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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에필로그: 4개월 후
작성일 : 17-12-01 14:29     조회 : 369     추천 : 0     분량 : 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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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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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하늘은 아스라이 반짝이고, 퇴근 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 가기 위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진명의 두 뺨과 짧고 단정한 머리카락, 검은 정장 마의의 카라와 풀어헤친 옷깃 사이로 휘날리는 남색 넥타이를 가을의 보이지 않지만 시원한 발자국을 남기며 누구보다도 멀리 가는 전도사가 어루만지고 있었다.

 

 진명이 돌아갈 집에는 2개월 전 결국 결혼하여 진명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된 혜연이 틈틈히 불 켜 놓고 심리학 공부를 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가 돌아오면 혜연은 재빨리 되는 대로 밥과 된장국, 그리고 김치로 조촐한 저녁식사상을 차릴 것이었다. 서울에서 부산을 찍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결국 인천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의 런던과 탈린까지 발품을 팔아 모은 자료들을 발판 삼아 진명이 고 유재하의 첫사랑 세 명에 대해 쓴 기사는 결국 흔한 말로 ‘대박’을 쳤고, 몇 달 전 진명이 호언장담하며 편집부의 문을 나설 때 팔짱을 끼고 혼자 볼멘소리로 투덜대며 주머니 속에서 담배곽을 꺼내 회사 건물 구석에 있는 흡연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던 편집장은, 이젠 진명의 승진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진명에게 효은은 헤어지고 나서 몇 주 동안은 텔레비전에서만은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스타와도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사직구장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찍힌 건지, 아니면 진명을 의식한 것인지 쪽지에 쓴 대로 효은은 꽤 자주 야구 중계 화면에 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진명은 애써 자연스럽게 얼굴 봤다며 먼저 카카오톡을 걸고, 효은이 학교에서 막 돌아온 어린 자식처럼 오늘 롯데 자이언츠는 야구를 어떻게 했다, 그동안 본인은 친구들(사실 친구이건 직장 동료이건 같이 경기를 보러 갔던 누구든 상관 없었다.)과 무엇을 먹고 어떤 부분에서 즐거웠으며 어떤 부분에서 짜증이 났는지를 시시콜콜 털어 놓는 식으로 수다가 이어졌다. 그렇게 카카오톡을 하는 동안, 진명은 효은과 같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던 그 나날들이 어제 벌어진 일, 아니 이 순간에 당장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려졌다. 효은이 바로 자신 옆에서, 옆구리를 찌르며 멍하니 있으면 ‘문디 자슥아’라고 장난스럽게 말을 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진명이 혜연과의 결혼 준비를 하고 업무가 점차 바빠지면서, 효은과 연락을 하는 주기가 매일에서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 ‘어쩌다 한 번’이라는 기약할 수 없는 말과 함께 급하게 마무리지어야 했던 대화들에 묻혀 서서히 줄어들어만 갔다. 그것은 일상에 복귀하면서 여전히 자그마한 회사에 열심히 다니면서 멀티태스킹의 진수를 보여 주고, 밤이 되면 골수팬으로서 어디서든 롯데 자이언츠를 열심히 응원하는 삶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친구의 선약으로 인해 혼자 경기를 보는 처지가 된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다른 롯데팬, 그러니까 그녀가 선약이 있었던 그 친구에게 다음 날 보낸 카카오톡에 의하면 ‘자신과 똑같이 손아섭 선수 유니폼의 복제품을 입고 있었고 3초 동안 슬쩍 보면 배우 류수영을 닮았으며, 8회 말 주황 봉지를 자신에게 선뜻 내미는 손이 유달리 다부졌던’ 사람이 알고 보니 같은 회사의 마케팅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 만나는 주기가 잦아졌던 효은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 때문에 진명과 혜연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실제로 축하해 주기 위해서 그 현장에 가서 진명, 그리고 냔생 처음 보는 신부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할 때 효은은 마음이 별로 쓰이지 않았다.

 

 이제 진명에게는 효은의 그 이름, 바닷물처럼 짭짤하고 갈매기의 날갯짓마냥 높다란 그녀의 이름마저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 갈 참이었고, 그건 효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걸어 가던 진명은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려 퍼지자, 그 주머니를 뒤적여 보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불쑥 꺼내며 전화를 받았다.

 

 “ ‘월간의 멜로디’ 팝/가요 부문 담당 서진명입니다.”

 

 “짜식, 관동성명 댈 것까지야. 나 성준이 형이야, ‘띨띨이’ 계성준!”

 

 자신을 ‘계성준’이라고 소개한 사람의 호탕한 기질이 다분한 그 대꾸를 듣자마자, 성준과 굉장히 친한 사이였나 본지 진명의 입에서는 몇 번씩 너털웃음 후에 아까 전의 경지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이런 친근한 대꾸가 나오고 있었다.

 

 “아, 형이었구나. 미안 미안, 직업병이라 그래.”

