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새벽으로 이끄는 자
작가 : 바다그늘
작품등록일 : 2017.11.23

마족들의 세상에서 마수를 이끄는 인간 소녀의 이야기

-매일 연재-

 
02. 검의 의미 (1)
작성일 : 17-11-25 16:17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1021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목요일 수업은 4교시밖에 없어서 점심시간 전에 끝이 났다. 2학년은 1학년 때보다 계열 수업이 늘어났기 때문에 같은 푸른 라온인 티아와 울을 제외하고 붉은 라온인 카일, 흰 라온인 마사, 검은 라온인 라이는 각각 계열 수업을 들으러 흩어졌다가 본성 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직 개학 첫 주였기 때문에 대부분 수업 없이 강의소개만 하고 일찍 끝났다. 마지막 수업도 30분 만에 끝나자 티아가 시계를 보며 물었다.

 

  “울. 애들도 일찍 끝났을까?”

 

  시계는 아직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흐음... 글쎄. 한번 연락해볼까?”

 

  울은 왼쪽 귀걸이의 붉은 수정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러자 수정에서 빛이 희미하게 나면서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리진 울님 연결되었습니다. 다른 분들께 연락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와 동시에 티아의 귀걸이가 진동하며 붉게 반짝였다. 티아도 같은 방법으로 수정을 문지르자 다시 목소리가 울렸다.

 

  <레인보우 티아님 연결되었습니다.>

  <한나 마사님 연결되었습니다.>

  <어? 너네도 일찍 끝났어?>

 

  이번에는 마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응. 오늘 수업소개만 하고 끝났어.>

  <랑 카일님 연결되었습니다.>

  <루시안 라이님 연결되었습니다.>

  <뭐야. 다 일찍 끝났나보네?>

 

  카일이 의외라는 목소리였다.

 

  <그러게. 라이도 일찍 끝날 줄은 몰랐네. 그 교수님 시간 완전 꽉꽉 채운다고 유명하던데, 무슨 일이래?>

  <오늘 일이 있다고 결강됐어.>

  <오오! 잘 됐다! 그럼 지금 바로 식당 앞에서 보자.>

  <알았어. 그럼 곧 보자.>

 

  울이 다시 귀걸이를 문지르자 불이 꺼졌다.

 

  <종료합니다.>

 

  울과 티아는 재빨리 짐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갔다.

 

  “참. 그래서 너 갈 거야?”

 

  계단을 내려가던 울이 물었다. 물론 티아는 마사의 말처럼 움직이는 것도 싫어하고, 몸으로 싸우는 건 그녀의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기점에 볼일은 없었다. 하지만 울이 물어본 것은 네 명이 모두 간다고 했으니까 혹시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에서였다.

 

  “음. 난 안 갈래. 오늘 옷장 정리 좀 하려구.”

  “아... 어제 배달 온 거? 그거 갔다 와서 내가 도와주면 갈 수 있어?”

  “아냐. 내가 해야지. 난 가도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데. 그냥 너희들끼리 갔다와.”

  “밥은? 우리는 사 먹을 건데...”

  “괜찮아. 시리얼 있으니까, 그거 먹으면 돼.”

  “아... 그래. 알았어.”

 

  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너무 대놓고 아쉬워해서 카일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새파랗게 질렸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티아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울에게 손을 흔들며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아~ 아쉬워, 아쉽구만......”

 

  티아가 완전히 사라지자 울은 중얼거렸다.

 

  ‘하여간 눈치가 진짜 없단 말이야. 불쌍한 녀석.’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주변사람들이 티내면 카일이 더 수줍어할까봐 조용히 있어줬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이젠 봐 주는 것도 지칠 정도로 티아는 눈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카일이 먼저 포기할 것 같아서 힌트를 던져주는데도 전혀 모르는 저 불쌍한 중생이여... 그리고 들킬까봐 초조해하는 또 다른 불쌍한 존재여... 울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사귀는 건 둘째 치고 내가 죽기 전에 고백하는 건 볼 수는 있으려나...’

