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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나는 김구다! 제2부 - 홍구공원 1932, 백범 김구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7.11.22

'나는 김구다!' 제2부의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전날 천붕을 당해 의욕이 꺾였던 글인데 권유가 있어 다시 써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인물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인데, 혹시 아니다 싶은 부분이 보이거든 가차없는 질책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3. 종교전쟁 2
작성일 : 17-11-22 11:46     조회 : 460     추천 : 3     분량 : 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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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종교전쟁 2

 

  습격은 밤낮 가림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졌다. 왜적은 경찰력과 헌병대를 동원하여 조선팔도 전토에 걸쳐 대종교에 적을 둔 인사들을 잡아갔다. 약간이라도 대종교의 색채를 가졌던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냥하듯 쓸어갔으므로 전국의 감옥이 터질 지경이었다. 체포의 죄명은 유사종교단체 단속이었고, 법률적인 근거는 2년 전인 1915년 8월에 선포된 포교규칙 명목의 총독부령 위반이었다.

  “왜적이 또 다시 광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대종교의 교인들을 몰이사냥하고 있습니다.”

  평소 과묵하여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던 진경이 분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진경의 본향인 강화도에서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피체되어 갔는데, 대종교의 성지 마니산이 그곳에 있어 교인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적들이 타협을 원하고 있어요. 가족들을 붙잡아 놓고 협박을 하여……”

  진경의 일족은 강화도 토박이로 마니산 참성단과 인연이 깊었다. 참성단은 제천단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고려조와 조선조에 걸쳐 나라에서 큰 일이 있을 때 조상에 고하던 성지로 진경의 일족은 유사로서 제단을 수호하기를 대대로 하였다.

  “가족들이 모두 감옥에 있으니 가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형님이 부탁하신 조카들이 잡혀 있어서……”

  진경의 형 김주경은 선생이 치하포 사건을 일으키고 인천 경무청 옥중에 있을 때 석방을 위해 애쓰던 인물이었다. 정미의병운동 때에 일본군과 싸우는 의병들을 막후에서 도와 왜적의 의해 수배된 후 만주로 망명하여 소식이 끊겼다 하였다.

  “사람들이 필요하면 데려가시오.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써도 좋소. 나도 일간 다녀가리다.”

  강화도는 선생이 치하포 사건 이후 가졌던 삼남 유력의 막바지에 일시 피신했던 곳이었다. 학동들을 가르쳐 생계로 삼았는데, 당시의 제자들이 성장하여 이즈음 선생의 손발 노릇을 착실히 하였다.

  “마니산은 민족의 성지요. 왜적들 따위가 더럽히게 두고 볼 수 없어요.”

  선생의 한 마디 말은 천금의 약속이었다. 조선 팔도의 대동계와 활빈당의 숨은 총수 김구가 입을 열었다는 것은 무언가 행동이 뒤따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경은 안심하고 강화도로 떠났다.

  대종교는 도사교 홍암 나철의 순교 이후 공공연히 민족종교를 표방하고 왜적과 대적했다. 나철 도사교의 뒤를 이은 무원종사(茂園宗師) 김교헌(金敎獻)의 솔선으로 주력이 만주벌로 떠났지만 국내에 남은 인사들은 자금을 모아 뒷받침하기를 여전하여 왜적의 표적이 되었다. 이미 천도교가 일진회 진보회 등으로 갈려 절반너머의 세력을 왜적에게 빼앗긴 상태였으므로 대종교의 그 같은 활동은 민족종교운동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그날의 참성단은 그러한 핍박 하의 대종교가 한얼과 단군대황조(檀君大皇祖)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셨음을 감사하는 개천제가 있는 날이었다. 전국의 교인들이 모였음은 물론 만주로 떠난 2대 교주 김교헌(金敎獻)의 사자가 당도하기도 하였으므로 첩보를 입수한 왜적의 경찰과 헌병대는 한 그물로 잡을 호기라고 대병력을 풀어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황조(大皇祖)이어, 배달국 국조 거발환 환웅천황(國祖 居發桓 桓雄天皇) 천자자손(天子子孫)인 환웅천황(桓雄天皇)의 후손들이 참성단에 모여 개천(開天)을 기리고 민족의 숙원(宿願)인 배달국의 회복(恢復)을 기원(祈願)하오니,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유문이 한얼에 전하고 교도들의 참배가 이어지는 열기 속에 대륙에서 사자로 온 교인들과 국내에 머물러 교인들을 이끌던 사교들 중 대표자 몇이 따로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젊은 교인들이 토론장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사교들의 토론 내용을 밖에 알리지 않으려는 수호의 의지였다.

