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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판타지
아포리아
작가 : 윤소교
작품등록일 : 2017.10.30

(현대/판타지/백발남/신(GOD)여주/신화/미스터리)

가상의 서울에서 펼쳐지는 살아있는 신이 되어야하는 여자와 이름을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

전쟁이 사라지고 어느 때보다 긴 평화가 지속되는 현대의 서울. 수수께끼의 남자 번은 오늘도 도시를 떠돌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같은 건물에 있던 대국민적인 신 백아(伯牙)의 33대째 당주 수린과 조우하고, 그녀에게서 잃어버린 과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

이메일 : yoonsogyo@gmail.com

 
細雨 (4)
작성일 : 17-11-09 13:47     조회 : 325     추천 : 0     분량 : 6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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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이다. 널 찾고 있었어.”

 

 수린은 비 속에서 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한 달만의 재회였다. 그런데도 그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시선만 내비쳤다. 층격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화가 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한 일자로 굳은 입매가 그의 심정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수린은 애꿎은 자신의 손가락을 문질렀다.

 

 “잠시만요, 번. 정말로 백아님과 아는 사이십니까?”

 

 길어지는 정적에 보다 못한 녹영이 직접 그에게 물었다.

 

 아는 사이냐고?

 

 어이가 없는 번은 조소가 지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는 것은 커녕 애초에 번은 수린이 어째서 지금 이곳에 있는 건지. 아니, 백아가 왜 지금 자신에게 친한 척 하고 있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때 그는 분명히 그녀에게 경고했었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해피엔딩’이 아닐 거라고.

 

 “예전에 도시에서 이분께 신세진 적이 있었어. 그래서 영님께 들린 김에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 온 거야. 연락처를 받지 못해 소재를 물은건 그 이유고.”

 

 수린이 번 대신 침착하게 대답했다. 명백히 준비해온 대사였다. 그러고는 그에게도 동의를 구하듯이 살짝 눈짓했다. 번은 도발적인 그녀의 태도에 일순 눈썹을 모았다.

 

 그러나 일단은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간 일이 더 복잡해진다. 차라리 최대한 둘만 있을 시간을 만들어야했다. 목적을 캐묻는건 그 뒤도 늦지 않았다. 평정을 되찾은 번이 태연한 얼굴로 동조했다.

 

 “그래. ‘그 날’ 곤경에 처하신 것 같아 조금 도움을 드렸지.”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용은 녹영에게 하는 말이 분명하나, 그의 얼굴은 수린에 향해 있었다. 그리고 꽤나 뼈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

 

 수린은 축축해진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떼어내며 그 맥락과 시선을 받아냈다. 일부러 말로 꺼내지 않아도 그가 자신을 지금 이 상황을 탐탁해하지 않고 있음이 느껴졌다.

 

 빗물 사이로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얽혔다.

 

 “나와 인연이 있는 분이니 이제부터는 내가 모시고 가겠어. 녹영은 이만 돌아가보도록해.”

 

 번이 수린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수린과 번 사이에 그녀가 모르는 분명한 인연이 있는 듯 하니, 녹영이 자리를 피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백아와 번을 단둘이 두는 것이 불안한 눈치였다. 그것을 눈치 챈 것은 번이 먼저였다.

 

 “...영에게 피해가 갈 일은 만들지 않아.”

 

 녹영을 바라보며 번은 작게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녹영을 안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한 동안 발치를 바라보며 고민하던 녹영은 결국 수린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여태까지 자신과 실랑이를 하면서까지 번의 소재를 묻던 백아였다. 마지막으로 확인차 수린을 바라보자, 그녀도 괜찮다는 듯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예, 알겠습니다. 제 대신 영님에게까지 백아님을 부탁드립니다. 번.”

 

 무사히 영님께 바래다달라는 말을 덧붙이며 녹영은 수린에게도 위에서 보자는 인사를 전했다. 수린은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가 나타난 것만으로 수린은 미친 듯이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간단히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비가 내리고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녹영의 모습이 숲 속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수린과 번은 한동안 움직이지도,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부슬비 소리만 들리고 있을 때, 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모자를 다시 써.”

 

 의외의 말이었고 또 다시 반말이었다. 수린은 그래도 잠자코 우비에 달린 모자를 다시 썼다. 번은 수린이 모자를 쓴 걸 확인하자마자 휙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를 부리나케 따라나섰다. 운명의 장난인 듯 먼저 걷고 따라나서는 것이 비슷한 일의 반복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 번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는 않는 다는 사실.

 

 수린은 말없이 그를 바지런히 따라가며 주머니 속 약통을 만지작거렸다. 유일하게 믿을만한 수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손 안에서 굴렸다. 나에겐 목적도 당위도 있다고.

 

 다음으로는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번에게 달라진 구석이 있는지 열심히 살폈다. 비가 싫은지 그는 빠르게 앞서나가고 있었다. 자신처럼 후드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주머니에는 손을 넣은 채 유유자적히.

