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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네
작가 : 강서진
작품등록일 : 2016.8.22

평범하게 일제 시대를 살아간 못난 한 여자 아이.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국가와 나라에 해가 되었던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재산은 교육을 위해서 쓰였던 그런 이야기.

 
입궁(1)
작성일 : 16-08-30 23:49     조회 : 453     추천 : 1     분량 : 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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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구름이 맑은 하늘 위로 흐드러지고 아이들은 그 아래서 햇살을 받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후줄근한 두루마기에 삿갓을 쓴 노인의 초점은 그 모습들을 훑다가 개똥이라 이름 불리는 어린 남자아이에게 가서 붙박혔다. 꿰뚫을 듯한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아이는 뛰었다. 아이는 이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벌겋게 번진 하늘을 뒤로 하고 아이들은 낄낄 거리며 인사를 나누며 저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오전 내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동안 배가 고팠던 것인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마다 아이들이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집에 먹을 게 없던 아이는 아이들이 사라진 동안 초가집의 흙벽을 몰래 야금야금 뜯어먹기도 했다. 그 풍경 속에서 제 집을 향해 달려가는 한 아이. 개똥이었다.

 개똥을 계속 지켜보던 노인은 삿갓을 내리고 조용히 뒤를 따랐다. 아이는 대문으로 뛰었다. 몰락한 변두리 왕족의 집은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에 걸맞게 기왓장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노인은 길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크흠’, 짐짓 기침을 내뱉고는 개똥이의 앞을 막아섰다.

 개똥이는 달려오는 동안에도 계속 울고 있었다. 노인이 개똥의 앞을 막아서자, 개똥은 그제서야 노인을 존재를 알아차리고 흠칫했다. 노인을 보고서 개똥은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그는 갑자기 길을 막은 노인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노인은 얼굴이 삿갓에 반쯤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개똥이가 인사를 건넸지만 노인은 대답이 없다. 개똥이를 제외하고서는 그 노인을 보는 이도 없었기에 개똥은 그 노인의 침묵에게 제압당해 있었다. 개똥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말없는 노인을 마주보고 있었다.

 개똥의 당혹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침 저 길 저 편에서는 아버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개똥이는 저 먼 곳에 걸어오는 아버지를 보고서 더욱 초조해졌다. 강성인 아버지는 취해 들어오기 일쑤였고 이유없이 여기저기에 싸움을 걸기도 하였다. 노인이 이유도 없고 말도 없이 집 앞에 있는 것을 아버지가 본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야아, 개똥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자 더욱 개똥이는 초조해졌다. 당장 아버지 앞으로 달려가야만 했지만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개똥이의 마음과 달리 삿갓 속의 얼굴은 개똥이의 아버지, 이하응의 얼굴을 보았다. 이하응은 자신을 향해 내질러진 시선을 불쾌하게 보았다.

 “누구시냐?”

 개똥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버지의 불같은 성미를 알고 있는 개똥이었다. 노인이 지금까지처럼 계속 말없이 서있다면 싸움이 날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개똥이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노인이 개똥의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절을 한 것이다.

 개똥이는 물론 아버지인 이하응마저 그 상황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절을 하고 일어난 노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개똥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래의 주상전하께 감히 절을 올립니다.”

 둘의 얼떨떨함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무슨 소리요!”

 한참이 지난 후에 이하응은 호통을 쳤다. 이 자가 미친 것이 아닌가. 이하응은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자신의 숨겨둔 야심을 누가 알고 있을지 재어 보았다. 쉽사리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천하디 천한 관상가요, 허나 실력에는 자신이 있사오니, 얼굴이 제왕의 상이라 그대로 말씀드렸을 뿐이지요.”

 정적이 이어졌다. 순간 크게 웃음이 울려퍼졌다. 이하응의 것이었다.

 “크하하하! 이 노인 참!”

 노인은 미소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누구요?”

 이하응이 물었다.

 “백운사라 부르지요.”

 “크하하, 내 참. 복채는 얼마를 원하오? 내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어서! 크하하하!”

 “당장은 괜찮습니다. 이 분이 제위에 오르는 날 다섯 수레를 가져오지요. 그 수레에 꽉 찰 정도. 약속해주시는 겁니다.”

 “그러도록 하시게.”

