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광야에서
작가 : th쓰
작품등록일 : 2017.11.8

홀로 평원에 살아가던 사람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낯선 일행을 만나 시작되는 이야기.

 
1-15. 마녀의 평원
작성일 : 17-11-29 04:28     조회 : 272     추천 : 1     분량 : 472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실은 아까 전부터 줄곧, 이슈트반을 보내버리고 내 볼 일을 보고 싶었다. 누누이 말했듯이 더 친한 척을 할 이유도 없었다. 발을 재게 놀려 은행을 찾았다. 아슬아슬하게 정오가 되기 전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에 이슈트반과 함께 찾았던 자리의 직원이 그대로 앉아있다. 그에게 다가가자 아침에 보았던 사람임을 알아보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인사한다. 내가 귀족인 이슈트반에게 반말을 했으니 당연히 나도 귀족이리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등록번호를 말했다. 내 번호가 아닌, 아침에 이슈트반이 말했던 번호를.

 

 “다시 오셨군요. 얼마 찾으시겠습니까?”

 “용병을 더 고용하기로 해서. 얼마 남았었지 금화 50개 정도인가”

 “정확히 58개 남아있습니다.”

 “그럼 50개만 찾지.”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쓸며 대답하자, 직원이 공손한 태도로 돈을 찾아왔다.

 

 “공작령으로 가십니까?”

 “그런 건 왜 묻지”

 “예 아니, 죄송합니다. 귀족 분들께서 이 도시에 오는 일은 드문지라…….”

 “건방지군. 말을 똑바로 해라. 이 곳은 이미 공작 각하의 지배하에 있는 공작령이다.”

 “죄송합니다.”

 

 직원이 딱딱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나는 두둑해진 돈주머니를 챙겨들고 나왔다. 이 짓을 처음 하는 건 아니지만, 귀족 흉내는 처음이라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허리를 숙이고 나를 배웅하는 은행 직원을 보아하니 걱정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귀족 흉내는 걸리면 목이 날아가지만 막상 하려면 쉽다. 평민들은 귀족의 이름을 묻는 것만으로도 모욕을 저질렀다며 옥살이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귀족으로 보이면 일단 고개부터 숙이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은행 직원이 나를 귀족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어려울 것 없는 일이다. 만약 내가 진짜 귀족이었다면, 은행 직원이 내게 이슈트반과 일행이 맞느냐고 묻는 순간 나는 감히 평민이 귀족을 의심했다며 모욕죄를 물을 수 있었다.

 

 이슈트반의 은행 구좌에는 오늘 아침에 찾은 돈과 방금 내가 찾은 돈을 합쳐 금화 백 개가 넘는 돈이 있었지만, 이제 금화 여덟 개만이 남았을 것이다. 그 정도면 네 사람이 쉬지 않고 공작령까지 이동하면 여비로는 아슬아슬할 것이다. 아침에 찾은 돈도 있으니 알아서들 하겠지. 오늘 아침 돈을 찾고도 또 은행에 갈 일은 없을 테니 내가 한 짓을 알 확률도 낮다. 나는 돈주머니를 가지고 중심가를 벗어났다.

 

 어느 정도 걷고 중심가에서 떨어진 샛길로 빠지자 금세 술집과 싸구려 요릿집이 늘어서있는 지저분한 거리가 나온다. 그 중 골목의 안쪽, 작은 간판에 칼과 맥주가 그려진 이층 건물로 들어간다. 문을 열자마자 눅눅하고 싸한 술 냄새가 덮쳐온다.

 

 “레오스! 일은 끝냈냐?”

 

 그리고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필담으로 말 한다며.”

 

 인상을 써보지만 아작스는 아랑곳 않고 다가와 솥뚜껑만한 손으로 내 등을 후려친다.

 

 “내일부터, 내일부터! 신참 볼래?”

 “내일은 무슨……. 됐어. 영감은 어디 있어?”

 “영감님 아직 안 죽었나?”

 

 아작스가 상스럽게 낄낄대고 웃었다.

 

 “재수 없는 소리 자꾸 지껄이면 너랑 일 안 해.”

 “영감님 저기 계셔. 안쪽 테이블.”

 

 곧바로 공손해진 말투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협박을 해야 말을 잘 듣는군.

