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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8-2. 텅 빈 오늘 밤 (2)
작성일 : 17-11-08 10:08     조회 : 306     추천 : 0     분량 : 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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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의 문턱 앞에서 비연과 제대로 인사한 진명과 효은은, 차이나타운의 붉은 가로등들, 동양적이고 약간은 이국적인 건물들과 삼국지의 주요 장면이 그려진 벽화를 지나 자유공원으로 올라 섰다. 바람은 더 없이 상쾌했고, 넓은 풀밭과 싱그러운 잎들을 수북히 키우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작은 숲과 그 곳을 등지고 위엄 있게 서 있는 더글라스 맥아더 동상을 지나 그들은 어느 정자에 닿았다. 2층으로 지어진 그 정자 위에서 그들은 인천 부둣가 앞바다에 유유히 떠다니는 배들을 볼 수 있었다. 효은은 난간을 잡고 그 모습을 보며 높은 곳에 올라가면 보아는 푸른 부산 앞바다의 모습을 잠시 떠올려 보았고, 진명은 누렇고 오래되어 해진 김애란 씨의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펴 보았다. 김애란 씨라는, 몇십 년 전의 인물일 줄만 알았던 사람이 이 수첩을 잡고 이 글씨체로 일기를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진명은 그 인물이 조금은 더 가깝고 친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기 뭐꼬?”

 

 인천 앞바다에서 눈을 떼고 효은은 진명을 쳐다 보며 똑 뿌러지게 물어 보았고, 진명은 일기장을 효은도 볼 수 있게 그 수첩을 든 손을 옆으로 조금 내밀며 이렇게 대꾸했다.

 

 “영국으로 유학 간 시절에 쓴 김애란 씨의 일기장이야.”

 

 ‘4월 30일.

 나는 그 사람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이역만리에 있는 타지에서도 여전히 큰 길에서 그 사람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아는 척을 할 것 같고, 비가 매일같이 내리는 하늘 위로는 그 사람의 아릿한 미소가 그려진다.

 런던에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은 런던에서 살아 본 적이 있다고 자부하는 친구의 친척 아저씨의 소개를 받아 하숙집을 구해 놓았다. 그곳의 주소는 일단 ‘노팅 힐 노스켄징턴 4번가 58번지’가 되겠다. 제박하숙집 안이 쾌적하고 고요하기를 주님께 남몰래 빌어 본다. 아침마다 창문을 열었을 때 탁 트인 풍경이 내 눈에 들어 온다면 난 더이상 바랄 게 없다.’

 

 “…뭐, 글 잘 썼구마. 작가래도 믿겄다 아이가.”

 

 효은이 첫 페이지에 있는 그 글을 읽고 나서 아무 부연 설명 없이 그렇게 대답하자, 진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동조했다.

 

 “다음 쪽에 뭐가 있을지 한 번 보자.”

 

 그렇게 장수를 넘지며, 진명과 효은은 김애란 씨늬 정갈한 글씨체로 적힌 일기를 조금 더 읽어 보았다.

 

 ‘5월 2일.

 하숙집 주인 여자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카리브 해 어느 섬나라에서 이민 왔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이름은 기억 나지 않는다. 아 참, 그 여자는 남편으로 추정돠는 장년의 남자와 함께 살고 있는 듯 하고 자식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뭐, 그 여자도 젊고 아름다우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 여자의 이름은 ‘로즈’. 그래, ‘장미’를 영어로 부를 때의 그 ‘로즈’이다. ‘로즈’와 나는 나잇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 참, 아침마다 신경 쓰이게 식사는 거르지 말라니, 교수들과 싸우지 말고 말 잘 들어야 손해 안 본다니 하는 우리 엄마가 할 법한 말을 자꾸 걸어 대는 것만 빼면 말이다.’

 

 ‘5월 6일. (옆에는 작은 글씨로 ‘제 1차 실기평가 시험 당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 년과도 같았던 한 시간이었다. 과장을 살짝 보태자면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정말 죽은 힘을 다해 연습했고, 어린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에도 짬짬히 시험곡인 ‘아를의 여인’을 연습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노래의 모든 것을 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심사위원들 앞에 서니 머릿속이 그야말로 하얗게 변해 버리는 것만 같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나도 잘은 모르겠다. 벌써 플루트라는 악기를 연습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강산이 변하기는커녕 하니 앞의 음표도 깨치지 못한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다.

