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만났던 건 학교를 그만 둔 후였던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준희의 소개 덕이었다. 늘 밝고, 긍정적이었던 친구가 갑작스런 우울증으로 방에만 처박혀있으니 놈도 많이 답답했나 보다. 사람 좀 제발 만나라고, 웃으라고 그렇게 소개시켜 준 것이 바로 너였다. 사실... 처음에는 그닥 연애를 할 생각도, 감정을 나눈다는 생각도 내게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감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아마 죄책과 자괴감의 콜라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잘해 보려고 하는 네 모습에도 나는 몇 번씩 선을 그었다. 그렇게 일주일, 이 주가 지나고 나는 당연히 너도 나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위에 남았던 것은 오직 준희와 가족 뿐이었으니까. 누구든 내 곁에 두면, 아니 어떤 것에 익숙해지면 또 다시 울어야 할 것 같아서 너무 겁이 났다. 하지만 피하면 피할수록, 너는 내게 더 다가왔다. 그것도 아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말이다. 내가 혼자 울 때마다 너는 네 좁은 어깨를 내어 줬다. 불안해하면 목소리를 들려 주며 토닥여 주고, 너도 이런 나를 보며 불안했을 텐데 그 여린 속으로 나를 잘도 안아 줬다. 네 오랜 노력 덕분일까? 애써 열리지 않았던 속이, 너무 아팠던 속이 너를 보며 점점 아물었고 오직 네게만 반응했다. 어느새 네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었고, 네가 울면 나도
따라 울었다. 그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이세진과 손현이 아닌 우리. 그리고 우리의 계절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