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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광야에서
작가 : th쓰
작품등록일 : 2017.11.8

홀로 평원에 살아가던 사람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낯선 일행을 만나 시작되는 이야기.

 
1-9. 마녀의 평원
작성일 : 17-11-21 21:19     조회 : 290     추천 : 0     분량 : 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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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 같은 초자연적말을 되찾았지만 오히려 일행의 짐은 줄었다. 식재료도 많이 떨어졌고 용 두 마리 사이에서 정신이 나갔을 때 일행이 가지고 있던 수통 중 하나가 없어졌다. 내 짐이야 말 등에 전부 싣고 있었으니 물만 걱정하면 되겠다만 그마저도 감수한다 치더라도.

 

 “옷이 없잖아.”

 “지룡이 땅으로 들어갈 때 휩쓸린 모양인데.”

 “그럼 어떡하지요?”

 

 어떡하지요? 공손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다. 주저앉은 채 인상을 쓴 아그나가 짐을 뒤지다말고 이슈트반을 올려다본다. 입이 부루퉁하게 튀어나와 있지만 말투는 고분고분하다. 길안내를 자처하고 길안내에 설명에 용에 쫓겨 가며 일행을 치료까지 해준(아그나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 이봐, 야, 하는 껄렁껄렁한 호칭에 틱틱거리고 나중에 때린다며 투덜대기까지 했으면서 자신의 일행에게는 고분고분하게 군다고? 어이가 없어 빤히 쳐다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아그나가 내 쪽을 본다.

 

 “뭐야. 뭘 봐? 불만 있어?”

 “없어. ……아니, 왜 그렇게 삐딱한 자세야?”

 “너 같으면 좋은 자세가 나오겠냐? 옷은 날아가고 스푼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데.”

 

 고개를 젓는다. 이 일행의 리더가 아그나이리라 짐작했던 내가 성급했을지도 모른다. 외부인에게 대항한 사람도, 뒤처지는 일행을 신경 쓰고 챙기던 사람도, 위험 요소를 배제하려 경계하고 의심이 가는 대상에 대해 질문한 사람도, 심지어는 나를 일행에 받아들이려 한 사람도 아그나였기에 당연히 일행을 이끄는 사람이 아그나라고 생각했다. 그라프는 약했고 케틀린은 조용했다. 하지만 이슈트반은 흥분한 아그나를 제지하고 길안내에 대한 선금을 지불하고 상황을 파악하며 행보를 결정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일행의 역할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러니 아저씨가 나를 허술하다 놀렸어도 반박을 못 했지.

 

 아니, 이상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 일행이다. 이슈트반은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했지만, 일행 중 누구도 이슈트반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이슈트반의 언행에 끼어들지 않았다. 마치 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슈트반을 존중했다.

 

 “이봐, 이슈트반.”

 “왜?”

 “너 귀족이냐?”

 

 켁! 아그나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 툭. 그라프는 막 어깨에 메려던 가방을 떨어트린다. 할버드를 맨 케틀린의 등이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이 자식 정말로 귀족이군. 이슈트반이 가볍게 한숨을 쉰다. 직설적으로 물어본 내게 뱉는 한숨인지, 거짓말은커녕 태도로 전부 긍정해버리는 제 일행을 향한 한숨인지는 모르겠다.

 

 “그래. 하지만 태도를 바꿀 필요는 없어. 이름도 못 받은 지방의 방계 귀족이라, 위자료 몇 푼 받고 집안에서 쫓겨난 처지다.”

 

 지방의 방계라면서 쫓겨날 때 위자료씩이나 받았다고? 의구심이 들어 말고삐를 잡은 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이슈트반이 경계하지 말라는 듯 양 손을 들어올린다.

 

 “그나마 있던 돈은 여행 중에 호위해줄 사람을 고용하느라 다 썼어.”

 “내 길안내 비용은?”

 “공작령의 은행으로 가면 다른 친척의 이름으로 돈을 조금 뺄 수 있어.”

