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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폭군의 주인님
작가 : 정블루
작품등록일 : 2017.11.29

[걸크러쉬 여주] [마녀는 좀비의 비서?] [진짜 마녀 여주] [진짜 좀비 남주] [좀비가 마녀의 심장을 노려] [현대 배경 로맨스 판타지]

"나를 죽여줘" 콧대 높은 좀비가 나를 환멸 가득한 눈으로 노려다 보며 말했다.
"나를 당장 죽이지 않으면." "어쩔 건데?" 그의 아찔한 입가에 조소가 담겼다.
"너의 심장을 파먹어 줄게."

 
그 남자가 수상하다. [1]
작성일 : 17-12-01 20:12     조회 : 426     추천 : 0     분량 : 7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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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S사의 본관.

 

 주요 경영진들의 세미나실.

 

 은은한 레몬색 조명이 가로지르는 한 가운데에 남자가 서있었다. 불 꺼진 관객석과 상반되게 묘한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구조.

 

 “반갑습니다.”

 

 중저음의 묵직한 톤.

 

 184센티는 되는 큰 키에 까만 흙발.

 

 단정한 머리칼 아래로 흐르는 신비한 적색 빛의 눈동자가 깊고 그윽하게 빛났다.

 

 선한 눈매는 다소 날카로웠지만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뻗어있었고, 코는 서구적으로 높았다. 당장이라도 웃음을 나타낼 듯한 입가는 그의 인상이 얼마나 호의적으로 보이는 지 나타내주고 있었다.

 

 블랙 슈트는 구김하나 없이 남자의 탄탄한 체구를 아찔한 곡선으로 감싸주고 있었다. 갓 탄생한 듯한 조각 같은 느낌이 남자에게서 물씬 풍겨 나왔다.

 

 남자는 느릿하고, 또 정성스럽게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는 무언가를 찾는 듯 열심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곧, 자리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듯 눈꺼풀을 크게 끔뻑거리는 여자를 찾아낸 그의 입매가 다정한 웃음을 나타냈다.

 

 자신과 눈을 맞추자마자 시선을 황급하게 피하는 여자가 귀여워, 그의 입가가 더욱 미소를 진하게 담아냈다.

 

 청중들은 그의 웃음에 홀린 듯 넋 놓고 쳐다보기에 이르렀다.

 

 굳이 조명 따위가 아니고서도 그의 존재감은 빛과 어둠의 경계를 간단하게 뚫고 이곳을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남자를 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감탄사에 젖었다. 단상 위에 서있는 그의 외모가 너무도 독보적인 탓이었다.

 

 “와......굉장한 미남이네요.”

 

 “그렇지? 나도 보고 놀랐다니까.”

 

 수군거리는 소리가 장내를 채운다.

 

 헛기침을 한번 하자마자 종래에는 모든 공간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남자가 고개를 반듯하게 세웠다.

 

 “제 소개를 하죠.”

 

 그는 자신이 서있는 단상에서, 불과 30살도 되지 않는 나이로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인들과 유명인들 사이에서 시종일관 밝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냈다.

 

 “심리 카운슬러, 하도현이라고 합니다.”

 

 한쪽 입가에 은은한 웃음기를 머금은 그가 고개를 설핏 숙였다.

 

 곧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도현의 자신감은 이곳에 자리를 채운 320명의 유명인들이 걸치고 있는 값비싼 장신구와 보석보다도 단연 빛나고 있었다.

 

 얼굴을 들어 올린 그의 입가가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도현의 시선이 과녁을 겨냥하는 활시위처럼 팽팽해졌다. 한 여자를 보며.

 

 “오늘, 여러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마법을 보여드리죠.”

 

 한 여자만을 보며.

 

 *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의 정신의학과 세미나 강의에서였다.

 

 그때의 나는 오랫동안 방황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맥락 없는 갈대 같았다.

 

 나는 마녀였다.

 

 사람의 모든 신체부위, 즉 사소한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포함해 동물까지도 원료로 써 사악한 마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익히 알려진 악마의 하수인.

 

 나는 그런 존재였다.

 

 정확히는 마녀견습생의 삶을 포기한, 인간의 나이로 치자면 72살의 할머니였다.

 

 물론 마녀와 평범한 인간의 나이는 세월을 질적으로 달리했다. 마녀로서의 나는 인간으로 보자면 20대 중반의 꽃다운 청춘이었다.