 

 지금 들어온 건물은 아작스의 마물사냥꾼 무리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일층에는 대개 싸구려 술을 퍼마시는 놈들이 모여 있고 이층에는 그 싸구려 술을 마시고 만취한 놈들을 던져놓는 방이 여러 개 있다. 건물 전체에 기분 나쁜 쇠 냄새와 술 냄새, 찌든 가죽 냄새 같은 눅눅함이 가득해서 여기 올 때마다 짜증이 난다. 아작스는 이 건물을 자신의 집이라 부르며 여기에 산다. 잘 모르는 사람은 아작스가 집이라 하면 일반적인 거주지를 생각하고 찾지도 못한다.

 

 안쪽의 테이블로 향하자 아작스가 달라붙어 귀찮게 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내일 새벽에 올 줄 알았는데.”

 “새벽에는 은행이 안 여니까.”

 “아하! 했어 얼마나 갖고 왔어”

 

 치근대는 듯 한 말투에 귀찮아져 허리춤에 묶어둔 돈주머니를 툭툭 쳐 보여준다.

 

 “오십.”

 “뭐? 한 번에? 미친 거 아니냐?”

 “내 고객님이 돈이 좀 많더라고.”

 “고오오객님이 통이 크네.”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가장 안쪽 테이블로 다가갔다. 내가 찾던 사람이 보인다. 비쩍 마른 왜소한 체구에 지저분하게 자라나 엉긴 검은 머리와 수염, 흐리멍덩한 회색 눈을 반쯤 감고, 김빠진 맥주 반 컵을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인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초라한 노인.

 

 “영감. 티레시, 일어나.”

 

 노인의 앞에 앉아 테이블을 두드렸다. 나무 울리는 소리에 노인은 깜짝 놀라 눈을 뜬다. 아무것 베지 못할 품안의 녹슨 검을 끌어안고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앞에 앉은 사람을 본다.

 

 “영감, 아직 안 죽었지?”

 “……염병. 레오스.”

 

 노인, 티레시가 나직하게 한숨을 뱉는다. 티레시는 품 안의 검을 옆자리에 내려두고 천천히 김빠진 맥주를 마신다. 잠이 덜 깬 눈이 깜박인다.

 

 “그걸 무슨 맛으로 먹어”

 “아무 맛도 안 난다.”

 

 티레시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와 같이, 혹은 이전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노인을 천천히 살폈다. 나이 탓인지, 술 탓인지 영감의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더 좁아진 어깨는 옷 한 벌을 감당하기 힘들어 보인다.

 

 “술 좀 그만 처먹어.”

 “……이거라도 처마셔야지.”

 “자꾸 그러면 아작스한테 술 주지 말라고 할 거야. 말로 할 때 적당히 마셔.”

 “……이거라도 있어야지.”

 

 티레시는 언제나 도무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자신에게 함부로 박하게 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탓이다. 그걸 또 알고도 넘기는 내가 제일 문제군.

 

 아작스가 술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한 잔은 내 앞에, 한 잔은 내 옆에 두더니 뻔뻔하게 그 자리에 앉아버린다. 어깨동무를 하려는 손을 탁, 쳐내니 덩치는 곰처럼 커다란 사내가 입을 삐쭉거리며 팔짱을 낀다. 아작스는 내가 티레시에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끼어들었을 것이다. 나는 평원에서 있었던 일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편이 아니고, 아작스는 그나마 내가 입을 많이 여는 티레시의 옆에서 이야기를 주워듣기를 노리는 것뿐이다.

 

 “하긴 그래, 좀 마셔둬. 용 이야기를 할 거니까.”

 

 얼마든지 주워들으라 하지.

 

 “……용?”

 “잠깐, 레오스. 용을 봤나? 어디서? 마녀의 숲에서?”

 

 영감이 고개를 쳐든다. 아작스는 당장에 술잔을 제쳐두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이 지났지만 나도 아직 되새겨보면 등골이 서늘하다. 맥주를 마셨다.

 

 “마녀의 숲에서 마주쳤다. 비룡 세마와 지룡 리산데르였어.”

 “둘이나 봤다고? 거짓말 아니지? 어떻게 살아있어?”

 

 아작스가 목소리를 낮추고 내게 바싹 다가와 붙었다. 기분이 나빠져 입을 다물고 그를 노려보자 얼른 입을 다물고 내게서 살짝 떨어져 앉았다. 아작스가 속삭이듯 재촉했다.

 

 “말해봐, 레오스. 도시와 가까웠어?”

 “도시와는 거리가 있었어. 그러나 멀다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번에 나가면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각오는 해야 할 거야. 한 마리면 몰라도 두 마리를 동시에 봤으니까.”

