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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광야에서
작가 : th쓰
작품등록일 : 2017.11.8

홀로 평원에 살아가던 사람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낯선 일행을 만나 시작되는 이야기.

 
1-18. 마녀의 평원
작성일 : 17-12-14 04:26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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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쉽군.”

 

 이슈트반이 말했다. 너무 여상스러운 말투라 내가 나도 모르게 아프다고 말한 줄 알았다.

 

 “무슨 소립니까?”

 “네게 일자리가 생긴 것이 아쉬워. 계약을 연장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하…….”

 

 이 귀족이 미친 모양이다. 계약 연장은 혼자 하나? 나는 웃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이슈트반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아그나가 발끈한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다.

 “뭐야? 왜 싫어?”

 “왜 싫냐니……. 나도 할 일이 있어.”

 

 너 같으면 좋겠어? 라고 대꾸하려다가 참았다. 여기서 싸워봤자 좋을 일이 없다. 내가 이 일행과 다니면서 안 할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물론 지금은 위험수당을 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마음고생 값을 알아서 가져왔으니 투덜거릴 생각은 없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 되면 이 일행도 다시는 나를 고용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일 끝나고는?”

 

 아그나가 히죽, 웃었다. 귀여운 악동처럼 해맑은 웃음이었지만, 동시에 흉계를 꾸미는 악동처럼 소름이 돋는 웃음이었다.

 

 “생각 없어. 댁들이랑 있을 때 내가 무슨 개고생을 했는지 벌써 잊었나보군. 난 개고생을 두 번이나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개고생, 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음에도 아그나는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그나는 깔깔대며 웃더니 내 어깨를 퍽퍽, 두드리며 살면서 개고생 좀 할 수도 있는 거라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심지어 아그나의 손길은 취한 사람답게 힘이 잔뜩 들어가 나를 아프게 했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힘이 더 세지는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아그나는 멈추지 않고 그라프에게 술을 권했다. 중간까지는 사양하고 망설이던 그라프는 이제 완전히 취했는지 주는 술잔을 전부 받고 있었다. 여관 로비에서 각자 술을 마신던 사람들도 신관이 술을 잘 마신다고 웃으며 부추겼다.

 

 “아무튼, 한 번 생각해봐. 생각 끝나면 연락하고.”

 

 아그나는 또 히죽, 웃었다. 악동을 벗어나 완전히 악당 같은 미소였다. 케틀린이 묵직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레오스.”

 

 마주보자, 케틀린은 내게 접시를 내밀었다. 크게 잘라 조린 닭고기의 살을 잘 발라 산처럼 쌓아놓은 접시였다. 케틀린은 보기 드물게 내게 친절했고, 심지어는 다정해보였다. 나는 조금 아연해졌다. 아그나는 마치 우리가 평원에서 한 수많은 말싸움이 친해지는 과정이었다는 듯 자꾸만 내게 친근감을 표했고 케틀린은 하지도 않았던 무례를 사과하더니 이제는 제 일행에게 보여주었던 묵묵한 배려를 내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슈트반은 일도 다 끝났는데 뒤늦게 접근해 이것저것 캐묻고는 계약 연장 제의까지 했다. 나는 한시바삐 이 일행에게서 멀어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차라리 지금 만취해서도 나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한 그라프의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편이 낫겠다.

 

 내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고 손가락 끝으로 접시를 밀어내자 케틀린이 민망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접시를 가져갔다. 그는 닭고기 산에 소스를 잔뜩 얹더니 꾸역꾸역 제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보다는 그가 닭고기의 산을 먹는 편이 옳았다. 아그나가 케틀린을 손가락질하며 놀렸다.

 

 “차였네, 차였어.”

 

 헛소리였다.

 

 “시끄럽다.”

 “레오스, 네가 차니까 케틀린이 울려고 하잖아. 우리랑 일 하자니까?”

