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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광야에서
작가 : th쓰
작품등록일 : 2017.11.8

홀로 평원에 살아가던 사람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낯선 일행을 만나 시작되는 이야기.

 
1-13. 마녀의 평원
작성일 : 17-11-26 18:04     조회 : 246     추천 : 1     분량 : 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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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불쑥 나타난 사내는 내가 기껏 산 짐더미를 가져가 옆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거친 손길에도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마을에 왔다는 말이 들리면 이렇게 곧바로 달려와 투덜댈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잡아끄는 사내는 커다란 덩치에 드러난 팔다리와 얼굴에는 여기저기 흉터가 남아있었다. 갈색 머리에 듬성듬성한 흰머리를 관리도 않고 손으로 쓸어 넘기고 사냥할 때나 입는 가죽옷을 평상복으로 입고 다니는 사내.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마물사냥꾼 무리의 리더, 아작스다.

 

 아작스는 씩씩대며 막무가내로 내 팔을 잡아끌고 가 테이블 옆에 앉힌다. 반항해봤자 이 사내의 악력에 이기기는 힘들다. 짜증이 나지만 순순히 끌려가 앉는다. 아작스는 내가 자신의 손길을 따르자 금세 마음이 풀렸는지 웃으며 한 손을 든다.

 

 “네모. 네모! 이 자식이 엉덩이가 무거워서 못 움직이나. 네모! 부르잖아! 물 가져와!”

 “돈 내.”

 “이제 물도 돈 받고 파냐?”

 “물 밖에 안 먹는 놈한테는 돈 받는다, 왜!”

 

 네모가 성질을 내면서도 물을 가져오자 아작스가 씩 웃으며 단숨에 물 한 컵을 비운다. 빈 잔을 네모의 손에 쥐여 주며 다시 말한다.

 

 “물 한 잔 더.”

 “돈 내, 미친놈아!”

 

 기어이 네모가 괴성을 지르자 아작스가 낄낄대고 웃었다. 덩치는 산만한 사내가 남 놀리기만 좋아해서 큰일이다, 아주. 네모가 고혈압으로 쓰러지기 전에 주의를 돌렸다.

 

 “난 주스. 시원하게. 돈은 내 고객님이 내실 거고.”

 

 내주실거지, 고객님? 하고 이슈트반을 본다. 이슈트반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와 앉았다.

 

 “내가 왜?”

 “위험수당.”

 “아, 그건 할 말이 없군. 그럼 나도 한 잔.”

 

 네모가 옙,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아작스는 그 틈에 끼어들어 나도 한 잔, 하고 말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위험수당? 그건 무슨 소리야? 레오스. 네 이번 일행이야?”

 “이번 고객님이시지. 이슈트반님이시다. 귀족님이시니 말 함부로 하다가 혀 잘리지 않게 조심하고. 자기 음료 정도는 스스로 좀 사먹고.”

 “헤에, 고오개액니이임.”

 

 아작스가 입을 쭉 빼며 중얼거렸다. 이슈트반을 비꼬고 놀릴 준비가 만만한 표정에 절로 인상이 써진다. 아작스는 둘이 대화할 때는 그럭저럭 괜찮은 대화 상대이지만 다른 사람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아주 귀찮은 놈이 된다. 나보다 열 살은 많은 주제에 가만히 있지를 못해 여기저기 장난을 치거나 소란스럽게 굴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곧바로 시비를 건다. 그렇다고 아작스의 마음에 들어버리면 네모처럼 놀림의 대상이 되어서 제지하기도 귀찮아지는 상대다.

 

 “시비 걸지 마. 귀족이시다.”

 “아니, 누가 시비래? 그냥 네가 위험했다니 형이 걱정이 되어서 그렇지. 응?”

 “누가 형이야.”

 

 인상을 써도 아작스는 본체만체 한다.

 

 “우리 레오스가 일을 얼마나 잘 하는데 무려 위험수당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일이 꼬였을까? 귀하신 귀족 나으리를 모시느라 우리 레오스가,”

 “자꾸 우리, 우리 하지 말고 닥쳐, 좀.”

 “우리 야구스의 자랑인 레오스를! 얼마나 혹사시켰는지! 궁금해지네!”

 

 야구스라니 또 무슨 말인지, 처음 듣는 단어다. 어차피 사냥꾼 모임의 이름을 바꾸었거나 새로 만든 마을 청년단이나 책을 안 읽는 독서 모임이나 술자리 계의 이름이겠거니 하고 묻지도 않았다. 참고로 나는 아작스가 만든 어느 모임에도 들어간 적이 없지만 명단에는 늘 내가 있더라. 어차피 내버려두면 알아서 식고 본론을 꺼내겠지.

