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9-2.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2)
작성일 : 17-11-09 10:07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469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서 오십시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강변이 보이는 아담하지만 분위기는 집처럼 편안해 보이는 자그마한 카페였다. 커피 볶는 냄새와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마치 원래부터 한 냄새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나무로 만들어진 벽면 안의 판 위에서 오후 세 시 반 남짓 된 시각을 만들고 있는 아날로그형 시계 밑에 있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울려 퍼지는 오디오가 그 분위기에 할아버지의 오래되고 구수한 옛이야기와도 같은 느낌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원래부터 이 분위기를 위해 태어났다는 듯, 비록 빛 바랜 녹색 앞치마를 입은 약간은 남루한 차림이었지만 젊은 시절 탐스럽고 윤기 났을, 그러나 지금은 푸석하고 곱슬거리는 적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의 여주인이 새싹빛은 담은 눈동자를 빛내며 정중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살짝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했다. 이에 진명과 효은도 여주인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꾸벅 인사했다. 효은의 눈에 여주인의 왼쪽 가슴에 빛나는, 검은 글씨로 ‘에스더 밀러’라고 씌여진 명찰을 흘낏 볼 수 있었다. 그 여주인, 아니 에스더의 안내를 받으며 창가 쪽 자리를 잡은 진명과 효은에게, 흰색의 간결한 메뉴판을 건내 주며 에스더는 살가운 태도로 말을 이었다.

 

 “당신들 한국인 맞죠?”

 

 이에 진명과 효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예감이 적중해서 기쁜 듯 여주인은 소녀마냥 싱그러운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저 노래 듣고 찾아 온 사람은 한국인이었더라고요.”

 

 그리고 여주인은 씰끗 웃으며 다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다운 어투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이에 진명은 메뉴판을 슬쩍 보고, 효은도 같은 행동을 한 다음에 각각 아메리카노 두 잔과 생크림 얹은 와플을 주문했다. 여주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모든 것을 적더니, 창가 쪽은 지긋이 쳐다보는 효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아무 움직임도 하지 않더니, 뭔가 추억거리가 떠올랐다는 듯 지긋이 말을 이었다.

 

 “아가씨가 창 밖 저쪽을 바라보는 게 예사롭지 않군요. 옛날, 당신같이 참하고 예쁜 아가씨가 저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방금 그 노래를 듣고 멈춰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군요. 그 노래에 무슨 사연이 깃든 것 같았어요.”

 

 “정말요?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효은이 의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어보자, 여주인은 잠시 회상에 잠긴 듯 하늘만 한 번 쳐다 보고 난 뒤. 마치 그 일이 어저께 일어난 듯 덤덤한 말투로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그 여주인이 그 카페의 종업원, 그러니까 ‘사장님’이 아니라 ‘에스더’나 ‘미스 스티븐슨’, 또는 ‘미세스 밀러’라고 불렸을 때,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서 어렵게 올라와 음대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국인 유학생이 있었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계 중국인, 그러니까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연변 동포’이자 ‘조선족’이었다. (진명은 왠지 모르게 비연이 떠올랐지만, 그저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무시했다.) 아무튼, 그 사람이 음반이 좋다며 그 당시 가게 주인이었던 사람에게 주고 갔고, 비록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멜로디나 가락이 매력적이고 좋아서 틀어 놓고 간간히 손님들에게도 들려 줬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 음반을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워 두었을 때 그 여자는 심심해서 그 음반을 손님이 없는 한가한 오후 시간대에 틀어 놓았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우아해 보이는 한 동양인 아가씨가 그 노래가 들렸는지 우두커니 멈춰 서서 그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노래에 깊은 사연이 있었는지 아가씨의 표정은 우울한 듯 감성에 한껏 젖어 있었는데, 우수에 젖은 눈빛 한 가운데에 빛에 굴절되는 물이 살짝 보였고, 그녀가 아무래도 노래를 들으며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을 생각했다는 것을, 적갈색 머리의 그 여자는 눈치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동양인 아가씨가 노래를 들으며 누구를 떠올렸는지는 그 적갈색 머리칼의 여자도 자세히 알 수는 없었는데, 동양인 아가씨가 그 사람은 자신의 약혼자라고만 짤막하게 대답하고 슬픈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 버렸기 때문이란다.

