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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광야에서
작가 : th쓰
작품등록일 : 2017.11.8

홀로 평원에 살아가던 사람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낯선 일행을 만나 시작되는 이야기.

 
1-11. 마녀의 평원
작성일 : 17-11-23 23:32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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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내뱉었던 무수한 단어들이 내 위로 쌓여 거대한 무덤을 만든다. 밤마다 떠오르는 생각에 뒤척이며 괴로워한다. 왜 그렇게 떠나야만 했을까. 당신의 마지막이 매일 밤 나를 괴롭힌다. 다시는 돌아갈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과거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기꺼이 악몽을 받아들였다.

 

 눈을 떴다. 창밖에서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어제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일행과 나는 여관을 잡았다. 마녀의 평원에 머물렀던 내내 묽은 수프와 딱딱한 빵, 비스킷만 먹었던 일행은 고기와 과일을 산더미처럼 주문했다.

 

 아그나는 여관을 안내해준 뒤 빠져나가 내 볼 일 보려던 나를 붙잡고 입 안에 오리고기를 쑤셔 넣다시피 먹였다. 케틀린은 무게를 잔뜩 잡고 진중한 목소리로 일곱 가지 요리와 세 종류의 과실주에 맥주 한 통을 시키더니 반 이상을 혼자 먹어치웠다. 아그나가 극구 사양하는 그라프에게 잡고만 있으라고 술잔을 건네고 반시간을 망설이던 그라프가 한시간만에 취해 쓰러지는 모습까지 봤을 즈음에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슈트반은 어느새 내가 묵을 여관방까지 일 인실 세 개와 이 인실 하나를 잡고 네 개의 방에 전부 목욕물을 올려 보냈다. 뜨거운 물에 목욕까지 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밤중이어서, 딱 기분 좋게 취했던 나는 한숨을 쉬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밤이었다.

 

 어젯밤 실컷 먹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이 되니 다시 배가 고파졌다. 대충 씻고 여관 일층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새로 온 종업원인지 어제는 못 보았던 몸집이 작은 여자아이가 졸린 눈을 하고 주문을 받았다. 뜨거운 수프 한 그릇을 시키는데 이슈트반이 내려와 수프를 한 그릇 추가했다. 이슈트반은 어젯밤 케틀린과 대작을 했는데도 멀쩡하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너야말로.”

 “나야 뭐.”

 

 손을 내젓더니 내 옆에 앉는다. 자신에게는 이른 기상이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종업원이 물 두 잔을 가져다주자 이슈트반은 습관처럼 가볍게 목을 축였다.

 

 “이 근처에 은행이 있나?”

 “있지. 조금만 걸으면 돼.”

 “식사 후에 안내해주겠어? 너의 보수도 줘야하니.”

 “그러지. 다른 사람들은?”

 “그라프는 숙취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그나는 아직 자고 있다. 케틀린은 그라프가 질식사하는지 지켜보는 김에 좀 더 자고.”

 “어젯밤에 그라프가 생각보다 많이 마시던데 괜찮은가?”

 “원래 그것보다 많이 마시는데, 역시 여행이 많이 힘들었나 보더군.”

 “그러는 것 치고는 잘 마시진 않던데.”

 “잘 마시진 않지만 좋아한다고. 취한 채로 기도하면 가끔 신이 보인다고 했어.”

 “신이? 어떻게 생겼는데?”

 “기억 안 난대.”

 “보는 의미가 없잖아…….”

 

 말 없고 재수 없는 귀족인 줄로만 알았던 이슈트반은 생각보다 괜찮은 대화 상대였다. 문득 이슈트반이 말했다.

 

 “계속 반말을 할 생각인가? 도시에 왔으니 귀족 모욕죄로 당장 치안대를 부를 수도 있어.”

 

 맞는 말이었다. 평원에서야 내가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말하건 상관없었지만 도시에서라면 사정이 다르다. 괜히 더 고집을 부리다가 치안대에 잡혀가는 일은 사양이다.

 

 “치사하시군요.”

 

 비꼬자, 이슈트반은 고개를 끄덕인다.

 

 “귀족이 다 그렇지.”

 

 맞는 말이다.

 

 “공작령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귀족 나리가 마녀의 평원까지 건너가면서.”

 “원래 내 고향이 여기야.”

 “중앙 쪽에 사시나보군요.”

 “비슷해. 넌 외곽에서 거의 안으로 안 들어가지?”

 “그야, 뭐. 어떻게 알았죠?”

 “집은 어디지?”

 “……저는 공작령에 안 삽니다. 평원에서 살아요.”

 “마녀의 평원도 공작령이야.”

 “글쎄요.”

 

 적절하게 대화를 끊듯이 중년 남성 한 명이 느긋하게 일층으로 내려왔다. 수염이 덥수룩한 턱을 쓸며 하품을 하던 그는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해왔다.

 

 “레오스? 오랜만이네! 언제 왔어?”

 “오랜만, 네모. 어젯밤에. 손님이 왔는지 안 왔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 좀.”

 “내가 일일이 얼굴 보고 인사 안 해도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안 와. 자네가 온 걸 보면 슬슬 마물사냥을 할 계절인가보네. 아작스가 당신 찾더라고. 왔다고 전해줄게.”

 “아. 아작스.”

 “부른다? 옆 사람은 네가 데려온 손님이야? 어서오쇼.”

 “귀족이시다.”

 “누추한 곳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으리.”

