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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무제
작가 : 시예랑
작품등록일 : 2017.11.19

가뜩이나 힘든 세상, 오지랖까지 넓어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고생하는 수호. 서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세상, 사람과 깊게 엮이는 것 자체가 질색인 재인. 완전 반대성향인 이 둘의 유쾌한 로맨스.

 
21화 - 엉망진창(1)
작성일 : 17-12-03 18:49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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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조그만 더 가까이에서 들어보면 알 것도 같았다. 살금살금 고양이마냥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계단을 밟았다. 맞다.. 이 목소리는 분명 김경복이야. 더 이상 올라가서 확인 할 것도 없었다. 다시 내려갈까...

 

 아니! 저 목소리를 들어보니 분명 윗집 싸가지한테 확실하게 차인 것 같은데 분명 그럼에도 매달리러 온 꼬락서니였다. 하! 자길 그렇게 찰 때는 언제고.. 꼴 좋다!! 이 꼴은 반드시 내 두 눈으로 봐야한다. 그래야 묵혔던 체증이 풀리지..

 

 수호는 다시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아르센 뤼팽도 울고 갈 정도로 신출괴몰한 움직임이었다고 생각한다. 깃털처럼 내려앉는 발걸음 속에서 이 비상구계단에 울리는 소리는 처절한 애원뿐이었다. 펜트하우스쪽 계단구조는 꼭대기 층이라 조금 독특하다. 계단 끝까지 올라가서 코너를 돌아야지 비로소 현관문이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코너 쪽에서 눈만 빼꼼 내밀어서 누군지만 확인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정상에 도착한 수호는 코너 쪽 벽에 딱 기대어 눈만 힐끔 내다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수같은 김경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수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크큭큭!! 꼴 좋다! 내 속이 시원하네.'

 

 순간 수호는 욕심이 하나 생겼다. 저 문을 붙잡고 애원하는 김경복의 모습을 주머니 속 핸드폰에 고이 저장해놓고 싶다는 생각. 며칠 두고두고 보면 쌓였던 한이 다 풀릴 것 같은데... 다행히 경복은 재인이 문 밖에 나오기를 바라는지라 이쪽에 사람이 있는지는 생각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찍자..! 하나정도는 남길 만 해. 그냥 동영상으로 찍을까? 아니다. 시간도 없는 상황에 낮선 기능보다는 주로 쓰는 카메라기능을 이용하는 게 낫겠지.. 찰칵 소리가 안 나게 무음으로 설정해놓고 김경복 쪽으로 몰래 렌즈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는데 순간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로 큰 소리가 비상구 전체를 울렸다.

 

 

 -찰칵!

 

 

 찰..칵? 찰칵이라고?! 말도 안 돼. 방금 무음 진동으로 설정했는데 왜 찰칵이야?!!! 무음설정은 벨소리랑 알림메세지만 한정인건가?! 스마트 폰에게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며 당황해하는데 이미 찰칵 소리를 들은 김경복이 코너 쪽으로 다가왔다.

 

 

 "누구.......너? 진...수호?!! 네가 왜 여기 있어?!!!"

 

 "아니... 난 그냥..."

 

 

 망할!!! 들켰어!!! 여기 산다고 하면 더 화낼 것 같은데.. 그냥 김경복이 이 아파트 올라가는 거 보고 따라왔다고 할까? 아니야.. 그건 너무 스토커 같잖아. 아... 사진을 찍은 시점부터 그냥 스토커 같겠구나. 게다가 한손에 들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자신의 몰골이 길가다 보고 따라온 모양새는 결코 아니었다. 그 말을 믿어줄 김경복도 아니었고... 후우...그냥 솔직하게 말하자.

 

 

 "나 여기 아랫집에 살아 지금."

 

 "뭐?!! 하.... 네가 미쳤구나... 너 설마 나한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너한테 복수하려고 여기 들어왔다는 생각할 거 아는데 나 그런 거에 쓸 돈도 없고 여기 아파트 비싸서 그럴 재주도 없어."

 

 ".......아랫집이라고? 좋아 거기서 얘기해 일단.."

 

 

 아... 그건 싫은데... 경복은 재인이 이런 말다툼 소리를 듣게 될까봐 자리를 피하고 싶은지 자꾸 현관문 쪽을 힐끔거렸고 수호는 떨떠름하지만 어쨌든 대화는 해야 할 것 같으니 장소를 제공하기로 했다. 집에 들어오자 뉴페이스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인에게 잠시 방에서 놀고 있으라고 말한 후, 턱짓으로 경복에게 들어오라고 사인을 했다.

 

 

 "정말 바로 아랫집이라고? 하... 말도 안돼..."

 

 "나도 이 기막힌 우연에 놀랐다. 여긴 우리 오빠가 5년 가까이 산 집이야. 그러니 계획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겠지."

 

 "설마 너 여기서 쭉 사는 건 아니지?"

 

 "물론 아니야. 오빠부부가 한 달 유럽여행을 가게 되어서 내가 조카를 맡을 수밖에 없었어. 몇 주 후면 내 원래 집으로 돌아가."

 

 "그건 다행이네..."

 

 

 안도의 한숨을 내 쉬던 경복이 순간 방금 사진 찍혔던 일이 기억났는지 다시 표정을 굳히고는 손을 내밀었다.

 

 

 "야. 그거 내놔."

 

 "뭘..?"

 

 "방금 찍은 거 있잖아. 스토커같이 몰래 나 찍은 거! 그거 내놔! 당장 삭제하게.."

