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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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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2 23:49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4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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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 순간 그냥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 은 항상 내 머리 귀퉁이에 머물었고, 왜 사느냐는 질문은 늘 대답 없이 메아리쳤다. 죽 으면 편해지는 게 너무 많으니까. 사는 건 항상 뭣 같고 이 뭣 같은 상태가 가까운 미 래에 달라질 기미가 전혀 없으니까 죽으면 최소한 그 뭣 같음은 안 봐도 된다. 죽으면 여태까지 본 뭣 같음도 나와 함께 없어지겠지. 깎이고 파이고 시달리는 것보다 사라지는 게 나을까? 언젠가는 조금씩만이라도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아주 미약하고 막연한 기대로만 살기는······. 꼬르륵. 웩웩. 입과 코를 가리지 않고 물이 막무가내로 들어왔다. 계속 먹어도 적응이 안 되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짜다. 엄마, 나 엄마 따 라가도 돼? 내 팔자라고 엄마랑 다르겠어?

 

 짠물을 하도 먹어 배가 터질 듯이 부르고 구역질이 나 물이 더 이상 들어가는지 나 오는지 구분이 안 됐다. 온몸이 이상하리만치 따뜻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사 랑도 못 해봤고, 섹스도 못 해봤잖아. 처녀 귀신은 되기 싫어. 그 찰나에도 몸과 마음 은 평소보다 더 빠르고 크게 운동했다. 숨 한번 쉬고 싶어서, 어떻게든 올라 뜨려고 용 을 쓰다 물만 더 들이켰다. 체육 시간에 사람 몸은 물에 뜬다고 분명히 배운 것 같은 데, 난 병뚜껑 열린 맥주병처럼 물로 채워지고 있었다. 폐가 따끔거리고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숨을 참지 못해 들숨이 쉬어졌다. 벗겨 진 피부에 소금 찜질하는 기분이 폐를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마지막 순간임을 아는 발악의 몸놀림과 상관없이 난 쓸려 다니면서 바닥을 향해 축축 가라앉았다. 밖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물이 코끝까지 가득 차서 ‘살려달라’는 소리도 안 나왔 다. 이제 죽는구나. 죽으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죽어서도 엄마 얼굴 못 보면 나 너 무 억울해서 환장해버릴 것 같아. 누가 날 확 잡아 젖혔다. 어, 엄마야?

 

 미친 듯이 기침을 하며 깼다. 입에서, 코에서, 귀에서, 눈에서도 짠 내 나는 짠물이 나왔다. 구역질이 계속 나고 폐 속부터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이 달아올라 추운지 더 운지 모르는데 낯선 잠바가 낯선 이의 손에 의해 내 위에 둘렸다. 내가 거둬 내려 하 자 “바람이 찬데, 안 추워요?” 하며 다시 덮었다. 온몸이 축축 늘어져 다시 그냥 누 웠다. 팔도 다리도 소금물을 머금은 것처럼 무겁고 움직이기 힘들었다. 낯선 이는 곧 구급차가 올 거라며 잠깐만 참으라 했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시간을 다투며 왔다. 앵앵 대는 사이렌 소리가 머리를 사정없이 뚜드려댔다. ‘그것 좀 꺼주시면 안 돼요?’ 하 고 싶은데 소리가 입 밖으로 안 나왔다. 아이씨. 죽어버렸나?

 

 구급대원들이 날 들것에 싣고 차에 밀어 넣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난 죽은 것 같 은데. 천천히들 해요. 병원에서 나한테 뭘 자꾸 쑤셔 넣는 의사들한테도 내가 죽었나 안 죽었나 묻고 싶었다. ‘자살 기도’라는 단어가 들렸다. 에이, 그건 아닌데. 뭐, 죽 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긴 한데, 죽으러 들어간 것도 아니에요. 다시 정신이 들자 온몸이 천근만근이 돼 쑤시고 아려왔다. 죽으면 고통 같은 건 없어 진다는 얘기는 죽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거짓말이구나. 아니면 내가 지옥에 온 건 가? 그래서 엄마가 안 보이나? 내가 엄마보다 지은 죄가 더 많나?