 

  이대로 가다간 자기보다 카일이 먼저 말라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은 불쌍한 친구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씁쓸한 마음을 이끌고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입구에는 먼저 도착한 마사와 라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는 울을 보면서 빙그레 웃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혼자 왔어?”

  “엉.”

 

  울이 한숨을 푹 내쉬며 덧붙였다.

 

  “안 온다는 걸 어떻게 해? 진짜 못 알아먹는다니까.”

 

  두 여자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때 저 멀리서 불쌍한 존재가 밝은 표정으로 뛰어왔다. 그는 눈으로 사람 수를 세는 듯싶더니 한층 더 밝아진 얼굴로 네 명의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야! 가자! 가자!”

  “바보 같은 놈.”

  “에휴.”

 

  울과 마사의 반응이 이상하자 카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휴우. 갑시다.”

 

  마사는 한숨을 내쉬면서 앞서 갔다. 울도 오묘한 눈빛으로 카일을 한번 스윽 훑어보더니 마사를 따라갔다.

 

  “뭐야? 또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기보다는....”

 

  라이는 말을 흐리더니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앞서가는 둘을 따라갔다.

 

  “아악 또 뭐야!”

 

  도대체 어디서 뭘 잘못 한 걸까. 카일의 절규가 식당 복도에 울렸다.

 

 

 

  ***

  역시나 목요일의 피어릿 상점가는 학생들로 붐볐다. 중심가는 마법관련 브랜드의 상점이 모여 있는 밀집구역이었기 때문에 손님은 주로 학생들이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네 가지 색깔의 교복들이 휙휙 지나다니는 것이 색종이 조각이 길 위를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사람 되게 많다”

  “목요일이야 뭐 항상 그렇지. 근데 다들 신입생 인가봐.”

 

  카일이 지도를 들고 쩔쩔매는 학생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거대한 혼란이 구김 하나 없이 말끔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얼굴에서 이글거렸다. 그 앳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 넓고 복잡한 상점가에 지도 하나만 딸랑 들고 헤매던 옛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상점가라는 게 원체 복잡하기도 했지만, 피어릿의 경우 계획적으로 지은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불어난 경우라 골목길이 거미줄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입학한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다니던 길이 아니면 헷갈렸다.

 

  ‘힘내라, 신입생들!’

 

  울은 신입생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울 일행은 중앙대로를 지나 한참동안 걸어갔다. 깊숙하게 들어갈수록 점점 사람 수도 줄어들었고, 거대 브랜드가 아닌 개인 상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일. 어디까지 가야돼?”

  “좀 구석진 곳에 있어. 거의 하이드랑 경계부분이야.”

  “하이드까지? 꽤 머네?”

 

  마사의 말에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뜩 울은 티아가 같이 오지 않아서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기억에 의하면 오늘 티아는 굽 높은 신을 신고 있었다. 따라왔다면 이미 입구서부터 발 아프다고 투덜거렸을 게 분명했다. 카일은 좀 불쌍하지만, 그 짜증을 듣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아니 근데 저 녀석은 언제까지 숨기고 다닐 생각이야?’

 

  붉은 라온 주제에 무기점에 가겠다는 생각까지 하다니. 카일이 얼마나 벼랑 끝까지 몰렸는지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애초에 대놓고 티냈으면 그럴 일도 없겠지만. 울은 신나서 앞서 가는 카일의 뒷모습을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불쌍한 친구. 이런 쪽으로는 도움이 못 되어서 미안하네.’

 

  대로를 지나서 한참을 걷자 사람이 더 좁은 골목들이 나타났다. 허름하고 복잡한 길이었지만 카일은 익숙한 길인지 능숙하게 친구들을 안내했다. 골목은 낮은 층의 작은 가게 건물들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대부분이 폐업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만한 가게들을 먹여살리기에는 유동인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저녁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울이 보기에는 아는 사람만 찾는 그런 외진 곳이 확실했다.

 

  ‘쟤는 여길 어떻게 아는 거야?’

