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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11-2. 그대와 영원히 (2)
작성일 : 17-11-29 01:47     조회 : 299     추천 : 0     분량 : 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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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효은의 못 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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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명이 탈린의 시리도록 차가운 거리에서 여정을 계속하며 애써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하는 동안, 효은은 조용히 런던 하늘에도 내려앉는 불그스름한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시골집 뒤편의 감나무 안에서 무르익은 감들을 짓이겨 아득하게 넓은 도화지에 펼쳐놓는다면 나타날 빛깔을 드러내며 그 뒤편에 있는 어둠의 손을 끌어당기는 하늘을 물그러미 응시하던 효은은, 이윽고 자신 옆에 있는 새까만 플로트 상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문득 스쳐든 생각 탓일까. 평소 같으면 다시 하늘만 물그러미 바라보다가 혼자 망중한을 즐기는 게 익숙치 않아 어디론가 나갔을 터였던 효은은 천천히 상자를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자를 자신의 품에 당겨 천천히 열어젖힐 때까지, 효은의 행동거지는 부엌 한 구석에 놓여 있는 꿀단지 속의 내용물을 건드리느라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어린아이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상자 속 관악기는 자주빛 벨벳으로 감싸진 채, 마치 전설 속에서나 존재할 작은 짐승처럼 은빛을 내뿜은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학창시절 처음 보는 화학 약품을 다루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는 갓 태어난 아기를 다루듯 효은은 조심스럽게 그 먼지 하나 없는 피리의 부분을 잡고 천천히 끼우기 시작했다. 그것을 다 맞추고 온전하게 불 수 있는 플루트로 만들 때까지, 효은은 그저 어깨너머로 어렴풋하게 보았을 뿐이었던 사소한 기억 하나하나를 되짚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악기, 그 무엇보다도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막상 쥔 효은의 두 손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금속이 주는 차가움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손의 체온 덕에 다가오는 어렴풋한 온기에 효은의 가슴 한 쪽은 무겁게 내려앉듯 아릿해져 왔다. 어머니가 늘 손에 쥐고 다녔던, 효은으로서는 사실상 어머니의 분신과 다름 없는 이 악기를 처음으로 손에 쥐었을 때 그녀가 느꼈던 감정은, 어쩌면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전반적인 감정일 것이었다. 마냥 따뜻했던 이상적인 어머니의 모습이라기엔 어딘지 모를 차가움이 얹혀 있었지만, 자신을 딸로서 아우르고 밝은 모습 뒤의 숨겨진 그림자까지 보듬을 줄 알았던 여성으로, 효은은 자신의 어머니 은성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어머니' 이전의 모습이 있었다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과 엇비슷했을 시절에 그녀에게 그런 사랑 이야기가 있을 줄, 그리고 그 이야기가 너무 애틋하고 저릿했다는 것을, 만일 자신의 집에 '월간의 멜로디'에서 취재를 왔다는 기자가 느닷없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아주 나중에야 알았으리라고 효은은 생각했다.

 