 

 뛰어들어오는 그를 보자 반쯤 현실로 돌아오면서도 ‘저 인간도 죽었나?’하는 생 각이 들었다. 그가 나를 두들겨 팼다. 그 입장에선 내 다리와 팔을 두드리며 울어댄 거 였겠지만, 일단은 온몸의 근육이 놀라고 뒤틀어진 상태여서 너무 아팠고, 둘째론 그가 나를 때린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조금 놀랐다. 어렸을 때도 엄마한테는 몇 번 쥐어박 혔지만 그는 한 번도 내 몸에 험하게 손댄 적이 없었다. 그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 다. 내가 “아, 아.”하고 비명을 지르자 뒤따라 들어온 경찰이 그를 뜯어말렸다.

 

 내가 그에게 말도 하고 훌쩍 증발했었다는 걸 받아들이자 온전히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에 부스럼이 피고 얄팍한 양 볼이 쭈글쭈글 늙어있었다. 서른 시간이 넘는 탈선 동안 그에게 전화할 생각은 한 번도 못 했을뿐더러 그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한 번 도 안 했다. 얼마나 애가 탔을까. 산 사람 두고 죽은 사람 생각만 하고 다닌 게 죄스럽 고 후회됐다. “미안해. 내가 미쳤었나 봐.” “죽긴 왜 죽을라 해, 니가. 누군 죽을지 몰라서 안 죽는 줄 알아?” 그가 날 후려쳤다. 가만히 맞고 있다가 겨우 말했다. “죽 긴 누가 죽으려고 그랬다고.”

 

 죽으려고 바닷물에 들어간 건 아니라는 말을 그도 경찰도 백 퍼센트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여름 지난 추운 밤에 수영도 못하면서 해수욕하겠다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파 도에 휩싸였다는 사람 말을 믿으면 그게 이상할 거다. 날 구해줬던 낯선 이는 밤 운동 을 나왔다가 겉옷도 안 벗고 바다에 걸어 들어가는 수상한 사람이 허우적대지도 않고 물에서 나오지도 않아 뛰어들어 구했다고 했단다. 난 나름대로 발버둥을 쳤는데, 보고 있었으면 좀 일찍 구해주시지. 감사 편지라도 보내려고 어디 사는 누구신지 받아 적었다.

 

 그가 물회라는 듣도 보도 못한 걸 사줬다. 그는 소주 두 병을 비우더니 세 번째 병 을 따서 나한테도 반 잔 줬다. 줄려면 한 잔을 주던가, 반 잔은 간에 기별도 안 갈 텐 데. 처음 마셔보는 척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입에 쪼로록 부어 삼켰다. “잘 묵네. 안 쓰 나?” 그가 물었다. 쓴 척하는 건 까먹었다. “미맹인가 봐.” “미맹?” 그가 그렇게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었다는 말이 의심이 됐 다. 아무 생각 없이 과학 시간에 외운 대로 “열성 유전자.” 했더니 그가 괜히 뜨끔해 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수원 가는 기차 안에서 그의 빼빼 마른 다리 위에 머릴 대자 마자 금세 깊은 잠이 들었다. 보고 싶던 엄마 얼굴을 드디어 봤다.

 

 짧은 일탈을 마치고 학교에 가자 담임은 그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맘고생이 심하겠다면서 위로의 말과 함께 편부모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장학금을 신청할 기회를 주 겠다고 했다. 그런 게 있으면 가출하기 전에 미리미리 좀 말해주지. 그는 하루에 한 번 씩 공부는 할 만하냐, 기분은 어떠냐, 뭐 필요한 건 없느냐, 가고 싶은 데는 없느냐, 하 며 대화를 시도했다. 괜찮다고, 필요한 것도 없다고 일관하다가 한 달쯤 지나선 잔뜩 비꼬는 말투로 “필요한 거 있음, 다 사줄 거야?” 했더니 그가 화색을 띠며 “여부가 있겠습니까, 공주님.” 했다. 그 얼굴에 하고 싶던 ‘엄마가 필요해.’ 소리는 차마 못 하고 “문제집 사게 돈 좀 줘.” 했다.