 

 네모가 주스를 가져왔다. 두 잔이다. 나와 이슈트반의 앞에 주스를 놓고 네모는 사뭇 냉정하게 뒤돌아 간다. 아작스는 모른 척 내 앞에 놓인 잔을 제 앞으로 끌어당겨 한 모금 마셨다.

 

 “혹사를 시켰다기보다는, 마녀의 숲에 갔었다.”

 

 이슈트반이 평이한 말투로 쓸데없는 말을 던진다. 다 스러져가는 불꽃에 기름을 붓다니.

 

 “뭐, 마녀의 숲? 마녀의 숲? 마녀의 수우웊? 하하. 이 귀족님이 미쳤구만. 그래, 몇 명이나 죽었는데?”

 

 아작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이슈트반의 눈앞에 대고 이죽인다. 당연히 누군가 죽어 나갔으리라 장담하는 말투에도 이슈트반은 침착하게 어깨만 으쓱인다.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의자에 기대 앉아버리는 모양새가 굳이 상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재수 없지만 현명하군. 진즉에 저런 태도를 취하지 못해 아작스에게 단단히 묶여버린 내가 대신 대답한다.

 

 “아무도 안 죽었어, 대신 날 만나기 전에 죽었다지만. 숲은 도망쳐 들어간 거라 빠르게 통과만 했어. 그리고 나 일 안 가.”

 “왜? 왜 안가? 이제 나랑 일 하기 싫어?”

 

 아작스는 다급한 말투로 물으며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험악한 인상이 협박하는 모양이 되지만 사실 위협이 아닌 나름의 불쌍한 척이라는 걸 알기에 짜증이 난다. 저 덩치에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하면, 차라리 눈이 뽑히기 싫으면 내 말을 따르라 협박하는 편이 낫다고 부탁하고 싶어진다. 아작스가 가져갔던, 한 모금 마신 주스를 내 앞으로 다시 돌려놓았다. 시커먼 사내가 입을 댄 주스를 마시기는 싫어 다시 아작스에게 밀어버렸다.

 

 아작스는 마물사냥꾼 무리의 리더다. 이 도시에서도 열 개가 넘는 마물사냥꾼 무리가 있지만 아작스의 무리만큼 체계적이고 결속력 강한 집단은 드물다. 아작스가 사람들을 휘어잡아 잘 관리하는 덕도 있지만, 다른 사냥꾼 무리에 비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옆 자리 동료가 하룻밤 지나면 죽어버리는 무리보다야 서로 목숨을 구해주던 무리가 더 결속력이 강한 편이 당연하다. 주 세 번 꼴로 단체명이 바뀌는 무리지만 주 세 명 씩 구성원이 바뀌는 무리보다는 나은지, 아작스의 무리에 끼고 싶어 하는 마물사냥꾼은 많은 편이다.

 

 “너랑은 언제나 일 하기 싫었어.”

 “난 언제나 너와 일하고 싶어.”

 “토할 것 같아…….”

 “등 두드려 줄 테니 사흘 뒤에 떠나자. 준비는 끝났어.”

 “내 몸에 손대면 한 달이 지나도 안 움직여.”

 “사냥 내내 근처에도 안 갈 테니 이틀 뒤에 떠나자. 사람도 다 모아놨어.”

 “말도 걸지 마.”

 “내일부터 필담으로 말할 테니 내일 당장 떠나자. 아, 신참도 들어왔어.”

 

 역시 곰과는 말을 섞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더 거절하기도 귀찮아져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여기서 더 싫다고 해봤자 오늘 저녁에 떠나자는 헛소리를 하겠군. 이슈트반의 일행이 떠나면 나도 곧바로 평원으로 돌아갈 생각이기는 했지만, 내일 당장 떠날 줄은 몰랐다. 아니다,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오늘 밤에 일을 끝내버리고 내일 아침에 떠야겠다.

 

 “그럼 내일 새벽에.”

 

 이슈트반 쪽을 한 번 눈짓하자 아작스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신참 안 보고?”

 “죽을지도 모르는데 인사는 무슨.”

 “하긴 그렇지. 그럼 내일 새벽에 내 집으로 와. 맛있는 거 많이 사와.”

 

 짜증나는 새끼. 고개를 끄덕이자 아작스는 만족해 가버렸다. 술 한 잔 하자고 조를 줄 알았더니 이슈트반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아예 무시를 해버리네.

