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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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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6 07:03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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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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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지루했다. “걸어서 안양에서 서울까지 가는 거잖아요. 그것도 오르막길로. 왜 이런 짓을 해요. 버스 타고 안양서 서울 가기도 힘든데.” 짜증을 잔뜩 내며 오르다가 절반을 조금 넘겨 더는 못 간다고 주저앉았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힘내.” “아, 삼십 분 전에도 거의 다 왔다고 했고 한 시간 전에도 거의 다 왔다고 했잖아요!” 소리를 팩 지르자 복학생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 게 될지 몰랐다고, 보통사람은 이미 정상을 밟고 내려가고도 남았을 시간이라며 사과 했다. 난 손 하나 꼼짝 못 한다고, 여기서 죽거나 119구조대를 기다릴 거라고 했더니 복학생이 “기다려. 내가 갈게.” 했다.

 

 일 분 걷다 오 분 쉬다 반복하고 있는데 복학생이 뛰어 내려왔다. “미안하다. 내가 널 과대평가했다. 체력단련을 먼저 해야 했는데.” “체력단련 같은 걸 왜 해요. 난 필 요 없다니까.” 복학생이 내 옆에 앉아 또 “미안. 난 네가 좋아할 줄 알고. 이 정도로 약골인 줄은 몰랐지.” 했다. 도로 내려가겠다는데 복학생이 정상을 보고 가자고, 힘들 면 자기가 데려다주겠다며 등을 내밀었다. “미쳤어요? 나 업고 어떻게 산을 올라요.” 하는데 그의 손이 내 다리를 감싸더니 붕 떴다. 덩치가 큰 사람도 아닌데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날 업어 올린 복학생이 이번엔 뛰기 시작했다. “악! 내려주세요. 악! 무섭단 말예요.”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면서 속도감까지 있어 놀이기구 타는 기분이었다.

 

 어쩌다 보니 걸어서 정상에 올랐다. 절경까지는 아니었지만 도시를 내려다보는 기분 이 나쁘지는 않았다. 초코바와 물을 꺼내 주며 복학생이 실실댔다. “좋지?” “누가 업어주면 몰라도 일부러 올 경치는 못 되는데요.” “업어준다 할 땐 내려달라 해 놓 고선.” “그러게요. 그냥 업혀올 걸 그랬어요.” “몸도 뇌랑 같아서 자꾸 쓰면 늘어. 계속 오면 익숙해질 거야.” “계속 오긴 왜 와요. 다신 안 온다니깐요! 죽을 때까지 안 쓰고 안 늘 거예요!” “너 지금 화낼 때 소리 되게 잘 나오는 거 알아?” 자연스럽 게 복식호흡이 됐다는 복학생의 등을 한 대 치고도 그를 따라 “야호” 하며 한참을 악을 쓰다 보니 득음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후들거려 죽는 줄 알았다.

 

 산에 다녀오고 복학생과 거리를 두려 했지만 오히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복 학생은 어딜 가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동방에 가면 항상 있었고, 시험이 끝나고 술 한잔 하려면 술집에 있었다. 밥을 사주고 술도 사줬다. 둘이 있을 때도 있었고 다른 사 람과 같이 있을 때도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복학생과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했다. 복학생 한 명이 테이블에 있음으로써 다른 사람 대하기도 편해졌다. 복학생은 말을 잘했다. 단순히 말을 많이 하는 걸 뛰어넘어 적재적소에 필요한 말을 잘했고 사 람과 주제를 가리지 않았다. 말주변이 없어서 친한 사람하고 있어도 어색한 침묵을 흐 르게 하는 일이 많은 난 복학생과 있으면 복학생의 말을 듣고만 있어도 되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복학생은 잊을만하면 전화를 해 노래연습을 하자며 불러냈다. 크고 작은 콘서트장에 도 데려가 줬고, 내가 산에 가기 싫다고 못을 박자 캠퍼스 한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며 득음을 하자고 했다가 된통 핀잔만 듣기도 했다. 그 뒤론 아는 형이 한다는 노래방이 주 연습 무대였다. 그 노래방은 생뚱맞게도 꼬불꼬불한 주택가 골목길 끝에 있는 쓰러 져가는 건물 사 층에 있었다. 간판도 글씨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빛이 바랜 덕분에 손님이 거의 없었다. 처음 복학생과 갔을 때 주인은 “어! 이득이 여자랑 왔네?” 하며 기뻐했고 복학생은 그런 말 하지 말란 듯 눈짓을 주고는 “학교 후배예요.” 했다. 나 까지 괜히 창피해져 카운터에 가만히 서 있는데 복학생은 돈을 내지 않았고 주인도 돈 을 달라 하지 않았다. 널찍한 3번 방에 들어가자 남은 시간이 240분이었고 난 기계가 잘못되거나 주인이 실수를 한 줄 알고 복학생에게 물어보자 복학생은 “보통 300분 정 도 주시는데. 시간 다 되면 더 주실 거야.” 했다. 복학생은 자기가 없어도 이 노래방 에 오면 공짜로 연습할 수 있게 말을 해놓았다고 했지만 주인한테 미안해서 혼자 가기 는 꺼려졌다.

 

 기말고사가 끝나던 날, 복학생과 술을 마셨다. 난 학교를 더 다녀야 할지, 어떻게 다 녀야 할지 고민을 했고 복학생 정도면 내가 복학생처럼 안 되고 졸업을 할 방법도 알 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학점이 학사경고를 맞을 정도로 낮은 건 아니었지만, 과학교육 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복학생이 자기도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선배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요?” “난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탈인 거고, 넌 없어서 탈인 거 지.” “그냥 하고 싶은 게 없다기보단 꼭 해야 할 일을 찾고 싶은데 그게 안 찾아지 네요.” “꼭 하고 싶은 거라. 좋지. 그런 게 있으면.” “선배는 언제 졸업해요?” “너 졸업하는 거 보고 졸업해야지.” “미쳤어요?”

