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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너무나 특별한 소녀
작가 : 최윤슬
작품등록일 : 2017.11.5

'이대로 아무런 일도 없이 삶이 끝날지도 몰라.'
만사가 무기력한 열여덟 수연에게 너무나 특별한 찬별이 다가온다.
그들의 친구 프랑소와까지, 세 사람의 너무나 특별한 성장담.

 
-18화- 신촌 데이트
작성일 : 17-12-06 16:42     조회 : 326     추천 : 0     분량 : 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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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신촌 데이트

 

  모처럼 부모님이 집을 비운 날 저녁, 수연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수민의 방으로 들어갔다. 크림색 옷장을 열자 재스민 꽃향기가 물큰 밀려나왔다. 수민의 별명은 재스민 공주였다.(‘차수민’의 발음이 ‘쟈스민’과 비슷하단 까닭으로) 때문에 수민은 쟈스민 꽃향기의 향수나 룸 스프레이를 즐겨 사용했다.

 

  ‘언니가 이건 절대 입으면 안 된다 했지만......’

 

  수연은 희고 둥근 카라가 달린 남색 원피스를 한참 만지작거렸다. 퍽 센 값을 주고 샀다는 원피스는 보는 순간 홀딱 반할 만큼 예뻤다.

 

  ‘도대체 무슨 수로 이걸 안 입고 참으란 거야?’

 

 

  원피스는 수연의 몸에 맞춤처럼 맞았다. 기분이 밝아진 수연은 얼굴에 비비크림을 살짝 바르고 저번에 찬별이 그래줬듯, 뷰러로 속눈썹을 집어 올렸다. 한결 눈이 또렷하고 예쁘게 보였다. 수민의 화장대에서 고른 핑크색 립글로즈를 바르고 쟈스민 향의 향수도 손목에 뿌렸다. 머리를 묶고 싶었지만 찬별과 같은 손재주는 없었기에 관두고 수민의 가느다란 머리띠를 하나 얹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수연은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예뻐진 자신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어보았다.

 

 

  봄바람 부는 신촌의 저녁거리가 약속 장소였다. 홍익문고 앞에서 만난 수연과 지욱은 말없이 신촌 기차역 쪽으로 걸었다. 걷다가 눈에 들어온 닭갈비집에서 밥을 먹었고 버블티를 테이크아웃 했다. 메가박스 앞 벤치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수연의 노력이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가면은 너무도 쉽게 벗겨져버렸다.

 

 

  “숙제라는 단어를 쓰는 대학생은 본 적 없거든.”

 

  아차 싶은 순간엔 이미 늦은 것이었다. ‘너 대학생 아니지.’라고 묻는 지욱의 낮은 목소리에 수연은 목구멍이 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설마...... 미자냐.”

 

  ‘미성년자’를 그렇게 줄여 말하는 지욱의 옆얼굴을 수연은 아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지욱의 얼굴엔 이렇다 할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뚱하게 입술을 내밀고 있는 옆얼굴.

 

  “뭐야, 나보다 어리잖아. 참 나.”

  “미안해.”

 

  고작 할 수 있는 말은 그런 것이었다. 수연이 고개를 푹 숙임과 동시에 지욱은 상체를 일으켰다. 순간 수연은 그가 일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컹했다. 아팠다. 하지만 지욱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 나야 상관없어.”

 

  그리고 지욱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박찬별도 미자?”

 

  수연은 무거운 죄책감을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욱은 ‘미자?’ 할 때와 같은 억양으로 ‘고딩?’ 하고 물었다. 수연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욱은 조금 웃었다. 아주 허탈하게.

 

  “재연형은 모르지?”

  “응.”

  “언제까지 숨길 거래?”

  “잘 모르겠어.”

 

  수연은 마음이 불안해졌다.

 

  “심재연한테 말할 거야? 찬별이 고딩이라고?”

 

  지욱은 불쾌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왜?”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만큼 할 일 없지 않아.”

 

  수연은 안심했다. 지욱이 조금 더 멋있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잘됐지, 뭐.”

 

  지욱은 다 마신 음료수 병을 손끝으로 톡톡 치며 조그맣게 말했다.

 

  “상관없었지만, 뭐.”

 

  지욱은 그렇게 애매모호한 말로 나름의 정리를 하더니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둘은 요즘 자주 듣는 음악에 대해,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에 대해, 어린 시절의 기억 몇 조각에 대해,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수연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서의 찬별에 대해서도.

 

 

  ‘너무 많은 얘길 해버린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수연은 마음이 불편했다. 역까지 데려다 준 지욱과 손을 흔들고 돌아설 때엔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는 무리한 다짐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찬별에게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다행히 떠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집은 비어있었다. 수연은 원피스를 얌전히 벗어 수민의 옷장에 걸어둔 후 씻지도 않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프랑소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동안 있었던 일을 두서없이 털어놓는 수연의 목소리를 프랑소와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프랑소와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말하지 않을 거라고 한 그 사람 말을 믿어봐.”

 

  수연은 안심이 되었다.

 

  “고마워요, 프랑.”

  “뭘.”

 

  마음이 안정된 수연은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다. 수연이 꿈나라를 헤매는 사이 지욱으로부터 카톡이 한 통 도착했다. 어찌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수연은 카톡 알림음을 듣지 못했다.

 

 

  [학업에 방해가 된다면 이 이상은 친해지지 않겠음.]

 

 

  수연과의 짧은 통화를 끝낸 후 프랑은 한숨을 폭 쉬었다. 최근 자신에게 어떤 소용돌이가 일고 있는지 전부 털어놓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수연이에게 내가 찬별이 만큼의 단짝이었다면.’

 

  프랑은 단짝친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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