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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제는 지나간 것들에게
작가 : 은호
작품등록일 : 2017.10.28

"엄마의 새 남편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름과
이제는 식어버린 이름
가까이 있어도 이해하지 못 했던 이름들에게 보내는 이야기

 
1부_7회
작성일 : 17-11-07 17:28     조회 : 210     추천 : 1     분량 : 4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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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시간이라는 게 간사한 걸까. 사람이라는 게 간사한 걸까. 달력이 한 장을 넘어가면 4주, 30일, 720시간이라는 무게가 기억과 감정 위에 쌓여 불투명 유리처럼 덮어버린다. 그런다고 밑에 있는 것들이 사라지는 게 아닌데도.

  그 남자와 표면상 가족이 된 지 한 달이 흐른 것이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내 방이었던 곳에 반질반질한 새 책상과 책장을 채워 넣고 칩거하다시피 하며 글을 쓸 뿐이었다. 아니, 글을 쓰는지 뭐하는지는 모르지. 이상했던 건 들이는 가구 중에 침대도 있었다는 것 정도. “밤늦게 일하다보면 잠시 눈도 붙이고 그래야지. 특히 엄마는 밤 귀가 예민해서, 자는데 저 사람 들어오면 금방 깨버릴 거 아니니.” 그런 엄마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납득이 가긴 했다. “대단한 예술가 납셨네.” 그렇게 한 번 더 중얼거리고 나서 아예 신경을 껐다.

  그는 생각보다 규칙적인 인간형이었다. 7시쯤 일어나서 운동을 나갔다가 들어온다. 식사는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오전에는 작업실에 있고 오후에는 종종 외출을 하곤 했다. 저녁에는 1시 이전에 잠드는 것 같았다. 그 시간 이후로 불이 켜져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생활패턴이 고무줄처럼 바뀌는 나로선 신기할 따름이었다.

  결과적으로 일이 바쁜지 딱히 마주칠 일이 없었다. 이상적인, 이상적인 관계가 된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이 있지 않은. 내가 바라던 그런 것. 그러나 이따금씩 복도에 나왔을 때 그가 있으면 불투명 유리 밑에 누워있던 감정들의 실루엣이 조금씩 뚜렷해지다가. 이내 다시 흐려지길 반복했다. 이질감? 그러나 그 감정도 포장지처럼 느껴지곤 했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학교에 다녀온 평일 저녁인데도 집에 나 혼자 있는 날이다. 언니는 저녁 수업, 엄마는 일이 늦어지고, 그 사람은 어딜 갔는지 어쨌든 없었다. 숨이 트인다. 간만에 혼자 맥주 한 캔을 따고 거실 소파에 늘어져서 영화를 틀었다. 지난 한 달 내내 집에서도 긴 바지 차림에, 브래지어까지 입고 자기 전에야 벗었는데 오늘은 그럴 필요도 없이 반바지에 후드 티 한 장만 입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편할 수가.

  10시가 넘어가고 영화가 끝나가도록 아무도 오지 않아서, 기쁨에 겨워 금동이를 끌어당겼다. 고작 맥주 한 캔인데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취해버린 것이다. 금동이 팔을 휘적휘적하며 장난을 치자 참아주던 금동이는 슬슬 열이 받았는지 힘껏 몸을 퍼덕여 내게서 도망쳤다. 뒤뚱뒤뚱하며 2층으로 뛰어 올라간다.

  “너, 야박한 놈.” 나는 굴하지 않고 쫓아갔다. 내 방에 없기에 다시 내려갔나 하다가 건넌방 문이 열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그냥 돌아서 내려갔을 텐데, 용감해진 나는 건넌방 문을 열었다. 어둑어둑한 방안의 실루엣이 낯설었다. 불을 켜본다. 그 순간 당황했던 것은 익숙했던 곳이 전혀 낯선 곳이 되어버린 탓이다. 창문 바로 앞 침대가 있던 자리에는 책상이 놓였고. 비어 있던 벽면을 책장이 가득 채웠다. 검은색 철제 프레임과 밝은 색 원목이 어우러진 가구들은 깔끔하고 황량해 보였다. 책상에 쌓인 종이들도 책도 반듯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화장대가 있었던 방 우편에 검은 캐리어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 반대편에 침대가 있었다. 주름 하나 없는 먹색 이불 위에 황갈색 털뭉치가 떡하니 앉아서 발가락을 빨고 있었다.

  정체된 공기도, 냄새도 낯설다.

  그리고 노트북이 켜져 있었다. 괜히 건드려보고 싶어, 책상에 다가가서 마우스를 살짝 밀자 화면이 켜진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 창이 제일 위에 있었고 줄줄이 적힌 문장들 끝에 커서가 깜박였다. 작업을 하다 나갔는가.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그 사람이 써내려간 텍스트, 그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에 대한. 더러는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괄호 속에 추가할 것들을 적어 놓은 부분도 있었고, 형광펜 기능으로 줄을 쳐 놓은 곳도 있었다. 무슨 내용일까,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을까.

  그때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술은 이따금 위험하다. 특히,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린다는 점에서. 고작 현관이 열린 것뿐이니까 다른 가족이 돌아온 것일 수도 있었고, 하고자 했다면 곧장 그 자리에서 불을 끄고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일절 들지 않았고 몸이 굳은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려오자 갈팡질팡하던 나는 그만 다섯 살 아이처럼 굴어버렸다.

