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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광야에서
작가 : th쓰
작품등록일 : 2017.11.8

홀로 평원에 살아가던 사람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낯선 일행을 만나 시작되는 이야기.

 
1-17. 마녀의 평원
작성일 : 17-12-07 00:27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4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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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레시의 다리가 불편한 이유는 태반이 술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은 술이 아니다. 티레시는 십 년 전 한 차례 다리가 부러졌다. 뼈가 완전히 박살나, 변경의 소도시에서 의사를 죄다 끌어 모으는 정도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없는 돈까지 털어내서 신관을 고용했음에도 완치를 할 수는 없었다. 거금을 들여 데려왔던 신관은 딱 한 시간, 티레시의 다리에 신성력을 쓰더니 재활을 열심히 하면 간신히 걷기는 가능하리라는 진단을 내리고 사라져버렸다. 그는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만났던 신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산조각이 나 전부 잘라내야 썩지 않으리라는 진단을 받았던 다리를 걸음이 가능할 정도로 고쳐낸 것부터가 그 신관의 최선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보호자를 순식간에 잃은 어린아이였던 데다가 함께 여행하던 무리의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직후였다. 나는 기댈 곳과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티레시를 살려야 했고 용은 물론이고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다.

 

 나는 티레시를 치료하다 말고 사라져버린 신관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내가 본 신관은 두 명 다 카나르만의 신관이었던 탓에 그 뒤로도 나는 카나르만의 신관이라면 우선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도 않지만 그 후 내가 보아온 신관들 중 내가 좋아할만한, 내 편견을 바꿀만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본 세 번째 신관은 역시 티레시의 다리 때문에 고용한 사람이었다. 처음 다리가 산산조각 났을 때, 티레시는 완전히 정신을 놓았다. 자신의 맨다리가 다진 고깃덩어리처럼 으깨졌는데 그 누가 충격을 받지 않으랴. 사람들은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 끔찍한 광경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저씨가 죽고 난 뒤로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간신히 살덩어리만 추스른 티레시의 짓눌린 다리를 보고 이후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치료의 주술을 쓰기를 망설인 적이 없었다.

 

 의사들이 너덜너덜해진 살 조각을 그러모아 간신히 다리의 모양을 만들고 신관이 깨진 뼛조각을 붙였어도 티레시는 땅에 발을 딛기를 두려워했다. 다시는 걷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재활치료마저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재활치료를 해도 걷지 못한다면 생을 포기해버리리라 두려워했다. 티레시는 많은 마물사냥꾼들이 그러하듯 가족은커녕 외부에 연고조차 없는 사람이었고, 하반신 불구에서 간신히 벗어난다 해도 돌보아 줄 사람 하나 없었다. 신체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을 돌보라면 가족이라도 난색을 표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걷기라도 하기 위해 재활치료를 해야 할 환자는 술독에 빠져 시름시름 앓기만 했다.

 

 내게도 티레시를 챙길 의리는 없었다. 아저씨가 곁에 있었더라면 나는 티레시를 동정할 뿐 그의 곁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티레시는 내게 있어서 아저씨를 따라 나선 일거리에서 알게 된 용병일 뿐이었고, 티레시도 어린 나를 놀리거나 부려먹은 적은 있어도 돌보거나 귀여워한 적은 없었다. 보호자를 잃은 어린애는 스스로를 추스르기에도 급급했으나 불구자가 된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니, 내가 힘들었기 때문에 그래야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저씨가 남긴 돈, 유산의 반 이상을 티레시의 치료에 쏟아부었다.

 

 어디에서 났는지 아저씨가 숨겨두었던 귀금속과 황금을 모조리 팔았다. 티레시가 사용할 수 있는 보호대와 지팡이는 물론이고 난생 처음 보는 척추 교정기기를 샀고 집 안에 설치하는 수평대를 써야 해서 여관을 장기 대여했다. 정신을 못 차리는 티레시가 술을 찾지 않을 때까지 무작정 여관에 가두었다. 필사적으로 그의 다리를 돌려놓으려는 나를 사람들은 막지 못했다. 그 때 여관방을 싸게 빌려주었던 네모는 요즘도 종종 나를 집착이 강한 어린애처럼 대한다. 물론 사정을 모르는 아작스는 네모가 나를 어린애처럼 다루려 하면 소름끼쳐하고, 티레시를 짐 취급한다.