 

  검은 라온도 아닌 것이 얼마나 열심히 찾아헤맸을지 머릿속에 상상도가 그려지자 울은 카일에게 더욱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울과는 달리 머리끝까지 신바람으로 가득 찬 카일은 골목길로 한참 들어갔다. 곧 오래된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2층밖에 없는 그 건물은 다른 가게들보다 유난히 작았지만, 어디하나 깨진 곳 없이 말끔했다. 간판이 붙어있는 일층 가게 유리창은 정성들여 닦았는지 물 자국 하나 없이 투명해 그 안의 무기가 고스라니 바깥에서 보였다.

 

  ‘검에, 활에, 창에, 마법사용 도구들까지 있어?’

 

  울은 의외라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간판을 유심히 살폈다.

 

  ‘스프’

 

  판매품은 무기세트의 끝판왕이면서 가게 이름이 스프라니. 심지어 간판까지 특이했다. 대부분은 금속이나 나무로 된 간판을 쓰는데, 여기는 천으로 된 깃발모양이었다. 게다가 간판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섬세한 금실 자수도 놓여있었다. 천 여기저기에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아주 오래 묵은 때가 깊숙이 스며있었다. 너덜너덜한 그 간판에서 울은 익숙함을 느꼈다.

 

  “진짜 깃발이네.”

 

  라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미간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오~ 역시 라이는 눈썰미가 좋다!”

 

  카일이 깃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손 에는 이미 빛이 바래서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오래된 희미한 얼룩이 있었다.

 

  “이게 진짜 핏자국이래! 이집 주인장 조상이 기사였다나? 그때 전쟁에서 쓰던 가문기라던데? 멋지지 않아?”

 

  깃발을 올려다보는 카일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섞여있었다. 격투가를 키우는 붉은 라온의 학생들은 대부분 활발하고, 호전적인 성향이 짙었다. 그래서 카일 또한 다른 붉은 라온들처럼 전쟁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타오를 준비가 되어있었고, 그 덕분에 붉은 기숙사는 개교이후 사시사철 보수공사의 늪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들어가자!”

 

  상상의 세계에서 돌아온 카일이 가장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은 아무도 없었지만, 잘 정리되어있는 걸로 봐서 잠시 자리를 비운 듯 했다. 벽은 온통 무기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사진이 하나씩 걸려있었다. 모든 사진에 같은 인물이 등장했는데, 어린아이 시절부터 젊었을 적의 모습, 백발이 조금씩 섞여있을 때의 모습까지 한 사람의 일대기가 그 안에 담겨있었다.

 

  주인과 함께 찍힌 손님들의 옷은 이 가게가 꽤나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보여줬다. 울은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하나씩 찬찬히 살폈다.

 

  ‘와... 황실 마법사, 기사단장... 대단한데?’

 

  그때 카운터 안쪽에 있는 문이 열리고 한 백발의 노인이 나왔다. 그는 눈이 나쁜지 앞치마에 걸어놓았던 안경을 쓰고서야 카일을 알아보았다.

 

  “오~ 왔구나! 호호호. 친구들도 데리고 온다더니 저 학생들인가?”

  “안녕하세요.”

 

  무기상점 주인 제페토는 안경의 초점을 맞추며 라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 이쪽은 루시안 라이예요.”

  “안녕하세요.”

  “오호! 그거 잘생긴 학생이구만! 인기 많겠는데?”

  “감사합니다.”

  “전 한나 마사에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군요.”

 

  울도 인사하기 위해 카운터 쪽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전...”

  “오! 이 학생이 리진 울 양인가?”

 

  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페토가 가로챘다. 울은 카일이 뭔가 귀띔해주었나 싶어 그를 봤지만 카일 또한 놀란 표정이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생긴 건 말해드린 적 없는데...”

  “후후후... 장사를 하다보면 딱 보면 척이지. 이 아가씨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아주 장군감이라고.”

  “아하하. 감사합니다.”

  “오~ 역시 제페토 할아버지야! 봤지? 엄청난 분이시라니까?”

 

  카일은 마치 자기 일이라는 듯이 주인장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울은 듣는 척하면서 가게 내부를 살폈다.

