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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hair)헤어날 수 없는 탈모
작가 : 탈모인
작품등록일 : 2017.12.16

의대생 한지현은 탈모 강의를 듣고 7년 전을 떠올린다. 평범한 여중생이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급작스레 빠지게 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탈모 병변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암세포처럼 분열하고... 결국 지현은 대학병원 피부과에 내원한다. 열일곱의 나이로 모든 머리카락을 잃게 된 지현은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여느 때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진료를 받고 나온 지현은 '전신 탈모증'을 앓는 동갑내기 유청명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는 유일무이한 친구이다.
훗날 의대생이 된 지현은 자신의 힘으로 전신 탈모증을 치료하려 하는데...
가발부터 피부과, 동의보감, 심리상담까지 탈모의 모든 면을 다룬 메디컬 소설!

 
34장: 양파슬러시
작성일 : 17-12-16 17:30     조회 : 311     추천 : 0     분량 : 4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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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양파슬러시(onion juice)

 “안녕하세요. 잠시 이것 좀 해줄 수 있으신가요?”

  목요일 하굣길 8차선 횡단보도에서였다. 짙은 화장에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검게 그린 단발머리 여자였다. 옷차림과 세련된 헤어스타일로 미루어 보아 내 또래인 듯싶었다. 눈웃음을 지으며 단발머리 여자는 스케치북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러더니 유순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제가 말하는 것을 간단히 그려주시기만 하면 돼요. 심리테스트 비슷한 건데, 그림은 심리상담사 선생님께서 분석해 주실 거예요. 저희가 추첨을 통해 몇 명 뽑아서 무료로 상담해드리고 있거든요. 1분이면 되는데 시간 괜찮으시면 한번 해 주실 수 있으세요?”

  갓 빨간불로 바뀐 8차선 도로의 신호등이라 시간은 충분했다.

 “네. 별로 안 바빠요.”

  나는 단발머리 여자가 건네주는 볼펜과 스케치북을 받아들었다.

 “우선 태양과 달을 그려 주세요.”

  하얀 스케치북의 우측 상단에는 태양을 그렸고, 좌측 상단에는 달을 그렸다. 그 둘의 육안적인 크기는 비슷했다.

 “그 다음에는 집이랑 나무를 그려 주세요.”

  나는 스케치북 중간 부위에 집과 나무를 그렸다.

 “이젠 우물이랑 뱀 한 마리를 그려 주세요.”

  우물과 뱀 한 마리를 스케치북에 그려 넣자, 단발머리 여자는 ‘이제 다 됐어요.’라고 말했다. 스케치북과 볼펜을 걷어가면서 단발머리는 내 이름과 나이, 휴대전화 번호를 물었고, 나는 세 가지를 답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단발머리 여자는 당첨이 된다면 연락이 갈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신호등은 곧 초록불로 바뀌었고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청명과 나는 화, 수, 목, 일요일과 달리 금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월요일에는 에센셜 오일을 바르지 않는다. 개중에서 월요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른바 자유 시간이었다. 아무리 간단한 행위라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매일 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협의 끝에 월요일 하루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에센셜 오일이 아닌 다른 보완대체요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청명과 나는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을 양파와 함께 보내는 중이었다.

  금요일 강의가 끝나자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발을 벗고 머리를 씻은 나는 여느 때처럼 냉장고에서 양파를 꺼냈다. 차가운 양파를 꺼내어 나는 어깨너비보다 조금 더 넓은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 수납장에서 믹스기와 도마를 꺼내어 싱크대 옆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양파의 붉은 껍질을 한 결, 한 결 벗기기 시작했다. 제법 거리를 두고 깠지만 여전히 양파의 사정거리 내였다. 눈이 따끔따끔하면서 뜨거운 습기로 촉촉해졌다. 홀라당 벗겨진 양파를 도마에 올려놓은 뒤 나는 칼을 뽑아들었다. 양파를 간결하게 채 썰어서 믹스기에 넣고 갈았다. 원룸 믹스기로 가는 건 한계가 있었다. 생과일주스처럼 알갱이 없이 만들고 싶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즙이라고 하기엔 유동성이 떨어졌기에 청명과 나는 그 액체를 양파슬러시라고 불렀다. 믹스기 두 통 분량의 양파슬러시를 나는 대접에 부었다. 방의 작은 상에다 대접을 올려놓고 나는 청명이 오기를 기다렸다.

 “띵 동. 띵 동. 나야.”

  문을 열어주자마자, 청명은 얼굴을 찌푸리며 엄지와 검지로 코를 틀어막았다. 부엌과 방에서 솟아오르는 양파의 고약한 향이 후각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처음엔 몇 번 헛구역질을 했다.

 “아무리 맡아도 이 냄새는 도무지 적응이 안 돼” 후드티 차림의 청명의 목에는 흰 수건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이미 다 갈아 놓았어. 바르기만 하면 돼.”