 

 “너 술 진짜 잘 마신다.” 복학생이 빈 소주병 세 개를 내 눈앞에 흔들었다. 난 정 신이 너무 맑아서 술을 마신 것인지 안 마신 것인지 모르겠다고, “선배가 다 마신 거 잖아요.” 했더니 “난 원래 소주는 석 잔 이상 안 마셔. 못 마셔.” 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자 정색을 하고는 “지금 우리 둘이 술 마시는데 네가 나한테 술 몇 번 따라줬어?” 하고 물었다. 처음 술 시켜서 한 잔 따라줬고, 그다음은······. 정 말 복학생한테 마지막으로 술 따라준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났다. 주도를 중요시하 는 내가 선배가 자작자음하는 걸 보고 있었을 리도 없는데. “사기꾼!” 나도 모르게 술집이 울릴 정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득음이 조금씩 되고 있긴 했나 보다. 복학생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웃긴 게, 난 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술자리를 좋아하는 건데, 자기가 오해를 해 놓고선 내가 속인 줄 안다니까.” 하긴 복학생이 자기 술 잘 먹는다고 자랑하고 다닌 것도 아니고 지레짐작한 건 나였다.

 

 족발집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나만 계속 소주를 들이켰다. 복학생은 이것저것 꾸준히 배워보고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며, 휴학을 하고 여행이나 다녀보라고 했다. 난 고시공 부를 할까, 머리 깎고 중이 될까, 하며 횡설수설해대다가 지금 중이 되기는 좀 억울하 다고, 연애도 한 번도 못 해봤다고 하자 복학생이 그건 자기도 못 해봐서 해줄 말이 없다며 다 익어가는 곱창을 무심히 뒤적거렸다. “선배 나이가 몇인데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봤어요?” 격양된 목소리에 손바닥만 한 족발집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복 학생을 쳐다봤다. 사람들이 복학생의 얼굴을 가지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난 미안 하다고, 내가 술에 취하긴 취했나 보다며 거듭 사과했다. 복학생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못 마시는 술 때문인지, 나이 스물여섯에 모태솔로임이 창피해서인지, 복학생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게 뭐 하고 싶다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삼차는 노래방에 가자는 걸 싫다 했다. 그럼 맥주나 가벼운 걸로 마시라는 것도 싫 다고 했다. “소주 마시다 맥주 마시면 숙취 장난 아니에요. 술을 안 마시니까 모르 지.” 복학생은 너처럼 술 잘 마시는 여자애는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둘렀고, 난 평소에 도 잘 안 취하지만 오늘따라 잘 들어간다며, 오늘은 취할 때까지 마시기로 단단히 작 정을 했다고 했다. 우선 그에게 전화해서 놀다가 학교 근처 친구 집에 자러 간다고, 기 다리지 말라고 했고 대학에 들어간 다음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소리는 전혀 안 하던 그 는 알았다고 했다. 복학생한테 오늘 내 주량이 얼마인지 확실히 알아볼 거니까, 행여나 내가 정신을 잃으면 나를 안전한 곳에 버려달라고 하자 복학생이 “알겠는데, 아무 남 자한테 그런 부탁하는 거 아니야.” 했다. 내가 시큰둥하니 “선배가 무슨 남자라고.” 하자 복학생은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껄껄 웃었다.

 

 복학생의 “중국음식 좋아해?” 하는 말에 “환장하죠.” 했더니 24시 영업 중국집 으로 날 안내했다. 짜장면, 짬뽕, 깐풍기를 시키자 복학생이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렇 게 먹고 또 먹을 수 있겠어?” “없어 못 먹지 있는 음식을 왜 못 먹을까 봐요.” 비 운 소주병이 다섯 개가 돼도 정신이 멍해졌다가 다시 깨기를 반복했다. 술이 다디단 날이었다. “선배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요?”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이냐?”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정말로 무슨 생각하고 사냐고요. 왜 살아요?” “그냥 살아보는 거 지. 뭐 무슨 생각으로 살까 봐.” “계속 살아보면 행여 좋은 일 있을까 봐?” “좋은뒤로 넘기며 수줍은 듯 진지한 듯 말하는 복학생이 마음에 들었다. 복학생은 음울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행복한 사람이라는 게 부러웠다.

 

 먼동이 트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술이 취하는 건 포기하고 바로 해장을 하기로 했 다. 해장국집에서도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해장국엔 해장술을 마셔줘야 하니까. 해장술 을 비우자 복학생은 방학 동안 뭐 할 거냐고 물었고 난 학원 강사 자리를 벌써 구해놨 다고 했다. “선배는요?” “난 계절학기도 듣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선배 나랑 연애할래요?” 복학생이 밥을 가득 담은 숟가락을 입 앞에 든 채로 말을 못했다. “싫 어요?” “나는 좋은데,” “근데?” “네가 내가 좋아?” “싫은데 사귀자고 했을까 봐?” 못 믿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복학생의 얼굴이 환하게 웃었다. 눈이 부셨다.

 

 싫다고 극구 말리는데도 복학생이 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온 나한테 그가 여자애가 무슨 술을 그렇게 마시고 다니느냐고 했고 난 “아빠 닮 아서 그렇지.” 하곤 잠이 들었다. 숙취도 없이 꿈도 꾸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났더니 복 학생한테서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행복하게 해줄게.」 누가 보면 결혼하자고 한 줄 알겠네.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이 사람한테서 최소한 어떻게 행복해지는지는 배 울 수 있겠구나, 싶어 이미 행복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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