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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나는 김구다! 제2부 - 홍구공원 1932, 백범 김구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7.11.22

'나는 김구다!' 제2부의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전날 천붕을 당해 의욕이 꺾였던 글인데 권유가 있어 다시 써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인물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인데, 혹시 아니다 싶은 부분이 보이거든 가차없는 질책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3. 상해의 김구 4
작성일 : 17-11-23 16:53     조회 : 547     추천 : 3     분량 : 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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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상해의 김구 4

 

  그 무렵 임정 경무국 백의대와 김원봉의 의열단은 합동작전으로 왜적을 공격하곤 하였다. 3.1만세운동의 비폭력주의 독립운동이 왜적에 의해 분쇄된 후 임시정부 계열 독립운동단체의 반격은 한층 더 집요하고 철저해졌는데, 권총 한 자루, 폭탄 몇 개를 품에 안고 왜적의 심장부에 뛰어드는 지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공작 단계에서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지만 박열의 천황암살계획이 있었고, 김상옥(金相玉)의 종로경찰서 투탄의거, 나석주의 조선식산은행 공격, 송학선의 사이토 총독 습격 기도, 장진홍의 대구 조은지점 폭파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고베항 폭파사건처럼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까지 합하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싸움이 임정 경무국 백의대와 의열단에 의해 행해졌다.

  의열단은 ‘구축왜노(驅逐倭奴)’·‘광복조국(光復祖國)’·‘타파계급(打破階級)’·‘평균지권(平均地權)’의 4개항을 지향하고 단재 신채호(申采浩)의 조선혁명선언을 교전으로 삼았다.

  의열단의 요청으로 신채호(申采浩)가 집필한 조선혁명선언은 무정부주의적인 민중혁명을 주장한 사실상의 테러주의 교본이었다. 의열단의 무정부주의적 테러 활동은 청산리 싸움 이후 대군을 동원하여 한만국경을 넘은 일제의 핍박에 몰려 대규모 항전이 불가능해진 상황 하에서의 방편이었는데, 우리 민족의 성향에 맞지 않는 독립운동 방법이라 하여 온건파 지사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의열단의 총수 약산 김원봉을 임시정부 경무국에 소개한 이는 김당쇠였다. 약산의 집안은 조부 김철화와 부친 김주익까지 대대로 일본어 통역관이었다. 때문에 역시 왜관의 통역관 출신인 김당쇠의 선대 어른들과 교분이 이어졌던 것이다.

  “약산 아우가 드릴 말씀이 있다 합니다.”

  “당쇠형님과는 선대로부터 인연이 깊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일을 돕고 싶습니다.”

  “석오(石吾)선생에게 진작 이야기는 듣고 있었소. 만남이 늦은 듯싶소.”

  김원봉은 신흥무관학교의 양성과정을 반 년 만에 마친 수재였다. 석오 이동녕은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으로 김원봉을 지도했으므로 그가 상해에 오기 전부터 선생에게 유능함을 말하곤 하였다.

  “의열단의 활약상은 잘 전해 듣고 있었소. 경무국의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시오. 김당쇠 동지가 도울 것이오.”

  김원봉의 의열단은 임정 경무국의 비밀 조직 백의대와 운동 방향이 같았다. 무력에 의한 광복을 지향하여 수시로 왜적을 공격하는 의열단은 임정 백의대와 인원이 겹치기도 하여 힘을 합쳐 작전을 벌이기도 여러 차례였다.

  “왜적을 치는 데는 법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임시정부의 칠가살을 존중하고 거기에 오파괴(五破壞)를 더하였습니다. 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 주요기관 등인데, 이미 우리의 동지들이 공작에 나선 경과는 살피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의열단의 ‘오파괴(五破壞)’는 김익상의 남산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등으로 구현되어 왜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임정 경무국은 최근에 일황 히로히토의 장인 구니노미야(久邇宮邦彦王) 육군대장이 대만 순시에 나선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의열단에 맞춤한 인물이 있겠습니까?”