 

 그것의 삶은 내가 전혀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소렌토 광장에 내던져진 4살의 소녀가 고작 조그만 막대사탕으로 인해 마녀가 되어야만 했던 기구한 운명은 스스로도 기가 차는 경험이었다.

 

 그 후로 삶의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사람들이 갈 수 없는 절벽 한쪽, 숲속의 이천년 동안이나 살아왔다고 알려진 거목의 떡갈나무 집에서는 매일 설명하기 힘든 악취가 진동했었다.

 

 그것의 대부분은 헤이즐의 실험에서 기인한 거였다.

 

 매일 사람의 백골이나 손톱, 닭의 생피와 산채로 물고기의 비늘을 뜯는 그녀의 거침없는 손길을 언제나 겁에 질린 채로 지켜봐야만 했었다.

 

 물론 자유는 찾아왔다. 그것도 60년이나 흐른 후에!

 

 헤이즐에게 긴 세월의 갈굼을 당한 끝에 급작스럽게 일어난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온전한 자유를 얻었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악독했던 그곳으로부터 탈출했다고 해서 나의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갔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인간들의 삶을 도무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나 또한 살가죽 속에 피를 이루는 인간이 맞았다. 다만 환경이 나와 그들의 경계를 분리해 놓았을 뿐.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식주와 생활의 전반적인 틀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의도치 않게 수없이 겉도는 인생이 되어야 했다.

 

 마녀로서 헤이즐에게 학대를 받고 살았던 지난날들은 우습게도 나의 본능 속에 강하게 뿌리 박혀 있었다. 그것은 내가 밀어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으로 치면 60년은 매우 긴 세월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마녀와 평범한 인간의 삶의 대한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정체성에 대한 무지는 곧 혼란과 모순 가득한 삶으로 이어졌다.

 

 또한 나의 정신을 좀먹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의 기반은 600살이 넘는 대마녀, 헤이즐에게서 나왔다.

 

 그녀가 죽은 뒤로 나는 기이한 환각과 환청의 시달림 속에서 살아야만 했었다. 아무래도 한밤중에 인간들의 눈을 피해 오랫동안 묘지를 파냈던 그녀에게 유령이라도 붙은 게 틀림없었다.

 

 또 그들의 존재가 헤이즐이 불이 흐르는 뜨거운 직화소에 경쾌하게 몸을 날리자마자 나에게 옮겨 붙기로 작정한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빌어먹을.

 

 그때부터 나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헛것이 보이는 환각은 내가 눈을 감고 있는 와중에도 진행이 되었으며 나를 살려내라고 아우성치는 날것의 외침은 도무지 내가 적응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숙면은 머나먼 사람들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랴.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그것은 나의 업보나 마찬가지였다. 거부할수록 더욱 강하게 조여드는 밀렵꾼의 덫처럼 나는 그것에 강제적으로 순응해야만 했다.

 

 결국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샌가 삶에 대한 의지마저 무너져갔다.

 

 살아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여러 나라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어쨌든 고통 속의 자유라 할지라도 응당 누려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일단 나는 마녀의 변장술에 능했다.

 

 쉽게 말하면 나라별 인간들의 특성에 맞춘 외모로 쉽게 탈바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용이한 능력이었다. 덕분에 별 의심을 받지 않고도 그 나라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작은 작명소를 차리고 근근하게 생활을 이어갔었고, 스페인에서는 그동안의 모은 자금을 이용해 이름 없는 화가들의 낡은 미술품들을 긁어모아 비싼 값에 되팔려고 하다 재고만 쌓이는 불운의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결국 그것들을 헐값에 넘기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그만 비즈니스호텔의 하우스키퍼로 지냈다. 의식주가 해결되었었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고작 최저 시급도 안 되는 5.25달러에 내 1년여를 소모했지만.

 

 건너고 건너서 온 것이 한국이라는 나라였다.

 

 꽤 살만한 나라라고 여겼다. 사람들의 몰골에서는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있었지만 그것은 열심히 사는 징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공중화장실에서 5분도 걸리지 않아 자연스럽게 변장술을 사용했다.

 

 머리는 단정하고 긴 검은 파마 머릿결로, 164센티의 키와 평범한 신체. 눈동자 속에 박힌 홍채는 바꿀 수 없었지만, 어쨌든 외모는 평범한 한국여자로 둔갑하는 데에 성공했다.

 

 약간의 찢어진 눈매와 나름 오똑한 코, 여자다운 하얀 피부와 뚜렷한 개성이 없는 도톰한 입술도 함께 말이다.