 

  ‘저 문 안이 작업실인가... 창이랑 검 종류가 많네...’

 

  사진속의 사람들도 모두 검을 쥐고 있었다.

 

  “자~자~ 카일 그 이야긴 그만하고, 이제 주문 좀 받아볼까?”

 

  카일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듯하자 제페토가 끼어들어서 중재했다. 그는 벽에 붙어있는 서랍들을 뒤지더니 주문서와 연필을 꺼내들었다.

 

  “그래 일단 루시안 군부터 주문을 받아볼까?”

  “에이~ 할아버지 저부터 해주셔야죠!”

 

  카일이 섭섭하다는 말투로 투덜거렸다.

 

  “넌 이 녀석아. 붉은 라온이 무슨 무기야? 그러고 보니 나 없을 때 장검 달라고 졸랐다며?”

 

  제페토의 말에 카일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는 카운터 앞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카일의 반응에 제페토는 의아한 표정으로 카일과 뒤의 세 사람을 번갈아보더니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속삭였다.

 

  “혹시 비밀이었냐?”

 

  아무 대답도 못하는 카일을 보며 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비밀은 무슨 비밀. 장검을 사려했다는 건 몰랐지만, 아주 중요한 사실은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마당에 비밀이 무슨 소용일까.

 

  ‘설마 했는데, 장검이라니. 너무 똑같잖아. 이런 걸 티내면서 베끼다니. 뭐 물론 티아는 그래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은 울이 먼저 나서 화제를 바꾸었다.

 

  “자~ 라이! 주문!”

 

  울이 라이의 등을 살짝 앞으로 밀었다. 라이가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짓다 곧 눈치채고 카운터 앞으로 다가갔다.

 

  “오호. 그래 뭘 사러 왔나?”

  “단검이요.”

  “단검? 단검이면 이쪽이라네...”

 

  제페토가 진열대 왼쪽 끝을 가리켰다. 라이가 단검을 보고 있는 사이 제페토가 물었다.

 

  “그래요. 음... 한나 학생은?”

  “아, 전 그냥 구경 왔어요. 헤헤.”

 

  마사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 구경이 제페토가 생각하는 그 구경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번에는 울에게 물었다.

 

  “오~ 그럼 리진양은?”

  “아. 전 연습용 검을 사려구요.”

  “연습용?”

 

  제페토는 의아한 눈빛으로 울의 왼쪽 손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왼쪽 손에는 손등에서부터 시작되어 소매 속으로 사라지는 검은 소환진이 있었다. 처음으로 소환수와 계약을 할 때 생기는 소환진은 모든 소환사들이 가지고 있다. 각각의 개성에 따라 색도, 크기도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계열에 따라 약간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도 있기는 있다.

 

  “호오... 요즘은 소환사도 검술을 배우나 보지?”

  “아, 아뇨. 선물하려구요.”

  “그렇구만. 여자? 남자?”

  “어.... 남자요.”

  “남자친구인가 보구먼!”

 

  제페토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카운터 아래에서 커다란 나무상자 하나를 꺼내어 진열대위에 올려놓았다. 자물쇠를 풀고 뚜껑을 여니 안에는 여러 개의 검들이 들어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검과 다를 바 없었지만, 연습용이라 날이 뭉툭했다.

 

  “흠. 연습용검이라 선물하기에 화려하진 않지. 그래도 내가 직접 만든 좋은 것들이라네! 한 번씩 들어보겠나?”

  “네.”

 

  울은 제일 위에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남성용이라 생각보다 길기는 했지만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검 손잡이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정도면 중간 정도 무게인가?’

 

  생각보다 좀 더 무거운 단계가 필요할 것 같았다. 울이 상자 안을 뒤적이는 동안 카일의 시선도 상자 속을 향했다. 그는 빤히 쳐다보더니 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뭐야? 꽤 가볍네?”

  “응. 여기 있는 건 좀 가벼운 거 같은데... 저 어떤 게 제일 무거운 거죠?”

