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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11-1. 그대와 영원히(1)
작성일 : 17-11-19 02:04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3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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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붉은 바다 해 끝까지 그대와 함께하리 이 세상 변한다 해도 나의 사랑 그대와 영원히… ‘그대와 영원해(이문세/유재하 사,곡) 中]

 

 그 날, 런던의 밤하늘은 유독 더욱 짙었다.

 

 잉크를 뿌린 듯 새까만 바탕에 누군가 실수로 우유 방울을 흩뿌린 것 같은 색을 가진 봉오리들이 작은 군락으로 모여 꽃피어 있었고, 씨실과 날실로 얽히어 만들어진 무늬처럼 구름들이 그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던 진명의 머릿속에는, 밤하늘은 어디나 같은 것이로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물에 젖은 솜마냥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려 있다는 느낌을 서너 시간 남짓 하는 비행 속에서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본 항공편은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인 과실주 같은 색상을 가진 등불 아래, 밤 비행에 지쳐 맥주 같은 잠에 빠져든 사람들에 무심한착륙 안내방송이 환청처럼 진명의 귀를 울렸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어둠만이 맴돌고 있던 자구마한 창틀은 어느 새땅 아래로 자작하게 빛나는 불빛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것은 흡사 망망대해에 있는 오징어잡이 배 무리를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진명은 저 이름 모를 노란 꽃밭과도 같은 전등이야말로, 자신이 마주친 애란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의 가호를 받아 한없이 빛날 것 같았던 전등도 밤이 지나면 꺼질 것이고, 그것은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아릿한 아쉬움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사실, 진명은 애란이 세월의 풍파를 맞아 변할 것이라고는 어느 정도 감안해 왔다. 푸른 일기장 속 청초하고 음악을 사랑했던 애란이 정말로 변한 것이 없이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이 기적적인 일이라 생각했었다. 사실, 그런 변화는 진명이 봐 왔던 여러 매체에서 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철없던 열여섯 살, 중학교 교복이 거의 작아져 가던 시절 몰래 마음 속에 담았던 교생을 10년 뒤에 모종의 우연으로 마주치니 아이 둘을 데리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그의 친어머니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되어 가는 것이라던가. 그러나, 애란의 현재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쑥대밭이 되어 버린 도시가 가장 어울리는 비유일 것이라고 진명은 생각했다. 아니, 그 비유에 한 술 더 떠서 '쑥대밭' 앞에는 '전쟁이나 어떤 크나큰 재앙으로 인해', '도시' 앞에서는 '한때는 번영했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더 맞는 말이라고 보았다. 진명은 과장법을 쓰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부풀린 표현을 통해 음악가의 옛 애인을 떠올리는 자신을 허용하기로 하였다. 그의 심정은 그가 걸었던 삭막한 탈린의 거리이자, 좁디좁은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가족사진이었고, 그보다 몇 곱절은 더 큰 구멍을 가슴에 떠안고 살아야 했던, 말 없는 그녀의 모습이기도 했다. 마치 그리운 누군가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것처럼, 진명의 고개는 푹 수그러진 채 한참 동안 들리지 않았다. 찰나의 밤 속에서 빛나는 전등도, 진명을 태운 비행기가 스치고 지나갔던 올망졸망한 구름들도 그의 시야에는 한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비행기는 출발했을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면서, 수업시간 후에 교실에 들어 온 지각생처럼 땅에 발디뎠다. 하늘을 휘젖던 모습과 비교해 굉장히 느리게 느껴졌던 육지에서의 주행을 마친 뒤, 점차 탈린에서 여정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런던의 공기를 마주하기 시작할 시점에 진명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 사이에 이메일이 세 통 정도 와 있었고, 문자는 두 개 와 있었다. 일단 문자 버튼을 누른 진명은, 맨 위에 당당하게 적힌 '이효은'이라는 글씨를 보고 왠지 모를 안도감과 탄산수처럼 톡 쏘이는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도착하면 연락해!'

 

 '마 히드로 공항인가 문가 억시로 머네...'

 

 반듯한 표준어로 쓰여진 첫 문자에 진명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이어진 그 다음 문자에 진명의 입에서는 저절로 푸핫, 하고 외마디 웃음이 나와 버렸다. 모니터 위에 버젓이 공존하는 낯설음과 익숙함에, 그리고 그가 주는 상반에 진명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솜도 조금씩 보송해지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이런 상황에 그런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여정에 함께한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진명은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나 도착했어. 입국게이트 앞에서 만나!'

