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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집사와 남편 사이
작가 : 루야
작품등록일 : 2017.11.7

메이블 공작, 비올레타 메이블에게 7살 이전의 기억은 없다.

그녀의 나이 7살, 죽을 뻔한 비올레타의 앞에서 부모는 걱정 하나 하지 않았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죽을뻔한 너를 살린 사람은 황제 폐하이니 그 분께 평생을 바쳐라.'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노예처럼 부려지는 것에 불만을 가졌고 스물이 넘은 후로는 반항심이 생겼다. 하지만 무려 7살 때부터 지속된 세뇌는 그녀를 당당해질 수 없게 만들었다.

26살, 19년 동안의 속박을 마침내 예정된 죽음으로서 벗어나게 된 그녀. 행복한 삶은 고사하고 그저 죽음으로 도망칠 생각 뿐이었는데...

'저는 주인님의 충직한 종복이니까요.'

그대는 왜 내게 다가오는가.
마음을 열어 내 뒤를 맡기고 했건만 그대는 왜 존재하지 않을 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가.


[ 시한부여주, 공작여주, 무심여주, 흑막남주, 여주호구남주, 남주후보 아마도 셋, 조금의 힐링물(잔잔X), 피폐물ㄴㄴ 초반부에 살짝 스릴러, 새드엔딩 아니에요 :D ]

-표지는 shutterstock!
-조아라와 동시 연재중..!

 
6화. 이상한 집사님
작성일 : 17-11-12 22:18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4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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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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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도회장에서 서로를 붙잡고 열정적으로 몸짓을 해대던 모두의 시선이 막 회장으로 들어선 둘에게로 쏠렸다. 방금까지 하던 일들을 잊어버린 듯, 홀린 이들이 서서히 그들에게로 다가섰다.

 

 여자는 한없이 냉철하고 우아해 보이는 머리스타일과 비틀어 올라간 입술과는 달리 옷차림은 영 딴판으로 선정적이었다. 한 걸음 씩 옮기는 걸음에서 도발적인 분위기까지 풍기는 것은 의도한 것인지,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남녀들은 그 옆 자리에서 불만에 가득 차 어두운 기를 뿜어내는 남자의 인영에 쉬이 접근하지 못했다. 여자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그게 누구라도 기어코 해코지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위협이 얼마나 강했는지, 오직이면 그들이 결혼한 부부인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와중, 잔뜩 술에 취한 한 사내가 비틀대는 걸음을 옮겨 여자에게 걸어갔다. 이미 한 판 했는지 셔츠는 단추 두세 개가 풀려 있었고 목덜미에 빨간 키스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생김새는 꽤 미남이라 불렸을 듯, 반듯했으나 술에 취해 벌게진 꼴이 방탕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아가씨.”

 

 비올레타는 제게 술잔을 내미는 남자를 응시하다 그의 손에 있는 술잔을 느리게 받아 들었다.

 

  “이 무도회의 진정한 꽃이군요.”

  “꽃이라…….”

 

 아무나 꺾을 수 있는 들에 핀 꽃을 말하는가, 사내가 비올레타를 보는 눈빛은 불경하게도 그것이었다. 기둥서방과 몰래 들어온 고급 창부를 보는 시선. 그녀는 술잔을 들어 향기를 들이마셨다.

 

 창부들이 마구 들어올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녀에게 보낸 초대장은 아마도 그저 장난이었을 것이다. 비올레타가 오리라 절대 생각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보낸 것.

 

  “분명, 약속하셨죠.”

 

 노엘의 손이 잔을 빼앗아 갔다. 그는 잔을 흘낏 보고 테라스 너머로 휙 던져버렸다. 붉은 빛 술이 잔과 함께 풀밭을 나뒹굴었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남자를 어서 꺼지라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노엘이 손을 털었다.

 

  “강한 술에 미약까지 들었군요. 절대, 안 됩니다.”

  “마실 생각은 없었어.”

 

 그저 ‘맛만 볼’ 생각이었는데 미약까지 들어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비올레타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으며 발길을 돌렸다. 남자는 자신의 꼴이 술에 취해 구차한지도 모르고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뒤로 돌렸다.

 

 힘 조절도 안 한 강한 악력에 비올레타가 눈살을 확 찌푸리며 그의 손아귀를 떨쳐냈다.

