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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47.무릎과 무릎 사이에
작성일 : 17-11-29 20:32     조회 : 629     추천 : 0     분량 : 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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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제이의 눈빛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제이가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

 

 제이는 언제나 철수의 앞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긴장하고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게 하려고 노력해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면 어깨가 딱딱하게 굳는 제이를 보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제이가 나를 무서워하는 걸까.

 태오와 달리 자신의 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고 거울 앞에서 미소 짓는 연습까지 했었다.

 

 제이가 자신에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이제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자신의 앞에서 긴장하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말로 제이가 나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일까.

 

 철수는 그녀에게 고백하는 것을 미루더라도, 그녀가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철수는 진심으로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제이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철수는 진심으로 그녀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경계심이 가득했던 제이의 눈동자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건 보람찬 일이었다.

 

  '제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뜨거워졌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인 걸까.'

 

 팔짱을 낀 철수는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시내 야경을 주시하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철수가 운동복 상의를 풀어헤치고 제이의 앞에 선 것은 결코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다.

 

 운동을 마치고 바로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한 철수는 자신이 갈아입을 옷을 깜빡 잊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대충 하의에 수건을 걸친 채로 밖으로 나갈까 했지만, 밖에는 제이가 있었다.

 

  ㅡ 철수 씨, 제발 부탁인데 집에서 옷 좀 제대로 입으셨으면 좋겠어요. 철수 씨가 옷을 제대로 안 입고 나오시면 민망하고 당황스럽단 말이에요.

 

 제이의 부탁대로 집안에서는 절대 옷을 벗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집안에서 자유롭게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었던 철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이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철수는 목욕을 하고 밖에 나갈 때는 옷을 제대로 갇춰입고 나갔다.

 

 수증기가 가득 차 있는 화장실에서 땀에 절어 있는 운동복을 다시 입는 것은 불쾌하고 찝찝한 일이었다.

 

 급한 대로 속옷 없이 하의를 입고 운동복 상의를 위에 걸친 철수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ㅡ 제이,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요?

 

 항상 점심 때가 되서야 일어나는 제이가 자신 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 모습은 조금 생소한 장면이었다.

 

 혹시 스토커 사건 때문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철수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제이는 자신의 질문도 듣지 못한 채 자신의 복근에서 시선을 고정시켰다.

 

 젓가락으로 밥을 먹고 있던 제이는 입으로 젓가락을 물고 홀린듯 자신의 복근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그녀의 시선에 철수는 혹시 자신이 착각한 건가 싶어서 직접 물었다.

 

  ㅡ 제이, 뭘 보는 겁니까?

 

  ㅡ 네?! 아, 아니요. 자,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철수의 질문에 제이는 밥이 반 이상 남은 밥그릇을 급하게 싱크대에 집어넣었다.

 

 항상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던 제이는 철수가 어딜 보냐고 묻자 식사를 멈추었다.

 

 철수는 제이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 건지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 캣타워에서 자는 노랑이와 노는 척을 했다.

 

 철수는 다시 한번 자신의 복근을 뚫어지게 보는 제이의 모습이 유리창에 비추었다.

 

  "분명히 내 복근을 보고 있었어."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철수의 입꼬리기 씨익 위로 올라갔다.

 

 이것은 분명히 철수에게 좋은 신호임이 틀림없었다.

 

 철수는 그날 제이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고있었지만 차마 대놓고 물어보지 못했다.

 

  '제이, 지금 내 복근을 보고 있는 겁니까?'

 

 만약 철수가 제이에게 이렇게 물었다면 그녀는 민망해하며 당장 이 집에서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벙찐 제이의 표정을 떠올리면서 웃음을 흘리던 철수는 문득 이것이 자신의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는 그저 노랑이와 자신이 놀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걸 지도 모른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철수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제이의 반응이 어떤지 한 번 더 알아볼자!'

 

 

 *

 

 

 생각해보니 자신을 대하는 제이의 태도가 달라진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쨍쨍했던 하늘에서 비가 내렸을 때 철수는 그냥 무작정 공원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공원에 가면 제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우연히 공원에서 그녀를 발견한 철수의 입꼬리는 더이상 올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갔었다.