 이하응은 호탕하게 웃어젖혔지만 한편으로는 기묘함에 섬뜩함을 느끼고 백운사를 보았다. 백운사는 기분나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개똥이 역시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노인은 거리를 걸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이하응은 허리에 식은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파락호로 타락한 세월을 보내어 밑거름을 만든 지도 어언 수년 째. 호조판서 김병기가 자신을 시험하려 들 적에도 그에게 장남의 관직을 청탁하여 고개를 숙이고 애처로운 비굴함을 보여 자신을 숨겨왔었다. 김병기의 헛웃음이 안도감이기도 했으나 자신에게는 얼마나 구차한 것이었던가.

 자신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일부 환관과 궁녀들을 제외한다면……그들은 어차피 자신의 편이었고 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 신경쓸 것도 아니었다. 헌데 이 노인은 그 것을 다 꿰뚫어보는 듯이 다가오지 않는가?

 이하응은 일부러 크게 웃으며 기뻐했던 것이다. 당황하면 그 것이 왕좌의 야심을 드러내는 꼴이 되므로. 그리하여 이하응은 천진하게 즐거워하는 듯 가장하며 노인을 바라보았으나 노인도 알았을 것이다. 그 순간 서로를 스치고 지나간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이하응은 그 노인의 입가에서 묻은 미소에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보가 새어나갔는가?’

 이하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니야. 일개 점쟁이일 뿐이다.’

 이하응은 가만히 서있는 둘째아들 개똥을 보았다. 위기감을 달래기 위해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예언이 맞다면 기분 나쁠 것은 없다.’

 이런 점술에는 단순하게 대응할 필요도 있었다. 점으로만 본다면 기분좋은 점괘였다. 이하응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번졌다.

 “개똥아. 이제 너도 나이가 찼으니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야겠다.”

 “네, 아버지.”

 아버지의 생각과 관계없이 개똥은 ‘왕’에 대해 생각했다. 왕이라는 것은 힘을 가지는 것.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 왕이 된다면……좋을 것이다.

 군밤장수가 준 모멸감, 그 아이의 시선.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만 자신의 무책임함.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개똥은 다시금 얼굴이 벌게졌다. 힘을 가지고 싶었다. 개똥은 욕망했다. 힘을 가지고 싶었다. 복수하고 싶었다. 개똥은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수하겠다고. 그리고 그렇게 비굴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저 지나가는 노인의 한 마디였지만 이런 파락호의 아들이 아니라 왕으로서의 삶을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제가 왕이 될 수 있을까요?”

 “자만하지 말거라. 오늘은 누구와 놀았기에 모습이 그러냐? 네가 쌈박질을 할 때도 있구나.”

 이하응은 둘째아들의 고개 숙인 모습을 보며 순하디 순한 둘째 아들이 적합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철종은 후사가 없었고 배경도 없었다. 호기롭게 놀고 가진 것을 다 써가며 명사들과 친분을 쌓은 것이 결실을 볼 때가 되어가고 있었다.

 

 

 2. 입궁

 

 순이가 집에 왔을 때 마루에는 치마저고리와 바지감으로 쓸 흰 명주 1필이 놓여 있었다. 아까의 최상궁이라 불리던 여인이 주고 간 것이라 하였다. 어머니는 하루 동안 저고리를 염색하였다.

 며칠 후 아침이 밝았을 적에 순이는 노랑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고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가마꾼이 집에 와서 서있었다. 순이는 가마를 보고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배를 곪지는 않을 게다. 미안하구나.”

 어머니의 미안하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순이로서는 알 수 없었다.

 궁녀는 천민의 신분이었으며 궁궐에 배속되어 있다 뿐, 공노비와 다를 것이 없었다. 또한 궁녀가 된다는 것은 평생을 갇힌 공간에서 노동하며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독신으로 지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훗날 궁궐을 나온 뒤에도 남자를 만날 수 없었으며 남녀 간의 교제가 발각되는 즉시 참형으로 다스려지고는 했다.

 세종조에는 정표만 주고받았던 궁녀와 내시가 사형을 당했던 일이 있었다. 그렇게 궂은 일이다보니 사람마다 여식을 궁녀로 보내기를 꺼려 10세만 넘으면 결혼을 시키는 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자리잡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선의 초기에는 사대부의 여식들이 궁녀를 했던 전통이 있었다. 특히 왕실의 기밀을 가까이 하는 부서인 지밀을 뽑을 때에는 학식과 외모, 가풍은 물론, 신분도 까다롭게 따졌다.

