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하려는 거냐”
“예”
“이대로 간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
“상관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그 자리에서 비켜라. 네가 여기서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내가 책임지고 너를 다음 가주로 만들어 주겠다”
“가주님?!”
“안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갑작스러운 서정욱의 제안에 지켜보고 있던 단주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과거에 소가주였던 서지훈과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서정욱의 입에서 그런 제안이 나올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너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고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저는…”
서정욱의 제안에 서지훈은 망설이는 듯 검을 내려놓는다.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 서지훈은 텅 빈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지나간 과거 따위에 미련이 존재할 리 없다.
“제 가족을 지켜낼 겁니다!”
서지훈은 검을 들어 망설임없이 자신의 손을 꿰뚫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흐르는 새빨간 선혈이 검을 뒤덮는다. 피를 가득 머금은 검이 어둠을 휘감으며 검게 물들었다.
“그 검은… 설마?!”
검의 정체를 눈치챈 서정욱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과거, 불사를 연구했던 한 과학자가 있었다. 두려울 정도의 재능과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결국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을 탄생시켜버렸다. 자신을 죽여 달라 애원하는 딸의 모습에 과학자는 실수를 깨닫고 죽지도 못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딸을 위해 한 자루의 검을 만들었다. 결국 이변을 알아차린 조율자들에 의해 과학자와 그의 딸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상황은 마무리되었지만 그가 만들었다는 검은 끝내 회수할 수 없었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고 했더니.. 네가 가지고 있었던 거냐?”
재앙이라 불릴 재능을 가졌던 과학자는 불사의 기적을 이뤄냈고 그것을 죽이기 위해 필사의 검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거였군”
서정욱의 손에 식은땀이 고인다.
저것은 위험하다.
검의 능력은 단순하다. 그저 순수한 마력의 응집체인 혈액을 매개체로 그것을 변형시켜 절대적인 항마력을 가지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필사의 검이 된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그것은 세계를 부정한다.
서정욱은 빛조차 배제시키는 검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서정욱의 눈동자가 투명한 빛을 낸다.
자신의 신체를 구성하는 마력을 마법으로 변환시킴으로써 마법사 본인이 하나의 마법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마법사가 다다를 수 있는 최후의 영역, 서정욱의 빛나는 눈동자가 적을 바라본다.
서로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부딪힐 차례,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아아아아악!!”
갑작스럽게 울려 퍼지는 서지애의 비명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여든다.
“젠장… 벌써 시작되어버린 건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묽은 피,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가주님 더 이상 지체할 순 없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젠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균형을 망가트릴 ‘악’이 태어나게 된다. 서정욱은 이를 악물며 자신의 검을 허공에 던졌다.
허공에 떠오른 검은 마법을 휘감으며 거대한 창의 모습이 되어간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한 형태, 마법을 휘감은 검이 악의 탄생을 멈추기 위해 빠르게 쏘아져 나간다.
“제가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쏘아진 검을 어둠이 베어 가른다. 어둠에 부정당한 마법이 사라지며 반토막난 검이 바닥에 떨어진다.
“서지훈!”
시간은 촉박했지만 서지훈이 막아 서고 있는 이상 섣불리 다가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 서정욱은 단주들을 불러들였다.
“이렇게 된 이상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서지훈을 먼저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오는 수많은 조율자들을 바라보며 서지훈은 체념한 듯이 눈을 감는다.
“재현아 미안하다. 돌아갈 순 없을 것 같다…”
서지훈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역수로 쥔 검을 자신의 배에 박아 넣었다.
딸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한 아버지가 딸을 죽여 주기 위해 만들어낸 한 자루의 검, 그것에는 딸에게 속죄하기 위한, 딸과 함께 죽기 위한 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이 담겨있었다.
“무슨?!”
조율자들은 서지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이상한 것은 갈라진 상처에선 한 방울의 피도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큭…!”
박힌 검을 뽑아내자 그제서야 상처는 붉은 선혈을 토해냈다.
서지훈의 생명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검은 기분 나쁜 어둠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서지훈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젠장! 다들 저 녀석에게서 멀어져라! 어서 피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서정욱이 서둘러 소리치지만 서지훈은 이미 그들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불길한 어둠이 서지훈을 휘감는다. 서지훈은 망설임없이 검을 바닥에 내려꽂았다.
그 순간, 칠흑 같은 어둠이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주변을 집어삼켜버린다.
“아으어… 으으…”
“으아아아악!!”
살아남은 이들의 비명소리가 처절하게 울려 퍼진다. 어둠이 걷히며 드러난 광경은 믿을 수 없이 처참했다. 수백의 조율자들 중 살아남은 것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수많은 이들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어둠에 먹혀버렸다.
서정욱은 한 움큼의 피를 토하며 서지훈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너는…!”
마인화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신체는 어느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너는 어째서…!!!”
분노로 갈라진 목소리가 건물에 울려 퍼진다. 한걸음씩 서지훈을 향해 다가가던 서정욱은 결국 서지훈에게 닿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크윽.. 하아, 하아…”
서지훈은 가쁜 숨을 내뱉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자신이 살아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지훈은 부숴진 검에 몸을 기대어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인다.
“지애야…”
서지훈은 그녀의 곁에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내밀어진 손은 드디어 그녀에게 닿을 수 있었다.
“오빠…?”
그녀의 손이 서지훈을 찾기 위해 허공을 더듬는다. 서지훈은 손에 쥔 검을 내려놓고 자신을 찾아 헤매는 손을 잡아주었다.
“헤헤… 여기 있었구나”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허공을 응시한다. 그녀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서지훈은 눈물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지애야…”
떨리는 목소리는 후회로 가득하다. 보이지 않는 그녀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지친 서지훈을 토닥여주었다.
“…”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가족을 베고 그들의 피로 온몸을 적셨다. 지금의 모습을 그녀가 본다면 그녀는 분명 모든 죄를 자신이 떠안으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대가, 자신이 안고 가야 할 죄악이었다.
“오빠…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지애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서현…”
“…”
“우리 아이 이름이야”
서지애의 눈가로 투명한 눈물이 흘러 내린다.
비록 자신의 눈으로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뱃속에서 느껴져 온다.
서현, 그게 너의 이름이란다.
‘마지막만큼은 웃어주고 싶었는데’
서지애의 손이 서지훈을 찾는다. 서지훈은 조용히 그 손을 붙잡아주었다.
“여기에 있어…”
“오빠…”
“응…”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응… 나도…”
그녀의 손이 힘을 잃는다.
“…”
서지훈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놓아주었다.
가족의 온기를 찾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진다. 서지훈은 조심스레 아기를 품에 안았다.
그녀가 남기고 간 마지막 흔적, 그것은 너무나도 작고 너무나도 따듯했다.
“결국 막지 못한 것인가…”
아직 늦지 않았다. 서정욱은 바닥에 떨어진 토막 난 검을 주워들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으신 겁니까”
“…”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 그곳에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온한 모습으로 눈을 감은 딸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서정욱은 조용히 손에 쥔 검을 놓았다.
“돌아가자…”
“갑자기 무슨 생각이십니까”
“무슨 말이냐”
“어째서 이제와 멈추시려는 겁니까”
“너무 많은 이들을 잃었다… 지금 가문에 너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제가 당신의 뜻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설마…”
“괜찮은 조건이지 않느냐”
“하, 하하… 하하하하”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