 

 우산을 쓰고 있는 제이는 청순함 그 자체라서 철수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철수는 그녀를 부르지 않고 가만히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멀리서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철수의 눈동자에는 오로지 그녀만이 담겼다.

 

 바람에 흩날리는 결 좋은 머릿결,

 

 맑고 투명한 눈동자,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

 

 자신의 눈동자에 오로지 그녀만을 담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기분좋은 일이었다.

 

  ㅡ 이러고 걸어요. 이러고 걸으면 더 좋잖아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간 철수는 덥석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당황한 그녀가 자신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철수는 힘을 줘서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한편으로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공원을 걷고 있는데 제이가 자신의 손을 곽 움켜쥐면서 말했다.

 

  ㅡ 이렇게 걷는 것도 좋은 것 같네요.

 

 그때 자신을 보면서 웃는 제이의 표정이 아직 철수의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녀와 함께 공원을 거닐던 것을 떠올리자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그래, 한번 확인해보자.'

 

 철수는 다부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실로 나가니 제이가 유리창 앞에서 모습을 비춰보며 마술 연습에 한창이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제이를 바라보고 있던 철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술 연습하는 겁니까?"

 

  "네? ……네. 갑자기 나오셨네요. 혹시 제가 방해했나요?"

 

 제이가 조심스럽게 묻자 철수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제이가 커다란 눈동자로 자신을 빤히 바라봤다.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제이가 자신의 복근에 관심이 있는지 확인하러 나왔다고 얘기할 순 없잖아.

 

 철수는 입안이 바싹 마르는 듯했다.

 

  "……그, 그 마술이요. 어떻게 하는 겁니까? 되게 신기하군요."

 

  "손수건에서 장미를 꺼내는 마술이요?"

 

  "네, 네. 그거요.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 아주 궁금하군요. 나한테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가만히 철수를 바라보고 있던 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해요. 이건 그냥 간단한 눈속임인데요. 그러니까 사실은 원래 장미가 제 손에 있었어요. 어떻게 하냐면……."

 

 철수의 부탁에 제이는 열심히 마술의 비밀을 알려줬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에는 오직 그녀의 붉은 입술만이 들어왔다.

 

 제이는 한 입 베어 물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운 입술을 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목선도 그녀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철수의 시선은 제이의 가느다란 목 선을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와 봉긋 솟아있는 가슴으로 향했다.

 

  "철수 씨, 듣고 계세요?"

 

  "네, ……네? 아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럼 제가 뭐라고 얘기했는지 말해보세요."

 

  "……그게."

 

 철수가 말을 잇지 못하자 제이가 실망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뭐예요. 기껏 열심히 설명해줬더니."

 

 한숨을 내쉰 제이는 들고 있던 마술 도구를 아래로 내려놓았다.

 

  "아, 미, 미안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어요."

 

  "다른 생각이요? 무슨 생각이요?"

 

  "그게……."

 

 제이의 입술이 참 탐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철수는 저도 모르게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 그러니까 차, 차를 한 잔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요?"

 

  "네, 사실 원래 내가 차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제이 덕분에 차 맛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제는 커피 대신 차가 마시고 싶군요."

 

  "그럼 제가 차 한잔 타 드릴게요."

 

  "네, 고, 고맙습니다."

 

 제이는 산뜻한 걸음으로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였다.

 

 그녀가 차를 우려내는 동안 철수는 소파에 앉아서 초조한 표정으로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제이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호기 있게 거실로 나왔으나 제이가 자신을 이성으로 의식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을 몰랐던 철수는 초조했졌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에 카모마일 차를 담은 쟁반을 들고 제이가 걸어왔다.

 

  "철수 씨가 차를 좋아하다니 다행이에요."

 

  "그래요?"

 

  "네, 항상 커피만 마셔서 철수 씨 건강 걱정 많이 했거든요."

 

 자신에게 차를 내밀면서 찡긋 눈웃음치는 제이를 보고 철수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제이가 내 건강 걱정을 했습니까?"

 

  "네, 그럼요. 요즘은 밤에 잘 주무세요?"

 

  "……네, 제이 덕분에 잘 잡니다."

 

 철수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차를 마시고 있던 철수는 호시탐탐 제이의 마음을 확인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을 만한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어느새 그와 그녀의 찻잔은 점점 비워져가고 있었다.

