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후, 진명과 효은은 카페에서 나와, ‘런던 아이’라고 하는 그 강변의 관람차에 올라탔다. 캡슐은 마치 기어 올라가듯 허공을 향해 천천히 올라 갔고, 오르면 오를수록 노을로 물들어 불그스름한 템즈 강 주변은 더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 광경을 말 없이 지켜 보는 효은의 눈빛에는, 전에 없는 우수와 슬픔 그리고 약간의 죄책감이 담겨 있었다. 평소 같으면 역시 런던이란 이 장소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니, 어차피 질 텐데 그깟 야구 경기 하루쯤은 안 봐도 괜찮다니, 여기서 영원히 살고 싶다니, 뭘 어쩐다니 하며 쫑알쫑알 수다를 떨어 댔을 효은이 우수에 찬 눈빛으로 멍하니 바깥만 바라보는 게 진명은 조금 이상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가만히 나둬 보기로 하고 그도 말 없이 템즈 강의 전경을 내다 보았다. 차들이 환하게 켠 비상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둘러진 색색의 전구들마냥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노을 위로 보이는 그 유명한 시계 첨탑은 마치 엘르 킴 여사 같은 우아한 중년 여성처럼 빼어난 자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캡슐이 점차 높이 올라가자, 그제서야 용기가 생겼다는 듯 진지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효은이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사실은 말이다, 아였을 적에 울 옴마가 차라리 내를 영도 다리에서 주워 왔다했음 좋았을 거라꼬 생각했다 아이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떠오른 진명의 놀란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효은은 고개를 돌려 흐려진 눈길로 진명을 마주보며, 가면 갈수록 감정이 격앙되고 결국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어렸을 적에, 운동회나 소풍이 사실은 그케꺼정 안 좋았다. 옴마가 안 와갖꼬, 맨날 할무나니 울 언니가 보호자로 따라 갔다 아이가. 옴마는 연주회 있다꼬, 마산에 있넌 브니엘 학교 제자들이라 카넌 사람들과 뭐 칸다고 안 오고, 내는 다른 아들 보믄서 울 옴마도 점마가 묵고 있는 거코롬 따끈따끈한 김밥 싸달라꼬, 그랬으믄 소원이 읎겠다꼬 생각했다. 근데 울 옴마가 선상이고 연주자라서, 알고 보니 그기 쉬운 기 아닌기라."
"그래서 내가 소풍 갈 즉에 만날 묵은 건, 근처 휴게소 김밥이었다. 그래서 내사 휴게소 김밥이 싫은 기라. 김밥 볼 때마다 내 중핵교 입학식에도 결국 못 와뿐 옴마 얼굴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래서 어느 날엔가 옴마가 퇴근하고 오자마자, 내 화 내믄서 옴마한테 이케 소리 질러 뽰다. 옴마, 내 그릏게 싫나? 내 영도다리서 주어 왔나? 아니다, 내사 옴마럴 영도다리서 주어 왔다카이!”
그 말까지 하고 나서, 잠시 아무 말도 안 하던 효은의 오른쪽 눈에서 한 줄기 물이 흘러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진명은 보았다. 누구에게나 내면에 한 가지씩 아픈 상처가 있다는 말은 정녕 맞는 말이었지만, 진명은 효은이 가지고 있는 그 상처가 그렇게 큼지막할 줄은 몰랐다. 진명이 그 장면으로 인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 채, 효은은 아까와 같은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
“ …그런데 말이다, 그 담에 찰싹 소리가 쎄게 나드라. 맞다, 옴마가 내 뺨따구 쌔린 기라. 옴마가 쌔리고 나서 옴마 얼굴 빤히 본 거… 그건 내사 인생에서 저질러뿐 가장 큰 실수였던 기라. 옴마, 울고 있었다.”
그 말까지 겨우 끝내고 나서, 효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진명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소리를 내며 그녀의 얼굴 선 밑으로 떨어졌다.
“…내가 나쁜 년이었다.”
그 마지막 말을 툭 내뱉고 나서, 효은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조용해 보이지만 서럽게, 매우 서럼고 서운하고 슬프게 흐느꼈다. 진명은 그 모습을, 누군가가 마하의 속도로 달려 와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친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진명의 뇌리에 은성이 이메일을 통해 효은에게 전한 말이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어머니로써 노력을 많이 못 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딸의 어린 시절에 그랬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녀에게도 그녀만의 상처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떠나 어머니였기 때문에 딸이 자신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 뒤 굉장한 모멸감을 느꼈으며 이제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주고받은 상처와 미심쩍은 감정들을 털어 내고 싶다는 바램 같은 것을 말이다. 그 말들을 생각하고 나서 진명은 천천히 앞을 다가가 무릎을 꿇고, 자기 앞에서 몸을 파르르 떨며 흐느끼는 효은을 마치 인형 다루듯 조심스럽게 두 팔로 껴안아 자신의 품 안으로 감쌌다.
