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10-4. 비애 (4)
작성일 : 17-11-12 10:04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345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진명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들어 버린 꽃마냥 수척하기 그지없는 애란이 매튜를 향해 처량하고 슬픈 눈빛을 그렇게 내보낸 이유를 왠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아이가, 애란의 아들이 만일 살아 있었더라면, 그는 충주에서 만난 한수 같은, 조금은 장난스럽고 청승맞기까지 한 부분이 있었지만, 지유롭고 천진난만한 유년기를 거쳐 준형을 보는 듯 느긋하고 자유로우며 약간은 시니컬하고 일탈을 즐기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청소년기 뒤에 번듯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언젠가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가게 될 것이다. 그 여자가 효은처럼 발랄하고 호쾌한 말괄량이든, 젊은 시절의 애란처럼 감수성 있고 우아한 아가씨든, 혹은 엘르 킴 여사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부잣집 따님이든간에 말이다. 그러면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그 청년을 그의 어머니는 자랑스러워하며 기어이 그의 행복을 바랄 것이다.

 

 애란은 좋은 어머니였을 것이다. 온종일 자식을 키우는 일에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도, 그래도 할 수 있는 대로 자식에게 최대한 베풀어 주는, 효은의 어머니 은성과도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혹하기 짝이 없는 운명은 그 아이가 유년기를 지나 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어 갈 수 있었던 기회, 그리고 애란이 그 아이를 길러 낸 그런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기회를 앗아 가 버렸다. 그리고 그 기회는 그녀가 그 음악가와의 기억 끝자락에서 내려 와, 당장 그녀 앞에 주어진 아내와 어머니라는 역할에 충실하게 했을 수도 있었던 기회였다.

 진명은 또한, 그녀가 아들을 한순간에 잃어 버린 충격에 다른 미지의 이유까지 더해져 머나먼 대륙의 반대편에 있는 조그만한 나라에서 몇 년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살아 오다가, 막힌 수도꼭지가 뚫리듯 그간 쌓였던 한, 설움과 슬픔, 그리고 애잔하고도 처량한 서러움을 모두 쏟아 내어 버리듯 눈물을 쏟으며 오열하던 중, 마법의 주문이라도 외우듯 ‘재하’라는 이름을 계속 외쳐 대는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재하’는 애란에게 운명의 ‘지독한 가혹함’을 알려 주었던, 기억하고 싶지도 않는 그 사건으로 불 타 죽은 그녀의 아들의 이름이자, 그녀와 서로 온 마음을 바쳐 평생 동안 사랑하고 마음 속에 담아 두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켜 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로는 생각만큼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던, 하지만 그녀에게는 ‘사랑’이라는 말의 대체어가 되기에 충분했던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재하’라는 단어는 애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던 순간, 생전의 그 음악가와 함께했던 그 찬란했던 순간순간들로 다시 되돌아가게 만들었던, 그녀만의 ‘리셋 버튼’이기도 했다. 의미야 뭐 어쨌든 그 순간들이 애란에게는, 그리고 어쩌면 엘르 킴 여사와 은성에게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는지는 모르지만 꼭 되돌아가고 기억해 내고 싶은, 절대로 머리 속에서 잊혀지고 싶지 않는 순간들, 그들의 ‘비망록’ 맨 앞 장에 적어야 할 순간들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다만 기사 몇 줄로 채워지고 표현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그 안타까운 사실을 진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 - - - - - -

 

 “매튜, 어딜 갔다 왔냐? 우리 한참 동안 너 기다리고 있었다, 이 놈아!”

 

 탈린의 골목길 어귀에서 진명과 헤어지고 나서, 진짜 목적지인 친구네 집으로 돌아 간 준형을 맞아 주는 사람은 현관 앞에 미리 와 있었던 보컬이자 매튜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스튜어트 구였다. 스튜어트가 준형에게 타박 아닌 타박을 하던 말던 상관 없는지, 준형은 그저 청승맞게 웃기만 하며 잠시 길 잃은 관광객을 데려다 주었다고 둘러대었다. 그렇게 준형이 스튜어트와 함께 시시덕거리며 거실로 들어 오자, 벌써 단정하게 진열되어 있는 드럼 키트 뒤에 앉아 드럼 스틱으로 집 주인인 베이시스트 이바르 오야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대고 있는 드러머 마일로 왓슨이 하던 일을 멈추고 친근하게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드럼 스틱에 찔린 옆구리가 영 아팠는지 그 쪽을 감싸 쥐며, 안도의 한숨을 푹 쉬고 이바르도 준형을 향해 씽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단란하게 모여 있는 친구들이자 밴드의 동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내심 안도해하며, 준형은 이런 상황에서는 늘 그랬듯 어딘지 모르게 능청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지나가는 관광객 데려다 주느라 좀 늦었어. 게다가 그 관광객이 한국인이더라고. 너네도 잘 알다시피 나 이런 거 보면 그냥은 못 지나가잖냐. 에스토니아에 친척이 사나 본데 직접 오기는 처음이었나 봐. 아, 데려다 줬더니 고맙다고 비스킷을 주더라고. 너네도 나랑 같이 왔어야 했는데 말이야.”