  1928년 2월,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주석인 선생은 경무국장 나창헌, 백의대의 김오산, 의열단의 김원봉을 불러 긴급회의를 가졌다. 그 무렵 임시정부는 심한 이합집산으로 국무령제로는 내각 구성조차 어려워 국무위원제로 개정하였는데, 선생은 이동녕에 이어 국무위원 겸 주석이 되어 있었다.

  “약산 아우의 주선으로 대만에 머물고 있는 의열단의 젊은이가 있습니다. 제가 친히 무술을 전수했으므로 폭탄의 사용과 검술에 능합니다.”

  오산이 추천하는 젊은이란 약관 23세의 조명하(趙明河)였다. 1926년의 6.10만세운동 이후 국내의 독립운동이 핍박을 받자 많은 젊은이들이 한만 국경을 넘어 상해로 몰려들었는데, 조명하는 반대로 적의 땅 일본과 대만을 거쳐 상해로 가는 노선을 택했다.

  조명하의 그 같은 행적은 일본에 도착한 즉시 오산에게 포착되었다. 백의대의 요원들을 거느리고 일본에 주재하여 적을 칠 기회를 노리던 오산은 조명하를 발견한 후 그의 의기를 높이 사서 폭탄의 사용법과 칼 쓰는 법을 가르쳤다.

  “우리 요원이 다음 행로를 지적해 줄 것이니 우선은 타이중에 머물도록 하게. 중국말을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워두는 게 좋을 것이야.”

  조명하가 타이중 시에 머문 지 반년여에 임시정부의 사람이 폭탄과 명령서를 전해 왔다.

  “왜적의 왕 히로히토의 장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王)가 대만에 온다 하오. 그는 현역 육군대장이기도 하니 상징성이 커요. 해보시겠소?”

  “하겠습니다. 왜적을 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것입니다.”

  “경비가 삼엄하겠지만 우리가 엄호할 테니 기회가 있을 것이오.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즉시 멈추어 다음을 노리시오.”

  조명하에게 명령을 전한 사람은 30대 후반의 건장한 사내로 이름은 왕해공이라고 하였다.

  “동지의 뜻이 바르니 하늘이 도울 거요.”

  간단한 말로 용기를 주는 묘한 매력의 사람이었다. 잡상인이나 인력거꾼으로 변장하고 있는 중국인들 여럿이 그를 호위하고 있어 신분이 단순치 않은 듯 보였다. 조명하는 든든한 뒷배를 얻은 기분이었다.

  구니노미야의 대만총독부 순시는 천황의 장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경비가 삼엄하여 접근조차 어려웠다. 조명하는 차라리 대만 총독을 암살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노렸다.

  1928년 5월 24일 아침, 대만 주둔군 제3대대의 열병식을 마친 구니노미야는 대북으로 가기 위해 타이중역으로 향했다. 기마대의 호위 속에 무개차에 올라 연도의 환송인파에 답례하면서 자못 당당하게 행진하던 행렬이 일시 멈춘 것은 타이중 역으로 가는 대정정(大正町)의 도서관 앞길에서였다. 일단의 중국인들이 패거리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방(靑幇)이다! 청방이 대도회(大刀會)와 싸운다!”

  중국인들은 싸움 구경을 목숨을 걸고 즐긴다. 게다가 방파끼리의 싸움은 피를 보지 않으면 끝장이 나지 않을 만큼 격렬하여 볼거리가 많다. 환송인파의 일부가 싸움판으로 몰리고 호위기마대가 소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시 전열을 흩뜨린 순간 조명하가 폭탄을 던졌다.

  “폭탄이다!”

  환송인파가 놀라 길을 열었다. 그러나 폭탄은 불발이었다. 조명하는 분한 김에 칼을 빼들고 뛰어들었다. 호위병들이 달려들어 구니노미야가 탄 무개차를 감싸고 조명하를 잡으려 들었다.

  환송인파 중의 일본인 차림 남자 몇이 구니노미야의 호위병들을 막고 나섰다. 일시 자유로워진 조명하는 구니노미야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조명하는 구니노미야의 심장을 노리고 칼을 찔렀다. 곁에 있던 운전병이 몸을 던져 방해를 했지만 단칼에 해결하고 다시 목표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명색이 일본국 육군대장이고 천황의 장인이기도 한 구니노미야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찰나 이미 중상을 입은 운전병이 필사적으로 조명하의 몸을 밀치고 나섰다. 칼날은 구니노미야의 목 부위에 상처를 남기고 비켜갔다.