 

 거울에 비친 내 이미지는, 나를 포함한 남이 보기에도 꽤나 이성적으로 보였다. 뭐랄까, 무표정으로 있으면 냉소적으로까지 보인다고나 할까?

 

 그것은 나의 의지가 충실히 반영된 결과였다. 예뻐서 관심 받는 건 내게는 결단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도 나는 여러 호텔을 전전하다 결국 운이 좋게 경력직으로 대형 특급호텔에 입사하게 되었다.

 

 인간관계도 원만하게, 그들 사이에서 튀지 않기 위해 주의에 주의를 거듭하면서.

 

 물론 일하지 않고도 쉽게 돈을 벌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중에서도 하나가 마녀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곳에는 근본적으로 점집이라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관상을 본다거나 사주풀이의 대한 것들이 이것에 속했다.

 

 물론 나에게는 이것이 일도 아니었다. 마녀는 기본적으로 사소하게는 수십 개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점을 봐주겠다는 이유로 인간들의 돈을 날치기나 하는 유치찬란한 거짓 무당들이 우스울 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돈 따위는 쉽게 벌수 있었지만, 이미 나는 더 이상 마녀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은 나의 부모님을 위한 영령술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의 단서를 쥔 헤이즐의 마도서는 현재 내 손에 없다. 또라이 좀비에게 그것을 눈 뜨고 빼앗겼으니까!

 

 내 평생의 숙원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기도했다. 그 첫 번째가 망할 좀비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반드시 찾는다.”

 

 하도현이라는 남자는 그때쯤 만났다.

 

 마녀와 인간의 삶에서 8년 동안이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선로와 선로사이에서 이탈한 나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갔을 때 말이다.

 

 환각과 환청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나는 무언가 해결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최근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심리 카운슬러의 대가, 하도현이었다.

 

 그는 수면과 최면치료에 관한한 세계적 일인자로 불렸다.

 

 오죽했으면 업무에 치여 정신적인 병이 많은 현대인들, 특히 억만장자들이 그에게 최면치료를 받은 후로 그동안 앓아왔던 과거의 정신질환들이 거짓말처럼 싹 나은 후로 입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세계 유명인의 자서전에도 오르락내리락 거릴 정도가 되자 각종 미디어와 매스컴에서 그를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그러나 하도현은 철저하게 방송사와 벽을 쌓고 지냈다. 오히려 그것이 그의 명성을 부풀려주는 계기에 더욱 일조한 것임은 스스로조차 모르겠지만.

 

 그런 그가 세계 21개국의 강연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하였다. 단연코 반응은 폭발적이라고 하였다.

 

 결국 나는 무작정 그를 보기 위해 이름난 대기업의 세미나실로 직행했다. 아쉽게도 1층에서부터 험난한 난관에 부딪혔지만.

 

 “안 됩니다. 예약자가 아니시면 이 안에는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보안요원이 아니꼬운 듯이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안 될까요? 제가 하도현씨의 열렬한 팬이라서요.”

 

 몸을 베베 꼬며 눈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가당찮은 짓이라는 것을 스스로 직감했음에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간절했으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빌어먹을. 역시나 예상한 대로군.

 

 내 미인계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보안요원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스윽- 내 뒤를 밟는 거대한 정체불명의 인영이 뒤를 급습했을 때에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죠?”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그곳에 그 남자가 서있었다.

 

 장신의 키가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뒤를 가뒀을 때였다.

 

 “예약도 되지 않은 여자 분이 다짜고짜 하도현님의 강연에 쳐들어가겠다고 해서 막고 있었습니다.”

 

 보안요원이 허둥지둥 대답했다. 나는 그의 태도에서 어렴풋이 이 남자가 하도현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

 

 눈을 돌리자마자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게 ‘아, 이런 남자도 있구나.’라는 느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서있는 자체만으로도 맹렬하게 나의 시선을 긁는 단연 조각중의 조각이었다.

 

 “이 여자 분이요?”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보안요원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히 이행하듯이 그를 올려다보며 강직한 눈을 드러냈다.

 

 당연하게도 나는 단숨에 얼어붙은 채로 눈가를 굳히고 있었다. 곧 이렇게 벌거숭이가 된 기분으로 쫓겨나는구나, 싶었다.

 

 두 눈가를 지독하게 꾸욱 감았을 때였다.

 

 “이 여자는 내 특별 손님인데?”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오히려 보안요원이 그 말을 듣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어있었을 무렵.

 

 “눈 떠요.”

 

 꿀을 바른 듯한 중저음의 톤이 귓가를 간질이자마자 눈이 번쩍 떠졌다.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숙여 나와 정통으로 눈을 맞췄다.

