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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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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5 07:45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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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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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과학교육계열 합격생 과외 구함’이라고 적힌 전단을 붙이고 다니자 실감이 났다. 난 이제 어른이고, 내 힘으로 돈을 벌 거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다. 돈 버는 일은 제법 우스운 일이었다. 세상 모든 돈 버는 일이 더럽고 치사해 우스운 일이라는 건 짤막한 알바를 통해서 조금 알고 있었는데 과외를 하니 조금 다른 우스움 이 눈에 보였다. 과외는 효율적인 알바였다. 일주일에 네 시간 정도 책에 있는 내용을 아이에게 떠먹여 주면 한 달에 30에서 5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게다가 선불이다. 그 손쉬운 돈 벌기에 신이 나서 닥치는 대로 과외를 잡았다. 하루 종일 일 하고도 내 반 의반도 못 버는 그가 우스워 보였다. 그에게 내복 한 벌을 사주며 “뭐 필요한 거 있 어?” 하니까 그가 자기는 필요한 게 없고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자기가 다 사주겠다 고 했다. “핸드폰이랑 컴퓨터. 사줄 수 있어?” “사줄 수 있지. 왜 못 사줄까 봐?” “얼마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내 힘으로 번 백만 원을 처음 만진 날, 혼자 소래포구에 갔다. 어렸을 때 엄마한테 커서 돈을 벌면 백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한 게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흘려보냈 던 그곳에 앉아 백만 원을 흔들어 보이며 자랑했다. 돈을 태워서 엄마한테 줄까 하다 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까웠다. 갖고 싶지? 이거 버는 거 되게 쉽다. 부럽지? 그러게 왜 죽었어. 안 죽었음 이거 다 엄마 줬을 텐데. 왜 그렇게 성질이 급해. 나라도 좀 믿고 살지 왜 죽었어. 혼자 횟집에 들어가서 회를 시켜먹었다. 회 한 접시를 비우고 공깃 밥에 매운탕까지 깨끗이 비우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선생님은 아니라는 건 교육학 개론 첫 장을 펴고 나서 확실해졌 다. 그래도 학교는 꾸준히 갔다. 학교에 가면 재미있는 일도 많고 놀 거리도 많으니까. 사람들이랑 놀고, 먹고, 마시는 게 좋았고, 동아리방에서 낮술을 마시며 독서와 토의를 즐겼다. 읽던 책은 대부분 만화책이었고, 토의는 대부분 무슨 술을 어디서 더 마실 건 지, 안주는 뭘 먹을 건지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 여유와 자유가 좋았다. 술은 사람 사 귀기 어려워하는 나한테 좋은 마약이었다. 술을 마시면 못할 일도 없고, 말 못 붙일 사 람도 없었다. 술만 마시면 그와 비슷한 성격이 된다는 게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전공 수업을 빼먹고 이 과목 저 과목 도강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게 없으니 흥 미로운 거라도 찾아다니고 싶었다.

 

 복학생 장이득씨도 그렇게 싸돌아다니다가 만난 사람 중의 하나였다. 싸구려 호프집 에서 동아리 사람들과 술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늙수그레한 사람이 합석을 해왔 다. 98학번 물리학과라고 자기를 소개한 복학생은 머리를 어깨너머까지 찰랑찰랑 길러 철 지난 꼬불꼬불한 머리띠로 바짝 넘기고 있었다. 벌써 탈모가 진행된 건지, 이마가 원래 넓은 건지, 이마가 얼굴의 삼 분의 이는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에 있던 사 람들은 다 복학생을 알고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저 선배 유명하거든.” 옆자리에 앉은 03학번 선배가 말해줬다. “왜요?” “학고를 네 번 받았거든.” 학사경고가 유 명해질 사유라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술집을 휘저으며 술을 얻어먹고 다니는 복학생 의 친화력과 오지랖은 그의 성격을 능가하는 것 같아 경계의 대상으로 삼았다.

 

 삼차로 노래방을 가자 복학생이 물리에만 집중하고 살긴 힘든 사람임이 확연해 보 였다. 노래를 지나치게 잘 불러서 고등학교 때 수능 공부 말고 가수가 될 준비를 했으 면 지금 훨씬 성공했을 텐데, 지금이라도 가수를 하지, 학고나 맞는 학교는 때려치우 고, 하며 남의 삶에 감정을 이입했다. 다음 곡을 예약한 사람은 하필 나였다. 박치에 음치였던 난 복학생의 노래 실력에 질려 그 바로 뒤에 노래를 부를 엄두가 안 났다. 성급히 취소 버튼을 누르는데 복학생이 내가 실수로 취소를 누른 줄 알고 후다닥 우선 예약을 하고 시작을 눌렀다. 복학생은 그 노래 노래방 번호를 외우고 있었던 거다. “누가 예약한 거야?” 하는 복학생에게 내가 일부러 취소를 눌렀다고 하기도 민망해 서 그냥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음악 실기평가도 아닌데 쓸데없는 긴장을 하자 평소보다 더 못 불렀다. 댄스곡이라 고음 한번 없는 곡인데 목소리가 갈라지며 삑사리도 났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손도 떨리고 땀까지 찔끔찔끔 났다. 일절만 부르는데 일 년은 지난 것 같이 느껴졌다. 취소 버튼을 누르자 복학생이 대뜸 “너 고등학교 때 안 놀고 공부만 했지?” 했다. 그 말이 괜스레 웃겨서 긴장감이 싹 풀렸다.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그러게나 말에요. 이제부 터라도 열심히 놀아 보려구요.” 했더니 다들 웃었다.

