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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10-3. 비애 (3)
작성일 : 17-11-11 14:01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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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김애란 씨인가요?”

 

 이에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가만히 있던 여자, 아니 애란은 아까 전과 같이 우유와 비스킷을 천진난만하게 먹고 있는 매튜를 아련하고 슬픈 눈빛으로 쳐다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랍으로 향하더니 그 곳에서 종이와 펜 하나를 꺼내었다. 아마 그렇게 의사소통을 하려나 보다, 라고 진명은 그렇게 추측하고 나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 적고 있는 애란에게 말을 걸었다.

 

 “저는 한국의 음악 잡지 ‘월간의 멜로디’에서 온 기자 서진명입니다. 당신이 고 유재하 씨의 애인이자 뮤즈라고 들었는데, 고 유재하 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말을 듣고 애란은 감상에 젖은 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조금 전 열심히 쓴 글씨가 적혀진 종이를 진명을 향해 불쑥 내밀었다. 그 종이에는 또렷한 글씨로 이렇게 씌여 있었다.

 

 ‘재하 씨요? 대한 동기였던 그 사람과는 음악적인 일로 만났다가 그렇게 인연이 되었죠. 물론 다른 연인들처럼 서로 싸웠다가 다음날에 다시 화해한 일도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제 인생에서 재하 씨와의 인연이 가장 아름다운 기억 중 하나가 되었네요. 그 사람이 이 세상을 등지고 나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런던으로 유학 온 것도 그렇게 현실에서 빠져 나오려고 그랬던 거에요. 최대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 사람, 그 사람에 관한 모든 기억들로부터요. 그리고 유학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젠 상관 없어요. 어차피…’

 

 며칠 뒤면 저는 그 사람을 재하 씨를 만나러 갈 테니까요.

 

 진명은 마지막 무장을 읽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는 표정과 말투로 이렇게 계속 질문을 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 가고 있었나요? …결혼은 하셨나요?”

 

 그 말에 애란은 나지막하면서도 가벼운 한숨을 푹 쉬고 한참 무언가를 끄적인 후, 그 종이를 진명에게 다시 읽어 볼 수 있게끔 주었다.

 

 ‘결혼요? 물론 했죠. 남편은 모 방송국 피디 일을 하는 사람의 동생이었어요. 결혼 생활은 그냥 다 똑같았죠. 돈 버느라, 집안일 하느라 힘들고, 가족들 많이 만나고. 신혼 때는 단란하기 그지없었어요. 그냥 몇 년 동안 그럭저럭 살았죠. 다만…’

 

 진명이 ‘다만’ 다음의 문장을 읽으려 하는 순간, 매우 다급한 표정으로 애란은 종이 묶음을 가져가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재빠르게 뭔가를 긋고 휘갈기는 것을 반복하고 난 후 다시 종이 묶음을 진명에게 주었다. 진명이 그 글을 읽어 보는 동안, 매튜가 어느 새 비스킷이 담겨 있던 접시를 해치우고 난 것을 발견한 애란은 아련한 웃음을 띄우며 그에게 비스킷을 조금 더 가져다 주었다. 이에 매튜는 감사하다는 의미로 꾸벅 목례를 하며, 그 비스킷마저 걸신 들린 듯 재빨리 먹어 대기 시작했다.

 

 ‘…서진명 기자님, 저는 지금부터 제가 할 말이 당신의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그 사람, 그러니까 재하 씨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몇 년 동안 전 런던에서 유학생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아이 엄마로 조용히 살았어요. 그 누구도 제 인생에는 신경 써 주지 않았어요. 그 누구도. 그런데, 그 사람의 노래가 다시 유명해지고 세상에 들려짐과 동시에, 저도 그 사람의 음악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어요. 단지 그 사람의 첫사랑이었다는, 제가 그 사람의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였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저에겐 그 사람이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어요. 이미 저 세상에 있는 사람 얘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 사람은 저에게는 그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저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고 사랑했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고 진짜 그 말을 실천했던 한 남자일 뿐이었어요. 제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고 떠난 사람… 단지 그거에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랑이라는 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저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진짜 그 말을 실천했던 한 남자였을 뿐이었어요. 제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고 떠난 사람… 단지 그거에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랑이라는게, 온 마음을 다하고 모든 것을 바친다는게 아름다운 기억이라는게 부질없고 쓸데없는 걸 알아요. 그것들은 언젠가는 증발되어가는 수증기마냥 사라져 버리죠.'