  다른 호위병들이 달려들어 조명하의 몸통을 붙잡아 쓰러트리려 하였다. 조명하는 호위병들과 몸싸움을 하며 구니노미야를 향해 칼을 던졌다. 몸 어딘가에 칼날이 박힌 구니노미야가 비명을 질렀다. 조명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목청껏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패거리 싸움을 구경 갔던 중국인들이 다시 몰려와 백주 대낮에 행해진 활극을 구경하고 있었고, 정작 싸움판을 벌여 활극의 전단을 열었던 중국인 결사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조명하 동지가 왜적의 법정에서 당당하게 조국의 독립을 설파하고 죽음에 임했다고 합니다.”

  “조명하 동지의 칼에 맞은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가 상처가 악화되어 죽었다 합니다.”

  두 죽음의 소식을 잇달아 전한 이는 김오산과 왕해공이었다. 왕해공은 임시정부 법무차장을 지낸 해공 신익희의 가명으로 두 사람은 임시정부 경무국의 요원들을 이끌고 조명하의 거사를 도왔다.

  “호경익대장의 도움이 컸어요. 그에게 임시정부의 이름으로 인사를 전해 주시오.”

  호경익(胡景翼)은 풍옥상 계열의 군벌 출신 장군으로 장개석의 북벌에 협력하여 중국 국민군 부사령관과 제2군 군장과 하남성 독판의 직위를 맡았던 인물이다. 4년 전에 죽었는데 임시정부에 호의를 갖고 도움을 주었으므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해공 신익희는 임시정부 측 대표로 나서서 생전의 호경익을 도와 특수부대를 만드는 등으로 활략했었다.

  “청방(靑幇)의 두월생(杜月笙)에게도 인사를 해두어야겠습니다. 그가 이름을 빌려주어 왜왕의 장인을 도륙 낼 수 있었습니다.”

  청방(靑幇)은 상해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는 비밀결사였다. 두목인 두월생은 장개석 정부의 장군으로 영입되어 백색 테러의 대명사인 남의사의 중심인물로 활략하였는데, 5000여 명의 공산주의자와 노동자가 학살된 1927년의 4.12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왜적과 싸운다는 공통 목표를 가진 때문에 임시정부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지만 마약과 매춘을 업으로 삼고 시세에 따라 왜적과 손잡기도 한 복잡한 인물이었다.

  “조명하동지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일을 잊지 마시오. 왜적들이 광분할 터인데 해가 되지 않도록.”

  “조명하동지의 고향인 황해도 송화군에 사람을 보내 가족들을 피신시켰습니다.”

  오산의 답변을 듣는 선생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하나의 늙은 왜적을 치는데 한 사람의 청년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왜적과의 싸움은 아직 길이 먼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이 되어야 할 것인가. 오산과 신익희의 표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작전에 직접 개입하여 한 젊은이를 죽음의 길로 보낸 당사자들로서 어찌 표정이 밝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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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7-11-23 17:00
 
여기까지 기왕에 써놓은 글을 올렸습니다. '홍구공원 1932, 백범 김구'편은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의거까지로 끝맺을 계획이었는데 차일피일 여섯 달을 흘려 보냈네요. 이번 공모전 작품이 끝나면 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부족한 글 올려서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스토리야의 문우님들, 혹시 오류가 보이면 가차없이 질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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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아범 17-11-24 13:45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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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17-12-07 12:11
 
우와 저도 독립운동가 소설을 쓰고있는데, 과하객님 글 보니 더열심히해야겠다는 생각이드네요! 문장하나하나가 다 끝맺음이 너무좋아요. 묘사도잘되있고, 제가 지문이긴소설을좋아하는데 진짜, 좋네요
자주 들려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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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이브 17-12-22 16:06
 
1932년, 청방, 두월생. 저에게는 정말 남다르게 와닿을 수 밖에 없네요. 오늘은 나는 김구다!에 포도주 한 잔 권하고 갑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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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우 18-01-15 05:55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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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8-01-15 10:10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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