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7-2. 우울한 편지 (2)
작성일 : 17-11-07 18:41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484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진짜 그 아줌마가 말하는 걸 그대로 쓰기만 하면 돼요?”

 

 잠시 후, 콩쿠르 시작을 오십오 분 남겨 놓고 자신에게 갑자기 찾아 와 자신의 손에 연필과 진명의 수첩을 쥐어 주며 중요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다급하게 말하는 진명과 효은이 한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만일 한수가 사춘기 소년이었다면 잠시라도 가슴않이를 했을 정도로 긴 생머리를 포함해 젊고 예쁜 외모를 가졌으나, 실상은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엄하고 무서웠던 피아노 선생에게도 화장실에 다녀 오겠다고 말하고 나온 일인데, 그 일을 도와주느라 늦으면 또 선생에게 한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수는 그 몇 개월 동안 하루에 아홉 시간이라는 지대한 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보내었고, 여덟 살 아이에게는 너무나 많이 할당된 시간이었지만 어쨌거나 한수는 묵묵히 버텨 내었고 피아노 선생의 말에 따르면 남은 오십오 분이 가장 중요한 마지막 연습 시간이었으며 그것을 단지 자투리 시간쯤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작은 도움이 진명과 효은에게 말 그대로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지도 아직까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만난 지는 얼마 안 된 시간을 감안하자면 학교에서 자신을 도와 주었던 은혜도 있고, 진명이 부모님의 우상에 관련된 일을 취재하는 기자였으며 본인도 효은에게 나름의 천진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수는 흔쾌히 도와 주기로 했다.

 

 “그런 기다. 니는 그 가시나 하넌 말만 단디 들으라. 그리고 한 줄도 빼 놓지 않고 그대로 단디 적으라. 그라믄 되는 기라. 알았제? 니만 믿는다.”

 

 효은이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자신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한수는 안심이 되었다. 진명도 한수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었고, 그 격려를 받으며 한수는 진명이 세심하게 가르쳐 준 위치대로 걸어 나가 김 여사의 대기실로 들어 갔다. 마침 김 여사가 화장실에 가고 없어 대기실은 비어 있었다. 한수는 지빼르게 몸을 날려, 교장실에 있는 가장 큰 가구를 연상시키는 적갈색 원목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정확히 예순 세 번(대기실은 고요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울리고 난 후, 김 여사가 문을 열고 다시 대기실에 들어왔다. 한수는 저도 모르게 긴장감이 어려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다행히도, 주사기에 담긴 보톡스를 맞았는지 아까 전보다도 더 젊어 보이는 김 여사는 한수가 책상 밑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듯 했다. 김 여사가 한수가 숨어 있는 책상에 다다랐고, 곧이어 그 옆의 바퀴 달란 의자 위에 앉았다.

 

 한수는 김 여사의 균형 잡힌 뽀얀 종아리와, 그녀가 신고 있는 검정 스틸레토 힐을 볼 수 있었다. 김 여사는 긴장을 탄 듯 유리잔에 담긴 물을 마시며, 콩쿠르가 시작될 때 할 연설문을 몇 분간 낭독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그녀가 우아한 교양인이라는 것을 뽐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한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아침마다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연설을 몇 분간 쉼 없이 내뱉었던 자기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떠올렸다.

 

 시계침 소리가 또 서른 번 울리고 난 후 책상 위의 구식 전화기에서 전화벨이 울리자, 김 여사는 거의 끝부분까지 다다랐던 낭독을 멈추고 손을 뻗어 전화기 손잡이를 잡았다. 그녀는 수화기에 최대한 입을 밀착시키고 낮은 목소리로 전화에 응답했다.

 

 “여보세요? 아, 은실이니?”

 

 그 때까지 닌자처럼 꿈쩍 않고 책상 밑에 꿇어 앉아 있던 한수는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그대로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 마치 TV 드라마를 지켜 보듯 다음에 벌어질 일, 그녀가 다음으로 할 말을 기다렸다. 한 편, 김 여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은실’이 하는 말을 들은 다음 이렇게 대답했다.

 

 “야, 내가 말숙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내가 동창회에서 말한 거 기억 안 나? 난 이제 예전의 김말숙이 아니라고. 내 남편이 장 피에르 까뮈야. 들어는 봤겠지, 콩세르바투아르라고. 파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음악 학교인데 거기 교수야, 교수.”

 

 잠시 멈춤.