 

 그는 검은색 바람막이 아래에 회색 상하의로 이루어진 창의를 입고 있었다. 주로 산신이나 그의 권속들이 입는 유니폼이다. 정말로 그는 이 산의 권속 같았다. 육안으로 봤을 때 아파보이는 기색도 없다. 수린은 일단 번이 위독한 것 같지는 않아 안심했다. 하지만 직접 본인에게 확인해보기 전 까지는 모를 일이다.

 

 번은 자신을 관찰하는데 몰두한 수린의 침묵을 달리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지금 가장 미칠 것 같은 것은 번 그 자신이었다. 설마. 이제 와서 그 날의 일을 자신의 탓으로하며 추궁하려 드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내 정체를 낱낱이 파악해서 협박하려 드는건 아니겠지.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야기를 해야겠지?”

 

 모든 복잡한 생각은 뒤로 하고 그가 태연히 말했다.

 

 마치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 제안하듯이 상냥한 어투다. 수린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다가 그러자고 작게 대답했다. 그가 줄곧 앞만 보고 있어서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분명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해서 좋지 않은 반응을 예상했는데.

 

 “....”

 

 번은 걸으면서 줄곧 그녀가 보이지 않은 또 다른 존재와 함께 있는지를 세심하게 파악했다. 그는 수린이 어떤 보이지 않는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도 확인했다. 예를들면 그들이 자신에게 쏜 살처럼.

 

 놀랍게도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정말로 백아 혼자온 것 같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 역시 손님 때문에 바깥세상과 차단되는 방에 함께 있었다.

 

 지금, 누구도 그를 방해할 수 없었다.

 

 번은 그 간단한 사실을 인지했다.

 

 어느새 비탈길을 다 올라온 뒤. 이제 후문만 지나면 영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여기서부터는 수린도 어느 정도 지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번이 말없이 자신을 영이 있는 곳으로 안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태연히 손가락으로 그가 머물던 안뜰을 가리켰다.

 

 잘만 걷고 있던 수린은 그걸로 걸음을 멈췄다.

 

 누가보아도 불투명한 의도가 다분한 상황에 불편한 적막이 오갔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툇마루에 올라온 번은 그대로 얇은 창호지가 덧대진 문을 열었다. 좀 전까지도 누워 있던 그 방이었다. 그는 들어가지 않고 그 문에 몸을 비스듬히 기댔다.

 

 먼저 들어가라는 뜻이다.

 

 그것이 꼭 유인하는 것 같아 께름칙했다. 하지만 수린은 주저하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곳은 영의 영지(靈地)인데 일이 생겨도 무슨 일이 있을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계속 비가 오는 바람에 밖에서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린은 마음을 다잡고 맨발로 툇마루로 올라섰다. 긴장에 다리가 후들거리려는 건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비를 맞아 창백한 몰골로 수린은 완전히 방에 들어섰다. 그녀가 들어간 것을 확인하자, 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도 곧바로 안으로 들어섰다.

 

 아.

 

 차가운 마룻바닥에 발바닥이 닿자 순간 소름이 돋았다. 다리 사이로 찌르르 스며드는 냉기를 몸으로 흘려보내며 수린은 겨우 방안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었다.

 

 방은 낮인데도 비가 와 어둑어둑했다. 그래서인지 작은 호롱불이 방안 쪽에 켜져있었다. 구석에는 금방이라도 누워있었던건지 채 정리되지 못한 이부자리가 펴있었다. 아무래도 영이 별채로 쓰는 공간인 것 같았다.

 

 그 순간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바람에 닫히듯 커다란 소리였다. 그것을 기점으로 실내는 더 짙은 어둠에 가라앉았다. 이제 어두워진 실내를 밝히는 것은 희미한 호롱불뿐이다.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수린은 긴장된 마음으로 문 쪽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수문장처럼 하얀 머리카락의 남자가 저승사자처럼 서 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잘, 지냈어?”

 

 그제야 번에게도 늦은 안부를 전해보았다. 그러나 번은 말없이 어둠 속에서 피식 입 꼬리만 끌어올렸다. 여전히 문에 기댄 채 미동도 하지 않은 채였다. 수린은 다시 애꿎은 주머니 속의 약을 만지작거려야했다. 어서 살을 맞은 게 맞냐고 물어야했는데, 분위기에 압도된 듯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학습 능력이 없어, 넌.”

 

 돌연 그가 벽에 기댄 채 음울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아주 성가시다는 듯이 살짝 젖은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돌연 그의 두 눈이 똑바로 수린에게 향했다.

 

 “내가 경고했지. 다시 만나게 되면 해피엔딩은 아닐 거라고.”

 

 아주 지치고, 또 짜증스러운 목소리였다.

