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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궁귀검신
작가 : 조돈형
작품등록일 : 20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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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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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이라는 것은 가능한 한 멀리 눈에 보이는 거리를 뛰어넘어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생명까지 지배하는 병기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기가 생명을 노린다고 가정을 해 보거라.
이보다 두려운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느냐?
악덕 조부와의 고난에 찬 수련행.
정혼녀를 찾아 떠난 즐거운 중원행.
어지러운 무림을 바로잡는 영웅행.
이기어검과 이기어도를 능가하는 이기어시의 신선한 등장!
내일을 향해 쏘아 볼까나?!

 
제 5화
작성일 : 16-07-06 17:57     조회 : 627     추천 : 0     분량 : 9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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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철면(鐵面)피

 

 

 

 장백산의 여름은 짧았다. 여름이라야 일 년 중 고작 3개월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겨울이었다.

 9월말이면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녹아내려 흐르게 되는 것은 5월이 되어서였다.

 딱히 봄이라거나 가을을 규정하기는 어렵고 그저 며칠 봄이려니 가을이려니 하는 것이 전부였다.

 여름의 끝에 접어든 장백의 풍경은 가히 볼 만했다. 천지(天池) 주변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한 단풍은 그 범위를 점차 넓히더니 지금은 온 산을 붉은빛으로 도배를 해버렸다.

 혹자는 해동금강(海東金剛)의 경치가 천하제일이라 했으나 금강을 비롯하여 조선에 솟아오른 모든 명산들의 기운이 장백산으로부터 시작하니 장백산이야말로 그 으뜸 중의 으뜸이라 할 수 있었다.

 산에 자라는 식물이나, 살고 있는 동물들이 오래되거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예로부터 사람들은 장백을 신령스런 산으로 여겼다.

 당연히 장백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며 사랑했다. 그런데 여기 그토록 신령스러운 산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감히 불경스러운 짓을 하는 놈이 있었으니…….

 퍽! 퍽!

 겉을 갑옷처럼 탄탄한 껍질로 무장한 소나무의 밑동이 을씨년스럽게 옷을 벗고 있었다.

 휘익~ 퍽!

 소문의 손에 들린 도끼가 한번씩 춤을 출 때마다 소나무의 밑동을 보호하던 옷은 얇아져만 갔다.

 꽈지직!!

 마침내 하늘을 받치고 있던 기둥이 무너지는 양 소나무는 그 거대한 크기에 알맞게 엄청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주위의 작은 나무들은 소나무의 거대함에 감당하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져 갔다.

 “빌어먹을 놈. 누구처럼 나이만 처먹어서 그런지 질기기가 고래 심줄 같구나. 암튼 내가 이겼다. 이놈아. 카카카! 오! 신이시여… 이 일을 정녕 제가 했단 말입니까?”

 소문은 쓰러진 나무 옆에서 도끼를 하늘 높이 쳐들더니 발악적으로 외쳐 댔다.

 나무는 그 길이가 족히 10여 장은 되었고 두께만 해도 장정이 서넛은 되어야 그 두께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큰 기둥에서 옆으로 뻗어 나간 잔가지라 해도 그 하나하나가 어른 몸통보다 큰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소나무였다.

 그런데 이처럼 큰 나무가 어째서 땅바닥에 누워야 했는가? 그 까닭은 간단했다.

 소문이 기를 쓰고 이 나무를 잘랐던 것은 지난번 자신했던 활 쏘기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할아버지가 준 벌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며칠째 주린 배를 안고 겨울 땔감을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솔직히 이처럼 큰 나무는 땔감으로 효용이 없었다.

 물론 알맞은 크기로 자르기야 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이 최고의 땔감이 되겠지만, 쓰러뜨리는 데만도 하루가 꼬박 걸렸는데 어찌 그것을 알맞은 크기로 자를 수 있을까? 시간이나 많으면 몰라도 소문은 그토록 많은 시간을 투자할 이유도 없었고 힘도 없었다.

 그럼에도 소문이 이 나무를 찍어 넘긴 까닭은 어설픈 잔머리의 소산이었다.

 땔감을 하려고 산에 올라온 소문은 처음에는 이 나무 저 나무 열심히 잘라댔다.

 하지만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땔감의 양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하기도 싫은 걸 억지로 하는 데다가 능률도 오르지 않으니 짜증만 났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이 방법이었다. 일타(一打) 쌍피(雙皮)가 아니라 일타 수십 피…….