 효은은 플루트의 취구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다 댄 뒤 후, 하고 외마디 입김을 불어 넣었다. 아무런 키를 누르지 않은 채 빈 공간을 타고 울려 퍼지는, 날 것 그대로의 플루트가 내는 소리는 생각보다 둔탁했다. 그러나, 그 둔탁하고 어찌 보면 '인간적인' 소리야말로 가장 솔직한 어머니의 내면의 목소리였을 것이라고 효은은 짐작했다. 많은 미사여구를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멀어진 거리감을 조금이나마 좁히고 싶다는 진심이 드러나 있는 '마음의 소리' 말이었다. 그렇게 플루트를 잠시 불어 보고 난 후, 효은은 손끝이 떨리는 걸 겨우 참아내며 악기를 내려놓았다. 창 밖 풍경은 노팅힐 거리의 어느 나무 위에 거대한 주홍빛 열매가 걸린 것처럼 보였고, 그 열매가 내뿜는 빛에 플루트는 찬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먼 곳에는 해질녘의 노팅힐 풍경을, 가까이에는 광채를 내뿜는 플루트를 바라보면서 효은은 굉장히 간만에 진명을 떠올렸다. 그녀의 머릿 속 잔상에서, 진명은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검고 짧은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싼 채 너털웃음을 지으며 템즈 강변을 걷고 있었다. 그 상상 속 웃음을 따라 자신도 웃다 보면, 손을 뻗어 보아도 닿을 수 없는 눈 앞 주홍빛 열매의 끝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아 괜시리 효은의 가슴 한 켠이 따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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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작 정확히 자신과 무슨 관계인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효은은 어느 누군가 자신에게 한 말을 영화 속 플래시백처럼 다시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어떤 낯선 이성과 단 둘이 오랫동안 같이 있게 된다면, 어떤 이유나 계기에서건 결국 그 사람에게 동료나 동행인 이상의 감정이 생겨, 그 감정이 우정에서 시작되어 결국 사랑으로 꽃피는 것이다, 라는 말을 직접 들었을 때의 효은은 그저 그 사람이 영화광이라던가 사랑에 대해 환상을 가진 채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내뱉으며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는지 효은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진명은 효은 앞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곤 했다. 아니, 효은이 진명을 볼 때마다 마치 여러 빛깔의 셀로판지를 붙인 안경을 여러 번 바꾸면서 보고 있는 것에 더 가깝다고 해야 했다. 그녀의 눈에, 그저 '서울에서 온 낯선 기자'일 뿐이었던 남자는 어쩔 때는 허물없는 친구로, 어쩔 때는 얼굴만 바뀌었을 뿐인 기억 속 첫사랑으로, 그리고 어쩔 때는 정말 자신에게 있어 어느 순간 의식의 전부를 메꿔 가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서진명, 이 이름마저 익숙한 듯 낯선 남자로 인해 효은의 시점에서 보는 시간은 궁궐 같은 인터콘티넨탈 호텔 라운지에서, 그리고 인천 앞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자유공원에서 잠시 멈췄다. 텔레비전 화면 밖에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으나 마음 한 켠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 없어'라며 코웃음을 쳤던 그 일이, 막상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질 것만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마다 효은은 자신과 진명을 제외한 모든 것이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변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득, 효은은 자신의 어머니가 젊었던 시절 '그'를 만났을 때 그 시점의 자신과 꽤 엇비슷한 감정을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닌, 그저 음악을 사랑했던 여성 '김은성'이었을 때, 그 음악가와 함께 은행나무 아래에서 찍었던 사진의 존재를 효은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런던의 관람차 꼭대기에서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으며 울고 있는 상태로 진명에게 안겼을 때의 효은은 머릿속에 거대한 은행나무를 그리고 있었다. 노랗게 금빛으로 반짝이는 은행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물그러미 바라보며, 기념으로 남길 만한 사진을 찍기 전에 다정하게 웃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진명이었어도 참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효은은 자신과 이 먼 타국까지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이 남자에게서 간혹 원점으로 되돌아간 '낯선 사람' 또한 보았다. 가끔씩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듯한 눈빛, 간혹 먼저 말을 붙이는 것조차 망설여하는 듯한 태도, 그리고 자신의 말에 웃어주고 공감해주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도통 꺼내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를 세심히 되새긴 효은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로 효은이 가정한 시나리오는 꽤 많았다. 그에게 자신이 진정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던가, 아니라면 이미 친구 이상으로 넘어갈 만한 여자가 있기에 효은 입장에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배려'한 것이라던가.

 

 그럼에도, 어느 시나리오가 되었던간에 효은은 그저 그 순간순간이 좋았다. 진명으로 인해 느리게 흘러가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몸소 증명할 수 있었던 자신의 시간이 애틋하게 저려 왔다. 그렇기에 그에게 더 다가갈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진명의 본심이란 풀 수 없는 수학공식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효은은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효은에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걸, 가끔 드러나는 '타인'으로서의 그의 모습 때문에 그녀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추측이 진명을 향한 효은의 본심마저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버릴 까봐, 그리고 지금 유지되고 있는 관계마저 깨질 까봐 효은은 자신의 본심은 자신의 입으로 전하는 것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어떤 의미에서 이 실타래 같은 감정을 어떻게든 전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결과가 와도 최소한 자신의 마음만은 후련하겠거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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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노을 아래에서 백일몽 아닌 백일몽을 꾸고 있었던 효은은, 하늘에서 붉은빛이 지워진 채 땅 위에서 천천히 가로등이 켜지고 있을 때야 테이블 위 구석에 올려진 조그마한 민트색 쇼핑백을 자신의 품 안에 끌어당겼다. 코벤트 가든에서 그 향수를 샀을 때, 점원은 분명 친절하게 볼펜까지 빌려 주겠노라 말했지만 효은은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아무것도 적지 않았던 것이었다.

 

 역시나, 깨끗하게 비어 있는 조그맣고 새하얀 종이를 보며 눈만 몇 번 깜빡이던 효은은 불현듯 자신의 가방 안을 뒤졌다. 그 안에서 필통을 꺼낸 효은은, 그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 바삐 오가는 생각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재빠르게 펜을 꺼내든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그 까만 활자 안에 자신의 진심을 넣는다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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