 진짜 모르겠다. 일단 끝났으니 동료들과 파티를 하면서 끝났다는 그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음 실기시험을 완벽하게 치루기 위해 연습을 해야 할까. 일단 다음주 화요일에 발표될 시험 결과만을 기다리자.’

 

 ‘…5월 17일.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이고 뭐고, 플루트 연습이고 음악 공부도 자시고 그냥 영국이라는 곳을 하루만이라도 떠나 봤으면 좋겠다. 점심마다 길거리에서 사먹는 생선 튀김과 감자 튀김도, 쫑알대는 하숙집 여자도, 얼마 전 이사 와 성악을 마전공하는지 자꾸 노래를 불러 대는, 조선족 출신 유학생인 내 ‘룸메이트’도 오늘은 그냥 꼴 보기 싫다.

 김치가 너무너무 먹고 싶다. 불고기, 냉면, 새우구이, 소보로빵. 콩떡. 된장 찌개, 삼양라면, 버섯 전골, 막걸리에 파전…그리고, 한 때 그 사람과 자주 갔던, 혜화동 은행나무 앞 그 찻집에서 마시던 유자차까지도.’

 

 ‘5월 25일.

 오늘도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조금 있으면 비가 후두둑 떨어질 것 같다.

 학교에 갔을 때 우산을 챙겨올 걸, 이라는 생각이 조금 든다.

 나와 함께 관현악과에서 연주하는 미아는, 붉은 머리에 초록 눈동자를 가진 예쁜 아가씨다. 북유럽 어딘가에 있는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하는데. 미아가 하는 얘기를 들어 보니 그 나라야말로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인 것 같다.

 …아니면 차라리 그 곳에서 살까.’

 

 “뭐야? 여기서 왜 갑자기 에스토니아가 나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참 동안 일기장을 뒤척이던 진명은, 어느 순간 효은이 일기장을 보지 않고,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인천항 바다를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슬그머니 일기장을 덮었다.

 

 하늘은 주홍빛, 노랑빛, 보라빛 그리고 분홍빛이 섞여 있었고, 그 네 가지 색깔의 어울리는 조화가 일품인 ‘마블링’이 번져 바닷물마저 물들일 듯 했다. 넘실거리는 붉은빛 물결에 마치 작은 점들마냥, 화물선과 고기잡이 배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노을이 물들인 ‘주홍빛 분위기’ 아래에서, 진명은 젊은 남녀가 단 둘이 있을 때 으레 주변 공기를 싸고 도는, 왠지 모르게 독특하고도 묘하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은 기류가 자신이 뺨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진명은 효은을 보기 위해 옆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를 눈치챘는지 효은도 진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명의 코끝이 효은의 코 끝에 닿기까지 한 뼘도 걸리지 않는 그 거리에서, 진명의 눈동자에는 효은의 큼지막하고 강아지 같은 두 눈, 오똑한 콧대, 짧은 인중, 적당히 도톰한 입술, 그리고 바닷바람에 깃발처럼 넘실거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비춰졌다. 진명의 뺨이 붉어지고 뜨거워지는 건, 비단 그들 주위를 둘러싼 노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진명은 효은의 눈 높이를 맞추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숙이더니, 느리게 그리고 유리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자신의 오른손을 효은의 희고 차가운 왼쪽 뺨에 댄 후, 그보다 더 느린 속도로 자신의 입술을 효은의 입술에 닿는 쪽으로 대어 가고 있었다.

 

 진명은 자신이 하고 있는 그 행동 하나하나가 3년 전 비가 극심하게 내리던 밤 골목길의 자그마한 카페 앞에서 혜연에게 했던 행동과 일치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자각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진명의 그 모든 행동은 거칠거나 뻣뻣하지 않고, 대신 물 위에 떠 있는 백조마냥 유연하고 부드러워 어떻게 보면 우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두근대고 긴장되는 듯, 마치 영원과도 같은 그 느린 몇 초 사이에 눈을 감는 효은의 코 끝에 진명의 코끝이 맞물리듯 닿았고, 진명의 뜨겁고 다부진 입술이 효은의 부드러운 이불에 숨겨진 온기가 닿았다.

 

 라 장조의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맑고 청량하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울리는 사랑 노래가 더 없이 어울리는 그 순간에서 진명의 입술이 드디어 효은의 입술의 부드러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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