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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폭군의 주인님
작가 : 정블루
작품등록일 : 2017.11.29

[걸크러쉬 여주] [마녀는 좀비의 비서?] [진짜 마녀 여주] [진짜 좀비 남주] [좀비가 마녀의 심장을 노려] [현대 배경 로맨스 판타지]

"나를 죽여줘" 콧대 높은 좀비가 나를 환멸 가득한 눈으로 노려다 보며 말했다.
"나를 당장 죽이지 않으면." "어쩔 건데?" 그의 아찔한 입가에 조소가 담겼다.
"너의 심장을 파먹어 줄게."

 
피할 수 없는 너와 나 [2]
작성일 : 17-12-12 15:02     조회 : 412     추천 : 0     분량 : 6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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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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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꺼풀이 잘게 떨리다가 종래에는 점점이 가루가 되어 소멸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집에서, 그것도 의도치 않게 알몸이 되어 깨야만 하는 것인가?

 

 멍청한 이하연, 망할 이하연.

 

 아니, 빌어먹을 엘리스!

 

 ”좋아.“

 

 ”......“

 

 ”안 일어나겠다면.“

 

 ”......“

 

 ”내가 들어간다?“

 

 전신을 조이는 팽팽한 긴장의 끈이 숨통까지 끊어놓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풍비박산나려는 건 둘째 치고 일단 70년을 넘게 고이 간직했던 나의 순결이 저런 천하의 더럽고 추악한 인간에게 깨져버렸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치욕적이었다.

 

 몸을 잠식하고 있는 빳빳한 이불과는 다르게 너덜너덜한 걸레 같은 느낌을 받고 있던 그때.

 

 스르륵.

 

 이불에 유유히 손을 뻗는 이질적인 느낌이 고막을 강타했다.

 

 속옷만을 남긴 채 나를 감싸고 있는 아슬아슬한 막을 그가 건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 안돼!“

 

 그때쯤 벌떡 일어났다. 이불로 온 몸을 꽁꽁 가린 채.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이 천하의 나쁜 변태자식아!“

 

 ”......“

 

 우습게도 그 남자를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단지 긴 다리만이 눈을 타고 흘러들어올 뿐이었다.

 

 한 손으로 가슴께까지 이불을 싸맨 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베개를 쥐어 잡고 던졌다.

 

 ”어디 할 게 없어서 취한 여자나 건드리고 다녀! 감히 나를 건드리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아?“

 

 이내 다른 베개마저도.

 

 두 눈가를 희번득하게 부라리며 손에 잡힐 물건을 찾는 데에 혈안이었다. 뭔가 움푹하고 단단한 물체가 잡히자마자 재빨리 그것을 손으로 움켜쥐며 그를 겨냥했다.

 

 살기등등한 웃음이 입가를 타고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두 눈은 질끈 감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직도 저 불한당 같은 놈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모멸감이 한가득 머릿속에 들어찼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장 경찰을 불러서 감옥에 처넣어주겠어! 나를 겁탈한 죗값을 치르게 해줄......!“

 

 ”겁탈?“

 

 꿀을 바른 듯한 달콤하고도 묵직한 톤이 귓가를 찔렀다.

 

 ”......“

 

 그제야 나는 감았던 눈을 가늘게 떴다.

 

 당장 첫 번째로 보였던 것은 양주병이었다. 그것이 내 손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때였다.

 

 ”어이가 없군.“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이 귓가를 맹렬하게 긁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눈을 위로 치켜떴다.

 

 ”......!“

 

 그는, 뭐랄까.

 

 모든 유혹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진정 후광을 등에 업은 남자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이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련된 가르마가 한쪽 구석에 은근하게 머물러있는 부드러운 머리칼, 그 밑으로 흐르는 매끈한 이마.

 

 눈매 사이로 파란 에메랄드가 깊게 박혀있는 그의 두 눈은 정말이지 매혹적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도도하게 뻗어있는 코, 굳게 잠겨있는 고집스러운 입매는 당장이라도 그 안에 달콤한 과즙을 머금고 있는 듯이 보일 정도였다.