 

 “어머, 얘는. 너, 내가 잘 되니까 질투가 이만 저만이 아니구나. 어제는 음악 잡지 기자도 취재하러 왔다고. 그것도 ‘월간의 멜로디’에서.”

 

 잠시 멈춤.

 

 “그래, ‘월간의 멜로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뭘 취재하러 왔는지 아니?”

 

 잠시 멈춤.

 

 “그게 있지… 재하 씨, 재하 씨에 관한 얘기였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재하 씨.”

 

 잠시 멈춤.

 

 “그래서 그냥 대답은 했지. 김애란과 재하 씨가 군대 때문에 헤어진 얘기.”

 

 한수는 ‘김애란’이라는 이름에 뭔가 궁금증이 생겼지만, 일단 숨을 죽이고 그 얘기도 썼다. 침묵이 길게 이어지고, 그 침묵이 끝나자마자 김 여사의 얼굴에는 아까의 그 위풍당당함과 우월감은 어디로 가고 곧 울 것 같은, 뭔가를 뺏기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자신의 마지막 의지가 담긴 표정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조금씩 울먹거렸다.

 

 “내가 그걸 왜 말해? 김애란 그 여자가 자기 남자친구랍시고 유재하를 데리고 와서, 나는 멋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고 그냥 유재하한테 첫눈에 반해 버리고, 그 여자가 유학 간 사이에 내가 유재하를 말 그대로 꼬시고 사귀게 된 걸, 그걸 어떻게, 무슨 수로 말해? 유재하도 내가 김애란의 남자친구를 뺏고 내 사람, 내 남자로 만들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1년도 안 가 군대 간다면서 나랑 헤어지려고 한 것이겠지.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군대 갔다 오기가 무섭게 김은성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여자애랑 사귀기 시작했잖아."

 

 "그래, 그러니까 유재하는 내가 싫었던 거야. 당연하겠지, 누가 박힌 돌 빼내려는 굴러 들어온 돌을 좋아하겠니? 덕분에 나만 욕을 잔뜩 먹었지. 세상에 남자가 반이라는데 왜 하필 가까운 선배의 남자친구냐고. 이왕 욕을 먹는 김에 김애란 그 여자도 같이 먹었으면, 그렇게까지 억울하진 않았을 거야. 그런데 그 여자가 나 보고 뭐라는지 알아? 지 인생에서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야 할 쓰레기래."

 

 "아니, 지는 유학 가서 재하 씨를 버리다시피 해 놓고선 그런 말이 쉽게 나오냐고? 비록 골에 골키퍼 없다고 공이 안 들어가지냐는 것도 좋은 핑계일 뿐이라는 거 나도 알아. 나도 그 때 내가 어리석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 땐 나도 외로워서, 그리고 유재하가 너무 좋아서 홧김에 한 거야. 그리고 지금 나를 봐. 난, 더 이상 예전의 아무것도 모르는데 모든 걸 다 아는 척 철없이 날뛰었던 김말숙이 아니잖아. 나 지금 잘 살고 있고, 남편도 있고 밑에 애도 둘이나 있어. 너라면 그 얘기를 그 기자한테 천진난만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하게 말할 수 있겠니? 난 못 해. 난,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거 내 눈 앞에서 무너지는 꼴 보이기 싫어서 말 못 해. 치사하다고 욕하려면 한 번 해 봐. 그렇다고 해도 난 말하기 싫어, 아니 못해. 난 그 얘기 절대 못 해!”

 

 말을 끝내자마자 김 여사는 수화기를 다시 전화기의 빈 홈에 던져 버리고, 전화 끊기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김 여사의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한수의 귀에 들렸다. 아직 어린 한수는 김 여사가 무엇 때문에 우는지 잘은 몰랐고, 설령 안다 해도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무언가를 뺏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 과거를 잊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는 것, 약점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것, 옛날에 잘못한 게 오늘 만 천하에 들켜지는 게 싫은 것은 아주 잘 알게 되었다. 그녀가 정신 없이 흐느끼고 있는 사이, 한수는 발자국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생쥐처럼 조심스럽게 대기실을 빠져 나왔다.