진명의 뇌리에는 처음 부산역에서 효은을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녀와 함께 떠나 왔던 여정들을 죽 돌이켜 보았다. 그렇다. 진명의 정의에 따르면 효은은 분명히 ‘매력적이게 생긴, 음악가인 엄마를 모시며 살아가는 화끈하고 수다스럽고 눈치도 빠르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쿵짝도 어딘가는 잘 맞고, 게다가 은근히 친절하기까지 한, 동남 방연의 거의 모든 것을 성대 안에 담고 있는 ‘멋진 부산 아가씨’였다. 그렇게 진명의 효은에 대한 감정은 ‘경계’에서 ‘이질감’, ’한심함’, ‘동질감’, ‘동료애’,’동료애’, ‘정’, 그리고 ‘호감’으로 변모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 그러니까 ‘사랑하는 여자’는 따로 있었기에 진명은 차마 효은을 ‘사랑한다’고까지는 생각할 수 없었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나쁜 년이잖아…근데 울 옴마는 와 미안하다 하는데! 미안한 건 낸데 와 옴마가 미안한데!!”
하지만 진명의 품에 안겨 있는 지금의 효은은, 그렇게 소리치며 몸을 들썩들썩 떨고 있는 채 너무나도 가련하고 힘 없는 모습으로 그의 앞에 있었다. 그렇게 작고 날개를 다친 새와도 같은 효은의 얄팍한 등을 아기 달래주듯 토닥토닥 일정한 박자로 두들겨 주는 진명의 시선 너머로 어느 새 해는 져 하늘은 어둑어둑해졌고, 정상까지 올라 온 런던 아이의 캡슐은 휘황찬란한 빛과 모습을 뽐내는 시계첨탑을 그대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도 별은, 쓰라리면서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관람차에서 내린 진명과, 언제 울였냐는 듯 다시 평소처럼 밝아진 표정의 효은은 택시를 타고 김애란의 빛 바래고 푸른 일기장에 그대로 적혀 있는 주소대로 옮겨 갔다. 예상 외로 번화했으며, 지나가는 인파들이 내뱉는 수많은 언어들로 뒤섞인 잡담과 대화로 채워지는 노스켄징턴의 거리를 걷던 두 사람은, 곧 그 거리 ‘4번가 58번지’에 있는 이층집에 도착했다. 그 집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웬만해서는 사람이 살지 못할 정도로 비좁고 허름하지는 않으며 그냥 주변에 있는 다른 집들과 똑같은 그런 집이었다.
“마, 점마 참말로 부잔가부다.”
효은이 4번가 58번지의 새하얀 이층집을 위아래로 훝어 보며 놀란 기색으로 말을 잇자, 진명은 무심하게 초인종을 누른 후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효은의 말에 대꾸했다.
“혹시 알아? 3대가 대대로 살아 온 집일지.”
문틈 너머로 발자국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 오더니, 곧 문 열쇠를 따는 소리와 철컥, 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리며 그 낡아 보이는 나무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안에서는, 검은 수세미같이 억세고 빡빡하며 앞머리에 약간 새치가 솟은 머리, 캐러멜색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젊은 시절엔 시쳇말로 ‘남자들 여럿 울리고 다녔을’ 한 중년 여인이 놀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한창 그렇게 두 사람을 대면하다가, 여인은 곧 억센 말투의 영국식 억양이 섞인 영어로 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당신들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고 있슈?”
순간 이 여자의 말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두 사람은 거기서 그대로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이들을 한참 쳐다 보던 여자는, 곧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마치 자그마한 초콜릿 트러플 두 알이 박혀 있는 것만 같은 눈을 더 크게 부릅뜨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당신덜 여기 사람 아니쥬? 내 말이 맞쥬?”
이와 동시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명이 일단 자신들이 이 곳으로 굳이 찾아 온 이유를 그 중년 여자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려고 애썼다. 진명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뒤, 여자는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그 여자 간 지 좀 됐는디, 아마 여기 없겄쥬? 근디 걔가 흔적 좀 냄기고 가서 말여…”
그 말을 하고 중년 여자는 조금 더 망설이더니 두 사람을 보고 오라고 손짓하며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서는, 중년 여자는 한 번 더 뒤를 돌아 보고 이렇게 넌지시 말을 띄웠다.
“일단 들어 오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