 

 아작스가 이마를 테이블에 박았다. 내일 새벽까지 마물사냥꾼 무리를 재정비할 생각을 하니 미치겠는 모양이다. 아작스는 잔뜩 울상을 짓고 술을 마셨다. 티레시도 아작스를 따라하듯 김빠진 맥주잔을 비워냈다.

 

 “……용은, 그대로더냐?”

 

 티레시가 물었다.

 

 “그대로였어. 짜증날 정도로 변하지 않더군. 비룡 세마는 처음 봤는데, 성격이 더러워보였어. 용이 가까이 있다는 걸 진즉에 알았으면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평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멍청이들 때문에 징조를 늦게 알았지.”

 “또 평원에서 사람을 줍고 다닌 거냐?”

 “내쫓은 거야. ……완전히 그들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알았는데, 비룡 세마가 나타날 때는 땅이 뜨거워지지 않더군.”

 

 끙끙대던 아작스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뭐! 그럼 나 같은 놈은 어떻게 튀란 거야?”

 “그냥 개죽음당하지 그래. 그 때는 단순히 비룡 세마가 날아다니기 때문에 땅에 영향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일부러 그런 것일 수도 있겠군. 어쨌거나 땅이 뜨거워지는 이유도 모르니 그 놈들이 조절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까.”

 “레오스……. 그렇게 불확실하게 말하면 어떡해. 난 너만 믿고 있단 말이야.”

 “나 믿고 죽으시던가.”

 “레오스, 이 나쁜 놈아!”

 

 아작스가 꽥꽥대고 오리처럼 울었다. 나는 성가신 놈의 칭얼거림을 무시하고 티레시에게 집중했다.

 

 “영감. 지룡 리산데르가 다시 나타났어.”

 

 티레시는 눈에 띄게 표정을 굳혔다.

 

 “이번 사냥, 영감도 가겠어? 어쩌면 이번 사냥이 지나면 영감이 죽기 전까지 다시는 용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어?”

 

 나는 무심한 척 물었다. 티레시는 떨리는 손으로 맥주잔만 만졌다. 하지만 나는 테이블 아래의 손이 낡아빠진 검을 몇 번이고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티레시에게 하는 제안은 그저 동정이다. 용을 마주치고 두려움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노인에 대한 동정. 그리고 분노.

 

 십 년 전, 지룡 리산데르가 마지막으로 나타났을 때. 그 자리에는 내가 있었고, 나를 키워준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의 안내를 받아 평원을 탐색하던 마물사냥꾼 무리에는 티레시도 있었다. 그 때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은 나와 티레시 뿐이다. 나는 아직 십 년 전, 내가 마녀족임을 처음 인정했을 때를 잊지 않았다.

 

 “어쩔 거야?”

 

 점점 날이 서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바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티레시는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됐어. 아작스, 내일 나랑 영감 자리도 만들어둬. 해가 뜨기 전에 올게.”

 “짐 얹는 만큼 더 잘 해줘야해, 레오스?”

 

 헛소리는 무시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9 1-19. 마녀의 평원 2017 / 12 / 18 289 1 4313   
18 1-18. 마녀의 평원 2017 / 12 / 14 251 0 5144   
17 1-17. 마녀의 평원 2017 / 12 / 7 257 0 4876   
16 1-16. 마녀의 평원 2017 / 12 / 5 249 0 5414   
15 1-15. 마녀의 평원 2017 / 11 / 29 273 1 4721   
14 1-14. 마녀의 평원 2017 / 11 / 27 267 0 5501   
13 1-13. 마녀의 평원 2017 / 11 / 26 246 1 5179   
12 1-12. 마녀의 평원 2017 / 11 / 25 244 0 4124   
11 1-11. 마녀의 평원 2017 / 11 / 23 251 0 4151   
10 1-10. 마녀의 평원 2017 / 11 / 22 271 0 4690   
9 1-9. 마녀의 평원 2017 / 11 / 21 290 0 4902   
8 1-8. 마녀의 평원 2017 / 11 / 15 293 0 6371   
7 1-7. 마녀의 평원 2017 / 11 / 14 279 0 5841   
6 1-6. 마녀의 평원 2017 / 11 / 14 274 0 6156   
5 1-5. 마녀의 평원 2017 / 11 / 12 286 0 5816   
4 1-4. 마녀의 평원 2017 / 11 / 11 260 0 5998   
3 1-3. 마녀의 평원 2017 / 11 / 10 251 0 6331   
2 1-2. 마녀의 평원 2017 / 11 / 9 272 1 7542   
1 1-1. 마녀의 평원 2017 / 11 / 8 468 1 764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