 

 케틀린이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아그나가 또 내게 말을 넘겼다. 케틀린은 닭고기를 씹으며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군. 나와 케틀린, 아그나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이슈트반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웃음은 꼭, 사람이 아닌 동물들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기야 귀족들이 다 그렇지만. 아그나와 케틀린은 기분이 나빠지지도 않는지 이슈트반의 웃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장난을 쳤다. 그 꼴을 보며, 나는 정말로 다시는 이들과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귀족과 일을 한다는 건 이런 의미다.

 

 나는 언젠가, 나를 키운 사람이 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는 지금처럼 귀족이 흔하지 않았다. 지금에야 귀족이란 돈을 주고 살 수도 있는 작위일 뿐이지만 그 때는 길거리에서 귀족을 마주치면 무조건 머리를 땅에 대고 조아려야 했다. 검은 모자와 실크 스카프는 귀족들만 쓸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귀족들에게만 허락된 의복의 의미를 알았다. 검은 모자와 실크 스카프는 우아함과 부유함, 차별화된 피의 상징이었다. 고작 모자와 스카프를 잘못 썼다고 잡혀다 사형을 당하던 우리는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아저씨는 귀족을 싫어했다. 그는 가끔 귀족의 생활양식을 하나하나 잡아 비꼬며 비아냥거리고는 했다. 언제나 곧고 올바르게 살 것 같던 그가 특정된 다수에 대한 악의를 표출할 때면 아저씨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는 했다. 사람들은 아저씨의 가치를 알았다. 그는 고결한 사람이었다. 차별 없이 타인을 대하고 희생정신을 알았다. 수치를 모르는 자도 아저씨의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에게 은혜를 입은 자는 이 도시에 차고 넘쳤다. 마물사냥꾼들은 그에게 목숨을 빚졌다. 가난한 자는 양식을 얻고 아픈 자는 보살핌을 받았다. 아저씨의 선행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뒷골목의 거지도 굶고 있는 불구도 죽어가는 병자도 그에게는 똑같았다. 아저씨는 모두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베풀었다. 그는 연고 없는 어린애를, 불길한 마녀의 피를 이은 더러운 꼬마를 망설임도 없이 거두었다. 아저씨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아저씨가 귀족에 대한 경멸을 숨김없이 드러낼 때면 사람들은 놀랐다. 그의 안에 그토록 격렬한 분노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아저씨는 귀족 사회는 물론이고 그들 구성원 하나하나와 그들이 몸담은 모든 구조를 혐오했다. 평생 맛보지 못한 사람의 온기에 허겁지겁 기갈을 채우며 아저씨의 모든 것을 따라하던 나도 그 혐오만큼은 이해하지 못했다. 질 낮은 치들은 아저씨의 증오심을 들어 그의 과거를 제멋대로 추측해대고는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아저씨의 앞에서 귀족의 귀 자도 꺼내지 않기를 택했다. 나도 그랬다. 나는 사람들과 나 사이에서 침묵의 약속을 발견할 때마다 동질감을 느끼고는 했다. 우리는 아저씨가 망가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아저씨는 존재할 리 없는 우상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우상이 온건하기를 바랐다. 나는 아저씨의 오래된 짐 속에서 발견한 수놓인 실크 스카프를 못 본 척했다. 사람들은 아저씨의 언행에서 숨기지 못하고 드러난 품위를 사람 됨됨이라 말하며 모른 체했다. 심지어 우리는 당사자인 아저씨마저도 공범임을 알고 있었다. 아저씨를 욕하는 사람들도 진실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좋던 싫던 우리에게는 아저씨가 필요했다.