 

  "저 그럼 이제 방으로 들어갈게요."

 

  "벌써요?"

 

  "네, 얼마 후면 공연이라서 마술 트릭 공부를 조금 더 해야 하거든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철수는 제이가 고개를 돌리고 있는 틈을 타서 유리잔에 들어있는 차를 자신의 옷에 일부러 끼얹었다.

 

  "으윽!"

 

 뜨거운 차가 옷에 쏟아지자 철수는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어머, 철수 씨. 괜찮으세요?"

 

 철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상의를 벗어 던졌다.

 

  "네, 으윽! 저, 정말 뜨겁군요."

 

 철수의 잘 다듬어진 근육을 밝은 조명 불빛 아래에서 훤히 드러냈다.

 

 매일 운동을 하면서 몸매를 다듬었던 철수는 복근 하나만큼은 누구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철수는 제이의 표정을 살피려고 했지만,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을 줍느라고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었다.

 

  "제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잠깐만요. 소파 아래로 유리잔이 굴러갔어요."

 

 철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복근이 잘 보이게 포즈를 잡으면서 제이가 고개를 들기만을 기다렸다.

 

 소파 밑에 굴러간 유리잔은 그녀의 손에 쉽게 닿지 않았다.

 

 무릎을 꿇어 겨우 유리잔을 잡은 제이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내가 유리잔에 뜨거운 차를 담은 게 잘못 한 것 같아.

 

 철수 씨가 뜨거워서 유리잔을 놓친 것 같은데 어쩌지.

 

 제이는 고개를 들어 살짝 붉어진 철수의 살결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철수 씨, 많이 아프죠? 괜찮아요?"

 

  "아, 네, 뭐, 괜찮습니다."

 

 철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빨갛게 부어오른 그의 피부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이는 얼른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을 가져왔다.

 

  "철수 씨, 일단 소파에 앉아요."

 

  "왜, 왜 그러는 겁니까?"

 

 손에 수건을 든 제이가 적극적으로 철수에게 다가가자 당황한 그는 뒤로 뒷걸음질 쳤다.

 

  "화상 입었잖아요. 얼른 차가운 수건을 상처 부위에 대는 게 좋아요."

 

 제이는 무릎을 꿇고 철수의 무릎과 무릎 사이에 앉아 복근에 차가운 수건을 가져다 대었다.

 

  "……윽."

 

 갑자기 차가운 것이 배에 닿자 철수는 단말마의 신음을 내뱉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가만히 상처 부위에 수건을 대고 있던 제이가 고개를 들었다니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른 철수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저기, 제, 제이……."

 

  "네?"

 

  "저기 머리카락이……."

 

 철수의 말에 제이는 얼른 그의 배를 간지럽히고 있던 머리카락을 잡아서 묶었다.

 

 가만히 앉아서 상처 부위에 손수건을 대고 있는 제이와 달리 철수는 붉어진 표정으로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 이제 됐습니다."

 

  "정말요? 아니에요. 한번 자세히 봐봐요."

 

  "아닙니다."

 

  "흉지지 않게 확실하게 치료해야 해요."

 

 제이는 상처 부위를 손으로 가리는 철수의 손을 잡고 억지로 들어 올렸다.

 

 그의 복근에 난 상처는 차가운 수건을 댄 덕분에 조금 진정되어 있었다.

 

 제이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로 철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화상 연고를 발라야겠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이가 사라지자 철수는 들뜬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자신의 복근에 손을 대고 있는 제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극적이었다.

 

  "……."

 

 그녀의 숨결이 피부에 와닿자 미칠것 같이 심장이 뛰었던 철수와는 달리 제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철수의 완벽한 복근을 봤으면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여자는 제이가 유일할 것이다.

 

  '이게 뭐야, 진짜.'

 

 일부러 뜨거운 차를 쏟아서 화상까지 입었건만 지금 상황이 미치겠는 건 자신 혼자뿐인 것 같았다.

 

 철수는 태연했던 그녀의 표정을 떠올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말로 제이는 아무렇지 않았던 건가.

 

 나는 그녀가 내 앞에서 몸을 밀착했던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달아오르는 데.

 제이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던 건가.

 

 자신만 당황해하고 난처해 했던 것을 떠올리자 철수는 오기가 생겼다.