 소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큰 나무가 아니라 그 주변에 작은 나무들과 수없이 뻗은 가지들이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이놈의 나무를 자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놈은 보통의 애들과는 다른 상당한 힘으로 찍어대는 소문의 도끼질에도 끄떡하지 않고 오히려 소문을 비웃고 있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성공의 대가가 너무나 달콤했기에 하루 종일 이를 악물고 도끼질을 해댔다.

 “흠, 이눔하고 주변의 나무만 손질하면 올 겨울은 까딱 없으렷다! 역시 나의 뛰어난 머리는 알아주어야 한단 말야. 흐흐흐!”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아 엉성하게 만들어진 가죽 물통을 꺼내 물을 마시며 자화자찬을 하던 소문의 머리 속은 온통 복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흥! 빌어먹을 할배 같으니라고. 가문의 하나뿐인 47대 독자를 이리 괄시를 하다니… 어디 두고 보라지. 내 그넘의 포두이술을 하루라도 빨리 익혀 이날의 설움을 반드시 갚으리라!”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자유자재로 활을 쏘는 자신. 할아버진 옆에서 감탄의 감탄을 하고 있고.

 “자자, 빨리 하고 활 연습이나 해야겠다. 그날의 영광을 위하여.”

 흐르는 땀을 식히며 엄한 생각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소문은 우선 주변에 쓰러진 나무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잔가지는 준비한 낫으로 쳐내고 기둥만을 따로 추려냈다.

 땔감으로 쓰이는 장작[長斫]이 갖추어야 하는 최고의 미덕(美德)은 ‘은근(慇懃)’과 ‘끈기’다.

 겨울철의 긴 밤을 버텨야 하는 장작은 은근히 타면서도 화력이 좋아야 하는데, 보통 기둥에서 뻗어 나간 잔가지는 잘 타기는 해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장작은 그 나무의 중심 기둥이 쓰였다. 그런 이유로 소문은 잔가진 쳐다보지도 않고 쳐내곤 했다.

 큰 나무를 자르느라 시간을 워낙 많이 소모해서인지 주변의 나무 중 이제 서너 개를 수습했는데도 벌써 날이 저물어왔다.

 소문은 할 수 없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에고, 지겨운 거…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한다… 삭신이 안 쑤시는 데가 없네.”

 두자 남짓한 도끼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왼손에는 날이 시퍼렇게 슨 낫을 빙글빙글 돌리며 걷고 있던 소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은 자신이 잘라놓은 그 큰 나무의 끝을 막 지날 때였다.

 “뭔 소리랴?”

 귀찮기도 했지만 궁금하기도 해서 소문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문이 발길을 멈춘 곳에는 한 마리의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바위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디에 큰 상처를 입었는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소문이 다가오자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려 했다.

 꺼루룩……!

 잠시 동안 퍼덕이며 요동 치던 새는 마침내 포기를 했는지 날갯짓을 멈추고 소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비록 상처를 입고 땅에 떨어지기는 했어도 그 모습이 왠지 심상치 않았다.

 상처 입은 몸으로 인간을 앞에 두고도 동요하지 않는 이 새는 까치나 비둘기보다는 약간 컸고, 매나 수리보다는 작았다.

 하지만 소문은 이 새를 보자마자 산비둘기라고 단정 지었다. 비둘기치고는 제법 그럴듯하게 생겼으나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꼬라지가 영 맘에 안 들었다.

 “이눔의 비둘기 새끼가 감히 누굴 노려보고 있어! 간덩이가 부리 밖으로 튀어나왔나. 헤헤!! 암튼 횡재했네. 금식이 풀리는 오늘 저녁에 오랜만에 포식이나 하라는 하늘의 선물이로구나. 하하하! 하늘도 나의 이 불쌍한 처지를 헤아리고 있었구나!”

 자신이 베어 넘긴 나무가 쓰러지면서 하늘에 유유히 떠다니다가 숲 속의 먹이를 노리며 하강하는 새를 내리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소문이었다.

 맨 끝의 여린 가지들에 맞아서 그나마 이 정도지 몸통에 맞았음 그 자리에서 죽었을 해동청이었다.

 소문은 자신을 노려보는 새에게 재빨리 다가가더니 이미 기력이 다해 날갯짓도 하지 못하고 반항도 못하는 몸체를 거칠게 낚아챘다.

 그리고는 휘파람을 불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소문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이었다.

 소문이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때까지 마루에서 잠을 자던 할아버지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하아아아… 에구, 자도자도 졸립구나! 어라, 소문이 아니냐? 어째 벌써 돌아오는 게냐? 땔감은 다 마련하였느냐?”

 “아직 끝마치지 못했지만 날이 어두워서 내려왔습니다.”