 

 아저씨는 귀족을 싫어했다. 나는 그가 왜 귀족을 싫어했는지, 그의 짐 속에 있던 수놓인 실크 스카프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를 좋아했고, 그를 따라했다. 아저씨가 귀족들에게 하는 욕설을 순진한 척 따라하면 아저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게 좋아서 나는 더 그를 따라했다. 내 그릇된 학습을 보며 아저씨는 욕을 줄였지만 귀족을 싫어하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귀족들의 이중성을 모욕하고 그들의 불명예를 욕하는 것을 듣다보면 따라서 귀족들을 싫어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도시의 사람들은 귀족이 한 번 나타날 때마다 마물과 싸우는 것만큼이나 큰 봉변을 겪고는 했다. 죽여 없앨 수 있는 마물과 귀족은 차원이 달랐다. 귀족들이 저지르는 행패는 아저씨의 혐오와 마주쳐 내 안에도 손쉽게 귀족에 대한 거리낌을 구성했다. 기실 당한 일도 없는 내가 귀족을 그리 싫어할 필요는 없었음에도.

 

 아저씨는 내가 갖게 된 혐오를 알기도 전에 죽었고, 아저씨가 죽은 뒤로 나는 내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도, 바꿔줄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이슈트반이 귀족임을 알았더라면 평원이 어지럽혀지건 말건, 그들이 마녀의 평원에서 죽어버리게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나는, 귀족 따위와 일 할 생각은 없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말이 튀어나갔다. 입 밖에 낸 순간 실수임을 알았지만 이미 낸 말을 고칠 방도는 없었다. 모르겠다, 싶어 되레 뻔뻔한 얼굴로 닭고기를 썰었다. 단번에 아그나가 험악한 얼굴을 했다.

 

 “야, 너 뭐랬어?”

 “귀족과 다시 일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지금 이슈트반님이 귀족이신 건 알고 하는 말이냐? 대놓고 들어라 이거지?”

 

 내 잘못임은 알고 있었다. 귀족이라고는 하나 이슈트반은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강제한 것은 오직, 귀족임을 알게 된 후 존대를 쓰라는 요구뿐이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귀족에게 존대를 쓴다고 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역시 귀족이 싫었다. 내가 고개를 숙일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거지? 귀족 모독죄로 끌고 갈 텐가?”

 “이봐, 레오스. 나는 우리가 그동안 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고귀하신 몸의 비위를 잘 맞춰드렸다니 천만다행이군. 이제 발닦개로 삼아주시나? 아, 이미 너희 자리라 안 되나?”

 

 부러 이를 드러내 비웃었다. 당연하게도 아그나는 단번에 내 업신여기는 기색을 눈치 채고 눈을 치켜떴다.

 

 “정말 귀족 모독죄로 뒈지고 싶어? 이 동네에는 입 잘못 놀려 죽은 사람이 아직 없어?”

 

 네가 그 첫 사례가 되겠느냐는 말에도 코웃음을 쳤다. 여기가 마녀의 평원도 아니고, 이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면 꼼짝없이 목이 날아가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그나의 사나운 말투가 그저 우스웠고 기분이 나빴다. 무엇보다도, 아그나가 불 같이 화를 내며 으르렁거리는데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나와 아그나를 관찰하기만 하는 이슈트반의 태도가 너무나도 싫었다.

 

 쾅. 아그나가 테이블을 내리치며 일어났다.

 

 “이 시건방진 새끼. 나와, 그 입을 찢어버리,”

 “아, 신이시여!”

 

 내 입이 찢길 위기에, 그라프가 신을 찾았다. 그 극적이고 황홀경에 빠진 목소리에 나는 상황도 잊고 멍청한 표정으로 그라프를 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개를 처박고 맥주잔을 들여다보던 그라프는 하늘을 바라보며 양 손을 모아잡고 울고 있었다.

 

 “아르마디아시여, 당신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그래, 울고 있었다. 나는 얼이 나갔다. 설마, 지금 취한 건가? 나와 아그나가 싸울 것 같으니 그라프가 일부러 취한 척을 한다기에는,

 

 “아르마디아시여, 당신의 종을 굽어 살피소서!”

 

 너무 펑펑 울고 있었다. 술 취한 신관은 난생 처음 보았지만,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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