 

 마음속에 생긴 오기는 철수에게 대담한 행동을 할 계획을 꾸몄고 이는 제이에게는 또 다른 시련을 불러일으켰다.

 

 철수가 마음속으로 이상야릇한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고 제이는 비상약통에서 화상 연고를 꺼내 그의 상처 부위에 발랐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 나을 거예요."

 

 그를 향해 미소를 보내고 일어서자 철수가 덥석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제이, 저기……."

 

 제이가 고개를 돌리자 철수는 쏟아버린 차보다도 더 뜨거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하면 데일 것 같은 눈빛을 자신에게 쏘아대는 철수를 보고 제이는 어리둥절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간식이 먹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처럼 철수는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가 놓았다가, 벗었던 옷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를 반복했다.

 

 제이는 철수의 원맨쇼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러니까…… 음, 그러니까 말이죠. 뭔가……."

 

  "철수 씨."

 

  "네?"

 

  "어디 아파요?"

 

 제이가 덤덤한 목소리로 묻자 그가 슬픈 눈으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닙니다."

 

 기가 죽은 철수를 보고 제이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살며시 그의 이마에 손을 가져가 댔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어디 아파요?"

 

  "아니요. 안 아픕니다. 그런데 저……."

 

 철수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제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을 보자 궁금증이 더욱 커진 제이는 철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한테 따로 하실 말씀 이라도 있으세요?"

 

 제이의 질문에 빤히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던 철수가 불쑥 립밤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이거 발라요."

 

 뚜껑을 열어보니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립밤이었다.

 

 제이가 다시 철수를 바라보자 그는 입술에다가 바르라는 듯이 몸짓했다.

 

 얼떨떨했지만 제이는 그가 건네준 립밤으로 입술을 발랐다.

 

 다시 뚜껑을 닫으려고 하자 철수가 제이의 손에 들린 립밤을 가져갔다.

 

 그녀가 철수를 바라보자 그는 제이가 쓴 립밤을 입술에 바르면서 그녀에게 생긋 미소를 보냈다.

 

 그런데 그 미소가 어쩐지 자신에게 무언가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아서 제이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두근두근.

 

  '……아, 그러니까 이제 지금 무슨 상황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철수가 립밤을 바르는 것을 보고 제이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철수는 그녀에게 무슨 사인을 보내는 듯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두귿두근.

 

 지금 철수가 보내는 사인이 무슨 뜻인지 제이는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녀의 심장이 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이놈의 심장아. 멈춰, 멈춰!

 제이는 속으로 단호하게 명령했으나 건방진 심장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했다.

 

 철수는 길고 긴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살며시 쓸어올렸다.

 

 동작 하나에 섬세한 감정을 담은 그의 행동에 제이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다.

 

 사소하지만 간절하게, 철수는 그의 마음을 제이에게 표현하고 있었지만, 제이는 그것이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모랐다.

 

  "저, 그럼 전 방으로 들어가 볼게요."

 

 급히 뛰어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제이는 다리가 풀려서 문손잡이를 잡고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러니까 그 행동의 의미는…….'

 

 입술을 쓸어내리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애절하면서도 농엽한 구석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그의 몸짓에 제이는 숨이 멎는 듯했다.

 

  '설마 철수 씨가…….'

 

 평범한 남자가 자신의 앞에서 그런 행동을 했으면 못 느꼈을 것 같은 감정이었지만 그녀의 앞에 있었던 사람은 다름아닌 강철수였다.

 

  '나랑 간접 키스하려고 그런 건가?'

 

 제이의 심장은 이제 뛰지 않고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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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무릎과 무릎 사이에 2017 / 11 / 29 630 0 8123   
46 46.제이는 철수를 좋아해? 2017 / 11 / 27 280 0 8107   
45 45.슬프면 슬프다고 말해요 2017 / 11 / 26 261 0 8563   
44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2017 / 11 / 24 262 0 8193   
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2017 / 11 / 24 261 0 8265   
42 42.미래의 남편이요? 2017 / 11 / 22 254 0 8823   
41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2017 / 11 / 20 263 0 8481   
40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2017 / 11 / 17 242 0 8478   
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2017 / 11 / 16 241 0 7984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2017 / 11 / 15 273 0 7784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36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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