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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23, 데이
작성일 : 17-12-11 18:05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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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릴 땐 무슨무슨데이가 좋았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는 당연히 좋았고,

 빨간 날이 아니더라도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오는 것이 좋았다.

 

 별 건 없었지만 데이가 좋았던 이유는

 온 나라가 데이 하나로 떠들썩해지고 붕뜨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나를 설레게 했기 때문이었다.

 

 또, 특별히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동성친구들끼리 기분내려고 서로 맛있는 걸 주고받고 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집에서 돌아오는 길 주머니를 가득 메운 초콜릿과 사탕이 있어서, 그 날만큼은 나쁜 생각이 조금 덜 났다.

 

 

 안타깝게도 데이가 기분 좋게 느껴졌던 것은 아무 생각없이 순수하게 서로를 좋아하던 초등학생 때까지였다.

 

 

 중학교에 올라간 후로는 뭔가 이것저것 복잡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때도 묘한 질서가 존재하긴 했지만 다행히 착한 친구들을 만난 탓인지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어떻게 13살에서 14살, 이 1년만에 이런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다.

 

 같은 학년, 같은 반 사이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뉘는 서열과 위계질서.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이상한 아이가 되고, 이상한 아이가되면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친구가 없는 아이는 외톨이가 되어야했고, 외톨이는 낙오자였다.

 

 학교는 보이지 않는 먹이사슬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그리고 불가촉천민까지.

 낙오자는 불가촉천민이었다.

 

 모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똑같이 생긴 자리에 앉아 같은 수업을 들었다.

 그러나 그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 사이에는 권력이 존재하고,

 학교라는 사회가 전부인 아이들은 그 권력에 복종했다.

 

 모두 낙오자가 되고싶지 않아 몸부림쳤다.

 

 중학교 때 나는 남들과 다른 가정에서 자랐다.

 집에 돌아가면 상냥한 부모님과 구수한 찌개 냄새 대신 대신 불 꺼진 부엌과 난장판이 된 거실과 마주해야했다.

 

 그리고 늦은 시간에 들려오는 끝없는 부모님의 말다툼, 몸싸움, 깨지는 소리, 부서지는 소리, 비명과 듣기 싫게 찢어지는 화증….

 

 아무리 평범한 척을 해도 우리 가정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다른 아이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말 없고 얌전한 아이에서 소극적인 아이로. 소극적인 아이에서 어두운 아이로. 어두운 아이에서 이상한아이로.

 

 이상한 아이는 발렌타인데이도, 화이트데이도, 할로윈데이도, 크리스마스도. 모두 즐겁지가 않았다.

 소소한 행복을 뺏긴 후 찾아오는 들뜬 공기는 불편하고 기분 나쁜 것이었다.

 

 나는 특별한 '데이'가 싫어졌다.

 

 

 

 

 

 

 '과자같은 거 좋아해?' 전송

 

 초콜릿 녹일 재료랑 참깨스틱 과자랑 데코용 초코 알갱이, 견과류….

 이미 재료도 부엌에 왕창 쌓아놓고 만들 준비를 마친 후 머리까지 질끈 묶었으면서 괜히 보내봤다.

 

 혹시 네가 빼빼로같은 걸 안 좋아할지도 몰라서 보낸 것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예고편이랄까?

 

 

 '응 좋아해. 엄청 좋아해.' 14:21 하태양

 

 

 그 흔한 이모티콘, 아니 느낌표조차 없었지만 네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기쁜 마음으로 쌓여있는 재료들 앞에 섰다.

 

 

 사실 어떻게 하는 지 잘 모르지만!

 이 재료들로 어떻게 맛 없는 과자가 나오겠어?

 어떻게든 된다! 될 것이다!

 

 나는 우선 초콜릿을 중탕하려고 냄비에 물을 받아 불 위에 올려놓았다.

 오목한 그릇에 초콜릿을 한 입 크기로 오독오독 부숴서 넣고….

 근데 양을 잘 모르겠네. 어쨌든 많으면 좋겠지? 재료 남기기가 애매해서 사 온 초콜릿을 다 부숴 넣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그릇에 담긴 초콜릿을 물 위에 돛단배처럼 띄워넣었다.