 

 고3이 되자 그가 나를 더욱더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바닥에 놓인 밥상 대신 책상이, 책상도 그냥 책상 말고 양옆이 막힌 아담한 독서실 책상이 갖고 싶다고 하자 내 키에 꼭 맞는 책상을 하루 만에 제조했다. 니스 냄새가 많이 났고 싸구려 나무로 만들어 가 볍고 고정이 잘 안 됐지만 책상 위 책꽂이까지 완벽한 독서실 책상이었다. “이런 거 할 줄 알면 목수로 돈을 벌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뒤에서 왔다 갔다 하며 부스럭대는 그가 거슬린다고, 책상 주위로 커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큰 훌라후프를 주워와 톱으로 자르고 벌린 다음 책꽂이 위에 고정했다. 시장 이불가게 에서 싸게 사 온 검은색 이불을 둘러 달자 1 제곱미터가 채 안 되는 나만의 영역이 마련됐다. 맘에 들었다. 공부를 안 할 때도 그 안에 들어가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만화책도 보고 낙서도 하다가 밥도 그 안에서 먹었다.

 

 주말에는 집에서 공부를 해야 하니까 학교에 놓고 다니던 책을 많이 들고 와야 해서 무겁다고 하자 교대시간을 바꿔서 토요일마다 데리러 왔다. 나눠 들어도 됐을 텐데, 난 책가방과 책이 담긴 쇼핑백을 가져가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의 뒤에서 잡풀이나 뽑아대며 여유롭게 걸어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월요일에 다 들춰보지도 않은 책 들을 다시 학교로 운반한 것도 그였다. 그는 내가 1년 동안 공부만 하게 해주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지켜냈다. 공부에 필요하면 책이든 공책이든 무한정 사도 된다는 말은 설마 하며 못 믿었는데 내 이름으로 체크카드를 만들고 돈을 낙낙하게 넣어줬다. 공장 일을 하면서 밤마다 다른 일도 하는 것 같았지만, 나한텐 맨 날 놀러 간다고 하곤 나갔다.

 

 그쯤 되니까 공부를 안 할 수 없었다. 명문고에 진학해 2년 동안 한 일은 내신 점수 를 야금야금 깎아 먹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수능은 꼭 잘 봐야 했다. 하고 싶은 건 없었지만, 남들 다 가는 대학이라는데,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고, 가야 했다. 좋은 대학은 학비가 적게 드니까. 영어 듣기평가 문제집 여섯 권 정도를 듣고 풀기 반 복하자 항상 자신 없던 영어 듣기평가가 한 개 틀리면 무지 억울한 영역으로 바뀌었다. 탄력을 받아 지루한 언어를 공략했다. 긴 지문을 읽는 게 너무 귀찮았고 성격이 급 해 다 읽지도 않고 푼 다음 시간이 남아 멍하니 앉아있던 영역이었다. 문제집 한 권을 풀 때마다 오르다가도 또 내리는 모의고사 성적에 위안과 좌절을 반복했다.

 

 고3 담임은 국어선생이었는데 별명이 설사였다. 서울대 갈 성적이 되면 과 같은 건 상관없이 무조건 서울대를 가야 한다고 강요하기로 선배들 사이에서도 유명해 ‘설대 못 보내 환장한 사람’의 준말이기도 했고 본인이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하는 말 투를 잘 쓰기도 했거니와 중의적의미가 있는 별명이었다. 아이들은 서울대를 보내는 머릿수대로 성과금을 받아서 그렇다고 농담조로 이야기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고 싶은 걸 생각할 여유가 없고 큰 꿈이 없었던 난 설사한테는 설사의 조언대로 서울대 사범대가 목표라고 했고, 그한테는 그가 바라는 대로 서울 교대에 가 겠다고 했다가, 서울대 사범대에 가겠다고 했다가, 수능을 대박 내 의대에 가겠다고 했다가, 하며 널뛰는 모의고사 등수에 따라 마음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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