 

 수린은 손가락 끝이 살짝 떨려오는걸 느꼈다. 환대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내심 별말 없이 안내하는 행동에 안도한 것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몹시 노여워있는 듯 한 번의 반응에 가슴이 저릿해지고 있었다. 입은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그래. 말보다는 먼저 실물을 보여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불현듯 겨우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린 수린은 대답 대신 서둘러 주머니 안쪽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수린의 행동에 커진 것은 어둠속에 자리잡고 있던 그의 형형한 두 눈이었다.

 

 성큼성큼 걸어온 번은 순식간에 수린의 가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아."

 

 눈깜짝할 새였다. 간신히 숨을 들이 마신 수린은 코앞에 다가온 번을 아슬아슬하게 올려다보았다. 꼭 도둑질을 들킨 어리숙한 도둑의 모습이었다. 흔들리는 두 사람의 시선이 불꽃이 튀기듯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약을, 약을 가져다주려고. 다쳤을까봐....”

 

 수린이 시선을 돌리지 못하며 띄엄띄엄 말했다. 멍청하게도 맥락은 다 잘라내버린 소리였다. 그 순간 번이 잡고 있던 수린의 팔을 확 들어 올렸다. 기대와 달리 그녀의 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움켜쥔 가는 손목이 이제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잡힌 손을 빼내지도, 뿌리치지도 못한 채 수린은 팔을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똑. 소리와 함께 수린의 주머니에서 약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은 유리병은 또르르르르. 맑은 소리를 내며 기름칠한 마룻바닥으로 거침없이 미끄러졌다. 수린은 황망한 얼굴로 바닥에 굴러가는 약병을 쳐다보았다. 번은 굴러가는 병을 매끄러운 눈초리로 쫓았다. 그는 약통에 든 하얀 알약을 발견했다. 그리고 입술을 비틀더니 웃었다. 약이라.

 

 간도 컸다. 우리의 백아는. 역시 그냥 이곳에 왔을 리가 없었나.

 

 “왜? 저걸로 날 어떻게든 해보려고?”

 

 그가 낮은 목소리를 내며 가증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니면 입막음이라도 해보려고. 연이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번은 이제 좀 더 위협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몹시 화가난 것 같았다. 마치 몸집으로 초식동물을 압도하는 육식동물의 모양새였다.

 

 “무슨 소리야.”

 

 수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정체가 떠오르자 또 다시 자신도 모르게 다리는 뒷걸음치고 있었다. 그런 수린을 따라 번이 질세라 성큼성큼 따라갔다. 여전히 손목은 아프게 잡힌 채 였다.

 

 번은 머리에 열이 뻗쳐옴과 동시에 몸도 이제 고통을 넘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화끈거리기 시작한걸 느꼈다. 아침부터 갖은 감정소모를 한 대가였다. 그러나 이대로 쓰러져줄 순 없지.

 

 작은 소리와 함께 등이 벽에 부딪히자, 수린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대로 그녀를 벽으로 밀었다. 당혹스러운 수린이 시선을 떨어져 있는 약병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번이 어딜 보냐는 듯이 잡힌 팔을 세게 당겼다.

 

 “어딜.”

 

 수린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다시 올려다보아야했다. 서늘한 눈초리가 그녀를 마주했다. 꽉잡힌 팔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며 수린은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아무일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이거 놓아줘.”

 

 놓고 말로하자며, 가까스로 수린이 말했다.

 

 그러나 번은 미동도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이 이상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역시, 역시 영을 불러야할까.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걸까. 수린은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이 이상 일을 키울 수 없었다. 그를 도우러왔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백아. 난 네가 익숙한 고분고분한 초식동물이 아니야.”

 

 그 순간 번이 낮은 목소리로 귀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더니 돌연 충동적으로 수린의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남자의 손가락에 부드러운 살에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명백히 비웃음과 조롱이 깃든 행동. 그 무미건조하고 반복적인 행동에 수린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에겐 신에 대한 경각심이 조금도.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수린은 다른 의미로 몸을 굳혀야했다.

 

 “날 배신하고 권속들 품으로 쪼르르 달려간 널 믿고 있지 않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수린은 질책을 넘어서 눈앞에 둔 사냥감을 포박하려는 그의 시선이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두고 느껴지는 신체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구해준 답례를 하러 온 거야. 그것 외에 다른 뜻은 없어. 널 곤란하게 만들 생각도 없어.”

 

 고개를 든 수린은 변명을 하듯이 겨우 말했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다. 번은 대답대신 시선을 내려 물끄러미 닿아있는 수린의 상체를 바라보았다. 밀착된 신체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느끼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명백한 남자의 시선에 수린은 갑자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옷감을 사이에 두고 닿는 그의 몸은 이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바이올린의 현 같았다.

 

 반쯤 정신을 놓은 번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는 수린의 하얀 목덜미를 꽂힌 듯이 바라보았다. 더 이상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머리를 지배하고 있던 열기는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어둠 속에서 촉촉하고 붉은 것이 그의 시선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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