 

 ‘비스킷’이라는 말이 준형의 입 밖에서 나오자, 한창 먹성 좋을 나이에 맞게 나머지 아이들은 얼굴에 반색을 하고 준형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어떻게 보면 뻔뻔한 거짓말에 아이들이 믿고 넘어 가 주니 준형은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튜는 그가 안내해 준 사람이 사실은 음악 잡지 기자였고, 그 사람의 목적지가 아주 기구한 사연을 가진 말 못하는 여자였다는 사실은 왠지 자기 혼자만이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모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 차릴 것이었지만, 그 분 말고는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가 ‘반쯤은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 자식, 그런 건 진작에 말했어야지. 그래, 비스킷은 맛있었냐?”

 

 영국식 억양이 진하게 섞인 영어로 마일로가 그렇게 입꼬리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날리며 말하자, 준형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서는 애써 태연한 척 이렇게 말을 이었다.

 

 “당연히 그랬지. 끔찍할 정도로 맛있었어.”

 

 그 말을 하고 나서, 준형은 조금 전에 맛본 그 고소한 비스킷의 맛을 떠올려 보면서 왜 그 여자가 자신을 매우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는지, 그 우유는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그리고 동행했던 음악 잡지 기자 서진명은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게 해 주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진명도, 김애란이라는 그 여자도, 자신도 모두 낯선 타지에서 떠다니는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동향인 사람이 더없이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그 잡지에 쓰인 기사를 읽으러 준형은 한국으로 가는 날만을 기다릴 수도 있었다. 친구들에게 조금 더 쓴소리를 들어도 그 기자와 조금 더 같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준형은 이 비행기에서 만나 잠시 스쳐 갔던 인연은 가슴 한 켠에 묻어 두고, 진명에게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자신의 일상을 보내는 것이 지금의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과거의 인연을 잊지 못하고 산다면 김애란이라는 여자처럼 될 까봐 두려웠던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준형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체념하며 밴드 연습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준형은, 여전히 자신과 비스킷에 대해 시시덕거리고 있는 밴드의 동료들을 돌아 보고 이렇게 말하기에 이르렀다.

 

 “얘들아, 연습이나 하자.”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글에 대한 자세한 설명 2017 / 11 / 6 561 0 -
39 에필로그: 4개월 후 2017 / 12 / 1 370 0 4186   
38 11-4. 그대와 영원히 (4) 2017 / 11 / 30 315 0 1682   
37 11-3. 그대와 영원히 (3) 2017 / 11 / 29 304 0 4686   
36 11-2. 그대와 영원히 (2) 2017 / 11 / 29 299 0 4505   
35 11-1. 그대와 영원히(1) 2017 / 11 / 19 281 0 3994   
34 10-4. 비애 (4) 2017 / 11 / 12 277 0 3454   
33 10-3. 비애 (3) 2017 / 11 / 11 282 0 4342   
32 10-2. 비애 (2) 2017 / 11 / 10 271 0 5195   
31 10-1. 비애 (1) 2017 / 11 / 10 292 0 3929   
30 9-4.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4) 2017 / 11 / 9 315 0 4455   
29 9-3.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3) 2017 / 11 / 9 294 0 4054   
28 9-2.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2) 2017 / 11 / 9 304 0 4692   
27 9-1.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1) 2017 / 11 / 9 302 0 3420   
26 8-4. 텅 빈 오늘 밤 (4) 2017 / 11 / 8 280 0 2061   
25 8-3. 텅 빈 오늘 밤 (3) 2017 / 11 / 8 290 0 4784   
24 8-2. 텅 빈 오늘 밤 (2) 2017 / 11 / 8 306 0 3667   
23 8-1. 텅 빈 오늘 밤 (1) 2017 / 11 / 8 599 0 4428   
22 7-2. 우울한 편지 (2) 2017 / 11 / 7 301 0 4846   
21 7-1. 우울한 편지 (1) 2017 / 11 / 7 285 0 5640   
20 6-5. 우리들의 사랑 (5) 2017 / 11 / 6 270 0 3599   
19 6-4. 우리들의 사랑 (4) 2017 / 11 / 6 271 0 4952   
18 6-3. 우리들의 사랑 (3) 2017 / 11 / 6 282 0 4818   
17 6-2. 우리들의 사랑 (2) 2017 / 11 / 6 275 0 6091   
16 6-1. 우리들의 사랑 (1) 2017 / 11 / 6 286 0 5702   
15 5-2. 사랑하기 때문에 (2) 2017 / 11 / 6 288 0 4052   
14 5-1. 사랑하기 때문에 (1) 2017 / 11 / 6 271 0 4062   
13 4-4. 그대 내 품에 (4) 2017 / 11 / 6 320 0 3500   
12 4-3. 그대 내 품에 (3) 2017 / 11 / 6 281 0 6173   
11 4-2. 그대 내 품에 (2) 2017 / 11 / 6 280 0 4740   
10 4-1. 그대 내 품에 (1) 2017 / 11 / 6 288 0 5817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