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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블랙 앤 화이트
작가 : 잉준이
작품등록일 : 2017.12.8

실패의 늪에 빠진 남자와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필요했던 여자가 서로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꿈을 이루는 이야기

 
18
작성일 : 17-12-15 22:57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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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엘레인-

 

 콘서트는 내가 예상한 것 보다 훨씬 재밌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로도 재밌었지만, 그 노래에 호응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몇 배로 즐거웠다.

 

 그렇게 2시간 정도를 놀았다. 신기하게도 목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컨디션은 더 좋아지기만 했다. 이대로라면 몇 곡도 더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객들의 호응은 내 텐션을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스태프 쪽에서 준비한 노래는 지금 내가 부르고 있는 ‘당신과 나’가 마지막이었다. 이 노래가 끝나면 공식적으로 공연이 끝날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후 내려가겠지.

 

 하지만 스태플들에게는 미안하게도 내 계획을 실행하려면 여기서 콘서트를 끝내면 안 됐다. 나는 고든을 본다. 손을 흔들며 여느 관객들과 다를 바 없이 내 노래를 듣고 있었지만, 몇 주 전부터 느껴지던 이질감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힘든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위로를 해주고 싶었으나, 고든 자신도 딱히 내비치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사정도 모르는데 아무 말로나 위로를 해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그에게 힘이 돼주기로 했다. 매니저 언니밖에 모르는 다음 노래는 고든에게 선물해줄 무대였다.

 

 -고든-

 

 그녀가 부르는 ‘당신과 나’가 끝이 났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만큼 노래가 끝나자 박수 갈채와 호응이 장난이 아니었다. 다른 노래들도 다 좋았지만, 나 역시 이 노래가 제일 좋았다. 이걸 부르고 있던 그녀에게 반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엘레인의 목소리와 너무 어울렸다. 나는 있는 힘껏 박수를 치며 크게 호응했다. 그녀는 그런 우리들에게 한 동안 고개를 꾸벅거리며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그러더니 소리가 잦아질 때 쯤 말을 꺼냈다.

 

 “아쉽게도 예정된 무대는 방금 노래가 마지막이었어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은 어느새 숫자 8을 가리키고 있었다. 2시간. 넋을 놓고 구경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사람들은 이구 동성으로 아쉽다는 소리를 내뱉었다. ‘가지 마요.’, ‘한 곡만 더해줘요.’ 등. 그녀에게 가지 말라는 말들이 가득했다. 엘레인은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나도 그녀에게 ‘안 가면 안 되요?’라고 외쳤다. 엘레인은 내 말을 들었는지 나와 눈을 마주치고선 소리내 웃었다.

 

 “하지만.”

 

 엘레인이 우리들을 향해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뒤 말했다.

 

 “예정되어 있는 대로만 사는 삶은 재미 없잖아요?”

 

 ......?

 

 “스태프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제가 꼭 마지막으로 불러야 될 노래가 있어서요.”

 

 ......그녀는 그 때부터 내 눈을 보며 말한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요즘 엄청 힘들어 하거든요.”

 

 사람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나도 멍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에게 연인이 있다는게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알려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눈만을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지금은 이것밖에 없네요. 부디 그 사람의 마음에 들었으면 합니다.”

 

 엘레인은 그 말을 하고선 피아노 옆에 세워 놓았떤 기타를 든 채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선 천천히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노래 제목은......”

 

 ......

 ......

 

 너와 심장.

 

 ......내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불러줬던 노래였다.

 

 그녀가 기타 줄을 튕기자 익숙한 음이 흘러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심장이 뛰지 않았어. 그의 손만 잡으면 터질 것 같던 심장은 누구의 손을 맞잡아도 멈춰 있었고......”

 

 그녀의 예쁜 음색이 기타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악기라곤 기타 하나밖에 없었지만 이 때까지의 화려한 음들과는 다르게 조용히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와 그녀의 목소리는 서서히 콘서트장을 장악해 나갔다. 수근대던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수록 하나 둘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노래에 빠져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레인의 목소리만 빼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입을 다문건지 내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확실한 건 지금 내겐 그녀밖에 보이지 안흔ㄴ다는 것이었다.

 

 엘레인은 내 노래에서 조금 개사를 해서 여자가 남자에게 이야기해주는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언제 저 노래를 연습한걸까. 콘서트 준비하느라 눈 뜰 새도 없이 바빴을텐데.

 

 “그의 눈과 마주치던 순간 멎을 것 같던 심장은 그 누구의 눈을 바라봐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어......”

 

 그녀가 노래를 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그 사람이 요즘 엄청 힘들어한다고. 내가 줄 건 지금은 이것밖에 없다고. ......엘레인은 알고 잇었다. 몇 일간의 내가 예전과는 다르게 행동한다는 걸. 그녀에게 미안하고 말 못할 사정이라 나름대로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었는데 그녀는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엘레인은 속이 깊은 사람이니까 어줍짢은 말로 위로를 하는 건 혹시라도 내가 기분이 상할까봐 안 했겠지. 그래서 이렇게 큰 콘서트장에서 스태프들조차도 모르게 이런 선물을 준 것이었다. 내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런 여자에게 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녀는 저런 순간에도 날 생각하며 내게 이런 선물을 주는데, 나는 그런 그녀를 질투하고, 못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그녀가 매번 스케줄 때 있었던 얘기는 다 나와 함께 그 끼븜을 나누고 싶었고, 일이 없을 때 마다 항상 내 옆에서 함께 해줬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러다 널 만났지. 예쁜 가로등 아래서 길을 걷던 너의 뒷모습에 바람에 찰랑이던 그 머릿결에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널 보고 있었어.”

