문구점, 신문사는 이미 영업을 마쳤고, 여러 개의 테이블도 모두 비워져 있었다. 12월이다 보니 어두침침했지만, 구석의 백열등만이 외로이 빛날 뿐이었다. 나는 백열등 아래의 그나마 밝은 테이블로 이동했다. 둘이서 상담하기에는 썩 괜찮은 장소라고, 나는 생각했다.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오는 구두소리가 들렸다. 화장이 약간 짙은, 긴 머리를 둥글게 말아 뭉친 여자였다. 검정색 치마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베이지색 외투를 걸친 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지현 씨 맞으세요?”

  심리상담사가 말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톤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핸드백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심리상담사는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쌍꺼풀이 진 매끄러운 눈매와 반달로 베인 눈은 부드러운 인상에 잘 녹아들었다. 햄스터를 연상시키는 귀염상의 얼굴이었고,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핸드백을 열어 심리상담사는 설문지와 종이를 주섬주섬 꺼내었다. A4크기의 흰 종이였다. 그러고 나서 심리상담사는 상담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상담을 통해서 지현 씨가 자기 자신을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거예요. 자신의 장점과 단점, 고민 같은 것을 파악하는 데 제가 도움을 드릴 거거든요. 상담이 끝난 후에 지현 씨가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해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현 씨는 N대학교에 다니나요? 전공은 뭐에요?”

  심리상담사의 목소리는 호수의 잔잔한 표면을 연상시켰다. 깊은 숲 속에 잠든 호수처럼 안정감이 느껴졌다.

 “N대학교 의학과에 다니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공부 잘했나 봐요. 지금은 몇 학년이에요?”

 “이제 대학교 4학년이에요.”

  고개를 매끄럽게 끄덕거리며 심리상담사는 맞장구를 쳤다. 상담사의 음색은 부드러운 솜처럼 귓속으로 파고들었고, 우리의 눈빛은 수평선상에서 녹녹한 마찰을 일으켰다.

 “지현 씨는 집에서 통학하나요? 아니면 하숙이나 자취를 하세요?”

 “학교 앞에서 자취하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참, 지금 이맘때면 시험기간이죠? 기말고사는 언제죠?”

 “3주 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요.”

 “얼마 안 남았네요. 공부한다고 힘드시겠어요. 기말고사가 끝나면 곧바로 겨울 방학일 텐데, 혹시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12월 26일에 내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에요.”

  심리상담사는 외투 주머니에서 다이어리를 하나 꺼내었다. 12월의 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녹색 다이어리였다. 약간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심리상담사는 다이어리를 바라보았다.

 “12월 26일이요? 그러면 일정을 조금 조정해야겠네요. 사실 상담을 1주일 간격으로 5번 정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시험이랑 여행 일정을 고려해서 조금 변화를 줘야겠네요.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다음 주에는 그대로 진행하고 다다음 주는 시험 일주일 전이니까 건너뛸게요.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네 저는 괜찮아요.”

 “심리상담은 이곳뿐만 아니라 해산시의 다른 대학교에서도 추첨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어요. 사실 개별적으로 상담을 받으시려면 50만 원 정도가 드는데, 지현 씨는 운이 좋으시네요.” 미소를 지으며 심리상담사는 말을 마쳤다.

  가격 얘기에 나는 흠칫 놀랐다. 심리상담사는 테이블에 놓인 A4크기의 흰 종이와 볼펜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빨강, 파랑, 검정의 삼색 볼펜이었다.

 “저번에 지현 씨가 그린 그림을 한번 봤는데요. 사실 그거는 길거리에서 실시한 거라 지현 씨가 긴장하셨을 수도 있고, 또 외부환경의 영향이 작용했을 수가 있어서 그다지 믿을 거는 못돼요. 그래서 지금 한 번 더 그림을 그려주셔야 할 것 같아요.”

  지난번처럼 나는 A4용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먼젓번과는 달리 이번엔 집과 나무, 그리고 산을 그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제출하기 전에 흘긋 보니 저번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심리상담사는 이번엔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이거는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취미, 그리고 특성에 대한 설문지에요. 읽고 작성해 주시면 돼요.”

  이름, 나이, 주소, 취미, 가족관계, 장점, 단점, 특기,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고민의 11가지 항목이 담긴 설문지였다. 나는 이름 한지현, 나이 23살, 주소 해산시 원산동을 차례대로 기입했다.

 “지현 씨는 원산동 어디 사세요?”

  내가 적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곧바로 질문이 날아왔다.

 “원산 올라가는 등반로 근처에 살아요.”

  취미 항목에 다가서자 나는 살짝 멈칫했다. 그러다 음악 감상이라고 적었다.

 "저도 음악 듣는 거 좋아하는데, 지현 씨가 가장 즐겨 듣는 음악은 뭔가요?"

 “샤키라의 [Dia de enero]라는 노래에요.”

 "아, 샤키라의 노래군요. 지현 씨는 그 노래의 어떤 점이 좋으세요?“

  심리상담사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술술 이야기를 풀어 놓던 대뇌 언어중추가 잠시 생각할 시간을 요구했다.

 “왠지 모르게 가사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비록 샤키라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요.”

 “그런가요? 하긴 음악을 듣다 보면 그럴 때가 있죠. 다른 사람과 자기의 심정이 묘하게 일치하는 그런 느낌이요. 여하튼 저도 다음에 한번 들어봐야겠네요.”

  심리상담사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나는 나머지 항목을 마저 작성하기 위해 다시 펜을 들었다. 가족관계와 장점, 단점, 특기를 적당히 기입한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항목에서 다시 멈칫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청명의 얼굴이 떠올랐고 어려울 때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싫어하는 사람으로는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적었는데, 다음 항목에서 나는 완전히 막혔다. 꽉 막힌 변기통을 목격할 때의 낭패감과 자동차로 운전을 하다가 낭떠러지에 다다른 듯한 막막함을 나는 동시에 느꼈다.

  다음 항목은 바로 고민이었다. 전신 탈모증 다섯 글자가 큼지막한 궁서체로 머릿속 새하얀 공간에 기입되었다. 결코 설로되어선 안 되는 내 삶의 1급 비밀이었다. 내 입으로 말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참 동안 나는 작성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국 ‘딱히 없다’라고 고민항목을 채워 넣었다. 다른 설문지를 준비하던 심리상담사는 별말 없이 넘어갔다.

 “이번에는 객관식 설문지를 한번 작성해 볼게요.”

  나는 설문지를 펼쳐서 작성하기 시작했다. ‘매우 아니다’, ‘아니다’, ‘보통이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의 다섯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설문지였다. 수백 개의 문항이 있었는데, 심리상담사는 한 문항 당 5초를 넘기면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의 실제 현실에 가까운 대답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덧붙여 주었다. 문항을 읽는 데만 5초가 걸리는 것 같았다. 탁구를 칠 때처럼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지문을 읽고 답변을 했다.

 “오늘 상담은 여기서 마칠게요. 그나저나, 지현 씨가 내일로 여행을 떠나는 게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고 했죠? 그러면 12월 24일, 그러니까 지현 씨의 기말고사가 끝나는 3주 뒤 금요일이 마지막 만남이 되겠네요. 아무래도 그 때 상담을 좀 더 오래 진행해서 매듭지어야겠네요. 마지막 상담 시간에는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서 지현 씨에게 필요한 것들을 말해줄게요. 아마도 꽤나 흥미로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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