 “에라이, 이눔아! 오늘이 벌써 며칠 째냐? 게다가 날이 이리 밝은데도 일도 하지 않고 이리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냐? 맨날 땔감이나 해라. 이눔아! 그리해 보거라. 백 년 천 년이 지난들 무공을 완성할 수 있을 줄 아느냐? 어림도 없지. 암!!”

 할아버지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소문이 미처 대문을 지나기도 전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우물쭈물 서 있는 소문의 손에 뭔가 이상한 것이 들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그게 무엇이냐?”

 “산비둘깁니다. 내려오다가 주웠습니다.”

 “그래? 이리 가져와 보거라.”

 소문은 절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동청을 할아버지에게 넘겨주었다.

 물론 의심이 듬뿍 가는 눈치를 보내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과거 자신이 사냥한 것들을 이런 식으로 빼앗긴 것이 어디 한둘이던가.

 ‘하지만 이번만은 안 되지. 며칠 만에 밥을 먹는 건데… 저건 하늘이 주신 선물이야. 암! 하늘의 선물을 함부로 빼앗겨서는 안 되지.’

 딱!

 소문이 필승의 의지를 다짐하기가 무섭게 날아오는 건 예의 그 곰방대였다.

 “악! 왜 때려요?!”

 졸지에 별을 본 소문의 말은 당연히 항의조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랭한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뭐라? 비둘기? 허… 나참. 니눔은 이게 고작 산비둘기로밖에 안 보이냐? 그런 썩어빠진 눈으로 제 딴에는 사냥을 하겠다고 설쳐 대는 꼬라지하고는…….”

 아까 처음 볼 때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저 종류가 다른 산비둘기려니 했다. 한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문의 생각을 지배한 것은 꼬투리를 잡기 시작한 할아버지에게 밀리면 하늘이 내린 선물이 그저 할아버지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었다.

 “그게 비둘기든 아니든 뭔 상관이 있어요? 암튼 그거 제가 잡았으니 이리 주시지요.”

 최강의 수였다. 소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를 했다고 확신했지만 이번 역시 상황 판단을 잘못하고 말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나타난 곰방대가 소문의 몸 이곳저곳을 두들겼다. 곰방대의 무차별적인 역습에 소문은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가지시지요.”

 ‘내 비둘기!! 흑흑! 하늘이시여…….’

 “이눔아, 너는 이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영물(靈物)인지 모르느냐? 이것이 하늘의 제왕이라는 ‘해동청’이다.

 

 해동청!

 해동청을 송골매라 하기도 하는데 해주목(海州牧)과 백령진(白翎鎭)에 많이 나며 전국에서 제일이었다.

 고려 때에는 응방(鷹坊)을 두어 원나라에 세공으로 보내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중국은 이 매를 ‘해동청(海東靑)’ 또는 보라응(甫羅鷹)이라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냥에 많이 쓰이나 때로는 군에서 통신용으로 쓰기도 했다.

 다른 매들에 비하여 그 크기는 작으나 비상력이 강하며, 사냥감을 발견하면 공중에서 날개를 접고 급강하하여 이를 차서 떨어뜨린 다음 잡는 모습에서 감탄한 사람들이 비록 다른 매보다 덩치는 작아도 ‘하늘의 제왕’이라는 별칭을 지어주기도 했다

 소문이 잡아온(사실은 주워온) 이 해동청은 일반적인 해동청보다 더욱 작은 것을 보니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새끼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빛깔을 보니 등이 청회색이고 가슴에 흑색의 굵은 세로 무늬가 있으며 뺨에는 흑색의 줄무늬가 있는 전형적인 해동청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해동청을 보고 비둘기라 했으니 할아버지가 화낼 법도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비둘기가 아니라고 했지만 소문에게는 어디까지나 그건 핑계이고 자신에겐 하늘이 내려준 며칠 만에 먹는 저녁의 맛있는 반찬거리일 뿐이었다.

 또 비둘기면 어떻고 해동… 거‥ 뭐시기면 어떠랴… 어차피 죽기 일보 직전이고 죽으면 밥상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거늘…….

 “이 새는 해동청이라고 하는 매의 일종이다. 네놈이 보기에는 몸집이 다른 맹금(猛禽)에 비하여 작아 보일런지 모르겠으나 용맹으로 치자면 이 새를 당할 것이 없다. 또한 한번 주인을 섬기면 죽을 때까지 그 주인을 따르는 충성심이 아주 강한 새이다. 그런데 이런 영물을 비둘기라? 아니지, 그것도 모자라 반찬으로 먹을 생각을 해? 허허!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런 무지한 놈이 내 손자라니… 말년이 걱정되는구나……!”