 

 -무대 위-

 

 주위가 조용해진 건 고든의 착각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또 다시 엘레인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숨을 죽인 채 무대 위를 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엘레인과 고든은 서로만을 눈에 담고 있었다.

 

 노래는 계속 흘러가 어느샌가 중반쯤에 이르렀다. 감정이 최고조가 될 때였다. 그 순간, 엘레인은 기타 연주와 노랫 소리를 갑작스레 중단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 한 발.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의아해 했다. 그러나 엘레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녀가 몇 발자국을 가서 멈춘 곳은 다름 아닌 고든의 앞이었다.

 

 엘레인은 자신의 목소리가 멀리까지 퍼지지 않게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 그에게 말했따.

 

 “고든.”

 

 “......”

 

 “당신이 이어서 불러주지 않을래?”

 

 7.

 

 ‘당신이 이어서 불러주지 않을래?’

 

 나는 의자에 앉아 아무도 모를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한 숨 한 번으로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두 번, 세 번.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숨을 계속 골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마치 마약을 한 것처럼. 거의 초당 4회 정도가 뛰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무대 위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고 높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갖가지 레이저들 때문에 눈을 뜨기고 힘들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숨 막히는 곳에서 그렇게 행복하게 공연을 했던 걸까.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A-1 좌석에 앉아있는 엘레인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엘레인.’

 

 관객들은 엘레인이 내려가고 대신 내가 무대 위로 올라오자 다시금 수군대기 시작했따. 왜 노래를 부르다 말고 좌석에 앉아 있던 이상한 사람이 기타를 대신 들고 앉아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겠지. 나라도 그럴 것 같았다. 그야 나는 여기 모인 사람들이랑은 엘레인을 제외하곤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였으니까.

 

 처음에 엘레인이 그 말을 했을 땐 당연히 거절을 하려 했다. 나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고, 괜한 짓으로 그녀의 공연을 망칠 순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이 이렇게 날 무대 위로 올라오게 만들었다.

 

 ‘내 선물이자 소원이야.’

 

 ......그녀는 평소 내가 이렇게 큰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싶어하던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원이라는 핑계를 삼아 이런 무대를 선물해 준 것이었다.

 

 엘레인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수근대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어보는 듯한 그들의 시선에 숨이 저절로 막혀왔다. 예전부터 이런 무대 위에 올라오는게 소원이었고, 아무런 긴장감 없이 편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접한 무대는 나를 아무런 말도 못하게 만들었다.

 

 자신감이 점점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자괴감이 파고들었다. 노래를 끝내면 그들은 박수 대신 더욱 더 냉담한 시선을 내게 보낼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을 하니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오디션에도 한 번도 뭍은 적이 없는 실력인데, 이런 곳에서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잇는 걸까.

 

 나는 난감한 마음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그녀가 내게 한 마디라도 해주길 바랬다. 힘내라, 잘해. 뭐든 짧은 응원만이라도 해주면 힘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엘레인은 이런 내 시선을 느끼지 못 했는지 입조차 뻥긋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는 품에서 접혀 잇는 종이 한 장을 꺼내들 뿐이었다. 엘레인은 접혀 있는 종이를 펼쳐들었다. 적당히 큰 종이 위엔 검을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해’

 

 라고.

 

 마법같은 세 글자였다. 어떤 말들보다 저 말이 제일 가슴에 와닿았다. 글자 위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종이를 본 순간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 내가 생각을 잘못 하고 있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의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내가 원한 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분이었고, 관객은 엘레인 한 명이면 충분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굳어 있던 손가락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시선을 보낸다. 엘레인은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용기를 얻고 그녀가 뜮었던 부분부터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팝콘을 먹다 너의 손에 스치면 커지는 심장소리가 영화관에 울려퍼질까봐 조마조마 했고......”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른다. 내 목소리와 내가 연주하는 기타소리가 너무나도 잘 느껴진다.

 

 “얘길하다 너의 눈과 마주치면 머릿속이 하얘지며 네 모습밖에 생각나질 않았지.”

 

 눈을 뜰 자신이 없었다. 눈만 뜨면 그토록 보고 싶었던 광경이 앞에 있을 건데 이상하게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평소에 그렇게 원하던게 갑자기 손만 뻗으면 쥘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괜히 망설이는 그런 심정이랄까.

 

 나는 눈을 감은 채 앞의 장면을 상상해본다.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어. 눈을 감으면 너만 떠오르고......”

 

 사람들이 날 보고 있다. 그러나 엘레인 때와 같은 따뜻한 시선은 아니었다. 왠 낯선 사람이 무대를 망치고 있나하는 눈빛들이었다. 아무리 상상해봐도 그런 장면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심정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걸 우ㅡᅟᅥᆫ한 건 아니었다. 나도 당연히 사람들의 호응 같은 걸 받고 싶었다.

 

 ......

 

 “네 손이 내 손 안에 없으면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러다 엘레인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여전히 그 쪽지를 들고 잇는 그녀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의 눈빛이었다. 따뜻한, 내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있는 듯한 그 눈빛. 엘레인은 그런 눈빛으로 하염없이 내 무대를 보고 있었다.

 

 ‘사랑해.’

 

 그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나는 또 다시 바보같은 내 모습을 탓한다.

 

 5분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위해 부르는 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엇는데 그걸 또 까먹은 채 이러고 있다니. ......그래, 다른 사람들 반응이야 어떻든 뭐가 중요해. 내겐 그 무엇보다 엘레인이 소중하잖아.

 

 그걸 생각하니 비로소 눈을 뜰 용기가 생겼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눈을 뜬다.

 

 “네가 떠나면 다시는 심장이 뛰는 법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네 손을 놓을 수가 없어.”

 

 ......

 

 “날 바라봐줘.”

 

 ......

 

 “내 눈동자에 네가 담길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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