 

 “야, 그건 그렇고 색시와는 잘 지내고 있냐? 너 결혼했다면서. 식에는 못 가서 미안하다, 알다시피 이 형이 좀 바빠서 말이야.”

 

 진화기 너머 성준이 그 말을 내뱉고 나자, 진명이 그 말에 멎쩍은 웃음만 다시 몇 번 털어 놓고 나는 소리를 들었는지, 다시 크고 괄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오올, 우리 진명이 많이 컸는데? 모란시장 건어물집 아들이 지 이름으로 좋은 기사 한 번 쫙 내고, 이쁜 여자하고도 장가 쫙 가고, 아주 많이 출세했구만 그래! …그나저나 자식은 언제 보는 거야? 너랑 제수씨 유전자면 이야, 장군감이겠네 장군감. 미리 사인 한 장이나 받아 둬야겠어, 그렇지?”

 

 마지막에 약간 능글맞은 목소리로 하는 성준의 대략난감한 질문에 진명은 얼굴이 화끈거려지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하, 하는 외마디 웃음을 한 번 내뱉고서는, 태연하면서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조만간. 만약 아들이 태어나면 한수라고 지을 생각이야. ‘신의 한 수’에서 그 ‘한 수’를 따서 서한수. 아, 요즘은 국제화 시대니까 영어 이름도 지어 줄 거야. 매튜라고 말이야. 서한수, 매튜 서. 나름 괜찮은 조합이지 않아?”

 

 “참 너다운 발상이다. 그럼 딸 낳으면 어떡할 건데? 예쁜 애가 나올 텐데 거기에 걸맞는 이름이 있어야 되지 않겠어?”

 

 “아, 딸? 만약 딸이 태어나면…”

 

 그렇게 계속 대꾸하던 진명은 성준에게서부터 딸 이름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위를 올려다 보고 밤하늘을 살펴 보았다. 밤하늘은 여전히 쓰라리게 아름다웠다. 김천 운수 민박 위를 덮고, 번쩍거리는 마천루로 뒤덮인 강남의 창공을 감싸며, 심지어 런던 노팅힐의 주택들 위의 옥상을 굽어 살피던 그 밤하늘과 같은 하늘이었지만, 진명은 왠지 오랜만에 작고 하얀 반점마냥 드문드문 보이는 별들에서 효은의 맑고 아름다웠던 눈망울, 부산역 앞 주차장 앞을 가르는 바람에 휘날렸던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얄상한 입술이 자아내는 미소가 떠올려졌다. 텅 빈 밤하늘에는 어린 시절 전축을 꽂고 들었던 레코드 판의 노래, 유재하의 음악이 하늘 저 너머의 세계에서 들려 오는 것만 같았고, 그 음악과 동시에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던 여덟 살짜리 한수, 매튜이자 이준형이었던 금발머리 소년, 이제 충주에서 방과후 선생 일을 하는 대학 동창 미란, 차이나타운 카페의 비연, 노팅힐 하숙집의 로즈, 그리고 이 순간에도 한산한 탈린 거리를 강원도 아리랑으로 채울 백발의 노파를 비롯해 진명이 만났던 인연들, 그리고 특히 세 여자들, 김은성 선생, 엘르 킴이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김말숙 여사, 김애란 씨가 새까만 스크린 위로 떠오르는 슬라이드 쇼나 영화처럼 그의 머리 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지막하고 작은 한숨을 내 쉬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 아이 이름은 효은이라고 지을 생각이야. 빛날 효, 은혜 은. 그래서…서효은.”

 

 진명은 마지막 ‘서효은’이라는 단어를 내뱉고는, 어딘지 모르게 아련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가지고 계속 눈 앞에 있는 지하철 역으로 들어서려다가 발걸음을 멈춰 서서는 뒤를 돌아 보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핸드폰을 들여다 보거나, 불 꺼질 줄 모르는 노점에서 물건을 팔거나,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면서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 뒤에 배경을 깔아 주듯 노랗고 풍성한 잎들을 뽐내고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가로등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하철 역 앞의 번잡한 거리마저도 어김없이 스쳐 지나가는 가을의 전도사의 발길에 채인 은행잎 몇 개가 노란 비처럼 나무 밑으로 떨궈지고 있었고, 이는 진명에게 몇 달 전 은성의 사진에서 본 검고 긴 생머리에 흰 블라우스, 물 찬 듯 푸른 미디스커트를 입은 여자와, 우수에 찬 눈빛의 흰 셔츠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그 밑을 그늘 삼아 앉아 있었던 그 장면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그것은 그 음악가에 관한, 그 ‘기나긴 여행’에 대한 진명의 마지막 비망록이었다.

 

 그러나, 그 비망록은 결코 끝나거나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텅 빈 오늘밤, 나는 거울 앞에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위에 지난 날 우리들의 사랑을 떠올린다. 그대는 한 때 가리워진 길에서 우울한 편지를 내밀며 이별을 말했지만, 나는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 내 품에 조용히 간직한다.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미뉴에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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