 소문의 귀에는 할아버지의 호통도 푸념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비둘기(소문은 절대 매라고 인정을 하지 않았다)를 수중에 넣기는 요원했다.

 소문이 걱정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걸 핑계로 또 금식을? 그동안 전력을 감안할 때 가능성이 농후한데… 아니지. 거의 틀림이 없는데… 제기랄, 또 산에서 풀뿌리나 캐먹어야 하나…….’

 과거 소문이 할아버지의 금식 명령에도 불구하고 산에서 몰래 산짐승을 잡아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찌 알았는지 할아버지는 소문에게 더욱더 강한 처벌을 내렸다.

 한번은 비 오는 날 자신의 옷에서 먼지가 풀풀 나는 것을 목격하고는 다시는 이 같은 시도를 하지 않았다.

 다만 풀뿌리며 산에서 나는 과일을 먹는 것은 알고도 모른 척했기에 금식 때만 되면 풀과 과일로써 연명을 했다.

 “두 가지 제안을 하마. 굶을래? 살릴래?”

 “예? 무슨 말씀이신지……?”

 “귀까지 처먹었느냐? 한 보름 정도 굶을래, 아님 이 해동청을 살릴래?”

 할아버지의 제안에 소문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보름이라… 한여름이면 어찌 버티겠으나 지금은 보름은 무리이고, 살리자니 저눔의 비둘기가 당장 죽기 일보 직전이라 영…….’

 그래도 당장 굶기는 싫어서 비둘기를 살려보려는 마음으로 기울기는 하지만 비둘기가 혹여 죽기라도 한다면 그 뒤에 따라올 할아버지의 꼬장을 감당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질문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저 잠시 잠깐 생각을 한 것뿐이었다.

 “살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소문의 말에 이미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는 해동청을 소문에게 건네주었다.

 “잘 살려보거라. 정성을 다하면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꼭 살려야 할… 것이다…….”

 저승사자의 말이 이보다 더 소름이 끼칠까? 소문은 머리칼이 쭈뼛 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흠, 고놈 제법 귀엽네.’

 소문은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해동청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아직 다친 날개가 다 아물지는 않아서 날 수는 없었지만, 일어서지도 못하고 축 늘어져 있었던 지난 며칠에 비해 상당히 호전된 모습이었다.

 소문이 이 새를 살리려는 노력은 너무나 처절했다.

 새가 죽는다면 따라 죽는다는 신념으로 매일같이 상처를 소독하고 새로운 천으로 갈아주며 낫기를 빌었다.

 해동청은(여전히 의문을 가지고는 있으나 어쩔 수 없이 매로 인정을 하고 말았다) 오른쪽 날개가 무엇에 의해서인지 심하게 찢겨 있었는데 살이 패인 것은 물론 뼈까지 보일 정도의 심한 상처였다.

 또한 떨어질 때의 충격에 의해서 몸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타박상도 많이 입었다. 해서 치료하는 데 상당한 양의 약초(藥草)가 들어갔다.

 소문과 할아버지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주로 산에 있는 약초를 캐어 내다 파는 것이었다.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손이 밥을 굶지 않을 정도의 돈은 충분히 벌어주었다.

 약초는 할아버지가 한 달에 두어 번 산에 오르셔서 캐왔고, 그 캐온 약초는 마을에서 약초 채집 일을 하는 장씨 아저씨를 통해 필요한 의복이며 곡식으로 바뀌어졌다.

 괴팍하고 고약하고 꼬장만 부리는 할아버지가 다른 어떤 약초꾼보다 약초를 잘 캤는데, 소문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집에는 상당한 양의 약초가 있었는데, 소문은 이런 약초를 이용하여 해동청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우선 상처에 묻어 있는 먼지와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한 물로 씻어내고 지혈에 좋은 약초를 적당히 즙을 내어 날개에 붙여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상처가 아니었다. 상처야 피가 멈추고 계속 약을 발라주면 별문제는 없겠지만 우선 급한 것은 피를 많이 흘리면서 떨어진 체력이었다.

 체력을 회복시키지 않고 이대로 방치하면 이 새는 곧 죽고 말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빨리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그믐이라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대청마루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는 소문을 향해서 저녁을 먹고 이제껏 아랫목에 누워 부른 배를 만지던 할아버지가 참견을 했다.