  “교우이신 백암 박은식(朴殷植)선생이 말씀하셨소.

  '국교(國敎), 국학(國學), 국어(國語), 국문(國文), 국사(國史)는 국혼(國魂)에 속하는 것이요, 돈과 곡식, 군대, 성과 그 주위의 연못, 배, 기계 등은 국백(國魄)에 속하는 것으로 국혼의 됨됨은 국백에 따라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은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우리 대종교는 국혼(國魂)을 지키려는 국교(國敎)이니, 왜적이 조선의 국백(國魄)을 이미 빼앗아 갔고, 이제 국혼(國魂)을 노리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어찌 발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대륙에서 온 백의의 사교에 이어 국내의 교도들을 이끌던 사교가 발언했다.

  “시세를 아는 이가 영걸이라 하였소. 우리는 100만 교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한지 생각해 보아야 하오. 우리가 대조선개국시조(大朝鮮開國始祖) 단군대황조(檀君大皇祖)와 대일본국개국(大日本國開國)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양국의 국조로 인정하고 함께 모시자 했을 때, 왜적이 일시 잠잠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타협을 들고 나온 일부 사교들의 의견을 대륙에서 온 백의의 사교가 즉각 반발했고, 국내에 머문 사교의 재반박으로 논란이 이어졌다.

  “신궁봉경회(神宮奉敬會)의 일은 총독부의 종교 침입 정책에 부화뇌동한 일부 교도들의 변절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소? 홍암 도사교가 순절한 의미를 잊으셨소?”

  “어찌 그 큰 뜻과 분함을 잊었겠소? 허나 국내의 교인들이 몰살을 당하고 있는 이때 교단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 방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지 않겠소?”

  “일시의 편리를 위해 편법을 정당화하자는 말씀이오?”

  “살아남아야 하오. 살아남아야 독립을 볼 수 있지 않겠소?”

  “백의(白衣)에 색물이 묻으면 짙어질 뿐 돌이킬 수 없는 법, 행여 왜적과 타협하자는 얘기일랑 두 번 다시 마오. 게다가 왜적의 총독부는 우리를 유사종교단체라 할 뿐 상대로 인정하려 들지도 안잖소?”

  “만약에 총독부가 인정을 한다면, 신궁봉경회(神宮奉敬會) 때의 일을 계속하실 생각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가 누구와 타협한다는 말이오? 도사교의 순절을 벌써 잊었단 말이요?”

  “허허! 아직도 모르시겠소? 국내의 교인들이 몰살을 당하고 있어요!”

  “대륙의 동지들이라고 편할 리 있겠소? 여차하면 우리 모두가 홍암 도사교의 뒤를 따를 뿐이오!”

  결론이 나지 않은 토론장에는 왜적과 연줄을 놓은 변절자도 숨어들어 있었다. 토론의 내용이 왜적에게 전해 진 건 사흘로 예정된 개천제의 첫 번째 날 초저녁이었다.

  “대륙에서 온 자들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의 주장에 국내에 재산을 갖고 있는 온건파 대지주들이 반발하는 형세입니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땅을 팔아 군자금을 내놓으라 하니 그게 싫었던 거지요.”

  “내분이라. 조선인들 하는 짓 따위, 그런 정도가 고작이겠지. 아무튼 잘 되었어. 저들 스스로 정화되지 못하면 우리가 씻어 주는 방법도 있으니, 기회가 좋아요. 강경파들이 묵는 곳을 가려 ‘그들’을 보내도록. 저들끼리 서로 죽인 걸로 보이도록 하는 게 가장 좋겠군.”

  그 밤 안에 ‘그들’로 칭해 진 왜인들의 무리가 몰려간 곳은 김주경의 집이었다.