 

 여관 주인, 네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를 푹 숙였다.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슈트반은 어느새 적당히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 손만 팔랑 흔들었다. 이슈트반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처음 봤기에 조금 놀랐지만, 이게 일반적인 귀족의 태도이기는 하다. 오히려 평원에서 내게 보여주었던 태도를 그대로 모든 사람에게 가져다 보여주면 귀족이 맞을까 의심했겠지. 네모에게 관심도 없는 이슈트반 대신 대답했다.

 

 “불편한 점이라기보다는 걱정이 되는데, 주방으로 간 여자애가 수프 냄비에 익사하기라도 한 것 같은데?”

 “뭐? 수프 시켰어?”

 “두 그릇.”

 “이 놈의 가시내가 또 게으름 피우고 있나보네. 금방 가져다줄게.”

 

 네모는 인상을 쓰며 주방으로 꽁무니를 쳤다. 평소 같았으면 손님 대접은커녕 요리가 늦어지건 말건 수다나 떨자고 옆에 엉덩이를 붙여버렸을 양반이. 이슈트반의 눈치를 보고 있음이 뻔히 보였다.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이 없는지 이슈트반은 네모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친한가?”

 “뭐? 나? 여관 주인 말입니까?”

 “우리와는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겨놓고도 어젯밤 함께 저녁도 들지 않으려 했잖아?”

 “저는 지금 네모가 아니라 이슈트반님과 아침식사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이슈트반님이 안 계셨다면 네모와 더 대화할 수 있었을 것 같기는 하네요.”

 “내가 끼어들었다고 항의하는 것 같군.”

 “알아들으셨군요.”

 “…….”

 “농담입니다.”

 “……저 자의 이름이 네모라고? 특이한 이름이군.”

 “평민들 사이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이름입니다.”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고, 이슈트반은 또 입을 다물었다. 네모가 주방에서 수프 두 그릇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네모를 따라 주방에서 나오는 종업원 아이는 한 대 맞기라도 했는지 머리를 감싸 쥐고 투덜대면서 여관을 나갔다.

 

 “맛있게 드십쇼.”

 

 네모는 한껏 웃는 얼굴로 수프 그릇을 내려놓았다. 사실, 이 빠진 그릇에 반쯤 담긴 수프는 뜨겁다는 점 외에 맛있게 먹을 만 한 거리도 없었다. 네모는 수프를 내려놓고도 어물쩍거리며 내 주변을 빙빙 돌더니 결국 내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아버렸다. 귀족에 대한 무섬증보다는 수다를 떨고 싶은 충동이 더 컸던 모양이다. 그래도 눈치는 보는지, 네모가 슬쩍 물었다.

 

 “그, 옆의 나으리께서는 고객이신가?”

 “그렇지.”

 “헤에, 고객.”

 

 네모는 히죽, 웃었다. 그 음흉한 미소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나도 먹고 살아야지.”

 “아무튼 열심히 산다니까.”

 

 네모가 솥두껑만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 스푼 위로 올라왔던 수프가 흔들려 넘치는 모양을 보고도 그랬다. 속이 시커먼 놈 같으니. 저 시커먼 속만큼이나 재료가 꽉 찬 수프를 팔았다면 진작 대박이 났을 텐데.

 

 “아침 좀 먹게 내버려둬.”

 “아작스가 이번에 마법사를 구했대. 괜찮은 놈이라던데,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앉은 자리에서 맥주를 두 통이나 먹고도 멀쩡하게 걸어 나가더라니까? 마법 같은 걸 써서 안 취한거야. 틀림없어.”

 “왜 그렇게 이를 갈아? 맥주에 물 타다가 걸렸어?”

 “조금밖에 안 탔어.”

 

 부루퉁한 얼굴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충고했다.

 

 “그렇게 아작스를 속여먹다가 밥줄 끊긴다.”

 “네 걱정이나 하지 그래. 괜찮겠어? 마법사랑 같이 마물사냥을 가도 되겠어?”

 “안 괜찮을 건 뭐야?”

 “너 마법 싫어하잖아.”

 “누가 그래?”

 

 어깨를 으쓱였다. 수프는 뜨겁고 묽었다. 이걸 소금 넣은 차가 아니라 수프라고 파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새로 온 종업원이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거나 요리를 하다 졸아버린 모양이다. 네모는 인상을 썼다.

 

 “아무튼. 하그한테 네가 왔다고 아작스에게 전하라고 했으니까 곧 올 거야.”

 “난 외출 할 건데.”

 “아무렴 어때. 아작스는 기다릴걸. 이번엔 그냥 좀 같이 가줘. 그 덩치가 쩔쩔매는 게 불쌍하지도 않아?”

 

 성가셨다. 아침부터 붙어 앉아 수다를 떨어대는 네모도, 곧 달려와 있는 청승 없는 청승을 다 떨어대며 나를 마녀의 평원으로 끌고 가려 수작을 부릴 아작스도 성가셨지만 옆에 앉아 없는 사람인 척 하면서 다 듣고 있는 이슈트반도 성가셨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네모는 입맛을 다시더니 화제를 돌렸다.

 

 “어딜 갈 건데?”

 “은행. 식료품점. 술집.”

 “술집은, 영감님 보러? 은행은 왜?”

 “고객님 안내해주러.”

 

 턱짓해 이슈트반을 가리켰다. 네모는 또 음흉하게 웃었다. 그의 턱수염이 진심으로 꼴 보기 싫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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