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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래를 보는 소년
작가 : 율룰루루
작품등록일 : 2017.10.30

어느날 미래래를 보는 능력을 얻게된 루크, 의문의 사람들에게 쫒기게 된다.

 
화마
작성일 : 17-11-06 22:05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9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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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타임머신이요?”

 

  “사용법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니야?”

 

  민트의 질문에 루크가 우물우물 거렸다. 보다 못한 오로라가 나섰다.

 

  “아이고, 우리 작은 친구가 사고를 쳤네. 은시계 지금 가지고 있지?”

 

  “그게....... 버렸어요.”

 

  잠잠하던 이정이 멈칫했다. 이윽고 그녀는 2층에 차키를 가지러갔다.

 

  "아! 그렇구나! 루크야, 전혀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이 생각을 왜 못했지? 물건을 잃어버렸어도 그 위치만 기억하면 다시 물건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잖아? 이런 경우가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지. 버렸다고 했지? 단지 위치적으로 따졌을 때, 네가 사는 세계에서 은시계를 버린 장소랑 지금이랑 같은 곳이 있어?"

 

  루크는 다시 생각했다. 분명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함에 버렸는데 뒤를 돌아보니 미래에 와있었다. 그래서 다시 고개를 돌리니 분리수거함은 온데간데없었고 웬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거기서 민트를 만났다.

 

  민트는 그곳이 델라피 백화점이라고 설명했다.

 

  셋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정을 따라 차고로 갔다. 아까 루크가 타고 온 차 옆에 외형이 빼어난 차가 서있었다. 검정색에 정제되지 않은 곡선이 스포츠카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안은 4인석으로 넉넉했다.

 

  이정이 운전대를 잡았고, 민트는 조수석, 그리고 오로라와 루크는 뒤 자석에 착석했다.

 

  "나는 말이야, 저 녀석이 운전하는 거 보면 좀 어떻게 된 애가 아닌가 싶어. 제어라는 게 없거든. 내 인생은 오늘이 끝이다, 하고 달리는 데 처음엔 죽는 줄 알았다니까? 물론 이제는 익숙해 졌단 소리는 아냐."

 

  오로라가 자신의 경험담인 듯 말을 이었지만 루크는 여전히 온통 집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과 은시계로 꽉 차있었다.

 

  이정이 운전대를 두 번 쳤다. 민트가 운전했을 때랑 차가 똑같이 변했다. 민트가 루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두려움이 서렸다.

 

  "미리 말해 둘 께. 마음 단단히 먹어."

 

  민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가 출발했다. 평소 모든 일에도 무관심한 듯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이정이 귀신 외에 관심있는 게 속도였다. 남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빠름이 아니었다. 흔히 고속도로에서 자살 행위라고 불리는 것을 훌쩍 넘었다. 창틀 너머로 보이는 모든 사물이 연기처럼 순식간에 흩어졌다.

 

  "소년, 내가 신호주면 여기서 뛰어내려."

 

  돌아오는 답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정이 뒤를 돌아봤지만 루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안전벨트를 명줄처럼 꼭 붙잡고 있었다. 민트와 오로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속도를 줄이는 건 시간 관리자 녀석들에게 루크의 은시계를 그대로 반납하는 거나 마찬가지란 소리다. 그런 미친 짓을 할 바엔 속력을 더 높이는 게 낮지.

 

  차에 탄지 15분 만에 델라피 백화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점점 더 가까워 졌다. 이정은 급 하강을 시도했다. 건물과 닿을락 말락하자 운전대를 왼쪽으로 확 틀었다. 그러자 차가 옆으로 미끄러지듯 백화점 안으로 유리창을 깨고 들어왔다.

 

  몸이 뒤흔들리는 공포를 찰나 느끼다가 속도가 멈췄다. 루크는 꼭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다.

 

  "이.......이게 뭐야?"

 

  루크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유리조각들 사이로 몇 시간 전에 보던 건물 내부가 펼쳐져 있었다.

 

  "이봐, 소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이정의 긴 머리카락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왔다. 가득이나 피부도 창백한 데, 지금은 분장 안 해도 살아있는 귀신 분위기가 절로 연출 되었다.

 

  "눈 감고 마음속으로 네 은시계가 있는 곳을 떠올려. 그러면 직감적으로 길을 알 게 돼."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은 해야 될 것 같았다.

 

  "알겠습니........"

 

  또다. 다시 영상이 보였다.

 

  [소년이 4층을 확인한다. 웬 남자를 들쳐 엎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다. 남자를 세면대 옆에 안치 시켜둔다. 차례대로 쓰레기통을 뒤진다. 깊숙이 손을 뻗어 은시계를 꺼내 올린다. 상체를 일으키려는 데 뒤통수에 뭔가 닿다.]

 

  또 숨이 가빠왔다. 루크는 본능적으로 그 소년이 자신이란 걸 알았다.

