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민식이 뒤를 돈 순간, 휙, 팔을 휘두른 이시완이 민식의 목을 졸랐다. 아악, 비명이 샜다. 쿵, 등받이에 뒤통수 크게 박은 민식이 발을 버둥거리며 힘겨워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목을 조르고 있는 팔뚝을 손톱으로 찍고,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할퀴어 봐도, 이시완은 조금의 미동조차 보이질 않았다.
“컥, 이, 이, 거놔.”
이젠 정말 한계였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위로 울긋불긋한 핏줄이 괴기스러울 정도로 튀어나왔다. 민식은 어떻게든 이시완의 팔을 떼어내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조롱 섞인 이시완의 웃음소리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섬뜩하고, 잔인한 웃음소리 말이다.
“이렇게 죽이고 싶진 않았는데.”
이시완은 작게 중얼거리며, 아쉬워했다. 표정의 변화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무덤덤한 목소리 속에서 그의 진심이 엿보이는 듯했다. 팔뚝의 힘이 들어가자, 민식은 또 다시 등받이에 뒤통수를 크게 박았다. 하얗게 질린 민식의 손끝이 시퍼런 핏줄로 뒤덮인 흉기를 마구잡이로 할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이시완은 진심이었다. 평상시에 장난기 많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차갑게 식은 얼굴이 진심을 담고 있었다. 살점이 뜯겨나간 팔뚝이 아프지도 않은 건지, 이시완은 흘러내리는 피를 반대쪽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상처 부위에 퉤 하고 침을 뱉어냈다.
이시완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경찰차 안에서 형사인 민식의 목을 졸라 죽이는 것. 버둥거리는 몸짓이 점점 더 커질수록, 킬킬 거리는 웃음이 온 공간을 울렸다.
“아악!”
민식은 살기 위한 발악을 했다. 목 끝까지 차오른 숨에 금방이라도 눈알이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뱀처럼 목을 휘감은 팔뚝을 떼어내기 위해, 크게 발버둥을 치자, 차가 덜컹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아, 좀 가만히 있으라고!”
점점 힘에 붙이는지, 이시완은 벌게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쳤다. 아무리, 힘의 우위에 있다고 해도, 5년차 형사를 꺾기란 쉽지 않았다. 차는 크게 덜컹거렸다. 박 형사는 아직도 연락이 없었고, 밖을 지나다니는 차도, 그 흔한 사람도 없었다.
제길, 이래서 이쪽으로 오자고 한건가.
사실, 이시완은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민식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원래 같으면 범죄자의 부탁 따위는 개 무시를 하고 말았겠지만, 얼마 전 이시완이 부모 없이 자랐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한없이 약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내리게 된 결정이었다.
잠깐만 들렸다가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박형사는 괴로워했고, 이시완은 윗몸일으키기를 하거나,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민식의 혼을 쏙 빠지게 만들었다. 워낙 시골이라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런 걸 노리고 있었을 줄이야.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진 순간이었다.
팔뚝에서 뚝뚝 떨어진 피가 민식의 티셔츠와 바지를 적셨다. 뿌옇게 흐려지는 눈앞이 점점 더 시커멓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민식은 죽어라 발버둥을 치며, 어떻게든 이시완의 손길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사람이 죽을 때가되면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고 하더니, 그게 거짓은 아닌 듯했다. 숨통이 막힐수록 정신은 더 또렷해져가고 있었으니까.
‘아, 경적을 울리면 되잖아?’
순간, 머릿속으로 기가 막힌 생각이 하나 스쳐지나갔다. 이곳은 주유소였고, 사람의 발길이 드물긴 하지만, 주유소 안에 사람이 있을게 뻔했다. 아무리, 이시완이 미친놈이라고 해도, 사람이 있다면 쉽게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을게 확실했다. 원래 살인자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니까.
민식은 죽을 힘을 다해 팔을 뻗었다. 그리곤, 핸들 위로 손가락을 올린 후,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크게 경적을 울렸다. 빵빵, 꽤나 거센 소리에 차가 휘청거리고 주유소 안에서 티비를 보며 웃고 있던 알바생이 화들짝 놀라더니, 급히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이씨, 진짜.”