 

 고혹적인 포스는 너무도 야해서 자꾸만 그에게로 홀리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그 정도로 그는 색기가 가득한 오라를 풍기고 있었다.

 

 하나의 잘 다듬어져 있는 명작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마녀인 나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마법재료로 보이기까지 했다. 당장 섭씨 2000도가 넘는 가마솥에서 팔팔 끓여 속 재료로 사용하고 싶은 충동마저 들게끔 만드는 마성적인 인간이었다.

 

 아니면 심장을 꺼내 박제로 만들어놔 집안 한구석에 장식품으로 걸어두는 것이 나을지도.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저 개자식은 어디까지나 후안무치한 천하의 변태라고!

 

 흔들리던 눈이 점차 균형을 맞춰갔다. 이윽고 나는 그를 노려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를 벗기고 겁탈까지 한 개자식은 당신 아니야?“

 

 ”개자식이라니,“

 

 ”......“

 

 ”말이 좀 심하군.“

 

 그가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두 눈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쓸었다. 그를 보며 뭐라고 한마디 더 하려던 순간이었다.

 

 ”당장 경찰서로 가자ㄱ......“

 

 ”미안한데.“

 

 그가 내 말허리를 자르며 단숨에 치고 들어왔다.

 

 ”나는 자고 있는 여자나 건드리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뭐라고?“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이미 다 벗겨서 삶아먹은 주제에, 내 알몸을 보고도 지금 그런 말이 나와?“

 

 분하고 억울했다.

 

 더 짜증나는 건 그의 완벽한 외모였다. 재수 없을 정도로 잘생겼다.

 

 고작 흰 트레이닝복을 입은 주제에, 그것마저도 모델답게 소화하고 있는 그가 나를 보며 탐스러운 목젖을 꿈틀거렸다.

 

 ”아. 그거.“

 

 빌어먹을. 아, 그거?

 

 입을 실룩거리며 무어라 말하려던 나에게 그가 넌지시 손가락으로 통유리로 마감 처리한 베란다를 가리켰다.

 

 단숨에 눈이 꿈틀거리며 그쪽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그리고 보였던 것은.

 

 ”......내 옷?“

 

 ”더 자세히 보지 그래?“

 

 그가 말하는 의미를 정확히 유추하기가 힘들었다. 두 눈가를 좁혀 떴다. 곧 그것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났다.

 

 ”저, 저게 뭐지?“

 

 보였다.

 

 오물범벅과 함께 하지가 사주었던 검정색의 벨벳 레깅스와 군데군데 구멍이 송송 난 흰 크롭탑이 주황색으로 물들어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네가 어제 토를 너무 많이 해서 말이야.“

 

 그가 실소를 머금으며 팔짱을 끼고 서서 고개를 옅게 흔들었다.

 

 맙소사.

 

 ”내가 저런 거라고요......?“

 

 세상에. 무슨 토를 춤을 추면서 했나?

 

 어깨를 움찔하며 물었다.

 

 그가 나를 보며 입 꼬리 한쪽을 치켜세웠다.

 

 ”어젯밤에는 고작 72000원짜리 레깅스를 변상해달라고 떼를 쓰더니, 이제는 내 침대에 토를 흘린 것도 모자라 경찰서에 같이 가자고?“

 

 기가 차 말이 나오질 않았다. 곤혹스러운 건 나였다.

 

 내가 72000원짜리 레깅스를 변상해달라고 했다고? 언제, 그리고 왜?

 

 ”덕분에 빨래까지 했어. 손빨래.“

 

 놀라서 입이 굳어버렸다. 어젯밤의 기억을 더듬어보려 하기도 전에 이미 고장 난 머릿속은 생각하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불자락으로 상체를 가린 나에게로 그의 얄미운 웃음이 전해져왔다.