 

 “......네?”

 

 “안 늦게 와서 다행이다.”

 

 하도현은 내게 옆집 오빠처럼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나를 보며.

 

 나만을 보며.

 

 *

 

 서울 강남구.

 

 D 심리클리닉.

 

 “요즘에는 좀 어때요?”

 

 이 남자의 눈은 정말이지.

 

 “약간 괜찮아졌어요.”

 

 희한한 마력을 가졌다.

 

 “흐음.”

 

 여운을 남기는 말꼬리에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련마저 감돌게끔 만들었다.

 

 그와 내가 앉은 테이블의 한 가운데에는 은은한 아로마 향초가 뻣뻣해진 긴장을 이완시켜주고 있었다.

 

 물끄러미 향초를 응시하는 나를 보던 하도현이 탁자 위에 두 팔을 올려놓고 깍지를 낀 채로 설핏 웃었다.

 

 “솔직히 말해 봐요. 괜찮지 않죠?”

 

 “아.”

 

 순식간에 눈꺼풀이 뜨끈해졌다. 떨리는 눈동자까지 부정할 수는 없나 보다. 그것이 하도현에게 보란 듯이 들킨 것을 보면 말이다.

 

 “맞아요.”

 

 입가가 잘게 부서지며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다. 아마도 눈치 백단인 그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억지로 괜찮은 척 할 이유는 없어요. 인간은 감정을 제어하는 데에만 노력을 쏟지, 감정을 치유하는 일에는 인색하거든요. 이미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치명적인 중병이 되어 있을 뿐이죠.”

 

 “그것도 맞아요.”

 

 어설프게 내짓는 동의에 하도현이 눈을 접어 웃었다. 마치 뭔가를 꿰뚫어보는 듯한 미소였다.

 

 이곳에 올 때마다 그에게 모든 감정의 상태를 낱낱이 밝혀져 발가벗겨진 기분이 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하도현은 이 분야의 독보적인 심리 카운슬러였으니까.

 

 또한 이곳은 내발로 자처해서 온 곳이었다. 이것은 유명인이었던 그와 아주 사소한 인연이 촉매제가 된 탓이기도 했다.

 

 각종 자산가들이 거금을 지불하고도 하도현에게 심리 카운슬링을 받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일은 더 이상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만큼 사람의 정신적인 치료에 탁월한 인물이었다.

 

 나는 억만금을 지불해도 오랜 기간을 인내해야만 하는 하도현의 클리닉에서 공짜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웃기게도 내가 아닌, 그의 요청에 의해서.

 

 “10분간 쉬고 간단한 수면치료로 넘어갈게요. 김비서가 신경안정에 좋은 차를 가져다 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짧게 고개를 숙이자,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반듯하게 일어나 문을 열고 사라졌다. 멍하니 그가 나간 발자취를 눈으로 쓸었다.

 

 “아무리 봐도 희한해.”

 

 혼잣말이 입가를 타고 흩어졌다.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하도현의 클리닉에 온 것도 벌써 2년이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는 단순히 직업의 의식을 넘어 심리 카운슬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우월한 신체조건과 외모를 자랑하기에 앞서, 기이하고도 독특한 재주를 가졌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신비한 적색 빛의 눈.

 

 깊숙이 감춘 거짓을 비웃기라도 하듯 절대적인 사실을 꿰뚫어 보는 듯한 의미심장한 눈빛.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마음까지 정화시켜주는 청초한 향기.

 

 자연스럽게 눈꺼풀을 접어 웃는 그만의 중독성 있는 매혹적인 웃음.

 

 퀘퀘한 나와는 다르게 생명력이 가득한 오라.

 

 그 모든 것이 하도현에게서 느껴졌다.

 

 물론 그 자체에 낯선 느낌이 강하게 작용한다기보다는 그만의 돋보이는 매력에 더욱 가까울 터였다. 적어도 일반인이 느끼기에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단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정확히 인간이기 이전에 나는 마녀의 삶을 살아온 다소 특이한 이력이 있었다.

 

 제일 중요한 점은 이것이었다.

 

 내가 보고 겪는 환각과 환청이 그를 만나고부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절대적인 이슈라는 것까지도.

 

 “도대체 뭐지?”

 

 나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내가 느끼는 평범한 인간과는 분명 다른 이상학적 존재일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

 

 또, 그것이 하도현일 것이라는 것.

 
작가의 말
 

 도현아, 순간 대처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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