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씨를 만난 후 나에게 일어나는 변화 중에 두드러졌던 것은 네일아트 숍을 찾는 이유의 변화였다. 강박에 의한 숨막힘을 해소하겠다고 간 것이 아니라 미용차원에서 간 것일 뿐이었다. 늘 동일하게 싱그러운 연두색의 미프라친카치아 장식만을 했고 매일 가던 곳을 일주일에 한 번 갈 뿐이었다. 그리고 일산화탄소를 마신 것 같다고 생각되어 숨을 헐떡거린다거나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간적도 없었고 사람들 말에 귀를 닫고 살았던 내가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하게 되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집중하던 때보다 더 신경 쓸 일이 많아 피곤하긴 했다. 하지만 J씨는 그것이 보편적인 기준에서 소위 말하는 정상이라고 분류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피곤함을 즐겨 보기로 하고 휘트니스 센터에 가서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간단하게 운동을 하고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 세 명이 휴게실로 들어왔는데 밸리 댄스반의 수강생들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출렁이는 뱃살을 드러내 놓은 비키니 수영복 같은 상의와 몸빼바지 같으면서도 치마 같은 하의를 입고 허리에는 찰랑대는 장식이 달린 랩스커트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각자가 살아가는 얘기를 했는데 인상 깊었다. 각각 다른 방식의 희로애락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 가슴이 나에게 ‘나도 이제 원활하게 움직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심장아, 우연하게 듣게 된 저 얘기에 웃기도하고 가슴 뭉클해 하는 것을 알아차렸어. 이런 반응이 심장 너에겐 낯설지? 그런데 낯선 기분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이 따뜻함은 뭘까?’ 심장과 대화를 하면서 샤워장으로 갔다. 몸의 땀뿐만아니라 내 뇌와 심장에 평생 묵혀있어서 악취를 풍기던 땀도 함께 씻어지는 느낌이었다. 샤워기의 따뜻한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고 있을 EO,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에 나오는 ‘하루 중 나만을 위한 것을 생각하는 시간은 좋은 시간이고 날 제외한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생각하는 시간은 참 값어치 있는 시간이다.’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그 대사처럼 세상에는 값어치 있게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배운 날이었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 정도로 고요했다. 수업을 마치고 ‘브루스 바튼’의 명언의 매력에 푹 빠져있느라 벽시계가 새벽 한 시를 알라고서야 퇴근했다. ‘때때로 사소한 일이 위대한 결과를 가져옴을 볼 때 사소한 일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명언처럼 정말 그랬다. 평소에 그냥 넘겼던 상황들을 통해 내가 변화하는 위대한 결과가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하며 택시를 탔다. 새벽 한시에 들리는 목소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활기찬 음성의 인사를 들었다.
“여성고객을 위한 여기사택시에 타신 것을 환영합니데이.”
“새벽까지 피곤하실 텐데 어쩜 그리 활기차세요?”
“비결은 남편과 자식 때문인 것 같네예.
그카고 하나 더 있으예.
우리 집 근처에 노부부가 주인인 구멍가게가 있으예.
거기서 우유를 하나씩 사서 마시는데 늘 불이 켜져 있길래
원래 장사시간인가 보다 했으예. 그란데에 제가 주간근무
하루, 야간 근무 하루 번갈아 하는걸 아시고 이틀에 한번은
새벽 두 시까지 일부러 열어 두시는 거라데예.
얼마 전 그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는 코끝이 찡해지더라구예.
사실 운전하고 댕기면서 다른 곳엘 들려도 되는데,
제 딴에는 그 노부부를 위한다고 늘 거기서 산건데
오히려 제가 위함을 받고 있었더라구예.
그 후로는 저도 일하는 내내 모든 손님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데이.”
눈밀러로 보이는 기사님 눈빛의 반짝임을 보았고 내 심장의 눈빛도 반짝이는 듯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시간상으로는 잠을 청해야 하건만 J씨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숙제 때문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동기였다. 내 지각도 판단도 의심해야 할 정도의 ‘감동’이라는 감정을 어떤 표정으로 대면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서둘러 편지지를 펼쳤다.
실눈을 떠서라도 면밀히 드려다 보고 싶은 내 안의 양가성(兩價性)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이토록 많았었나 싶었다. 새파랗게 질려있던 내면의 얼굴이 안정된 혈색을 되찾아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잠깐 현기증처럼 지나갔다.
이런 큰 깨달음을 시기한 나의 옛 모습이 찾아오기 전에 J씨에게 전달하고자 편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