 

  “비싸게 굴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남자는 씨익- 희고 고른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녀는 조소하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내가 창부라고, 누가 그러던가?”

  “딱 보아도, 눈치 챌 수 있다만.”

 

 그 눈을 여태 파버리지 않고 뭐했는지, 한숨을 내쉰 비올레타는 당장이라도 남자의 얼굴을 곤죽으로 패버릴 듯한 분위기의 노엘을 막아서며 말했다.

 

  “통찰력은 개에게 줬나 보군.”

 

 더러운 오물을 밟은 듯, 남자가 심히 혐오스럽다는 목소리였다. 비올레타는 분노를 누르느라 약하게 떨리고 있는 노엘의 팔을 꽉 쥐고 걸음을 옮겼다. 비위가 상하는 자이긴 하나, 겨우 이런 일에 분노해서야 되겠나. 더한 모욕도 숱하게 받아온 그녀였다.

 

 남자는 망연자실하게 그 자리에 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음욕으로 차 있던 눈에는 이제 증오와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을 무시하며 비올레타가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 하나를 집어 먹었다.

 

 노엘은 그녀가 이 수준 낮은 곳에서 무언가를 건드리는 게 기분 나쁜지 줄곧 찡그린 채였다. 연달아 비올레타의 입술 속으로 사라지려는 과일을 잡아챈 그가 설탕에 절여진 과일의 냄새를 맡았다.

 

 들척지근한 미약의 향내가 없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것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충 알아서 피해 먹을 테니 그대는 그대대로 좀 떨어져.”

 

 마치 주인의 곁에 꼭 붙어있는 충직한 개처럼 꼬리를 흔들어대는 노엘이 부담스러운 비올레타가 그를 쫓아내려 일부로 쏘아붙였다. 물론 그런 말 한마디에 멀어질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녀에게 붙어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엘은 확고한 웃음을 지으며 한 걸음 더 비올레타의 곁으로 다가갔다.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이 확신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저는 저대로, 집사의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가?”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비올레타는 준비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말린 과일을 씹었다. 한 남자가 호되게 당했음에도 아직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천천히 기회를 엿보았다. 그녀의 칼 달린 혀를 제하고도 곁에 버티고 선 백금발의 위험인물도 조심해야 했으니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접근하기를 포기한 일부는 자신들의 파트너들과 즐기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전보다는 많이 퇴폐성이 강해진 느낌이었다. 노엘은 비올레타에게 초대장을 보여준 자신의 판단착오를 탓했다.

 

  “테라스로 나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사방에서 눈독을 들이는 이들이 넘쳐나니 그들을 모두 경계하기도 힘들어진 노엘이 귓속말했다.

 

  “어째서…….”

 

 비올레타는 문득 노엘이 왜 이리 곤란해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저 그녀의 먹는 것만 감시하면 될 것이지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하면서 힘을 빼는 건지. 그래도 자신의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집사에게 불쌍함을 느낀 비올레타는 순순히 그의 말에 따라주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빈 테라스로 향하는 그녀의 뒤로 수많은 시선이 욕망을 담고 꽂혔다.

 

 테라스로 들어온 노엘이 조금 섬세하지 못한 손길로 빠르게 커튼을 쳐 시선들을 차단했다. 오는 게 아니었다는 자책이 조금씩 그를 덮어갔다.

 

  “……수도와는 달리, 하늘이 예쁘구나.”

 

 그러나 비올레타가 입을 여는 순간, 그의 안에 있던 온갖 불만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래, 어찌되었든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평소보다 낮아진 비올레타의 음색이 부드럽게 노엘의 마음을 채웠다.

 

 비올레타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이는 별로 손을 뻗으며 주먹을 쥐었다. 꽉 쥔 오른손을 내렸지만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오늘따라 감상적으로 구는 자신을 탓하며 그녀는 난간을 짚었다.

 

  “그대의 그 ‘낭만’이 내게도 전염되었나 보군.”

  “밤하늘이 예쁘다는 것도, 별을 잡고 싶은 것도, 모두들 느끼는 감정 아닙니까. 결코 ‘낭만’으로 치부될 만큼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인님께 허락되지 않았던 여유들이었기에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이겠지요.”

 

 또다시 마음을 읽은 듯한 대꾸가 튀어나왔다. 비올레타는 노엘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눈길을 돌려 가까운 곳에 보이는 해안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연한 모래 위로 파도가 들이쳐 흐릿한 잔상을 남기고 가는 것이 눈에 들었다.

