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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9-4.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4)
작성일 : 17-11-09 13:18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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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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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여자를 따라 진명과 효은이 도착한 곳은, 계단을 타고 올라 간 2층의 맨 끝에 있는 빈 방이었다. 그래서인지 문은 쉽게 열렸고, 방은 열린 창 틈으로 들어 오는 바람 때문인지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방답지 않게 더없이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주인 없는 침대 위의 베이지색 이불 시트는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마호가니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에는 자그마한 탁상 램프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탁상 램프 밑에는 잘 모아서 정리해 놓은 종이 묶음들이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못 이겨 그 묶음들을 치워 본 효은은, 그것들이 플루트 악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순간 천장에 박혀 있던 형광등이 환하게 켜지고, 중년 여자가 이 말을 내뱉어 주고는 밑으로 가볍게 사라져 버렸다.

 

 “갈 곳 없으믄 여기 있어도 상관은 없구먼. 여기 꽤 편하고 좋아유.”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동시에 대답을 하고 나서, 진명과 효은은 침대 매트리스에 걸터 앉아 종이 묶음, 그러니까 악보를 찬찬히 살펴 보았다. 몇 장의 서양 클래식 악보, 몇 장의 뉴에이지 악보, 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거나 실습을 나갔나 본지 동요 악보도 몇 장 있었다. 몇 개의 음절에 빛이 바래져 가는 붉은 펜으로 밑줄을 그어 놓은 스케일 연습용 악보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그 악보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글이 씌여진 악보, 그러니까 ‘사랑하기 때문에’의 악보였다. 진명이 읽고 넘긴 악보를 살펴 보고 있던 효은은 자신도 모르게 연신 ‘오’, ‘와’, ‘마’, ‘살아 있네’ 같은 감탄사가 튀어 나오고 있었다. 진명은 그 악보에 플루트 음색을 넣어 주면서 김애란이라는 그 미지의 인물이, 엘르 킴 여사가, 혹은 효은의 엄마인 김 선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곰곰히 예상해 보았다. 진명은 이 악보들을 (한수의 메모에 따르면)김애란을 그렇게도 원망했던 김 여사에게 보여 주면 어떻게 반응을 할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최소한 그 악보들을 읽어 보면서, 그녀가 유학을 가서 그 음악가를 ‘버린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얼마나 그 음악가를 그리워했는가를, 그리고 그녀가 그 음악가에게 가지고 있었던 마음에 얼마만큼의 진심이 들어 있었는가를 이해해 주기를 진명은 내심 바랬다.

 

 한편, 효은은 그 악보를 보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만큼 젊었던 시절, 그러니까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 그리고 한 학교의 음악 선생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이자 음악을 공부하는 학도었을 때의 모습이 어땠을지 파스텔 그림마냥 흐릿하게 그려 보았다. 어쩌면 은성이 상대적으로 가족보다는 일을 중요시 여겼던 것은, 그녀가 과거의 그 찬란했던 순간, 그 중에서도 좋은 기억만 있었던 그 알맹이 같은 기억의 중심부에 음악과 플루트가 끼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음악이 그녀의 유일무이한 재능이었고, 열정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음악가를 만나게 해 준 매개체였기에 그녀가 결혼을 하고 살림에 집중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에도 음악을 함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그 악보를 찬찬히 읽어 보면서, 효은은 그렇게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김애란이라는 그 인물은 그녀의 어머니와 어디서부터 닮고 어디가 달랐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만연해져만 갔다.

 

 그렇게 서너 장의 악보를 넘겨 본 다음, 진명이 악보들을 찬찬히 모아 원래 있는 곳으로 가져 갈 준비를 하다가, 자신을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 보는 효은의 이런 목소리로 인해 순간 멈칫했다.

 

 “문디야, 인증 안 하나 인증? 악보 원본 찾았으믄 기사에 찾았다는 증명을…”

 

 그 얄상한 입가를 진명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잡아 막으며, 중간에 끊어진 그 말에 무심한 태도로 대답하고서는 악보 정리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멍청아, 우린 지금 고 유재하 님의 첫사랑 후보들을 찾는 거지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찾는 게 아니라고.”

 

 그 말에 효은은 아차 했는지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살짝 쳐 보다가, 문득 무슨 좋은 생각이 난 듯 진지한 눈빛으로 진명을 쳐다보며 이렇게 나지막히 내뱉었다.

 

 “…그래도 혹시 아나? 나중에 억수로 좋은 사진감이 될제.”