  청명과 나는 이마에서 후두부까지 타원형으로 수건을 감싸 맸다. 그러고 나서 서로의 머리에 양파슬러시를 바르기 시작했다. 전두부부터 두정부, 측두부, 후두부 쪽으로 차츰차츰 발랐다. 냉장고에서 오랜 시간을 머문 양파의 냉기가 두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청명이 양파슬러시를 발라줄 때마다 머리는 시릴 듯이 차가웠고, 이내 아무것도 실존치 않던 두피에 하얀 슬러시가 수북하게 얹혔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입에서 느껴지는 그 싸늘함이 머리 전체를 윽박질렀다. 서로의 흰색 수건이 넘칠 정도로 우리는 양파슬러시를 듬뿍 발라주었다. 그날부터였으니 벌써 8달째였다.

  지난 3월, 가정의학과 강의에서였다. 그날 강의 주제는 제 7의 영양소라고도 불리는 식물 화학물질이었다. 가정의학과 교수는 토마토의 라이코펜, 녹차의 카테친, 인삼의 진세노사이드같이 대표적인 식물 화학물질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오전 강의다 보니 나는 흐릿한 정신으로 그냥저냥 강의를 듣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딴 짓을 하지도, 집중을 하지도 않는 어중간한 상태였다. 강의가 양파의 쿼세틴에 이르렀을 때, 그러나 나는 눈이 번쩍 뜨이고 말았다. 그야말로 광섬유 하나가 머릿속을 초음속으로 스쳐간 느낌이었다. 나는 양파에 대해 설명하는 가정의학과 교수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정의학과 교수는 원형 탈모증에 대한 양파의 효능을 설명해 주었다.

 “양파를 원형 탈모 병변에 발랐더니 머리카락이 자라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양파에 함유된 쿼세틴이 모낭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소규모 연구로 진행된 것이라 아직 근거가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양파를 머리에 바르면 되게 따갑고 냄새도 많이 나겠지요.”

  모두가 쿡쿡거릴 정도로 재치 있는 사족이었다. 비록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지만...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가서 구글로 검색해 보았다. 가정의학과 교수의 말 그대로였다. 양파 즙을 머리에 바르니 원형 탈모증의 호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논문 몇 개가 있었지만, 효과에 대한 근거는 불충분했다.

  또 나와 청명에 적용하기에는 한 가지 무리수가 있었다. 전신 탈모증이 아니라 아주 경한 원형 탈모증에 대한 결과라는 점이었다. 자발적으로 호전되기도 하는 경한 원형 탈모증에 적용되는 결과에 불과하기에, 수많은 약들을 무력화시키는 전신 탈모증에는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주 극히 높아 보였다. 검색을 해 봤지만, 양파 즙이 전두 탈모증이나 전신 탈모증의 호전에 도움이 된다는 논문은 찾을 수 없었다. 효과가 좋다면 틀림없이 대학병원의 의사가 권유해 주었을 터였다. 단지 양파를 머리에 발라서 전신 탈모증이 치유된다면 누가 전신 탈모증을 앓고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의 사고회로는 긍정적인 결론을 향하여 재설정되었다. 단지 양파를 갈아서 머리에 바르기만 하면 되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딱히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쪽으로 사고회로가 변형된 것이었다.

  어느덧 8달째였다. 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이면 논문에 나온 대로 양파를 갈아서 머리에 바르고 있었다. 냄새가 만만치 않았기에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에 발랐고, 일요일에는 에센셜 오일을 발라 양파의 흔적을 최대한 제거했다. 에센셜 오일과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이브까지만 해 보기로 우리는 협의했다.

  양파에 대한 가정의학과 교수의 그 한마디는 절반은 맞았지만 절반은 틀렸다. 분명 냄새는 아주 고약했지만 머리는 하나도 따갑지 않았다. 양파를 깔 때나, 머리에 바를 때나 눈은 모래라도 들어간 듯이 따가웠지만 머리에는 아무런 감촉도 없었다. 따갑지 않다는 것이 도리어 찜찜했다. 양파가 피부 깊숙이 스며들지 않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속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나을 것 같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웅덩이에 빠진 수레바퀴처럼 제자리에서 헛돌기만 할 것 같았다.

 “Tu mas que nadie merecer ser feliz

 (너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할 자격이 있어.)“

 Ya vas a ver como van sanando Poco a poco tus heridas

 (너는 너의 상처들이 조금씩,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보게 될 거야.)“

  알람소리가 원룸에 높이 쌓였던 정적을 무너뜨렸다. 양파의 냉기는 30분간 많이 오그라든 상태였다. 명상을 마친 청명과 나는 화장실로 갔다. 머리를 씻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탁상거울과 손거울을 동원하여 유심히 들여다보았지만 머리의 색깔은 그대로였다. 무언가 거무스름한 점 하나 찍히지 않은 백지 상태였다. 머리의 장기 침체 국면에는 회복의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손거울을 내려놓는 청명도 매한가지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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