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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사랑에 관한 여섯 가지 필름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입방정 저주의 유전자를 타고난 그녀에게 한 남자의 6색 사랑이 몰려온다…… 인생 최대의 소란이자 변수.이것은 저주일까, 행운일까?

 
제 3화. 꿀렁대는 심장과 뇌
작성일 : 17-11-08 09:58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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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하면 나 몰라라 하는 거 아냐? 다들 그런다잖아.”

 

 소란은 고교 입학과 동시에 댄스 동아리에서 본격적으로 열정을 불살랐다. 인근 남고에서 일명 ‘댄싱 머신’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지조와는 3년 사귄 장수 커플. 신생 기획사 연습생으로 오랜 시간 고생해온 그는 조만간 아이돌 그룹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무슨 그런 말이 있어? 내 이름이 왜 지조겠어? 아이돌 아니라 아이돌 할아버지가 된대도 너 좋아하는 마음은 절대 안 변해.”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열아홉, 아홉수의 입방정 저주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됐었다. 하지만 저주는 소란의 운명을 피해가지 않았다.

 

 “네 이름이 안지조란 게 맘에 걸려. 지조를 안 지켜서 안지조일 수도 있으니까.”

 “에이, 설마.”

 

 그랬다. 녀석의 지조는 데뷔와 함께 정말로 ‘안지조’가 되고 말았다. ‘연애 금지’ 계약 조항을 핑계로 소란과 서서히 멀어지던 그는, 얼마 안 가 걸 그룹 모 양과의 열애설로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다.

 

 “기어이 사단이 나는구나. 그러게 왜 입방정을 떠니?”

 “3년 동안 사귄 공도 없이 참 꼴좋다. 입방정만 아녔어도 지금쯤 아이돌의 지고지순한 여친일 텐데, 쯧쯧.”

 

 다정과 미련의 타박에도 소란의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저 유전자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아홉수 입방정의 저주를 생물학적 유전자로 보는 게 맞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래, 다들 가라. 안지조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난 더 이상 아홉수가 아니라고! 이젠 진소란의 시대야!”

 

 소란은 꾸역꾸역 스스로를 위로하며 시간을 견뎠다. 잔망스런 저주여, 어서 물러가라.

 

 하지만 눈물은 생각지 못한 시점에서 터져 나왔다. 미당 서정주의 시 ‘귀촉도’를 배우던 국어시간.

 

 『서정주는 여러 관점에서 논의되는 시인 중 하나예요. 바로 그의 친일 행적 때문이죠. 뛰어난 문학 작품과 작가의 정치적 행적을 분리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입니다. 일각에서는 그의 변절이…….』

 

 변절. 그 단어가 눈물샘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 지점부터 소란의 눈물은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교실은 의아와 당혹으로 가득 찼다. 서정주의 변절에 소란이 왜 눈물을 흘리지? 소란이 서정주의 시를 그리도 아꼈던가?

 

 상황의 절묘함 탓일까, 아니면 사안의 무게감 탓일까. 국어 선생님도, 반 아이들도, 누구 하나소란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짠내와 단내가 혼재된 오묘한 분위기를 마무리지은 건 국어 선생님.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수능시험을 끝낸 소란은 ‘입방정 저주’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나서야 겨우 아홉수를 넘길 수 있었다. 아…… 징글맞은 나의 유전자여!

 

 ***

 

 변수의 책상 위에는 두 장의 명함이 나란히 놓였다. B대학 무안일 주임, 그리고 사일런스 서점 진미련 대표.

 

 ‘무안일, 진미련, 진소란. 진소란, 진소란, 소란…….’

 

 나지막이 읊조려본 소란의 이름은 어쩐지 입에 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소란? 왜 소란이지?

 

 “본부장님, 오후에 파주 출판단지에서 인문학 부서들이랑 미팅 있어요. 지금 출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송 실장님, 모르는 사람이랑 두 번 정도 마주쳤다고 칩시다. 근데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건 어떤 의미일까요?”

 “네? 그게 무슨…….”

 “그러니까 송 실장님이라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냐는 거죠.”

 

 유난히 돌출된 송 실장의 눈동자가 일순간 도드라졌다. 일생의 관심사가 오로지 일과 주식뿐인 송 실장으로서는 난데없는 질문일 터.

 

 “아, 그게 그러니까…… 떠오르는 이미지란 게 구체적으로 뭐냐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만.”

 “눈빛이라면?”

 “눈빛이요?”

 “네, 강렬한 눈빛이요.”

 

 송 실장의 얼굴에 일순간 화색이 돌았다. 뒤이은 그의 느물스런 미소.

 

 “그 눈빛이 남자 거라면 사업 파트너로 삼을 만큼 믿을 만하단 뜻이죠. 만약 여자라면…….”

 “여자라면?”

 “그린 라이트!”

 “네?”

 

 부드럽게 쳐진 변수의 눈매가 움찔하자 송 실장은 양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아무리 공부랑 일만 하고 사셨다지만 어떻게 그런 걸 모르십니까? 여자한테 그런 강렬한 눈빛을 느꼈다면 답은 하나뿐이죠.”

 “역시 그럴까요?”

 “네, 당연히 그렇죠.”

 

 송 실장의 얼굴에서 다시 한번 끈적끈적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변수는 어쩐지 그의 능글맞은 기대에 반항하고 싶어졌다.

 

 “여자여도 사업 파트너일 수 있죠.”

 “에이, 그건 아니다.”