 그러나 왕의 입장과 신하들의 입장은 달랐기에 왕은 사대부의 여식을 궁궐로 들이고자 했으나 양반과 사대부들이 자신의 여식을 궁궐로 들이는 것을 좋아할 리 없었다. 궁녀에 대한 말이 있을 때면, 왕과 신하는 매번 다투었다.

 왕과 백성들의 오랜 대립은 결국 백성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조선초에는 사대부 첩의 자녀였던 서녀들이 궁녀를 했던 것이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기피되어 조혼이 사회문제로까지 번지자 양반과 중인은 물론이요, 평민까지도 궁녀로 선출되는 것을 국법으로 금하게 된 것이었다. 천민만이 궁녀를 할 수 있도록 원칙이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평민인 순이가 궁녀가 된다는 것은, 평민에서 종으로, 즉 천민으로 신분이 내려간다는 것을 뜻했다.

 순이는 자신 앞에 서있는 가마와 가마꾼을 보고 생전 처음의 사치에 놀란 표정이었다.

 “어서 타거라.”

 네모진 작은 방에 들어가자 덜컥거리며 작은 방이 위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손잡이를 쥐고 자신이 탄 방을 높였다. 순이는 그 것이 가마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 방은 흔들거리며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한 시진 쯤 지났을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작은 방은 멈추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순이가 가마꾼에게 묻자, 가마꾼은 이마로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여기가 임금이 사시는 곳이지.”

 그 동안 살아오며 보았던 어떤 집보다도 크고 화려한 집을 바라보며 순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그 집을 궁궐이라고 말했다. 임금이 머무시는 집. 일반 기와집과 다르게 색색이 화려했다. 궁궐 안으로 들어가자 초록빛의 옷을 입은 여인이 서있었다. 초록빛의 옷이 궐문의 색과 닮아있어서일까. 순이는 궐문을 들어올 때 느꼈던 위압감을 그녀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순이의 먼 친척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자신은 최상궁이라 불리며 앞으로 자신을 최상궁마마님이라 불러야한다고 말했다.

 ‘최상궁이란 분이 있어. 너를 보살펴주실 분이니 말 잘 들어야한다.’ 순이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섣달그믐을 앞에 두고 데려오다니. 데려올 때가 따로 있지. 이 집도 어지간히 배 곪았나보우.”

 순이의 뒤에 서있던 가마꾼이 최상궁을 보며 말했다.

 “섣달그믐을 이 조그만 애가 견디겠소?”

 앞에 섰던 가마꾼도 혀를 차며 최상궁을 보았다.

 “어차피 평생을 살 것인데 언제 오든 무어가 그리 중요하오.”

 “딱딱하긴. 점쟁이가 팔자 죽 읊자 어미가 다 듣지 못하고 궁궐에 보내버렸다는 사람이니 마마님은 그 것을 견디기도 하겠지마는.”

 뒤편의 가마꾼이 실실 웃으며 그녀에게 농을 건넸다. 최상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하여튼 수고했소.”

 최상궁은 가마꾼을 뒤로 하고 순이의 손을 잡았다. 순이는 최상궁의 손을 잡고 대궐을 걸었다. 하얀 돌로 된 바닥과 다리, 작은 연못이 아름다웠다. 연못 안에서 잉어 한 마리가 순이에게 인사하듯 수면 위로 입을 내밀고 뻐끔거린다. 그런 광경을 보는 와중에도 순이는 가마꾼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궁궐 생활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눈치를 보기 위해 최상궁의 표정을 살폈지만 최상궁의 무뚝뚝한 표정은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섣달그믐. 가마꾼 아저씨들은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기에 견딜 수 있겠느냐고 하였을까. 순이는 며칠 남지 않은 섣달그믐날에는, 그리고 설날에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섣달그믐이라면 한 해가 저무는 날. 까만 밤하늘에 영혼처럼 일렁이는 불길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짚이며 모든 것을 태우고 깨끗이 해서 잡귀를 쫓고 새해를 맞이한다고 말했다. 궁궐에서는 대포도 쏜다고 하던데 그런 것도 구경할 수 있을까? 순이는 설레면서도 두려웠지만 이 궁궐이라는 곳이 신기하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아름답구나.’

 별빛이 내려앉은 호수와 하얀 돌로 만들어진 다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순이는 별세상에 온 것 같았다. 바깥의 지게꾼들과 거리를 떠도는 배설물들의 냄새가 생각난다. 이 곳은 그 곳과 동떨어진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특이하고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은 느긋하게 길을 걷고 있었고 해가 지고 난 후에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한가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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