 

 "...싫어! 적어도 3일 동안은 보려고 했던 사진이야. 너한테 쌓은 화를 이걸로 풀라고 했단 말이야. 3일 되면 내가 알아서 삭제 할 테니까 그냥 조용히 넘어가."

 

 "웃기지마! 네가 무슨 스토커야?! 왜 남의 사진을 몰래 찍어서 갖고 있는데? 좋은 말 할 때 내놔!"

 

 "싫다니까! 스토커처럼 남의 집 앞에서 애원하던 놈이 누구보고 스토커래?"

 

 "야 그건! 가는 길에 재인씨 차가 보이 길래 따라가다가 여기가 집이여서 우연히 방문한 거지 방문!"

 

 "얼어 죽을... 우연히 방문한 것치고 행적이 길다? 너야말로 스토커 같은 짓 했네! 남의 뒤 밟아서 집까지 쫒아오는 그런 스토커! 여기 현관 키 없으면 못 들어오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수상쩍거든 너?!! "

 

 "너 말 다했어?!! 야.. 웃기지 말고 사진 내놔! 내 놓으라고!!"

 

 "조카 방에서 들어. 조용히 해! 그리고 누가 웃겼다 그래? 진심으로 사진 내놓을 생각 없거든?! 얘가 내 마지막 자존심인데 그걸 왜 내놔 내가!"

 

 

 그 순간 화가 차오른 김경복한테 머리끄덩이를 붙잡혔다.

 

 

 "어쭈? 야.. 좋은 말 할 때 내려놔라?"

 

 "사진 삭제하면 내려 좋을 게."

 

 "하... 누군 손이 없는 줄 아나!"

 

 

 그러면서 김경복의 머리끄덩이를 수호도 따라서 잡았다. 평소에 보살급의 이해심으로 분노를 조절하던 수호이지만 머리끄덩이까지 잡힌 마당에 참으면 그건 정말 미련곰탱이일 것이다. 얼굴이 빨개진 채 경복의 머리끄덩이를 잡은 수호는 인정사정없이 흔들었다.

 

 

 "아악! 야 이거 못놔?"

 

 "안 놓을 거거든? 넌 남자새끼가 머리도 치렁치렁해서 잡을게 참 많다? 그러게 스포츠머리로 자르지 그랬냐. 그랬으면 내가 잡지도 못했을 텐데.."

 

 "아아... 아파! 내려놓으라고!! 야!! 난 그래도 너 여자라고 살살 잡았어!!"

 

 "웃기시네?!! 이게 여자라고 배려한 사람의 자세냐?! 남자가 먼저 여자 머리끄덩이 잡고서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넌 앞으로 어디 가서 레이디퍼스트라는 말 쓰지도 마! 그러게 왜 남의 집에서 행패냐고!"

 

 

 구커플의 찌질한 몸싸움이 잠시 이어졌다. 체급차이가 있었지만 수호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결국 동시에 손을 놓자고 약속을 한 뒤에야 머리끄덩이는 해방될 수 있었다.

 

 

 "하아... 그래. 사진은 그냥 3일 동안 너 보고 싶을 대로 실컷 보다가 알아서 지워."

 

 "...갑자기 왜 그러냐?"

 

 "네가 약속 안 지키는 애도 아니고.. 네가 이러는 거 나한테 쌓인 화가 안 풀려서 그런 거잖아. 풀리면 넌 뒤끝 없다는 거 아니까.."

 

 "......"

 

 "네 그런 성격은 참 마음에 들었었거든. 여자애들 뒤끝 긴 거 딱 질색이야. 넌 욱하긴 해도 크게 화내는 경우도 없었고 설령 화가 나도 넌 사과 한마디면 바로 푸는 성격이라 뭐랄까.. 깔끔해서 좋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네가 계속 이런 건 아마 내가 한 짓 때문이겠지.. 알아. 나도 나쁜 짓 한거..."

 

 "내 성격을 그렇게 잘 아는 놈이 그땐 왜 그랬냐?"

 

 

 약간 원망스럽다는 듯 쳐다보던 수호의 눈과 마주친 경복은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고는 천장을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땐... 눈에 베는 게 없었거든... 재인씨가 너무 좋은데 날 쳐다보지 않으니까.. 너랑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날 받아주지 않는 거라 생각했어. 그 순간 네가 짐이라고 생각했던거지.. 그래서 빨리 그 짐을 없애버리자 생각해서 너에게 그렇게 말했었던 거야.. 생각해보면 전부 내가 나쁜 놈인데..."

 

 "......"

 

 "난 원래 남자만 사귀던 놈이었어.. 여자도 처음에 몇 번 사귀었는데 남자를 사귀다보니 여자는 더 이상 안 되겠더라고.."

 

 "근데 왜 나랑 사귀었어? 그냥 실험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거야? 여자랑도 사귈 수 있는지?"

 

 "부모님의 압박이 있었어. 한국에 돌아와서 이제 결혼 해야 하지 않냐고 선을 자꾸 주선하길래 핑계가 필요했어.. 지금 사귀는 사람이 있으니 선은 볼 수 없다고 말이야.."

 

 "....."

 

 "그때 너를 만났는데 이상하게 편안한 거야.. 여자랑 사귈 때는 신경 쓸 것도 많고 예민해졌는데 그런 게 없었어. 그냥 친구들 만나는 것처럼 편하 길래 다시 여자도 사귈 수 있는 줄 알고 착각했어.. 근데 그저 편안한건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 그걸 깨닫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거지.."

 

 "그걸 깨닫게 된 계기가 윗집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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