 “송 실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성 차별주의자신가 봐요.”

 “아, 네. 네? 무슨 그런…….”

 

 변수는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여자의 강렬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그걸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변수의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

 

 “집에 자주 좀 들르지.”

 “서울에서 수원 오기가 어디 쉬운가?”

 

 딸 바보 명중은 소란의 방문이 뜸해질 때마다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부리곤 했다.

 

 “자주 와서 아빠랑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하면 좀 좋아?”

 “알았어. 앞으론 자주 올게. 근데 엄마는?”

 “알면서 뭘 물어? 집에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이잖아. 산악회 뒷풀인지 뭔지 한다고 초저녁부터 나갔어.”

 

 소란의 집은 평범했다.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경제력, 적당한 수준의 화목함. 다른 게 있다면 엄마와 아빠의 성향 정도라 하겠다.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는 여장부 스타일의 엄마, 다정다감하고 차분한 집돌이 스타일의 아빠. 두 사람의 극단적인 성향이 오히려 가정의 화목에 일조하기도 했다. 각자의 삶에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관조하듯 살아가는 부부.

 

 “엄마가 너무 바빠서 서운하진 않아? 같이 취미생활도 하고 조곤조곤 대화도 나누면 좋잖아.”

 “결혼생활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야. 길게 가려면 웬만큼 거리를 두는 게 좋지. 엄마랑 난 일찌감치 거기에 동의했고 지금까진 둘 다 만족해.”

 

 두 사람의 마라톤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이는 소란 하나 정도랄까. 소란은 언젠가부터 명중의 아내이자 친구, 딸의 역할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다.

 

 “아빠랑 매운 등갈비찜 안 해볼래? 저번 회식 때 맛집 가서 먹어봤는데 아무리 해도 그 맛이 안 나네.”

 “발렌타인데이 때 뭐 해? 만날 사람 없으면 아빠랑 뮤지컬 보러 갈래?”

 “요즘은 다육이 식물이 좋더라. 같이 화분 갈아줄까?”

 

 종류다 다양한 아빠의 제안이 귀찮게 느껴질 때마다 소란은 괜스레 엄마를 탓하곤 했다.

 

 “엄마! 아빠랑 시간 좀 보내면 안 돼? 엄만 맨날 뭐가 그리 바빠?”

 “그러게. 하는 일 없이 하루가 빠듯하다. 네가 자주 좀 와서 아빠랑 놀아줘.”

 

 엄마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결혼생활을 마라톤에 견주는 가치관의 폐해를 소란은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

 

 주소만 알고 찾아온 소란은 ‘북마켓’이란 회사명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마켓 최변수 본부장. 지난 며칠 사이 두 사람은 무려 두 번씩이나 우연히 마주쳤다. 마치 소란의 동선을 꿰고 있기나 한 듯.

 

 다정을 통해 댄스 강의를 의뢰해온 곳이 바로 그의 회사였다니. 소란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설렘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직원이 몇 백 명이라는데 꼭 마주치란 법도 없지.’

 

 소란은 댄스 수업이 있는 강당에 들어서며 수강생들을 찬찬히 살폈다. 그는 없었다.

 

 ‘그래. 댄스 같은 걸 배울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어.’

 

 나대는 심장을 뒤로 하고 겨우 안정을 찾았지만 어쩐지 아쉬움이 몰려왔다. 그래도 한번쯤은 마주치겠지?

 

 『재즈댄스는 일정한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출 수 있는 춤이에요. 음악에서 받는 느낌을 자신의 신체로 마음껏 표현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희 수업에서는 재즈댄스와 방송댄스를 결합해 자유롭고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입니다.』

 

 수강생들의 연령대는 2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 정도. 갖가지 복장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넥타이를 동여맨 수트 차림의 송 실장. 수강생 중 가장 고령인 그는 쑥스러운 듯 자꾸만 몸을 움츠렸다.

 

 『거기 수트 입으신 남성분! 댄스 수업이니까 다음부턴 조금 편한 복장으로 오시면 좋을 거 같아요.』

 『아, 네. 죄송합니다, 선생님.』

 

 송 실장의 얼굴이 발그레한 홍조를 띄었다.

 

 『이번 시간에는 먼저 상체 웨이브를 배워볼 텐데요.』

 『오오.』

 『와우.』

 

 소란이 웨이브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루브한 몸짓을 해보이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다른 수업 때 듣던 환호성과는 확연히 다른 음색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스트레스에 찌들긴 했어도 호기심을 발하는 눈빛만큼은 여느 수강생 못지않았다.

 

 『먼저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려 주세요. 이때 등 근육에 힘을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가슴을 활짝 열어 주시면 돼요. 이렇게요. 네, 잘 하고 계십니다.』

 

 송 실장의 어정쩡한 동작은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가슴 근육을 펼친 모양이 한없이 부자연스러웠다. 외근이 없는 한 온종일 꼼짝 않고 움츠려 일하는 자세 탓이었다.

 

 『자, 그 상태에서 엉덩이를 바깥쪽으로 약간 빼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상체의 중심을 날아갈듯 살짝 내려주세요.』

 

 철커덕. 강당의 출입문이 열렸다.

 

 “송 실장님! 송 실장님 어디 계세요?”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등장한 누군가의 실루엣. 소란의 심장과 뇌가 격하게 꿀렁대기 시작했다. 어스름한 조명 아래 살아 움직이는 저 실루엣은 분명…….

 

 

 《살아있는 것은 움직인다 -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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