 

 그리하여 진명은 효은이 목에 걸고 있던 사진기로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악보 사진 몇 장을 찍어 대고 난 후, 다시 차곡차곡 악보를 쌓아 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열린 창 틈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고기 냄새가 퍼져 오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 매트리스 위로 스프링처럼 튀어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하얀 식탁보가 단정하게 펼쳐져 있는 자그마한 식탁 위에 얹혀진 하얀 접시 위에는, 진명과 효은 몫으로 각각 1인분씩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고기 위에 왠지 토마토를 으깨어 만든 것 같은 진한 붉은 소스가 그 위에 얹혀지고 그 옆에 들러리마냥 곁들여 있는 야채가 먹음직스러움과 조화를 더해 주는 요리가 얹혀져 있었다. 부엌 너머로 웬 4분의 2박자의 경쾌한 곡조를 휘파람으로 불며, 카나리아의 깃털마냥 샛노란 원피스에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일에 몰두해 있는 중년 여자의 뒷모습을 두 사람은 흘깃 쳐다 보고 난 후, 닭고기를 한입 크기로 잘라 베어 먹어 보았다. 닭고기 한 점이 두 사람의 혀 끝에 닿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무언가를 양 손에 들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식탁으로 다가오는 중년 여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보였다. 중년 여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무안하고 민망한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녀처럼 높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웃어 제껴 버렸다. 그러고서 중년 여자는 곧 짐짓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 채 위풍당당한 자세로 식탁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믄유. 바하마 스타일이 워디 가겄슈? 특히 이 로즈 톰슨이 맹근 건 한술 더 혀.”

 

 중년 여자가 ‘바하마’라는 단어에 왠지 힘을 더 주어서 말하고, ‘로즈 톰슨’이라고 말했을 때에는 자신을 향해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보아 진명은 집 주인인 중년 여자가 ‘바하마’라는 곳에서 온 ‘로즈’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효은이 일기장에 있는 게 맞았다고 나지막히 속삭이자, 진명도 눈을 여전히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와중, 자신의 식사를 태연하게 먹고 있던 중년 여자, 그러니까 로즈는 진명에게 고개를 쭉 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렇게 말을 내뱉었다.

 

 “당신이 그 기자 양반 맞쥬? 아까 들어올 땐 생각 안 났다가 시방 기억나는디, 김애란이 그 여자 어디로 튀어 갔는지 말해 주믄…워뗘, 들을 텨?”

 

 그 말에 진명이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회심의 미소를 씨익 지으며 로즈는 나지막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진명에게 내뱉었다.

 

 “그 여자, 여기 없슈. 아니, 지 말은 영국엔 읎슈. 지가 그 여자, 에스토니아에 읎다믄 지 손에 장을 지지것슈. 그 여자가 거기 살고 싶다고 언젠가 내한테 말혔어. 찾고 싶으믄 내일 비행기 타고 가슈.”

 

 진명은 여자의 무심한 듯한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애란의 빛바랜 파란 일기장이 생각났다. 사실 진명이 감감히 읽어 본 부분만 해도 그녀의 일기장에 있는 ‘에스토니아’라는 단어는 갑자기 등장해서 그야말로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 내는 예능계의 신인처럼 여러 번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진명은 에스토니아라는 그 나라가 어디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하기도 했거니와, 몇 시간 전에 런던으로 비행기를 타고 와 아직 런던의 시차도 적응되지 못했는데 곧바로 다음 날 해외로 떠나라니 고역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김애란이라는 그 요지의 인물이 지옥에 있으라면 지옥문 앞쪽이라도 가는 것이었고, 하물며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에 있다고 하면 가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그래서, 진명은 로즈의 말에 아무 말 없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참말로 감사합니더.”

 

 진명의 맞은편에서 식사를 막 끝마치고 그 모든 얘기를 듣던 효은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대꾸하자, 로즈는 효은을 미심쩍은 눈빛으로 위아래로 올려다 보더니 혀를 츳츳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였다.

 

 “설마 아가씨도 내일 거 갈 거 아니쥬? 아가씨가 좋아할 만한 동네가 아닐 터인디…”

 

 “쟤 여기까지 질기게 왔다구요.”

 

 “거기 좀 위험할 텐디, 도둑놈들이라든지, 소매치기라든지 건달이라든지…”

 

 진명의 대꾸에 그렇게 또 받아 치고, 로즈는 자기도 너무 말을 심하게 한 것 같다고 느꼈는지 헛기침을 하고 나서 효은 앞으로 바싹 다가와, 왠지 측은하고 깊어 보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잠시 쳐다 보았다. 그리고 로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효은은 왠지 그녀가 무언으로 무언가 입 밖으로 꺼내는 말보다는 다른 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예를 들어 자신이 사실 외로우니 말동무라도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든가 말이다. 효은은 그 시선을 애처 회피하려 했지만, 그녀가 똑바로 마주 본 로즈의 눈빛에서는 왠지 모를 쓸쓸함과 진심이 어려 있었다. 높은 절벽에 독야청청 자라는 늙고 굽은 소나무와도 같았다고나 할까. 서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효은은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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