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바쁜 요즈음,
칼도 칼 자신을 잘 모르는 이 시점에서
남들의 생각에 맞추어 정치하기 보다는
‘나’ 스스로를 알아가야 할 노력들이
유난히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오늘이었다.
이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날보다
인간을 사랑하고 싶은 날이 더 많다.
내면 속의 또 다른 칼은,
칼에게 인생이 되어주었고
칼의 인생은 그렇게 물들어갔기에...
칼은 때마침 자신의 고독 짙은 눈동자 속에
유난히 반가운 ‘콜롬버스’를 비추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콜롬버스.”
“칼님, 무슨 일로 저를 불러주신 겁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맡길 부탁이 있는데,
우두커니 앉아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콜롬버스 너구나.“
이때, 콜롬버스는 칼의 한마디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내가 되었다.
“예! 제게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나는 짧지 않은 시간을 통해,
내가 찾는 인간을 눈에 넣게 되었다.
허나, 내가 계집인간의 꽁무니를 쫓아다닌다면
그림이 이상하잖아.“
“옳은 말씀이십니다.
제가 어떤 인간여자를 찾아내면 되는 겁니까?“
“인간은 우리와 다르게 태양의 민족의 번식 방법을 사용하지.
각각 다른 염색체를 가진 수놈이 암놈에게 무언가 배설을 해야만
생명의 불꽃이 발현된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칼님.”
“하지만, 그런 방식을 통하지 않고
아이를 잉태한 계집이 있다면,
너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태양의 민족이나 우리종족이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아니지, 콜롬버스.
지금 나는 너의 시점이 아닌
인간의 시점을 묻고 있는 거야.“
“인간의 시점이라면...
아마 기적처럼 허황된 사실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 하지만 이 세계관엔 언제나 예외가 있다.
태양의 민족의 예외는 우리 아이젠일 테고,
그 예외에 속하는 계집을 찾아오는 게 네 임무겠지.“
“그 어떤 인간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들,
그것들이 모두 무의미할 정도의 처녀를 찾으시는 거군요.“
콜롬버스는 칼의 또 다시 칼의 입이 열리기 전에,
도입부가 찢긴 악보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같이 바로 시행했다.
아무것도 없이 꽉 막힌 천장을 바라보며,
칼은 뜻 모를 소리를 토해냈다.
“무엇이 진정한 ‘나’의 모습인지,
나조차도 잘 판단이 안서는 요즘,
내가 인간을 사랑하며
내가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나를 더 주의하고 살아왔을 것을.“
미래가 초조하기만 한 칼,
최악을 이미 경험한 것 마냥
스스로 무너지는 생각을 반복했다.
절망은 다가오지 않았지만,
칼의 걱정은 사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철새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앞서 나아갔다.
바다가 비에 젖지 않듯,
칼의 걱정 또한 마찬가지이길 바랐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에,
칼은 걱정을 멈추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으니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빚처럼 쌓인 걱정을 치우느라,
지도자의 일을 행하느라.
그렇게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
칼이 받아들여야 할 미래들은 얼마나 어여쁠까.
마음이 약해진 게 느껴지는
요즘의 칼은, 자신의 신념이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쓸쓸한 외로움에 기대어
오늘과 내일 사이에 서툰 걱정을 남겨두었다.
‘슬픔을 외면하고 싶다’,
‘무기력함을 벗어나고 싶다...’
라는 그 갈증.
거슬리는 것이 마음 가득해도
그것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 것들에 연연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면, 스스로가 비참하고 나약해 보여서.
뭐든 겪기 전에는 모른다.
지금 칼의 상처는 피해갈 수는 없지만,
그 상처로 단단해질 수는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힘들 일이 내게 가득하지만
그것을 또 슬퍼할 수도 없는 새벽,
힘들 자격도 없는 듯한 자신과
괜찮아질 여유도 없을 내일에...
알면서도 지푸라기를 쥐어보는 농부처럼,
예수라는 과정을 조물주처럼 주물주물 거리고 있다.
이 과정은 칼 자신이 내린 최고의 선택임을 알았고,
더 좋은 선택지가 당장 없다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칼이 슬퍼하는 까닭은,
인간에게 고난을 쥐어준 아이젠 종족의 신분으로
같이 고통스러워 할 자격이 없어서, 단지 그뿐일 것이다.
칼의 마음속에 죄책감이란
마치 의무처럼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갔다.
어쩌면, 정말로 의무감일지도 모르는 그 감정은
‘적당히‘를 몰랐기에 아픈 것들이 너무 많은 짐 같은 것이다.
자신은 아이젠 종족이기에,
인간의 입장에서 과연 이 ‘예수’라는 존재가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 확실히 장담할 수가 없기에
의무적인 죄책감을 가져보는 것.
그건 바로, 지도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압박감과 초조함이었을 것이다.
신발이 없다고 울적해하는 소년이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래도 난 행복하구나.’ 바로 그런 맥락의 감정.
뒤늦게 생각해보아도
‘그래도 이건 최선의 방법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최선인 것이기에.
내딛을 뒤가 바로 낭떠러지뿐인 칼은
죄책감을 정확히 반만큼 가지며,
앞으로 나아가 보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갇혀,
죄인처럼 묵묵한 칼의 오랜 정적 끝에
불친절한 유럽 사람처럼 투박한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똑 - 똑 -
“들어와.”
이어서, 콜롬버스가 칼에게 알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