 

 '제가 그걸 어떻게 자세히 아냐고요? 왜냐하면 제가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아름다운 기억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한 사람이 그런 식으로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이제 볼 수 없다는 걸 아는데, 저는 그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참 바보 같죠? 하지만 전 그렇게 믿어요. 그 사람의 노래 속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과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그리고, 제 마음속에서 그 사람은 인사를 하고 말을 걸고 있어요. 나, 잘 지내고 있다고. 나를 잊어 버리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그러니까, 제발 부탁인데 저에게서 그 사람을 꺼내 버리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부디…’

 

  글을 다 읽고, 고개를 든 진명은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애란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그저 울먹이고 흐느끼기만 하던 애란은, 감정이 시간이 갈수록 격앙되나 본지 철철 흘러 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입을 열고 이런 말을 뭔가가 낀 목소리로 나지막히 내뱉었다.

 

 “…끄윽…꺽…꺼억…으…우욱…으이…으꺼어어…어어억크…크끄어…즈…즈에…저어어…즈…즈이…재…재…재하야!”

 

 그렇게 거의 비명을 지르며, 여전히 눈물을 빗물 뿌리듯 흩뿌리고 퍼부으며, 몇년 만에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뱉은 단어를 기도문처럼 여러번 반복하며 진명과 매튜의 시선은 아랑곳하지않고 애란은 그렇게, 그렇게 목놓아 울부짖고 말았다.

 

 “재하, 재하야!… 재하, 내 사랑 재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들 재하… 우리 불쌍한 재하… 내아들 재하야! 불 구렁텅이에 들어가 타 죽고 남은건 재뿐인 재, 재하… 내 불쌍한 아가… 아가…아가야… 아들아! 아이고 하느님 우리 불쌍한 재하 좀 살려주소, 저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서 구해 달라고 외치는데… 소풍…소풍가서 불구덩이에 타죽은 내 아들… 내 아기 재하 좀 살려주소!… 재하야! 재하, 재하… 내 불쌍한 아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 상황을 보지 못했던 진명이지만, 분명히 애란도 그 음악가가 되었든, 남편 된 사람과 사람과 토끼같은 자식이 되었든 그 사람을 사랑했고 그들 때문에라도 행복했을 것이다. 진명은 그 여자의 함박웃음을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 여자는 사실 웃음이 많았던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미소, 그 여자의 웃음은 새벽 풀잎마다 송송히 맺힌 이슬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얄상한 입술의 꼬리가 올라가고, 힘없고 창백하기 그지없는 볼이 잘 익은 사과마냥 붉어지고 보조개까지 움푹 패여질 그녀의 함박웃음은 그 음악가의 멜로디와 박자가 되고, 남편의 결혼 반지가 되고, 그 미소를 보았을 수많은 남자들이 달콤한 하룻밤 꿈이며 백일몽이 되어 그 가련한 심장들을 뒤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쩌다 그런 인생의 한 줄기 비극과 폭풍우를 맞이하여, 꽃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날려 버린 한 떨기 들장미와도 같은 사랑이 되었을까. 그렇게 여러 가지로 꼬인 마음을 가지고 무심하게 길거리를 걸어가던 진명의 귀에, 이렇게 들려오면서 뒤를 돌아보려던 매튜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청량감있게 들려왔다.

 

  “형, 전 그럼 이만 가 볼께요. 친구 집이 이 근처에 있어서…”

 

 “…어, 그래. 가 봐.”

 

 그렇게 애써 무심함을 보이지 않으며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대답해 주는 진명에게, 매튜는 아까 전처럼 해맑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미심장한 무언가가 어려 있는 미소를 씨익 지어 보이며 뒤로 죽 걸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대꾸했다.

 

 “지금은 영국에 있어서 형 기사가 있을 잡지는 읽어 볼 수 없겠지만, 어차피 나중에 몇 년 뒤에는 영국 최고의 락 밴드 ‘언리미티드’의 한국 출신 리드 기타리스크, 매튜 리이자 이준형이 인터뷰나 하러 형 눈 앞에 나타날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준형…준형이라고? 니 한국 이름이?”

 

 의아하면서도 신기함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하고 진명이 그렇게 대꾸하자, 매튜는 너무나도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언젠간 연락하라는 말을 하려는 듯 오른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귀에 가져다 댄 후 돌아서 그대로 앞으로 사라졌다. 진명은 매튜, 아니 준형이라는 그 금발머리 10대 소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지켜 보다가, 깊고 나지막한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거리를, 탈린의 좁다랗고 아담한 거리를 하염없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진명은 매튜, 아니 준형이라는 그 금발머리 10대 소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지켜 보다가, 깊고 나지막한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거리를, 탈린의 좁다랗고 아담한 거리를 하염없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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