 

 ”변상 목록에 내 침대 이불을 추가해야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저기요.“

 

 ”뭐.“

 

 목이 자라목처럼 들어갔다. 입이 텁 다물렸다.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어드릴게요.“

 

 그 말을 듣고서야 그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

 

 그러더니 망연자실하게 있던 나에게로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적어.“

 

 ”뭘요?“

 

 ”네 핸드폰 번호.“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돼.

 

 두 눈가가 잘게 떨렸다.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되어버린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정의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순순하게 번호를 적어주기로 했다.

 

 액정에 대고 꾹꾹 번호를 누르고 그에게로 넘겼다. 그는 꿋꿋이 확인사살이라도 하는 모양인지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ㅡ이 밤이 가면~

 

 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확인까지 한 그가 만족스럽게 웃고는 스스럼없이 뒤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일부러 어설프게 주먹을 쥐고 어르신마냥 허리를 두드리는 얄미운 행동까지 하면서.

 

 ”소파에서 잤더니.“

 

 ”......“

 

 ”허리가 나갔나.“

 

 입을 질끈 다물고 그의 넓은 등판을 눈으로 흘겼다.

 

 저 좀스러운 인간.

 

 그보다도 죄책감이 가슴을 푹 찔렀다. 어디까지나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했으니까.

 

 나를 등지고 성큼성큼 걸어갔던 그가 다시금 뒤로 돌아 걸어왔다. 다리까지 긴 주제에 그는 금세 내 앞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이불 끝자락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더하고 있을 때 그가 턱, 뭔가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그것은 한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쇼핑백이었다.

 

 멍하니 눈을 들어 응시하자마자 그가 나를 보며 무미건조하게 웃었다.

 

 ”토한 옷은 못 입을 거 같아서 아침에 가서 사왔어.“

 

 세상에나.

 

 ”물론, 이것도 변상노트에 적어두지.“

 

 마상에나.

 

 그가 씨익 웃으며 선심이라도 쓰는 마냥 잔잔하게 대답했다.

 

 ”숙박비는 특별히 봐줄게.“

 

 하아.

 

 열 받네.

 

 ”그것 참 고맙네요.“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그가 한쪽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정신 차리면 갈아입고 나와. 아, 돌아갈 집은 있겠지?“

 

 ”아, 예예. 있습니다만.“

 

 ”다행이군.“

 

 그가 미련 없다는 듯 뒤로 돌아 걸어갔다. 그리고는 곧 내 앞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불을 짚고 있던 손에 맥이 탁 풀렸다.

 

 문득 눈을 들어 사방을 살폈다.

 

 ”더럽게 넓네.“

 

 고작 거실일 뿐인데 왕궁 내부를 방불케 했다. 그 정도로 절제미 가득한 모던함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곳에 살려면 어느 정도의 부자여야만 할까? 그는 재벌2세라도 되는 것일까?

 

 별 영양가 없는 호기심에 젖어들던 머리가 별안간 이상기류를 느꼈다.

 

 맞다. 어제 일이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뒤늦게 미뤄왔던 의문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클럽 안에서 하지와 함께 이제 막 재미있어지려던 찰나였는데, 음.

 

 뱁새눈을 뜨고 어젯밤의 일들을 기억해내기 위해 모진 애를 쓰던 중 뭔가가 하나 탁, 얻어 걸렸다. 입가가 놀라 부르텄다.

 

 ”아. 고연호!“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으로 어떤 인영이 침투했다. 고연호였던 거다. 잘 나가는 모델에 배우까지 섭렵하고 있다던 남자.

 

 ”......왜 기억이 안 나지?“

 

 고연호와 함께 VIP실로 들어갔던 기억은 나는데, 문제는 그 이후로 기억이 어떤 장벽에 가로막힌 듯 뿌옇다는 거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간단했다. 갸웃한 고개가 이내 맹렬하게 비틀거려졌다.