 

 이야기가 끝나고 묵직한 분위기가 감돌자, 효은은 잠시 손을 씼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 버렸다. 호롤 남은 진명은, 여주인이 주문받은 커피와 와플을 가지고 오는 동안 그 여자가 했던 이야기를 일단 빠짐없이 적어 보였다. 그리고 여주인이 간식거리를 들고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 진명은 벌떡 일어나 비장한 표정으로 여직원에게 물어 보았다.

 

 “그 일이 일어난 게 몇 년도였는지 기억하세요?”

 

 여직원은 잠시 생각하고 망설이다가, 음식을 놓으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1988년 늦가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직원이 총총히 사라질 무렵, 진명은 다시 그 날짜를 메모지에 적어 놓고 난 뒤 또 다시 혼자 생각에 빠졌다. 그 시간은, 그 음악가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다 되는 시간이었다. 그녀도 그 음악가가 뭇내 그리웠던 것일까. 그 음악가가 세상에서 스러져 별이 되어 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진명의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그의 해외로밍을 시킨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을 열어 보니 이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그 이메일을 효은의 어마, 그러니까 은성 씨, 아니 김 선생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녀가 왜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내게 이메일을 보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진명은 김이 솟아나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이메일을 죽 읽어 보았다.

 

 - - -

 

 ‘서 기자님께 일단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기자님께서 지금 제 첫사랑에 대해 알아보느라 힘겨운 시간 보내시고 계신 것 같은데, 기자님 덕분에 저는 그 사람이 하늘로 돌아가고 나서 무려 20여 년 동안 숨겼던 일, 비밀들을 공개하게 되네요. 저희 그 이가 사실을 알게 되면 시쳇말로 미치고 펄쩍 뛰겠지만, 에지 그 이도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이제는 상관 없네요. 그런 의미에서, 기자님께서 도움이 아주 크게 되시리라 믿고 부산 저희 집에서 말씀 못 드린 사실을 이 글로나마 알려 두리고 싶습니다.

 

 혹시 그 사람의 노래 ‘가리워진 길’을 알고 계신가요? 알고 계신다면, 처음 몇 소절이 조금 허망하고 냉정한 어투라는 것도 혹시 느끼셨는지요? 이제 와서 말씀드려서 죄송하지만, 그 노래가 만들어진 이유 중 8할 정도는 제가 차지하고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제가 뉴욕으로 유학을 가 있었을 때입니다. 그 사람이 용케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챘더군요. 사실 부모님은 제가 음악을 하는 것을 벌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더 ‘안정된 직업’인 선생님이나 간호사가 되기를 원하셨죠. 그렇지만 제가 간신히 이루어 나가는 무언가를 보고 이제 음악을 그만두라는 그 태도를 포기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그게, 그 사람에게까지 넘어갔더군요. 비겁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부모님의 눈치 속에서 그 사람과 위태위태하게 관계를 지속하기에는 제가 잃을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만큼 젊었을 때의 제가 이기적이고 제 자신만 아는 사람이라는 걸 저는 지금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학도, 사실 그 복잡한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 급작스럽게 훌쩍 떠나왔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말도 안 하고 갔으니까 영원히 모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지가 생각했던 거소다 훨씬 더 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더군요.

 

 유학하던 2년 중의 어느 늦은 밤, 제가 묵고 있던 하숙집에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더라는군요.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더군요. 너 은성이 맞냐고, 맞으면 내가 너 무진장 보고 싶어서 미국까지 날아왔다고, 언제 한 번 얼굴 좀 보고, 인생의 마지막이어도 좋으니까 내가 처음 반했던 너의 하얗고 고운 손을 마주잡고 둘이서 얘기 좀 하자고. 순간, 눈물이 왈칵 솟더군요. 아, 내가 그 사람을 버리고 떠난다고 하더라도 저 사람은 아직 아니구나. 아직 나를 떠나 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었구나.