 냄비 뚜껑을 닫고 초콜릿이 녹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동안 참깨스틱을 개봉하고 임시접시를 준비시켰다.

 

 몇 분 후 냄비를 열자 초콜릿이 완전히 녹아 끈적이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 불을 껐다.

 

 참깨스틱과자를 임시접시에 일렬로 두고 중탕시킨 초콜릿을 들이부었다.

 

 잠깐만, 이게 아닌데….

 

 하나씩 참깨스틱을 초콜릿에 찍는 게 더 나았으려나?

 

 히히.. 이미 늦었어.

 

 

 어떻게든 예쁘게 모양을 살려보려고 별모양 데코초코, 하트모양 데코초코를 알록달록 하게 뿌려줬다.

 하지만 괴물같은 초콜릿 모양. 내가 만들었지만 내가 봐도 괴물같다.

 

 괜찮아! 맛만 좋으면 되지.

 

 화룡정점으로 아몬드와 땅콩이 섞인 견과류들을 뿌려준다.

 

 데코들이 좀 과한감이 있긴하지만..!

 다 내 정성!

 

 씹는 식감도 좋고 초콜릿과 견과류의 환상 콜라보로 달콤하고 고소할거야.

 

 

 그리고 하트가 그려진 귀여운 포장지에 잔뜩 담아서 분홍 끈으로 리본을 묶어 매듭짓는다.

 

 완벽해!

 

 

 

 '하태양 만나자!' 전송

 

 

 

 

 

 

 

 "오…."

 

 나의 빼빼로를 본 너의 첫 반응이었다.

 

 

 "어때?"

 

 "뭐랄까 이건…."

 

 나는 나름대로 너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나의 눈빛을 의식한 네가 하핫,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인워드엔젤 3집 앨범을 처음 사서 들었을 때의 기분이야."

 

 

 잔잔한 인디뮤직을 고집하던 인워드엔젤이 갑자기 3집에서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요란하고 상큼하려고 애쓴 음악을 내놓았다.

 

 

 "그야 이런 거 처음 해보니까…."

 

 나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거 만드려고 오전 일찍부터 재료사고 인터넷에 찾아보고..

 물론 인터넷에서 가르쳐준대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약간 시무룩한 나의 표정을 보고 너는 얄밉게 쿡쿡, 웃었다.

 

 

 "좋다고. 좋다는 뜻이야."

 

 "뭐야. 난 인워드엔젤 3집 앨범 제일 싫어한다고."

 

 "너의 새로운 모습을 봤어. 이런 거 좋아."

 

 "치…."

 

 

 너는 포장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아랫부분에 네임펜으로 작게 쓰여진 글씨를 드디어 눈치챘다.

 

 "뭐야 이건? 뭐라고 적힌 거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엔젤에게'

 

 

 너는 내가 적은 문구를 조용히 따라 읽었다.

 

 

 "이거…"

 

 "하태양 너 맨날 전공책에 이름 대신 저거 썼잖아. 그래서 나도 네 이름 대신 써봤어."

 

 "아니, 그것보다. 엔젤에게…."

 

 "네가 엔젤 아니야?"

 

 너는 갑자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너의 반응에 더 당혹스러워져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또 너는 혼자 어쩔 줄 몰라하더니 귀가 새빨개졌다.

 볼도 살짝 발그레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아니, 뭘 그렇게 놀라?"

 

 "나 이거 여기서 먹어봐도 돼?"

 

 너는 말을 돌리려는 건지 갑자기 허겁지겁 리본 매듭을 풀더니 빼빼로를 하나 꺼내 오독 씹었다.

 

 

 "맛있어. 못생겨도 맛있어."

 

 "그래 많이 먹어라 엔젤아. 기왕이면 못생겼다는 말은 빼고."

 

 나는 반은 놀리는 어투, 반은 기특하다는 어투를 섞었다.

 하태양은 분홍빛이 된 얼굴 뒤로 손을 올리더니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난 줄 어떻게 알았어?"

 

 "솔직히 처음엔 임혜성인 줄 알았어."

 

 너는 나의 대답에 작게 그렇구나, 웅얼거리며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왜냐면 그 때 나한테 그런 거 줄 사람이 임혜성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 뭐 특별한 사이여서가 아니라…. 뭐, 그때까지 제일 친한 남자였으니까."

