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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나는 김구다! 제2부 - 홍구공원 1932, 백범 김구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7.11.22

'나는 김구다!' 제2부의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전날 천붕을 당해 의욕이 꺾였던 글인데 권유가 있어 다시 써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인물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인데, 혹시 아니다 싶은 부분이 보이거든 가차없는 질책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0. 상해의 김구(金九) 1
작성일 : 17-11-23 16:00     조회 : 695     추천 : 2     분량 : 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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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상해의 김구(金九) 1

 

  “제게 미행을 붙이셨습니까?”

  재사인 이광수는 평소 다변이었지만 감정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이 장점이었다. 그날 이광수가 선생에게 항의하는 목소리에는 다분히 울화가 숨어 있었다.

  “백범형님이 제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제가 변절이라도 할 것으로 보셨습니까?”

  선생은 묵묵부답으로 이광수를 지켜보았다. 그가 분노하는 이유야 당연했지만 선생이 이광수에게 사람을 붙인 이유 역시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사람을 물려주십시오. 제가 허영숙을 만난 것 때문에 그러하신 것 같은데, 저도 앞가림 정도는 할 줄 아는 남자입니다.”

  춘원 이광수. 일찍이 소설 ‘무정(無情)’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여 문명을 떨친 그는 3.1만세운동 후 상해 망명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편집을 맡아 필봉을 휘두른 애국문인이었다. 훗날 홍명희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의 불린 이 재사가 마루야마 경무국장이 보낸 밀정을 만난 사실은 진작 보고되어 있었다.

  “허영숙이 마루야마의 사주를 받아 춘원의 귀국을 종용하였습니다.”

  선생의 그림자 집사인 김진경이 걱정스레 말했다. 강화도 체류 시절부터 선생을 호종해 온 진경은 비밀한 일을 해야 할 경우에 그렇게 보고를 올리는 걸로 의문사에 대신했다. 선생은 진경이 이광수의 소설 ‘무정’을 읽고 감상을 말하던 일을 떠올렸다.

  “김오산 동지가 조처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임시정부 경무국 휘하 비밀 조직 백의대를 지휘하여 요인들을 암중에서 호위하고 있던 오산은 진작 이광수에게 사람을 붙이고 있었다. 당시의 상해는 임정 경무국의 사람들과 일본 총영사관 소속 밀정들의 대결장이었는데, 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계 테러리스트들과 국민대표회의파의 무장 세력인 철혈단까지 어지럽게 얽혀 복마전을 이루고 있었다. 때문에 이광수와 같은 선비들은 오산이 보호하지 않았다면 진작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몰랐다.

  “춘원이 일본인들의 보호에 들었습니다.”

  이광수는 프랑스 총영사관의 개입으로 독립신문이 정간되자 낙담하여 방황을 한 끝에 영업부장 이영렬과 함께 돌연 귀국하고 만다. 임정은 출범 당시 안창호가 미주에서 갖고 온 동포들의 성금 25000달러로 프랑스 조계 내의 보강리(寶康里)에 샛집을 얻어 정청을 열었으므로 일본의 항의를 받아들인 프랑스 총영사관의 제재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춘원을 감시하고 있었다 들었소. 어떻게 하실 셈이오?”

  내무총장 안창호는 이광수의 처치에 대해 선생에게 물었다. 식민지 조선의 문화계에서 이광수의 명성은 여타 독립운동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의 배신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안창호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 귀국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오. 적들이 노린 바가 그것인데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소?”

  오산은 이광수에 대한 보호만을 명령받았을 뿐이었으므로 그의 귀국을 방해하지 않았다. 이광수는 국경을 넘은 즉시 신의주경찰서에 체포되어 경성으로 압송되었지만 이내 석방되어 허영숙과 결혼한다. 이후 변절자로서의 일생을 사는데, 때문에 원칙주의자인 안창호의 염려는 당연한 것이었다.