 “그럼 너희는 고용 관계인가?”

 “케틀린은 우리 가문의 기사야. 성격이 이래서, 내가 쫓겨나니까 스스로 그만두었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앞서 죽었다던 마법사와 다른 한 명도 용병이었던 모양이다. 아그나는 그렇다 치고, 그라프도 용병이었다니 의외다. 케틀린의 ‘이렇다’는 성격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

 

 “아그나. 고용 비용이 얼마였지?”

 “어? 나? 그, 글쎄? 그건 왜?”

 “마녀의 평원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따라온 걸 보면 사기 당했을까봐 걱정되어서.”

 “안 당해, 이 새끼야!”

 

 비꼬듯 말해주자 아그나가 버럭 화를 냈다. 이슈트반이 웃으며 손을 내젓자 아그나가 이를 갈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이슈트반은 즐거워하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주당 금화 다섯 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추가로 금화 열 개를 더 주기로 했지.”

 “주당 다섯 개?”

 

 아그나와 그라프를 번갈아 보았다.

 

 “저 두 사람에게 주당 다섯 개?”

 “명당 한 주에 다섯 개.”

 

 다시 아그나와 그라프를 보았다.

 

 “추가로 열 개?”

 “무사히 도착하면.”

 

 다시 아그나와 그라프를 보았다. 웃었다. 아그나가 주먹을 쥐고 웃으며 말했다.

 

 “불만 있으면 말해봐.”

 “불만은 없는데. 귀족들의 생각은 알기 힘들군. 귀족이든 뭐든 내게 대접받을 생각은 마라.”

 

 본격적으로 고함을 지르려는 아그나를 뒤로 하고 말에 올라탔다. 다시 길을 찾기 시작하자 떠들던 일행도 묵묵히 나를 쫓았다. 출발하기 전, 이슈트반이 물었다.

 

 “나도 한 가지 묻지. 넌 어떻게 용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지?”

 “마녀의 평원에 사니까.”

 “평원에 산다고 해서 다들 용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 마물사냥꾼 중에서도 너만큼 용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못 봤다.”

 

 어깨만 한 번 으쓱여주고 말았다.

 

 오래 전, 평원에는 마녀족이 살았다. 평원이 마녀의 평원이라 불리기도 전, 이름 없는 허허벌판이었을 때부터였다. 그 때 평원은 이토록 악명 높은 땅이 아니었다. 평원에 이름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들이 마녀족을 배척하지도 않았다. 마녀족은 수도 없이 많은 소수민족 중 하나였으며 평원과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민족일 뿐이었다. 그저 특이한 주술을 쓸 줄 아는 민족. 마법사와 마녀족은 오히려 사이가 좋았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신비한 주술에 관심을 보였고 마녀족은 주술이 담긴 물품을 가장 비싸게 사주는 마법사들과 관계를 유지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국가들이 아르마디아나 카나르만을 국교로 두지만, 예전에는 많은 국가들이 자유 교리를 따르는 종교를 마음대로 섬기도록 내버려두었다. 소수민족을 억압할 정도의 권세를 가진 종교도 없었다. 그러나 국가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종교를 끌어오자 자연스럽게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이 시작되었다. 종교는 힘을 얻었고 종교에 반하는 사람들은 점차 사라졌다.

 

 마녀족도 그 중 하나였다. 신성력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마녀의 주술은 종교인들의 심기에 어긋나기에 충분했다. 마녀족의 주술에 잘못 걸린 신관이 신성력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신성력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묻혀졌다. 소수민족을 탄압함에 따라 마녀족은 대륙 내에서 점점 세가 작아졌다. 마녀족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곳이 이 곳, 마녀의 평원이다. 마녀의 평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죽어가는 마녀들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주술을 있는 대로 썼다.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저주와 행운이 오고갔다. 마녀들은 마녀족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연구되지도 못한 주술도 기꺼이 행했다.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을 죽였다. 죽어가는 동족을 살리고 모르는 이에게 고통을 주었다. 삶을 이어가고 생을 끝냈다. 삶을 위해 주술을 쓰던 마녀들은 삶을 위해 주술에 속박 당했다. 마녀들의 피에 마력이 흐르게 되었고 주술이 담긴 물건과 부적은 상상도 못 할 곳에까지 쓰였다. 주술은 땅에도 하늘에도 영향을 끼쳤다.