이시완은 탄성을 터트렸다. 경적을 울린 탓에 사람이 뛰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완벽하게 끝낼 수 있었는데, 희미해진 민식의 숨통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제길, 탄식이 샜다. 괜히 민식의 코를 꽉 쥐었다가 놓은 이시완이 결국 뒤로 물러서며,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아이, 아쉽네.”
알바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경찰차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이시완은 더 분주하게 움직이며, 피가 흐르는 팔뚝을 옷으로 감싸 쥐었다. 벌컥, 문이 열렸다. 이시완은 바닥에 퉤, 하고 침을 뱉어내더니, 급히 경찰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알바생은 당황하는가 싶더니, 멀어져가는 이시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이라도 잡아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민식은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어머, 괜찮으세요?”
민식은 이미 한계를 넘었으니까.
*
시간은 어느새 밤 12시를 향하고 있었다. 선경은 하루 종일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꾸역꾸역 야근을 이어가고 있었다. 온 정신이 딴 곳으로 팔려간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만한 게 얼마 전 시언이 그렇게 나간 이후로 좀처럼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건지, 수사팀 식구들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대답 뿐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워낙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다시 뿅, 하고 나타나는 시언이라는 걸 알지만, 이번엔 경우가 좀 심한듯했다. 오죽하면, 유연조차도 당장 시언을 찾으라며 난리를 칠 정도였으니까. 어디 간다면 좀 간다고 말이라도 해주고 가던가, 매번 핸드폰도 꺼놓는 탓에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 선경이 일에 집중을 못하는 건 어찌 보자면 당연한 일이었다. 선경은 아직까지도 시언을 좋아했고, 잊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눈앞에 시언의 얼굴이 아른거릴 때마다, 자꾸만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기 바빴다.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참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듯싶었다.
선경이 억지로 일을 끝마칠 때쯤이었다. 따르릉, 사무실 전화가 울리더니,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메시지가 핸드폰에 도착했다. 선경은 메시지를 잃는 것보다 급히 상혁의 자리로 달려가 전화를 받는 것을 택했다. 메시지도 궁금하긴 했지만, 자정이 넘은 이 시간에 전화가 오는 건 더욱 더 특이한 케이스였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밖으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선경은 흠칫 몸을 떨었고, 전화가 끊겼을 때 쯤엔 이미,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수사팀 사무실을 나간 뒤였다.
*
병실은 한산했다. 수사팀 멤버들 모두 아직 연락을 못 받은 건지, 커다란 병실에 있는 것이라곤 누워있는 민식과 지친 표정의 시언뿐이었다. 도대체 뭘 하다 온 건지 시언은 며칠 전 보았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잠이 든 민식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민식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불안한 탓이었다.
“형, 형사님!”
선경은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벌벌 떨리는 몸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며, 시언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금세 휘적 돌아오는 손길이 한없이 갈증나 보이기만 해, 선경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침대 밖으로 튀어나온 민식의 손을 붙잡았다.
“아아, 어떡해.”
차가웠다. 얼음장을 만지는 것처럼 차가운 손끝이 꽁꽁 얼어붙어있었다. 생사가 위험했다고 하더니, 그게 거짓은 아닌 듯 온 몸에 감겨있는 장비들이 꽤나 많았다. 선경은 민식의 손을 꽉 쥐었고, 시언은 그런 선경을 보며 후, 하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떡해요, 진짜.”
목 주변으로 붉게 이어진 흉터가 흉측했다. 아주 오랫동안 살기 위한 발악을 한건지, 손톱과 이가 다 부러져 원래의 형태를 찾아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선경은 입술을 꾹 깨물며, 민식의 손을 더욱 더 꽉 부여잡았다.
“야, 아픈 사람 깨우지 말고 나와.”
머지않아, 선경의 곁으로 다가온 시언이 잘게 떨리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마음 같아선 더 민식의 곁에 머물고 싶었지만,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선경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선경은 흡, 숨을 참았다. 금세 퍼뜩 들리는 얼굴엔 슬픔이 가득했다.
하여간, 마음만 여려가지고.
시언은 애처로운 시선을 피하며, 힘겹게 병실 밖으로 향했다. 괜히 마음이 좋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