 

 네모의 여관을 장기 대여한 뒤, 나는 티레시에게 술을 한 방울도 주지 않고 그를 방에 가두었다. 그 방에는 나와 티레시 외의 사람이 들어오지 못했다. 나는 알콜중독자는 본 적이 있어도 알콜중독자를 치료하는 방법은 몰랐기에 그를 방에 가둔 채 상처를 닦고 약을 바르고 죽을 먹이기만 했다. 티레시는 계속 술만 찾았다. 아저씨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그 방에 들어가 울었다. 다리가 부서지고 용을 본 공포로 폐인이 되어있던 그를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렀다. 내가 울 때 만큼은 티레시도 술을 찾지 않았다.

 

 네모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중독자를 치료하는 신관의 소식을 알아봐준 사람도 네모였다. 네모가 수소문해온 신관은 아르마디아를 섬기는 신관이었고, 나는 망설이다 거금을 주고 그를 고용했다. 그는 신성력은 미약했지만 끈기가 있었다. 티레시가 난동을 부리면 무시했고 불안해하면 성서를 읽었다. 술을 찾으면 물이나 꿀을 넣은 차를 주었다. 중독자에게 맞는 약을 처방하거나 의료적 조치를 취하는 방법도 전부 그에게서 배웠다. 티레시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 그는 고용을 해지를 요구했다. 그는 내가 신관에게 가진 적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내게 친절하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주술을 쓰는 모습을 목격하자 곧바로 나와 관계를 끊고 싶어했다.

 

 어쨌거나 그 신관이 다녀간 이후 티레시는 재활치료를 할 수 있었고, 치료가 늦어진 만큼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이제 계단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다. 달리지도 못하고 칼을 휘두르지도 못하지만 앉은뱅이보다는 나았다.아작스가 도시에 자리를 잡고 나와 안면을 튼 후로는 아작스의 집에 티레시를 맡겼다. 네모의 여관방을 계속 헐값에 차지하고 있기도 미안했고 아작스는 마물사냥을 목적으로 집을 샀기 때문에 의사를 고용해 살게 했던 이유도 있었다. 티레시는 아작스의 집 한 켠의 방을 쓰며 매일 치료를 받고 마물사냥꾼들이 쓰는 공터에서 운동을 한다. 저녁에는 사람들 틈에 섞여 술을 마신다. 아침마다 일어나 공터에서 운동을 하고 맥주를 세 잔 이상 주문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나는 매달 아작스에게 그를 돌보는 명목으로 관리비를 준다. 아작스가 내가 마녀의 평원을 돌아다니다 죽으면 티레시를 어떻게 할지 물었을 때, 나는 내 알 바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십 년 전, 내가 없었다면 티레시는 술에 취한 채 죽었을 것이다. 불구가 된 마물사냥꾼들이 대개 그렇듯 술독에 빠진 채 골목을 전전하다 어느 날 아침 시체로 발견되었겠지. 그러나 내게 티레시가 없었으면 나는 살아갈 방향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아저씨가 남긴 돈을 티레시에게 쏟아 부었던 나는 돈을 벌 길이 필요했고, 마녀의 피와 주술이 뿌려져 사람이 다닐 수 없었던 평원에서 길잡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티레시를 돌보는 일에는 돈이 많이 필요했다. 어린 나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고자 했고, 처음에는 동정으로, 짐꾼으로 나를 고용하던 마물사냥꾼들은 점점 나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마물사냥꾼들은 내게 흐르는 마녀의 피를 몰랐지만 내가 마녀의 평원에서 길을 볼 줄 알고, 사령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알았다. 다친 사람에게 이종족의 주술을 사용해 응급처치를 할 수 있고 겁 많은 말들이 내 속삭임에 평원을 질주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마녀족은 마녀들이 학살당했던 마녀의 평원에서 살아가고자 결심했다.