 

 ”내가, 취했었어?“

 

 고요했던 이성이 시커멓게 변질되는 느낌을 받았다. 절대로 취하지 않는다고 자부해왔던 내가 고스란히 술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앓는 신음과 함께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기억이 건널목을 건넌 이후로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이내 체념해야할 필요성마저 느꼈다. 제발 무슨 일이 없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쇼핑백을 에둘러 풀었다. 이윽고 내용물이 보이자마자 두 눈가가 잘게 부서져 내렸다.

 

 ”명품이었어?“

 

 그것은 이탈리아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명품취급을 받았던 옷이었다. 혼잣말이 신경질적으로 번져 나왔다.

 

 ”이 인간이 진짜.“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이 비싼 것을 도대체 언제 변상하라는 거야?

 

 손길이 분주해졌다. 가격표를 찾기 위해서였다. 두리번거리던 눈가로 이내 가격표가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3, 326만원?!“

 

 두 손으로 입을 터억, 막았다. 동시에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평범한 니트 원피스 하나 가격이 저 정도라니.

 

 ”3만 2천 600원도 아니고, 하.“

 

 차라리 싸구려 트레이닝복을 사줄 것이지.

 

 아주 나를 발가벗겨먹으려고 작정한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토한 것을 차라리 그대로 입고 갈까, 하는 막연한 기로에 서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명품 옷을 받아 들고 침대 안에서 낑낑거리며 입었다. 설마 이것을 다 받아내지는 않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더군다나 하지가 사줬던 저 옷은 대낮게 입기에는 너무도 야해 노출증 걸린 여자라는 인식을 단번에 심어줄 것이 뻔했다. 또한 저 남자보고 ‘다른 거 사오시면 안 될까요?’ 라고 하기에는 이미 지은 죄가 너무나 컸다.

 

 결국 옅은 한숨을 내쉬고 니트 드레스를 걸쳤다.

 

 별 생각 없이 다 입었다고 말하려던 순간 고약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들키지 않고 나간다면 그에게 안 걸리지 않을까?

 

 326만원이라는 거금은 내가 감내하기에는 너무도 큰 액수다. 더불어 그는 반드시 내게 저 돈을 받아낼 남자처럼 보였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남자란 말이지.

 

 궁극적으로 보자면 나는 이곳에 올 생각이 전혀 없었지 않은가? 나는 자의적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란 말이지. 덧붙여 이 값비싼 옷은 전혀 받을 생각도 없었다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에게 변상하리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속으로 지껄였다.

 

 ”......“

 

 고개가 번쩍 들렸다. 적막한 실내를 보며 쉴 새 없이 눈을 굴렸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고 핸드폰을 안에 쏙 넣었다. 발끝을 꼿꼿이 들어 소리를 죽였다. 그리고는 유령처럼 자취를 감추기 위해 노력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1초가 마치 한 시간 같았다. 범행을 저지르는 도둑의 기분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리고 보였다. 나에게 당장 탈옥하라고 손을 휘적거리는 유혹의 현관문이.

 

 숨을 꼴깍, 삼키고 양옆을 살폈다. 심지어 웃기게도 그가 혹시라도 있을까, 천장까지 쳐다보던 나는 기가 찬 웃음마저 흘렸다.

 

 이때의 나는 휴대폰에 그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326만원에 눈이 멀어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만이 뇌리에 작용하고 있었을 뿐.

 

 침묵이 스산하게 주변으로 불고 있을 때, 나는 소리를 감추며 움직였다.

 

 염치없게 그의 현관문 구석에 있는 슬리퍼까지 신으면서.

 

 떨리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문 앞으로 손을 뻗을 때였다.

 

 별안간.

 

 ”어딜.“

 

 ”......“

 

 “도망가시려고?”

 

 그의 말이 들려왔다.

 

 온 몸이 결박당한 것처럼 얼어붙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326만원짜리 니트 원피스를 실제로 구경해본 적이 있습니다.

 네. 구경만 해봤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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