  “그 남학생이 키가 큰가 보지?”

 

  제페토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아니요. 키는 작은데 힘이 좀 쎄서...”

  “흠. 그러면 이게 제일 무거운 것 일세.”

 

  제페토는 상자 가장 아래에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짙은 갈색 가죽으로 싸인 검은 평범했다. 울은 제페토에게서 검을 받아들었다. 그녀에게는 이것도 그리 무거운 편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가장 나았다. 울이 검을 한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살피자 제페토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저 검이 선물용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무기상인으로 지낸 오랜 세월이 그의 입을 무겁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네. 이정도면 괜찮네요.”

  “연습용이지만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거라네. 연습용치곤 내구성도 좋아서 오래 갈 거라네. 내가 보장하지.”

  “좀 더 구경해도 되나요?”

  “당연하지!”

  “감사합니다.”

 

  울은 그 검을 옆에 두고 상자 안을 계속 뒤적였다. 제페토는 그녀에게서 카일로 시선을 옮겼다.

 

  “자. 그래 너는 장검 줄까?”

  “네, 네!”

 

  이미 들킨 마당에 모든 걸 포기한 카일이 끄덕였다. 제페토는 카일에게 추천하는 칼 몇 개를 꺼내놓았다. 울은 그 모습을 곁눈 짓으로 슬쩍 보더니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리고 마사에게 눈짓을 했다. 카운터에서 조금 떨어져 멍하니 있던 마사가 어깨를 으쓱 했다. 울은 손가락으로 카일을 가리켰다. 그는 새빨간 검을 보고 얼굴에 막 미소를 띠우고 있는 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마사의 표정이 구겨지더니 재빨리 카일에게 다가가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거 사려구?”

  “응! 왜? 예쁘지 않아?”

  “전혀.”

  “어,어?”

  “전혀. 안. 이쁘다고. 남자애들은 다들 이런 검 좋아하니?”

  “왜? 어때서? 여, 여자애들 취향은 어떤 건 데 그래?”

  “봐봐! 내가 골라줄게!”

 

  마사는 으름장을 놓으며 검들을 찬찬히 살폈다. 마사가 제대로 된 걸 골라주는 것까지 확인하고 울은 상자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제페토가 골라준 것이 제일 무겁기는 했다. 하지만 길이가 키에 비해 너무 길었다.

 

  ‘무게는 비슷하긴 한데... 잘못하면 땅에 끌고 다니겠는데?’

 

  그녀는 검을 다시 상자 안에 넣어놓고 아쉬운 대로 두 번째로 무거운 것을 골랐다. 길이도 딱 맞았고, 무게도 그럭저럭 쓸만한 편이었다.

 

  “다 골랐나?”

  “넵! 이거로 주세요.”

  “흠 알겠네. 7만랑일세.”

  “여기 카드요.”

 

  제페토는 카드를 받고 계산기 앞으로 갔다. 그때 라이가 다가와 울이 산 검을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왜? 별로야?”

  “아니. 그냥. 괜찮은 거 같네.”

  “적당하지?”

  “응.”

 

  라이는 짧게 대답하고 검을 내려놓았다. 그사이에 돌아온 제페토는 카드와 영수증을 울에게 건네고 검을 포장했다.

 

  “학생은?”

  “전 다음에 사려고요. 돈이 좀 모자라네요.”

  “그래그래. 또 오게. 카일은 다 골랐니?”

 

  제페토가 물음에 카일이 입을 연 순간 마사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그녀는 한쪽 손으로 카일의 입을 틀어막고 다른 손으로 전신이 새까만 검을 들어보였다.

 

  “네~! 이거 주세용!”

  “아! 아으어안에애이아으아!”

  “뭐래. 저거로 주세요!”

 

  울이 검을 가리켰다.

 

  “아! 울!”

 

  제페토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마사가 고른 검을 들고 가 포장을 시작했다. 겨우겨우 마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카일은 짜증냈다.

 

  “야! 저것보다 이게 더 나은데 왜 그래?”

  “저게 훨씬 나아.”