 

 어쩐지 나는 너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엔젤에게'라고 적힌 게 이상한거야. 누군지 암시하는 암호같은데, 임혜성은 엔젤하고 관련된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 때 문득 니가 떠오른거야. 분명 그걸 받기 얼마 전에 인워드엔젤에 대해 이야기 했었잖아."

 

 "맞아."

 

 "너라고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막연히 너일거라고 늘 생각했어."

 

 "나한테 물어보면 됐잖아? 내가 준 거냐고."

 

 "물어봤다가 아니면 어떡해. 괜히 어색해질 수도 있고."

 

 "바보."

 

 너는 샐쭉한 표정으로 낮게 중얼거렸다.

 

 

 "괴물같이 못생긴 빼빼로라도 맛있게 먹어야 해. 네가 준 그 이상한 핸드크림 나도 열심히 발랐으니까."

 

 "내가 준 핸드크림이 이상했다고?"

 

 "흙냄새 같은 거 나던데?"

 

 "그거 삼나무향인데…."

 

 "어쨌든."

 

 

 나는 참깨스틱에 폭탄처럼 뿌려진 초콜릿과 범벅으로 박힌 아몬드 가루를 한 번 훑어본 후 너의 입에 밀어넣었다.

 너는 마지못해 웃으며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귀여웠다.

 

 그래, 너는 안 그래 보여도 꽤 귀여운 구석이 있다.

 

 

 예전에 아주 우연히 인워드엔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다.

 아마 과엠티였나? 아, 아니다. 그건 1학기였으니까. 아마 2학기 동기엠티였을 것이다.

 

 거기서 아주 우연히 인워드엔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아마 길게 얘기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며칠 후, 할로윈데이 때 누가 내 사물함에 귀여운 호박모양 핸드크림을 넣어놓은 것이었다.

 

 처음엔 임혜성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밑에 포스트잇으로 '엔젤에게'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임혜성 글씨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날 왜 엔젤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엔젤, 엔젤, 엔젤.

 

 다시 한 번 글씨를 쳐다봤다.

 

 의젓한 남자 어른의 향기를 풍기는 글씨체.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 글씨체.

 

 나는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런 걸 선물할 줄도 아는 녀석이네.

 

 

 

 

 

 "넌 여자 마음은 잘 몰라."

 

 "그래도 꽤 귀여운 모양을 고른다고 고른건데."

 

 "호박통에 든 삼나무 향이라니."

 

 "그렇게 별로였나…"

 

 놀리려고 한 말에 주눅드는 모습도 귀여웠다.

 

 

 "왜 그걸 고른거야?"

 

 너는 조금 주저하다가 내 눈치를 한 번 본 후 대답했다.

 

 

 "할로윈데이 한정판으로 나온 호박이 귀여웠는데, 딱히 나는 필요 없었고. 문득 니가 가을이라 건조하다고 그랬던 것도 생각나고. 그리고… 향도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 흙냄새가..?"

 

 "우리가 복숭아, 레몬 같은 달콤한 과일향에 익숙해서 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순 있지만 분명 특이한 매력이 있는 향이야."

 

 "음, 좀 그렇긴했어. 맡다보니 중독되더라고."

 

 "자연스럽고 특별한 향이야."

 

 

 너는 나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부드러운 표정이 나를 감동시켰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사람 감동시키고 있어.

 

 

 "2학기 동기엠티 때 내가 너한테 그런 인상을 받았었거든."

 

 

 솔직히 난 인워드엔젤 얘기한 거 빼곤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오래됐기도 하고 별 좋은 기억도 없고.

 

 

 "인워드엔젤 얘기한 거 밖에 더 있나…."

 

 "너 저번에 본 영화도 그 때 추천해줬어. 좋아하는 소설이랑 작가도 이야기 해 주고."

 

 "그랬나?"

 

 "그랬지. 전부 과일향 나는 취향은 아니었어."

 

 "인정."

 

 

 우리는 동시에 괴물 빼빼로로 시선이 돌아갔고, 곧바로 서로 눈이 마주쳤다.

 

 푸핫,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작가의 말
 

 극강의 한파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들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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