 

  검은 옷으로 변복한 왜인들의 자객 집단이 주경의 집의 담을 넘었을 때는 자시(子時)를 넘긴 야심한 시각이었다. 대륙에서 사자로 온 대종교 사교들을 교내의 내분으로 위장하여 죽일 셈이었으므로 무기는 일본인 무사들이 자랑하는 일본도로 통일되었다. 이를 위하여 진작 강화도에 와 있던 특별히 선발된 왜인들이 동원되었는데, 칼날을 벼리며 기세를 북돋은 지 오래였던 탓에 자못 기세가 흉흉했다.

  “웬 놈들이냐?”

  주경의 집은 초가이기는 하였으나 반듯한 반가(班家)의 누대 이어 살아온 고가로 마당이 넓었다. 담을 넘어 들어온 자객 일당이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에 오르려는 순간 안방의 방문이 활짝 열리며 한 소리 호통과 함께 사람들이 나타났다.

  “호! 잘도 조선사람 흉내를 냈구나. 모조리 잡아 정체를 드러나게 하라!”

  백의를 입은 사교가 그 같이 명령을 내렸고, 이내 드잡이가 시작되었다. 자객들은 대종교의 교인들을 가장하려고 한복 두루마기를 겉에 입었는데 차림새가 어색하여 한눈에 변장임을 알 수 있었다.

  하얀 옷 일색의 대종교인들을 맞은 왜인 자객들은 몸에 익지 않은 겉옷을 던져버리고 본색을 드러냈다. 곳곳에 횃불이 올라 대낮처럼 밝은 마당 안에 드러난 자객들의 차림은 그들 고유의 전통 정장인 검은색 야행복이었다.

  흰옷과 검은 옷의 대결이었다. 대님을 단단히 맨 조선의 흰옷들과 검은 색깔 일색의 왜복들은 제각기 무술의 달인으로 좋은 적수가 되었다. 칼날과 칼날이 부딪치고 살점과 핏줄기가 뿌려졌는데, 쓰러지는 이는 대개 검은 색깔 의복을 입은 왜인 자객들이었다.

  “너희 중 대표 되는 자는 나서라! 대조선국의 칼 맛을 보여주마!”

  적의 기습을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던 세력과, 기습전이 함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세력은 싸움에 임하는 기세부터가 달랐다. 낭패를 보았다 판단한 왜인 자객 중의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쳐라!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음을 명심하라!”

  순간, 왜인들의 기세가 살아나고 흰옷들의 칼날 앞에 몸으로 부딪쳐왔다. 광기인 듯 죽음을 자청하는 저돌적 공격이어서 일순 흰옷들은 열세에 몰렸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라! 저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라!”

  대청마루에 우뚝 서서 싸움을 주시하던 흰옷 중의 두령이 우렁찬 호령과 함께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그는 춤을 추듯 검을 휘둘러 왜인 자객들을 수숫단을 베듯 가볍게 쓰러트렸다. 특히 두령으로 보이는 왜인을 택해 칼등으로 일격을 가했고, 제대로 타격을 받아 쓰러진 왜인을 옆구리에 끼고 다시 마루로 오르기까지 순식간에 해치워, 그 행보가 새매 병아리 훔치듯 가볍기가 짝이 없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이놈들은 광신자들로 물불을 가리지 않아 우리 측에도 희생이 있었습니다.”

  선생의 앞에 사로잡은 왜인을 꿇어앉혀 놓고 보고를 올리는 이는 김오산이었다. 오산은 진경과 협력하여 활빈당의 정예들을 이끌고 왜적의 종교 공격에 대처하고 있었다.

  “심문한 결과 이들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뜻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천리교(天理敎)라 하였는데, 저들 나라에서도 사교로 몰려 핍박을 받던 자들이 자객으로 나서서 우리 대종교를 공격한 것이었습니다.”

  천리교는 일본국의 신흥종교로 국교로 공인되고 있는 일본신도(日本神道)에게 몰려 사교로 매도되고 있다가 최근에 인정을 받기 시작한 종파였다. 그렇다면 적들이 꾀하는 것은…… 선생은 왜적이 조선의 혼을 침범하는 본격 작전을 시작했음을 확인하고 마음 자세를 새롭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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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우 18-01-0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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