 

 - - -

 

 진명은 마치 잠을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잔 수험생이 수업에 있는 것처럼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시야에 들어왔다가 나와 버린 런던의 밤은, 은은한 노란색과 짙은 보라색이 섞였고 엄밀히 따지면 보색인 이 두 빛깔이 자유롭게 맞물리는 기묘한 풍경을 담고 있었다. 시내행 급행 열차가 자신의 소행을 다하면 다할수록, 강렬한 두 빛깔은 마치 저들끼리 둘만의 왈츠를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 춤은 탱고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진명은 상상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진명이 모아왔던 자료들도, 그렇게 자기들만의 색깔을 또렷하게 가진 탓에 진명에게는 제각기 다른 춤선을 가진 무용수를 모아 군무를 지시하는 안무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현실 앞에 자신의 꿈을 어느 정도 내려놓은 채 이제는 성인인 두 딸을 둔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은성, 여전히 음악계에서 떠나지 않으며 국제결혼에 성공한 인텔리로 살고 있는 엘르 킴, 그리고 꿈을 찾아 머나먼 타국까지 왔건만 마주친 시련이 너무 가혹하여 결국 꿈도, 자신의 인생도 송두리채 먹혀 버린 애란. 이 셋을 훌륭하게 묶는다면 누구의 시선이라도 확 잡을 수 있는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진명은 자신했지만, 정작 그 세 가지를 하나로 효율적으로 묶을 수 있는 방도는 아직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만 있다면 기사를 쓸 수 있는 구도는 잡힌 건데, 라고 진명의 가슴은 그렇게 암시하고 있었지만, 방법을 찾는 것이란 진명에게는 야산에서 사금을 찾는 것마냥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애란 씨 어땠노?"

 

 꽤 길게 느껴졌던 침묵을 깨고 말문을 뗀 효은을, 진명은 무심코 쳐다보았다. 그를 지긋이 바라보는 효은의 나른한 눈동자에서, 진명은 다시금 표준어로 적힌 그녀의 문자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제각기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은 불과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나, 에스토니아에 있으면서 체감했던 시간이 실제보다 길었던 탓인지 진명은 효은을 보며 약간씩은 생경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진명은 이러한 감정은 잠시 숨겨둔 채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어...생각보다 좀 변했더라고. 세월이 많이 지났긴 지났나 봐."

 

 "...맞나?"

 

 그렇게 진명의 말에 짤막한 너털웃음과 함께 대답을 했던 효은은, 순간 진명으로부터 시선을 돌린 채 창문 바깥으로 어스름하게 보이는 런던의 건물들을 보았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효은의 눈동자는 그렇게 잠시 깜빡였고, 눈의 움직임에 따라 들리는 그녀의 속눈썹에 드리운 그림자가 유독 짙어 보였다. 이 하루 온종일 잠시 내려 놓으려고 노력했던, 이제는 자신 앞에서 턱을 괴고 있는 이 여자를 중심으로 도는 태풍이 다시금 진명의 마음을 휩쓸려 하고 있었다. 그런 진명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돌려 다시 한 번 가만히 응시한 뒤, 효은은 짐짓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그래도 기사 나오믄 울 옴마가 억수로 좋아하시긋다."

 

 그러고 나서 효은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이내 아차 싶었는지 진명을 향해 그저 말 없이 환히 웃기만 해 보였다. 효은이 자신을 향해 지어 보이는 그 미소에서, 진명은 부산에 왔던 때 은성이 지어 보였던 그 미소를 어렴풋하게나마 보았다. 아니, 어쩌면 그 미소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찍었다는 빛 바랜 사진 속 젊은 은성과 더 가까운 것이라고 진명은 그렇게 짐작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대답이 나오든 의미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진명은 그저 효은에게 똑같은 미소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피어났던 의문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 나가고 있었다.

 

 사랑이었다.

 전혀 달라 보이는 세 여인의 삶, 광범위하게는 그저 이야기들을 모으는 이야기꾼일 뿐인 진명 자신마저 묶을 수 있는 매개체는 사랑이었다. 그것도 과거로부터 이어진, 시간이 흘러도 마음 언저리에는 늘 자국처럼 남아 있을 그런 사랑.

 
작가의 말
 

 제가 최근에 바쁜 일들이 많은 관계로 일주일 동안 연재를 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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