 

 복학생은 그 뒤로도 학교 안팎에서 계속 눈에 띄었다. 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 닌 탓도 있었지만, 복학생의 발이 워낙 넓었다. 처음엔 가벼운 눈인사를 하다가 너무 자주 마주치자 농담을 주고받았다. 복학생은 내가 자기를 일부러 따라다니는 게 아니 냐며 그만 좀 따라다니라 했고, 난 손사래를 치며 따라다닌 게 아니라고 하다가 만난 김에 아이스크림이나 사달라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빨면서 할 말이 없길래 이름 ‘이 득’이 설마 ‘이득(利得)을 얻다.’ 할 때의 이득이냐고 물었고 복학생은 그렇다며 “별명이 항상 짱이득이었지. 친구들이 동생은 장손실이냐고 묻고.” 했다. “니 이름 은 뭔 뜻이냐?” 해서 난 순 한글이름인데 사람들이 알면 자꾸 놀려서 뜻은 말 안 해 준다고 했다. 핸드폰으로 내 이름 검색을 마친 복학생이 푸하하하 웃었다. “하늘이 내 린 사람이래. 네가 무슨 웅녀냐?” 했다. 처음 듣는 농담이라 단군신화의 왜곡 따위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복학생을 다시 본건 동방에서였다. 과제를 당일치기로 끝내려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갔는데 복학생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기타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는 지 자꾸 틀렸다. 난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슬펐다. 끝까지 가사를 듣고 싶은데 복학생 은 계속 같은 데서 틀려서 처음부터 다시 불렀다. 복학생이 힘겹게 노래를 끝마치고 넋을 놓고 보고 있던 나한테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기타를 혼자 배워 보려는데 잘 안되네.” “무슨 노래에요? 선배가 만든 거에요?” 했더니 복학생이 날 어린아이 보듯 하다가 “요새 애들은 김광석 모르냐?” 했다. “난 모르는데 딴 애들은 아마 알 거예요.” 했더니 복학생이 웃었다. 복학생의 왼쪽 볼에만 잡히는 보조개를 쳐다보다가 저 보조개를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간다 만다 소리도 없 이 서둘러 동방을 나섰다.

 

 며칠 뒤 또 다른 동방에서 같은 옷을 그대로 입고 부스스 잠에서 깨는 복학생을 봤 다. “선배는 집에 안가요?” 했더니 “집보다 편하면 거기가 집이지 뭐.” 했다. 학교 를 오래 다녀서 집에 눈치가 보여 집을 나와 따로 산 지 오래란다. “여기서 살아요?” 했더니 “여기서도 살고, 저기서도 살고.” 하며 자취방이 있기는 한데 굳이 갈 필요를 못 느껴 자주 가지 않는다고 했다. 보살이 따로 없다. “돈은 뭐해서 벌어요?” “게임 아이디도 팔고, 게임 머니도 팔고, 내기 당구도 치고.” ‘완전 폐인이네.’ 생각하다가 궁금하던 걸 물었다. “노래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불러요?” “노래는 계속 부르 면 누구나 잘 부르게 돼 있어.”

 

 복학생이 선천적 음치나 박치 따위는 없다면서 노래 연습을 하러 가자고 했다. 노래 방에 가잔 이야긴 줄 알고 따라나섰는데 홍대에 가자고 했다. “홍대요?” “노래를 자꾸 들어야 노래를 잘 부르게 되지.” 처음 가보는 라이브 카페에서 복학생은 나한테 자꾸 소리를 지르라고 했다. “박자 음정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네가 낼 수 있는 제 일 편한 소리를 내봐.” 록밴드의 시끄러운 음악에 복학생의 목소리가 묻혔다. 여기선 소리를 마음껏 지를 수 있겠구나. 아무렇게나 소리를 내봤다. 가사도 음정도 모르는 록 밴드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추임새를 넣다가 했다. 록밴드의 공연이 절정으로 치닫 자 귀가 먹먹해지고 머리가 어질해질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있는 힘껏 “좆 까라 씨발 조또 니미” 소리를 질렀더니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복학생이 나를 보며 활짝 웃었 다. “잘하네. 너 지금 태어나서 한 번도 안 써본 근육들을 쓰고 있는 거야. 느껴져?”

 

 다음날이 되자 복학생 말이 맞았는지 목부터 배까지가 뻐근해 왔다. 복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산을 좋아하느냐 길래 단호히 「아니요.」 했는데 등산을 가자고 했다. 산을 오르면 폐활량도 늘고, 산의 정기를 받아 득음이 잘된다며. 노래를 잘 불러보고 싶긴 했지만, 내가 지금 유명 기획사 걸그룹 오디션 준비할 것도 아니고, 이렇게 까질 할 필요는 없는데. 게다가 난 움직이기를 세상에서 가장 귀찮아했다. 올라갔다 다시 내 려와야 하는 산에 가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종족이라 여기고 그들과의 교류를 가능한 한 피해왔다. 복학생과 같이 가긴 더더욱 싫었다.

 

 전화해온 복학생이 나는 안양에 사니까 안양서 관악산을 오르고 자기는 서울대서 관악산을 오를 테니 정상에서 만나자고 했다. “네? 그게 가능해요? 안양에 관악산이 있어요?” 했더니 “넌 학교 다닐 때 소풍도 안 가고 공부했냐?” 했다. “소풍은 뒷산 으로 가지 그게 관악산인지 북한산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모르는 것 같으니까 구라치는거죠?” 난 심각하게 말했는데 복학생이 껄껄 웃으며 “내 말을 그렇게 못 믿 겠으면 산을 올라보면 알지.” 했다. 난 길도 모르고, 걷기 귀찮다고, 케이블카 없느냐 고 계속 주절댔고 복학생은 자기가 전화로 길을 알려줄 거고, 안 걸으면 일찍 죽으며, 케이블카는 북한산에 없고 남산에 있으니 다음에 가서 타자고, 나를 설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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