 ‘자고로 약이란 정성이라 했다. 부채질이나 하면서 그저 달이는 시늉만 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여 달이거라. 행여라도 지난번 니놈이 나에게 달여온 약처럼 정성이 깃들지 않은 약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해가 될 것이야. 새가 죽으면 안 되지. 암, 안 되고 말고.’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던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할아버지가 얄밉기는 시누 못지 않았다.

 ‘제기랄!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사람도 아니고 새를 먹이려고 탕약을 달이게 될 줄이야…….’

 소문은 자신의 처지가 새만도 못하다는 괴리감에 빠져 인생의 회의마저 품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 달이는 약이라도 먹고 살면 다행이라며 자신을 달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소문의 바람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 약이 좋은 것인지 아님 필사적인 소문의 마음이 통한 것인지 약을 먹은 이튿날부터 해동청은 제법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다.

 또다시 며칠이 지나자 크게 다친 날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상처가 완치됐다.

 특이할 만한 점도 있었는데 그동안 자신을 치료하던 소문에 은근한 경계와 적의를 보이던 해동청의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먹이나 붕대를 감아주려고 다가갈랍시면 제법 소리 내어 반길 줄도 알고 때로는 부리로 손을 비비는 행동도 했다.

 그런 행동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비록 며칠 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억지로 새를 보살피긴 했지만 그동안 적지 않게 정도 들었고, 또 요즘에는 소문이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살갑게 구는 통에 매일같이 티격태격하며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소문은 그런 해동청을 이참에 아예 새로운 친구로 만들어 버렸다.

 할아버지와 둘이만 사는 것이 지겹기도 했지만 사실 소문은 친구가 없었다.

 마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지만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활을 쏘게 된 이후론 동네 또래들과 어울리지 않고 거의 혼자 놀다시피 했다.

 당연히 친구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 소문에게 비록 말은 못하지만 자신을 잘 따라주는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이다.

 친구라… 바로 며칠 전만 해도 저녁 반찬거리를 빼앗겼다고 울분을 토하던 자신의 모습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소문은 한술 더 뜨고 있었다.

 해동청을 치료하며 겨울 동안 사용할 땔감을 다 한 소문은 다시 활을 들고 포두이술에 매달렸다.

 오늘도 마침 아침을 먹고 연습장으로 가는 길인데 친구 삼기로 한 해동청이 따라오자 자신의 어깨로 들어 올렸다.

 ‘흠, 계속해서 ‘새야!’라고만 할 수 없으니 새로 친구된 기념으로 이름이나 지어 줘야겠다. 뭐가 좋을까? 뭔가 강하고 날카롭고 친숙한 그런 기막힌 이름이 없나… 천둥? 번개? 태풍? 에이 씨……!’

 곰곰이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그저 졸렬한 이름뿐이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을까… 소문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거야!’

 소문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아직 몸이 정상이 아닌 해동청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 모양을 본 소문은 재빨리 주워 자신의 어깨 위로 다시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기쁨에 겨워 말을 했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철면(鐵面)피’야. 어때 근사하지? 느낌이 오잖아. 지난번에 널 처음 봤을 때 강철 같은 얼굴에서 피가 흐르는 게 기억나서 지었어. 성은 강인한 철이요, 이름은 얼굴에서 흐르는 피!! 그래서 철면피! 정말 기막히게 지은 것 같지 않아?”

 누가 들음 오해하기 딱 좋은 이름을 지어놓고는 마냥 좋아서 저리 날뛰다니… 멍청한 건지 철이 없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문이 면피를 저녁거리로 잡아온 지 한 달이 지나자 그토록 심했던 날개의 상처도 다 나아서 이제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제 딴에는 보은(報恩)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매일같이 토끼며 꿩을 잡아오는 게 아주 신통했다.

 몸집도 작은 것이 저리 사냥을 잘하다니……. 소문은 이제 완전히 면피를 하늘의 제왕 해동청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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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 12 화 2016 / 7 / 10 586 0 6553   
11 제 11 화 2016 / 7 / 10 572 0 7161   
10 제 10 화 2016 / 7 / 6 556 0 5646   
9 제 9 화 2016 / 7 / 6 547 0 5393   
8 제 8화 2016 / 7 / 6 608 0 6778   
7 제 7화 2016 / 7 / 6 537 0 9836   
6 제 6화 2016 / 7 / 6 642 0 8413   
5 제 5화 2016 / 7 / 6 628 0 9781   
4 제 4화 2016 / 7 / 6 620 0 7626   
3 제 3화 2016 / 7 / 6 603 0 8154   
2 제 2화 2016 / 7 / 6 626 0 7645   
1 제 1화 2016 / 7 / 6 938 0 6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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