 

 하지만 저는 두려웠습니다. 여기서까지 그 사람을 마주하기 두려웠습니다. 이제서야 그 사람을 잊을 수 있게 되었는데, 저도 모르게 사실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었으며 다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제 입으로 여기에는 그런 사람은 없다고 말해 버렸습니다. 말하고 나서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눈물이 나더군요. 사실 저는 그 사람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저는 그 감정을 권태롭고 쓸데없다고만 생각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지금 그 사람이 제 옆에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다른 말은 필요 없고…당신을 사랑했다고.

 

 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그런지 괜히 주책맞게 이런 말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옵니다. 효은이는 잘 데리고 있죠? 그 아이한테 어머니로서, 아니 그 전에 사람으로서 이 말 하고 싶습니다..’

 

 - - -

 

 “뭐하노?”

 

 이 목소리에 진명은 보고 있던 핸드폰 액정에서 번쩍 고개를 들어, 화장실에서 돌아온 듯한 효은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을 보고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효은이 자리에 앉자마자 진명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진지한 모습으로 효은에게 아직 그대로 액정이 켜져 있는 핸드폰을 건넸다. 무덤덤하게 그것을 받은 효은은, 커피를 한 모금씩 들이키고 와플을 야금야금 먹어가며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는 핸드폰의 스크롤을 죽죽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마치 세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말을 들은 듯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 갔다. ‘사랑하기 때문에’의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작고 아담한 카페의 창문 너머로 먹구름은 지나가고 있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글에 대한 자세한 설명 2017 / 11 / 6 563 0 -
39 에필로그: 4개월 후 2017 / 12 / 1 370 0 4186   
38 11-4. 그대와 영원히 (4) 2017 / 11 / 30 315 0 1682   
37 11-3. 그대와 영원히 (3) 2017 / 11 / 29 304 0 4686   
36 11-2. 그대와 영원히 (2) 2017 / 11 / 29 300 0 4505   
35 11-1. 그대와 영원히(1) 2017 / 11 / 19 282 0 3994   
34 10-4. 비애 (4) 2017 / 11 / 12 277 0 3454   
33 10-3. 비애 (3) 2017 / 11 / 11 283 0 4342   
32 10-2. 비애 (2) 2017 / 11 / 10 272 0 5195   
31 10-1. 비애 (1) 2017 / 11 / 10 293 0 3929   
30 9-4.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4) 2017 / 11 / 9 316 0 4455   
29 9-3.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3) 2017 / 11 / 9 295 0 4054   
28 9-2.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2) 2017 / 11 / 9 305 0 4692   
27 9-1.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1) 2017 / 11 / 9 303 0 3420   
26 8-4. 텅 빈 오늘 밤 (4) 2017 / 11 / 8 280 0 2061   
25 8-3. 텅 빈 오늘 밤 (3) 2017 / 11 / 8 291 0 4784   
24 8-2. 텅 빈 오늘 밤 (2) 2017 / 11 / 8 307 0 3667   
23 8-1. 텅 빈 오늘 밤 (1) 2017 / 11 / 8 602 0 4428   
22 7-2. 우울한 편지 (2) 2017 / 11 / 7 303 0 4846   
21 7-1. 우울한 편지 (1) 2017 / 11 / 7 285 0 5640   
20 6-5. 우리들의 사랑 (5) 2017 / 11 / 6 271 0 3599   
19 6-4. 우리들의 사랑 (4) 2017 / 11 / 6 272 0 4952   
18 6-3. 우리들의 사랑 (3) 2017 / 11 / 6 283 0 4818   
17 6-2. 우리들의 사랑 (2) 2017 / 11 / 6 276 0 6091   
16 6-1. 우리들의 사랑 (1) 2017 / 11 / 6 287 0 5702   
15 5-2. 사랑하기 때문에 (2) 2017 / 11 / 6 288 0 4052   
14 5-1. 사랑하기 때문에 (1) 2017 / 11 / 6 272 0 4062   
13 4-4. 그대 내 품에 (4) 2017 / 11 / 6 320 0 3500   
12 4-3. 그대 내 품에 (3) 2017 / 11 / 6 282 0 6173   
11 4-2. 그대 내 품에 (2) 2017 / 11 / 6 281 0 4740   
10 4-1. 그대 내 품에 (1) 2017 / 11 / 6 288 0 5817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