 

 수백 명의 마녀들이 학살당한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력이 담긴 마녀의 피를 한껏 머금은 숲은 번식하듯 세를 넓히고 사람과 짐승을 잡아먹으며 움직였다. 마녀들의 피에 담긴 원한은 숲을 살아나게 했다. 제국의 성기사들이 반항하는 소수민족을 죽일 때, 마녀족은 평원에 마물을 불러내 성기사들에게 대항했다. 마녀족이 죽고도 마물을 부르는 주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술을 해체할 마녀들이 전부 죽자, 주술은 서서히 평원 깊숙한 곳까지 새겨져 다단한 결착을 이루었다. 평원 자체에 걸린 주술은 평원이 사라지기 전까지 끝나지 않으리라는 소문이 돌았다. 마녀족은 허허벌판에 숨기 위해 평원 곳곳에서 주술을 외고 의식을 행했다. 평원에는 지나치게 많은 마력이 모였다. 거대한 마력과 마녀족의 주술, 마법사의 마법이 고였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소수민족들도 살아남기 위해 마녀족을 주축으로 힘을 모았다. 이제 사장되어 연구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학문과 기술이 마력을 통해 뒤섞였다. 평원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다. 그 누구도 하늘과 땅이 뒤틀린 공간에서 마물을 물리치고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평원의 뒤틀림은 소수민족들을 탄압하는 또 하나의 구실이 되었다. 더 이상 억압도 탄압도 아닌 학살이 끝나고, 평원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민족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녀의 평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는 마녀가 아니다. 내가 쓸 줄 아는 주술은 한정적이고 그나마도 불안정하다. 어릴 적 배운 몇 가지 주술은 내게 마녀족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는 마녀의 이름을 자처할 정도는 아니다. 내 어머니는 분명 마녀족이었겠지만 나는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평원에 발을 들일 때면, 나는 마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하늘과 땅에 서린 주술의 마력. 숲의 나무와 흙에서 풍겨오는 피비린내. 마물을 속박하는 주술의 흔적. 이 평원은 마녀의 평원이다. 평원 곳곳에 마녀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니, 평원을 유지시키는 모든 것이 마녀의 주술과 마력에서, 마녀의 피에서 어우러지고 있었다. 이제 평원은 마녀의 마력과 피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궁금했다. 왜 아무도 모르지? 막연하게 평원 어딘가에 마녀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렇게나 짙게 마녀의 향기가 남아있는데, 마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평원을 돌아다니면 언젠가 마녀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 기대했다. 실제로 나를 키운 아저씨와 평원을 여행하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용을 만났다. 십 년 전 나는 지룡 리산데르와 눈이 마주쳤다. 그 때, 리산데르는 나를 알아보았다. 내가 마녀족이라는 사실을, 평원을 마력으로 뒤덮고 숲에 피를 뿌려 움직이게 하고 마물을 불러들여 평원과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킨 마녀들의 일원임을 알았다. 리산데르의 녹색 눈이 나를 꿰뚫었다. 지룡 리산데르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가 마녀족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내가 혼자임을 인정했다.

 

 지룡 리산데르는 마녀의 숲을 자신의 영역으로 정했다. 마녀의 숲은 마녀들이 학살당해 흘린 피를 먹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룡 리산데르는 나를, 혼자 남은 마녀족을 동정해 죽이지 않고 살려보냈다. 나는 마녀이기를 포기했다. 나는 마녀가 아니다. 나는 용이 싫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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