 

 지금, 나는 마녀의 평원에서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길잡이가 되었다.

 

 *

 

 네모의 여관으로 돌아가자마자 아그나가 나를 반겼다.

 

 “왜 이렇게 늦었어!”

 

 신이 난 표정이었다. 아그나의 옆에는 어깨에 두른 힘을 이겨내지 못해 연신 흔들리며 술잔이 흔들릴까 조마조마해하는 그라프가 있었다. 잘 놀고들 있었군. 보아하니 내가 뭘 하고 왔는지는 상상도 못 하는 눈치 같다. 타박을 무시하고 방으로 돌아가 돈과 짐을 챙겼다. 내일 새벽 곧바로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짐을 싸 두고 다시 내려왔다. 나를 보고 네모가 다가와 슬쩍 물었다.

 

 “아작스네 다녀왔어?”

 

 네모의 표정에는 조심스러운 걱정이 가득했다. 이 남자는 결혼도 안 했으면서 나를 자식이나 동생 취급한다. 고개를 끄덕이자 내 등을 토닥이더니 시키지도 않은 감자 수프를 가져다준다. 저 나름대로 내 자존심을 배려한답시고 티레시의 이름은 끝까지 꺼내지 않는다. 수프를 들고 아그나가 앉은 테이블에 내려놓자 해가 지기도 전에 술판을 벌인 아그나가 나를 보고 웃었다.

 

 “뭐야, 애피타이저?”

 “내 거야.”

 “달라고 안 했거든. 너도 와서 고기나 먹어.”

 

 대꾸 없이 감자 수프를 먹었다. 아그나는 부탁도 안 했는데 접시에 양고기를 산처럼 쌓아 내 앞에 놓아주며 등을 두드렸다. 아프다. 나와 며칠간 같이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친근감을 드러내다니 함께 생사를 넘었다고 동료애라도 생겼나보다. 내일 아그나가 보일 표정이 궁금하다.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군.

 

 아그나는 내 앞에 술잔을 두더니 내가 관심을 두지 않자 금세 흥미를 잃고는 그라프에게 술을 퍼 먹였다. 그라프는 이미 얼굴은 물론이고 목과 귀도 벌겋게 달아오른 채 고개만 휙휙 저었다. 내가 쳐다보는 것을 알자, 그라프는 노골적으로 굳어버렸다. 어지간히 취했는지 감정을 숨기지도 못하는 채였다. 그것을 기민하게 눈치 챈 아그나가 그라프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어린 동생에게나 할 손짓이었다.

 

 “그라프! 레오스가 때렸어? 나한테 일러!”

 

 때리지도 않았거니와 이르면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모르겠군. 그라프는 어린애 취급에 정말 어린애라도 된 것 마냥 붕붕 머리를 젓더니, 손에 든 채 옆으로 빼던 맥주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그나는 깔깔대고 높은 소리로 웃으며 즐거워했다. 개판이다. 위층에서 이슈트반과 케틀린이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며 심각한 표정으로 케틀린에게 말을 걸던 이슈트반과 눈이 마주쳤다. 이슈트반은 반사적으로 웃더니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볼 일은 끝났나?”

 “그럭저럭요.”

 “새 일거리에 대한 볼일이었지?”

 

 이슈트반이 나를 마주하고 앉자 케틀린이 아그나의 반대편, 내 옆에 앉았다. 부담스럽다.

 

 “그렇죠.”

 “잘 풀린 모양이군. 일을 하기로 했나?”

 “당연하지요. 그 치들은 저 없이는 평원에 못 나갑니다.”

 

 코웃음을 쳤다. 아그나가 깔깔대고 웃었다.

 

 “오, 자신감 넘치는데? 우리 길잡이다워!”

 

 그리고 또 내 등을 팡팡 두드렸다. 아프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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