  “아니라고! 네꺼냐? 내꺼지! 지금이라도 바꿀 거야.”

  “저게 더 낫다니까? 그치? 라이 네가 보기에도 저게 더 낫지? 이거보다?”

 

  마사가 아까 그 붉은 검을 들어 보이며 라이에게 물었다. 라이는 한 박자 늦게 어 라고 대답했다. 끼어들기 싫다는 뜻의 무심함이었으나 잘못 해석한 카일은 라이의 반응이 떨떠름하다며 계속 고집을 부렸다. 결국 보다 못한 울이 한마디로 쇄기를 박았다.

 

  “글쎄? 아마 티아도 저게 훨씬 더 예쁘다고 그럴걸?”

 

  순간 정적이 흘렀다. 카일은 오늘로 몇 번 째 새하얗게 질렸다. 그 표정은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갈 정도로 불쌍했다. 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너를 잘 알고, 일 년이나 봐 온 우리가 보기에는 저게 너랑 제일 잘 어울린다고. 티아도 거기에 동의할 걸?”

  “아, 아! 그, 그래? 그럼 저걸로 하지 뭐! 하, 하하하. 할아버지! 포장 잘 해주세요!”

 

  카일은 민망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 친구를 보며 셋은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불쌍한 녀석. 라이마저도 카일을 그렇게 생각했다. 마사도 씁쓸하게 덩그러니 남은 붉은 검을 바라봤다. 반면 좀 더 성격 급한 울은 답답해서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야. 마사. 우리 밥 먹고 들어가자.”

 

  울이 마사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카일 몰래 속닥였다.

 

  “그래도 돼? 과제 있는 거 아니었어?”

  “지금 이대로 기숙사에 돌아가면 다 불어버릴 거 같아. 으....”

 

  울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사의 눈에도 울의 인내심이 끊어질 듯 말 듯 간당간당하게 붙어있는 게 보였다.

 

  “그래. 먹고 들어가자. 라이! 카일! 점심 먹고 들어가자. 내가 좋은데 알아왔지롱!”

  “음시익? 좋지!”

 

  먹을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카일은 마사의 제안을 환영했다. 라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의 계산까지 다 끝나자 네 사람은 물건을 챙겨 가게에서 나왔다. 카일은 하얀 천으로 싸인 검을 들고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제페토는 이해심 깊게도 울이 들고가기 편하게 검을 싼 천을 이리저리 감아 어깨에 메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는 가게 밖까지 따라 나와서 호탕한 웃음과 함께 자주 놀러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허허 잘 가게!”

  “네! 안녕히 계세요!”

 

  그들이 잡담을 하며 왔던 골목길을 되짚어 가는데, 갑자기 마사가 멈추더니 손뼉을 쳤다.

 

  “참! 울! 너 수리한다고 하지 않았어?”

  “어? 아, 아! 그랬네?”

 

  마사가 울이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주었건만 그녀는 머뭇거리며 돌아가지 않았다.

 

  “혼자가기 뭐하면 같이 가줄까?”

 

  라이의 말에 울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먼저 가 있어. 맡기고 따라갈게.”

  “알았어! 천천히 하고 와. 길 잘 모르겠으면 연락하구!”

  “응!”

 

  울은 무리와 갈라져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9 04. 울타리 너머의 세상 2017 / 12 / 6 207 0 4997   
8 03. 마수 소환사 (3) 2017 / 12 / 5 214 0 4928   
7 03. 마수 소환사 (2) 2017 / 12 / 2 222 0 6559   
6 03. 마수 소환사 (1) 2017 / 11 / 29 232 0 6809   
5 02. 검의 의미 (3) 2017 / 11 / 28 203 0 4328   
4 02. 검의 의미 (2) 2017 / 11 / 27 207 0 5802   
3 02. 검의 의미 (1) 2017 / 11 / 25 220 0 10217   
2 01. 마법학교 라온 2017 / 11 / 24 215 0 6037   
1 00. 프롤로그 2017 / 11 / 23 343 0 3790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어느 세계의 그
바다그늘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