 

 철썩- 철썩- 파도치는 소리가 고동소리 마냥 심장을 울렸다. 익숙하고도 낯선 그 느낌에 비올레타가 심장이 있는 왼 가슴 위에 무심코 손을 가져다 대었다. 내 심장 박동은 저 파도보다 느릴 것이다, ……곧 멈출 테니.

 

 약하게 심장 뛰는 것이 느껴졌다. 불규칙적으로, 금방이라도 멈출 듯, 매우 위험하게 뛰었다.

 

  “……노엘.”

  “예, 주인님.”

 

 감미로운 중저음이 자장가처럼 울렸다. 그녀는 난간을 움켜쥔 자신의 손을 잠시 내려다보다 말을 이었다.

 

  “세 달 후에 요양이 끝나고 내가 수도로 돌아갈 때, 말이다.”

 

 무슨 연유에선지 노엘은 그녀의 마음을 참 쉽게도 비집고 들어왔다. 비올레타의 26살 인생에 있어 이렇게 빨리 믿음을 준 사람은 없었다.

 

  “함께 올라가자 제안한다면 따를 것이냐?”

  “…….”

 

 순간 노엘이 석상처럼 입을 벌리고 굳어 버렸다. 비올레타는 오른손으로 난간을 툭툭 두드리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명한 조각가가 마지막 숨을 불어넣은 잘난 조각처럼 굳어있던 노엘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점점 붉은 기가 돌기 시작했다.

 

 정신이 들었는지 얕게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내려 감춘 그는 톤이 높아진 목소리를 일부러 낮추어 멀쩡한 척 했다. 하지만 흥분 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노엘의 목소리가 예상치 못한 기쁨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영광……입니다.”

  “단, 그대가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고 끝까지 내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해줘야 해.”

 

 불법적인 방법과 살인을 동원하지 않고 비올레타의 옆자리에 따라갈 수 있다면 노엘은 심장이라도 팔 사람이었다. 그걸 모르고 섣부른 제안을 한 건 순전히 그녀의 잘못이었다.

 

 정말 놓아주려 해야 놓아줄 수가 없다며, 노엘은 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주인님, 절대 그 말을 취소하실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어. 노엘은 해맑은 아이처럼 웃으며 비올레타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석연치 않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는 어느 때보다 더욱이 아름다워 보였다.

 

 멋대로 나가 비올레타의 뺨을 어루만지고 싶어 하는 손을 억지로 누르며 그는 신뢰감 있어 보이게 웃었다. 이제 그녀의 의심을 사서는 안 되었다. 그 자신도, 그녀도 서로의 손아귀 안으로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주고받는 말없이 그저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두 사람이 테라스를 나온 것은 오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새카맣고 짙은 심연이 내려앉은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 실증을 느낀 비올레타가 먼저 자리를 파한 것이었다.

 

 노엘은 먼저 앞서가는 비올레타의 뒤를 따랐다. 얇은 살갗 아래로 도드라져 보이는 척추 뼈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는 드레스의 뒷파임이 심히 거슬렸다. 다른 이들의 시선에도 노출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 눈들을 파버리고만 싶은 충동이 끌어 올랐다.

 

 그 충동을 없애느라 노엘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이제 돌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만 보고 싶다는 욕심. 그는 흰 재킷을 벗어 비올레타의 노출된 어깨에 둘러주었다. 추워보여서 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남들의 시선이 닿는 것이 싫어서였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며 재킷을 당겨 한 손으로 여몄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밤공기가 아직은 서늘했던 것 같았다.

 

  “몇 시쯤 되었나…….”

 

 중얼거리며 시계를 본 비올레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만 귀가하자는 것에 찬성했다. 벌써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다시 노엘이 앞서 에스코트를 해 무도회장을 나가려는 차, 누군가의 목소리가 비올레타를 잡아 세웠다. 비올레타가 익숙한 얼굴의 주인을 채 떠올리기도 전, 손이 날아와 뺨을 휘갈기고 지나갔다.

 

  “어디서 창부 년이 나를 모욕해!?”

 

 얼빠졌던 얼굴에 광기가 도는 남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멈추어버린 비올레타의 어깨 위, 흰 재킷을 내던졌다. 그의 손이 붉은색 어깨끈으로 향했지만 손목을 강하게 움켜쥔 힘에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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