 

 “길잡이라더니, 마물사냥꾼을 안내해주나?”

 “그냥저냥 한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를 안내해 줄 때는 까칠하게 굴더니, 저 치와는 친해 보이는군.”

 

 퉁명스러운 말투에 이슈트반을 보니, 내 착각이었는지 여전히 웃고 있다.

 

 “저 치와 이슈트반님 일행이 같습니까?”

 “격이 다르지.”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이슈트반님 일행은 초짜고, 아작스의 무리는 전문가죠. 저라고 사람이 실종되거나 죽어나가는 걸 감수하고 일할 정도로 돈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 왜 마물사냥꾼 무리의 길안내를 해주지? 지나가기만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사냥꾼들이 훨씬 더 많이 죽을 텐데.”

 “그만큼 마물을 죽이니까요. 어중이떠중이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어중이떠중이라.”

 

 이슈트반이 천천히, 부드럽게 웃었다. 성가시다. 진짜 성가시다.

 

 한참을 소득 없는 대화로 투닥거리다가 짐을 가지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내 짐은 내 방에 두고 이슈트반을 따라 그라프와 케틀린의 방으로 갔는데,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케틀린 뿐이었다. 케틀린은 숙취가 있는지 물주전자 하나를 탁자에 올려두고 손으로 잡은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슈트반이 방에 들어가자 벌떡 일어났다.

 

 “이슈트반님, 일어나셨습니까.”

 “케틀린 경. 좋은 아침이군.”

 

 이슈트반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케틀린에게 인사했다. 기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었기에 케틀린을 놀리려 부러 하는 말이렷다. 케틀린은 고개를 숙인 채 대꾸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살짝 불퉁한 기색이, 딱딱하기만 했던 모습은 마녀의 평원에서의 긴장감과 낯선 이인 나를 향한 경계심이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어젯밤부터 케틀린은 내게도 조금 유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함께 생사의 길을 헤쳐나왔다고 동료의식이라도 생긴 것일까. 별로 달갑지는 않다. 이제 헤어질 사이인데다가 나는 이 일행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케틀린은 어색한 동작으로 내게도 인사하더니 여관에 비치되어 있는 차를 내리고 자리를 마련했다. 내 잔도 함께였다. 돈만 받고 나가려 했는데 귀찮군. 아마도 차를 우린 주목적인 사람일 이슈트반은 예의상이 뻔한 몸짓으로 한 모금 찻물을 입에 대기만 하고 내려놓았다. 이 여관이 근방에서는 가장 좋은 여관이라고는 하나, 그래봐야 사람이 살기 힘든, 마녀의 평원에 가장 인접해있는 도시일 뿐이다. 그것도 평원의 마물들을 막기 위한 성벽으로 간신히 도시의 모양새만을 갖춘 이름 없는 도시. 이런 곳의 여관에서 객실에 비치한 찻잎이 귀족의 입에 맞을 리 없다. 물론 내 입에는 좋은 향이다. 제대로 차를 내릴 줄 아는 사람이 내리니 평소보다 더 향긋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그나와 그라프는?”

 “아그나가 서점에 간다며 그라프를 데려갔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내가 책 좀 제대로 고르라 핀잔을 주었을 때는 짜증을 냈으면서, 아그나는 의외로 내 말을 새겨들었던 모양이다. 데려갈 사람을 아무나 골랐을 수도 있지만.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사람이군. 물론 더 알고 싶지는 않다. 길안내라는 부업도 이제 끝냈으니 이제 본업으로 복귀할 시간이다.

 

 기분 좋게 정산을 끝마쳤다. 냉정하게 나를 잘라낼 줄 알았던 이슈트반은 의외로 네가 말한 위험수당이라며 금화 다섯 개를 더 얹어주었다. 사실 내 입을 막기 위한 돈 같기도 하고, 짐 덩어리에 대해 더 묻지 말라는 압박 같기도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직 나를 거래상대로 보고 있지만 이 정도 돈은 내어줄 수 있는 사이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케틀린은 내가 차 한 잔을 다 마시자 손수 내 찻잔에 차를 더 따라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했다.”

 “……뭐? ……아니, 뭐?”

 

 너무 갑작스러워 두 번이나 물어버렸다. 케틀린은 천천히, 진지하게 말했다.

 

 “처음 만난 날. 네게 위협을 가해 미안했다. 내가 성급히 너를 수상하다 판단했다.”

 

 젠장, 사과하지 마.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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