  허겁지겁 침대에 있는 금동이 옆에 누워버린 것이다. 방에서 나가며 마주치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한 건데, 이게 제일 나쁜 방법이라는 건 누우면서 깨달았다. 그러나 후회해도 늦었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문이 열리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멈춰서는 것 같다. 놀랐겠지 당연히. 나갔다 들어왔더니 이 집 아이가 자기 방에, 그것도 침대에 고양이랑 누워 자고 있으니…. 미안합니다. 조금 있으면 적당히 일어나서 얼버무리고 나갈게요-하며 시간을 쟀다.

  그가 잠시 내 앞에 서 있는 듯 했다. 뭔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 종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아주 살짝 눈을 떴다. 외출복 차림의 그가 나를 등지고 책상위에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지금 깬척하며 나가야 하나. 갈등하는 순간 그가 내 쪽으로 돌아섰다. 얼른 눈을 감았다.

  내 앞에 가까이 온다. 그런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시력을 잃으면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더니 그런 맥락인가. 침대 매트리스가 조금 움직였는데 팔을 올린 정도의 무게감이었다. 미쳐버리겠다. 나는 행여 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릴까봐 혼신의 힘을 다해 자는 연기를 펼쳤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 눈꺼풀이 움직거렸다. 틀렸군.

  “어쩌다 여기서 자나?”

 그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깨어있는 것을 결국 눈치 챈 것 같아서 눈을 뜰지 말지 고민했던 그 순간.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심스레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드는 손가락을 느끼자 눈은 저절로 떠졌다. 곧장 그와 시선이 마주쳤고 소파에 누워 그를 바라보던 밤처럼 숨이 멎었다.

  그 사람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내가 어떤 표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죄송….”

 그 말은 제대로 하지 못 했다. 다 하기도 전에 그가 입을 맞췄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려 한참 후에야 그를 밀어냈다. 몸을 일으킨 내 얼굴은 일그러졌고 그는 너무도 태연하게 침대 옆에 꿇어앉은 자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재빨리 뛰쳐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집 근처의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너무 또렷이 기억이 나서 지우는 중이다. 그의 방을 나와서 곧장 현관으로 달려갔고. 차가운 공기가 갑작스레 콧속으로 파고드는데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던 것이 생각난다. 걷다가 걷다가,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들어왔다. 춥다. 이제야 느껴지는 찬 공기. 11월 중순에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었어, 누가 보면 미친 여자거나 가출한 걸로 알겠지. 아예 이참에 사라져버릴까. 내 생각이 얼토당토않다는 듯 갑작스레 바람이 불고 맨살이 훤히 드러난 허벅지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그런 물음을 던진다. 무릎을 세워서 껴안고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프게 조여들었다. 그의 입술이 닿았을 때 주저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심장도 머리도그만 멈춰주었으면 좋겠다. 이건 “미친….” 미친 거다.

  꽤 한참동안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팔과 다리가 저리고 추위에 손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저만치서 발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워진다. 내 앞에서 멈춘다.

  “들어가야지. 감기 걸린다.”

  “….”

  “또 자는 척 하는 건 아니지?”

  “왜 그랬어요?”

 대답이 없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남자 얼굴을 보자 갑자기 눈가에 열기가 느껴졌다. 모든 걸 누른 채 대하려 했는데 눈이 찌푸려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손에 내 가디건을 들고 있었다. 말없이 그걸 내민다. 잠깐 고민하다가 받아들고 다리에 덮었다. 그렇게 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눈이 싫다. 정말 싫다.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떨궜다.

  “그래도 되는 거예요?”

  “안 되겠지.”

 이번엔 머릿속이 까맣게 변해버리고 통증이 느껴졌다.

  “범죄 아닌가요?”

  “네가 싫다면 범죄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계시네요.”

  “일단 들어간 다음에 생각해 보자. 너 엄마랑 언니도 다 들어와서 너 없다고 난리야. 지금 안 데리고 가면 김진숙 씨는 실종신고 할지도 몰라.”

 지금 그게 문제예요? 그 말이 입안을 맴돌지만, 더 이상의 추위를 견딜 수가 없어 일어섰다. 갑자기 온 몸이 덜덜 떨렸다. 그가 앞서 걷고 나는 뒤를 따른다.

  “아직도 우리 엄마를 그런 식으로 불러요?”

  집 앞에 다다라서 물어본 말이다.

  “일로 만난 관계니까.”

  “그럼 저는요? 말 뿐이지만 부녀관계일 텐데.” 그는 뒤돌아 내게 다가섰다.

  “넌 가족이라 생각지 않는다고 했었지.”

 내가. 자기는 어떻고?

  “그 뒷말은 기억 안 나세요?”

  “나중에 얘기하자.”

 무심하다. 마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적의를 느꼈다.

 

  “어머, 얘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 시간에 그렇게 입고 대체 어딜 갔었니? 저 이가 찾으러 갔기에 망정이지….”

  그리고 결국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들어섰을 때, 엄마는 평소처럼 잔소리를 해대는데, 내가 평소 같지 않아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엄마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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