 

 한수의 어린아이스러운 글씨체로 씌여진 메모를 읽고,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보이는 연두색 원피스에 긴 생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피아노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연주하는 콩쿠르 무대를 관객석 뒷자리에서 지켜 보던 진명과 효은은 잠시 동안 깊은 혼란과 충격에 빠졌다. 그 슬프면서도 서글프고, 자신의 치부를 모두 드러내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쓰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 잔인한 일이며, 써 봤자 좋을 게 하나 없고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김 여사에게 소송당해 피고석에 올려지고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통째로 뒤집어 엎게 되는 일뿐이다, 라고 진명의 마음 한 구석은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 속 또 다른 구석은 언론인으로서 자극적이고 구미가 당기는 기사도 하나쯤 써 봐야 한다고, 그게 자신이 근무하는 음악잡지를 어쨌거나 결국엔 홍보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연주가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 끝에 김 여사가 연단에 올랐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위풍당당하고 여유로우며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연설을 했지만, 연설을 마치고 박수를 받는 표정에서는 어딘지 모를 그늘이 서려 있었다. 그녀가 연단에서 내려오자마자, 검은 옷을 입은 한수가 피아노 위에 앉아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3악장을 신들린 듯이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주는 진명과 효은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준수하고 유려했다.

 

 “이 담엔 영국에 가야 된다 카는데, 비행기 표는 우짜노?”

 

 한창 한수의 연주를 감상하던 가운데 효은이 갑작스레 물어 보자, 진명은 마치 이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잖아도 편집부장님께서 맨 처음에 런던행 비행기표 두 장을 예매해 주셨어. 원래 같이 가려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뉴욕으로 행선지를 바꿨거든. 출발 시간은 이틀 뒤야.”

 

 한수의 이어지는 연주를 들으며, 모든 관중들이 숨을 죽이고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피아노 위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한수의 손가락들을 지켜 보는 가운데 진명은 자신의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효은을 취재를 시작하며 만난 인연들과 그간 벌어진 일들, 그리고 앞으로 영국에서 버러질 일들과 들을 사실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날 또 다른 인연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취재를 끝내면 얻을 수 있는 게 비단 취재 자료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글에 대한 자세한 설명 2017 / 11 / 6 563 0 -
39 에필로그: 4개월 후 2017 / 12 / 1 370 0 4186   
38 11-4. 그대와 영원히 (4) 2017 / 11 / 30 315 0 1682   
37 11-3. 그대와 영원히 (3) 2017 / 11 / 29 304 0 4686   
36 11-2. 그대와 영원히 (2) 2017 / 11 / 29 300 0 4505   
35 11-1. 그대와 영원히(1) 2017 / 11 / 19 282 0 3994   
34 10-4. 비애 (4) 2017 / 11 / 12 277 0 3454   
33 10-3. 비애 (3) 2017 / 11 / 11 283 0 4342   
32 10-2. 비애 (2) 2017 / 11 / 10 272 0 5195   
31 10-1. 비애 (1) 2017 / 11 / 10 293 0 3929   
30 9-4.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4) 2017 / 11 / 9 316 0 4455   
29 9-3.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3) 2017 / 11 / 9 295 0 4054   
28 9-2.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2) 2017 / 11 / 9 304 0 4692   
27 9-1.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1) 2017 / 11 / 9 303 0 3420   
26 8-4. 텅 빈 오늘 밤 (4) 2017 / 11 / 8 280 0 2061   
25 8-3. 텅 빈 오늘 밤 (3) 2017 / 11 / 8 291 0 4784   
24 8-2. 텅 빈 오늘 밤 (2) 2017 / 11 / 8 306 0 3667   
23 8-1. 텅 빈 오늘 밤 (1) 2017 / 11 / 8 601 0 4428   
22 7-2. 우울한 편지 (2) 2017 / 11 / 7 303 0 4846   
21 7-1. 우울한 편지 (1) 2017 / 11 / 7 285 0 5640   
20 6-5. 우리들의 사랑 (5) 2017 / 11 / 6 271 0 3599   
19 6-4. 우리들의 사랑 (4) 2017 / 11 / 6 272 0 4952   
18 6-3. 우리들의 사랑 (3) 2017 / 11 / 6 283 0 4818   
17 6-2. 우리들의 사랑 (2) 2017 / 11 / 6 276 0 6091   
16 6-1. 우리들의 사랑 (1) 2017 / 11 / 6 287 0 5702   
15 5-2. 사랑하기 때문에 (2) 2017 / 11 / 6 288 0 4052   
14 5-1. 사랑하기 때문에 (1) 2017 / 11 / 6 272 0 4062   
13 4-4. 그대 내 품에 (4) 2017 / 11 / 6 320 0 3500   
12 4-3. 그대 내 품에 (3) 2017 / 11 / 6 282 0 6173   
11 4-2. 그대 내 품에 (2) 2017 / 11 / 6 281 0 4740   
10 4-1. 그대 내 품에 (1) 2017 / 11 / 6 288 0 5817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