  “춘원은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있어야 할 곳을 찾은 게 아니겠습니까?”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으로 상관이기도 한 안창호의 질문에 선생은 이광수의 입장을 그렇게 변호했다. 이광수의 무기인 붓이 역할을 하기를 바란 결정이었던 것이다.

  안창호는 임시정부의 산파역을 담당한 사람이었다. 3.1운동 직후 임시정부의 태동은 세 갈래의 큰 줄기와 기타 군소 세력으로 갈리는데 한성임시정부와 노령임시정부를 상해파와 묶어 정부로 만들어낸 산파가 안창호였다. 그가 가져온 자금을 바탕으로 출범한 상해임시정부는 출생부터 그러했던지라 크고 작은 분파가 많았고, 뒤늦게 도착한 선생은 임시정부의 문지기 역을 청했으나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각 부의 차장을 맡고 있는 터인데 나이가 든 선생에게 그럴 수 없다하여 경무국장으로 임명한 사람이 안창호였다.

  “임시정부를 일신할 방법이 필요해요. 갈 길이 바쁜데 저리 화합이 안 되고 있으니……”

  안창호가 말문을 돌렸다. 그는 그 무렵 국민대표회의를 주창하고 있었다. 온갖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임시정부는 각기 정파를 위한 주장의 경연장이 되어 정작 해야 할 일을 잊고 있는 듯 보였으므로 모든 정파를 하나로 모을 의회를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었다.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리 주장들이 강하니……”

  선생의 염려는 사실로 돌아왔다. 임정을 떠나 국민대표회의를 주창한 안창호는 자신이 만든 국민대표회의에서 불신임을 당하는 수모를 거듭하면서도 화합을 부르짖었지만 끝내 분열을 막지 못했다.

  안창호가 내려놓은 임시정부 내무총장의 자리는 이동녕을 거쳐 선생에게 돌아왔다. 1924년 6월 6일, 노백린을 국무총리로 하는 새 내각이 출범한 후 선생은 내무총장의 자격으로 내무부령 제1호의 포고문을 발표한다.

 

  소위 국민대표회의에서 6월 2일 연호(年號)와 국호(國號)를 정한 것은 민국(民國)에 대한 중대한 모반이며 세 차례에 걸쳐서 귀순할 것을 권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까지 제정함은 존엄한 권위를 침범하는 처사인 것이다. 본 내무총장은 2천만 민족의 공동 위탁인 치안의 책임 및 4000년 유업의 신기를 보전한 직권으로써 소수인 집회 등 6월 2일 이래의 불궤행위(不軌行爲)의 작소(繳銷)를 명함과 동시에 대표회의 자체의 즉시 해산을 명함.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김구

 

  포고문을 기초하면서 선생은 사사키와의 대결을 생각했다. 백마장군의 전설을 완성시키려고 달려간 압록강 마시탄에서 선생은 필생의 적수 사사키 주로를 만나 손속을 겨루었다.

  -우리에게 사이토를 죽이게 하여 대륙 침공의 명분을 얻으려 하였소?

  -아쉽게 되기는 하였어. 사이토는 조선총독, 뼈마디 하나라도 부셔졌다면 그 값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허나 염려하지 마시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우리인데 일개 사단쯤 동원할 명분이야 못 만들겠소? 오히려 당신네 임시정부가 문제던데 추스릴 수 있을까?

  -조선의 힘은 이 김구가 하나로 만들겠소. 우선은 당신 걱정부터 하시오,

  두 사람의 투지가 한 곳에 부딪쳐 폭발을 일으켰다. 사사키는 손안의 소도를 버리고 몸으로 부딪쳐 갔고, 선생은 진작 맨손이었으므로 기꺼이 몸으로 맞았다. 무기가 있음도 없음도 한 가지인 달인들의 대결은, 태고 이래 사내들이 해온 씨름판으로 변해 몸을 뒹굴게 하였다.

  선생은 그날의 투지를 다시 불러일으키려 하였다. 적은 강한데다 간교하기까지 하다. 지금의 국민대표회의와 임시정부의 분란도 적의 이간질에 원인이 없다 단정하지 못할 터,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선생이 악역을 맡아 몇몇 회색분자를 처형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상해의 형편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멸하고 말 만큼 어지러웠다.

  이 무렵 일본의 외무대신 우치다(內田康哉)에게 보고된 상해총영사 야마자키(山崎警一)의 ‘배일 조선인의 약력’이라는 문서는 선생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김구는 황해도 출신으로 민비사건으로 소위 국모보수의 소요가 발생했을 때 일본장교를 살해한 관계자로 형벌을 받은 일이 있고, 데라우치(寺内正毅)총독 암살미수사건에 연루되어 처분을 받았으며, 황해도에서의 김홍량(金鴻亮) 강도사건에도 관련되어 전후 3회에 걸쳐 십 수 년의 감옥생활을 한 자임.

  성질이 난폭하고 흉악하여 노령 방면을 방랑 배회하다가 대정8년(1919년)에 상해에 도착하여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에 취임, 상해 거주 조선인으로서 비밀 누설의 혐의가 있는 자를 골라 흉포한 수단으로 위협을 하고 있음. 일본 경시청이 밀파한 경부보(警部補) 선우갑(鮮于甲)에 위해를 가한 일이 있으며, 기타 여러 사람에게 비밀누설의 혐의로 위해를 가해 조선인들 사이에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음.

 

  경무국장 시절 17세 소년 밀정 김도순을 총살하고 역시 밀정인 정필화를 교수형에 처해 살성의 오명을 쓰고 있던 선생은 이 무렵 일제에 의해 현상금 20만원이 걸려 30만 달러의 이승만 다음으로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황학선 등 밀정들의 암살 기도로 목숨을 위협받은 사건도 이 무렵의 일인데, 일본국 상해총영사관의 사주를 받아 선생을 죽이려 했던 밀정 황학선은 임정 경무국에 체포되어 처형되지만 선생에게 직접 총구를 들이대기도 한 대담한 인물이었다.

  참고로 선생의 친필 기록인 ‘백범일지’를 보면 “일제는 내 목에 1차로 20만원, 2차로 60만원을 내걸었다”고 쓰여 있는데, 최근에 독립기념관은 “당시 쌀 한 가마니가 20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선생에게 걸려 있던 현상금 60만원은 지금 돈 60억원쯤 되는 거액”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선생이 내무부령 제1호 포고문을 선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국민대표회의의 분파가 만든 조선공화국 사건이었다. 분열을 거듭하던 국민대표회의는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을 주축으로 임시정부 외무총장이었던 김규식을 수반으로 한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을 선포하기에 이르는데, 임정의 문지기를 자처하여 결속을 다져 온 선생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김구가 칼을 빼들었다고? 그 흉포한 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조선공화국 측의 인사들은 소련의 원조를 바라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는데 때 마침 레닌이 죽어 원조를 줄 실체가 없어지는 바람에 스스로 소멸하고 만다. 선생에게 동지를 죽이는 오명을 씌우지 않았으니 레닌의 죽음은 다행, 혹은 천행이라고 해야 할 사건인 셈이었다.

  내무총장의 자격으로 국민대표회의파를 와해시킨 선생은 사실상 임정의 실권자였고 행동력이었다. 임정의 간부들 중에 일제가 보낸 자객으로부터 습격을 받은 일이 있은 후 더욱 날을 세우고 밀정 색출에 열을 올리는 선생에게 오산이 물었다.

  “너무 서두르시는 것은 아닌지요?”

  선생의 답변은 단순명료했다.

  “전날 마시탄에의 대결 때에 사사키는 ‘내가 바로 일본’이라고 하였소. 적은 개인과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부딪쳐 오는데 우리의 형편은 어떻소? 우리는 조금 더 단련되어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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