 

  "가-암히 창문을 뚫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만? 너 오늘 잘 걸렸다. 그 동안 지 할 일 도 제대로 안 하고 소파에 처 눞는 새끼 때문에 속이 끓었는데."

 

  안이 부하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놈이 도착했어. 각자 태세 준비해.

 

  이정이 운전대를 가슴팍으로 끓었다. 루크의 체감 상으로는 기울이가 90도 정도였다.

 

  이정은 사이드 미러로 시간 관리자 녀석들이 뛰오는 걸 봤지만, 그대로 힘껏 엑셀을 밟았다. 차가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손에서 달아났다.

 

  "이제 뛰어내려."

 

  루크에게 그 말이 전달 될 리가 없다. 롤러코스터도 무서워서 안 타는 데, 이거라고 다를까.

 

  -탕탕탕

 

  총성이 울렸고,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루크에게 말을 걸어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이정은 억지로라도 내리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운전석 손잡이 아래에 있는 수많은 버튼들 중 두 개를 동시에 눌렀다. 루크와 오로라를 감싸고 있던 안전벨트가 풀렸다.

 

  생명줄이 사라지니 루크의 눈이 번쩍 뜨였고, 입이 벌어졌다. 그건 오로라도 마찬가지였다.

 

  "내려, 이제!"

 

  총알이 바퀴 한 쪽을 뚫었다. 차가 더 심하게 흔들렸다. 이정은 총을 피해 차를 샹들리에 뒤로 틀었다. 차체가 왼쪽으로 쏠렸다. 이정은 지체 없이 뒷문 두 개를 동시에 열었다.

 

  "아아악-!"

 

  루크와 오로라가 샹들리에 뒤에 위치한 난간 너머로 굴러 떨어졌다.

 

  "아아........ 아파라........"

 

  루크가 허리를 붙잡고 상체를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로라가 쓰러져 있었다. 소년은 본인의 몸도 성치 않으면서 오로라에게 달려갔다.

 

  "오로라씨, 오로라씨!"

 

  약간의 신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일단 루크는 안심했다.

 

  "........와 완전 영화 한 편 나올 판인 데......? 아이고 허리야........이건 교통사고 급이야. 나이롱환자가 되도 차이정 그 녀석한테 돈 뜯어야겠는 데?"

 

  "쉬시는 게 어때요? 저 하나 때문에 모두한테 너무 미안해요. 그거 찾는 거 도와주시지 않아도 돼요.”

 

  "내가 젊었을 적에는 팔팔했거든?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조금만 잘 못해도 병원행이야. 근데 늘 이게 문제란 말이지? 체력은 남녀노소 알아주는 저질인데, 불의는 못 참아. 불량 소년단만 보면 신고한다고, 내가."

 

  이제 것 신세진 것도 돈으로 환산하면 억대는 훌적 넘을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란 사실이 루크의 양심을 찔렀다.

 

  기억하기도 싫은 그날의 흔적이 베인 물품.

 

  보는 것만으로 끔직해서 버리려고 했던 물품.

 

  그런 은시계가 지금은 너무나도 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게 있어야, 겨우 그거 하나가 있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오로라는 루크를 바라보았다. 너무나 오래된 일이지만 한 시도 잊지 않았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발소리가 들려서 루크는 고개를 돌렸다. 180 되 보이는 남자가 마네킹 뒤에 서있었다.

 

  ".......너, 너.......너희.......들으.......ㄴ......체체체체.......체포됬.......다......."

 

  개미 기어가는 듯한 코너의 목소리가 루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지금 코너에게 필요한 건 전화였다. 후린에게 하려 했으나 떨리는 손 때문에 숫자가 잘못 눌려서 킹슬리에게 갔다.

 

  "여보세요? 오빠? 왜 했어? 찾은 거야? 찾은 거구나! 어디야, 어디야?"

 

  의욕이 넘치는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여.......여기.......느.......ㄴ 4......."

 

  "4층? 알았어! 내가 그리로 간닷!"

 

  1초도 지나지 않아 아이 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하! 이야호!"

 

  소리의 주인공은 킹슬리였다. 9층 난간에서 샹들리에 반대편 아래에 보이는 4층 난간까지 자신의 초능력인 빙결로 미끄럼틀을 만들어서 썰매 타듯 내려왔다.

 

  그러나 역시 마무리가 안 되는 건 극복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신나게 타다가 4층 난간 앞에서 몸을 제대로 박고 말았다. 그래놓고도 멀쩡히 일어났지만 루크와 오로라는 이미 자리를 떴다. 코너에게 도망자가 어디 있냐고 물어 봤다.

 

  루크는 지친 오로라를 어깨동무하듯 이끌고 비상구로 갔다. 영상에서 분명 계단에서 층을 확인했다. 그러니 가려면 비상구가 정답일 것이다.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옷가지들이 즐비한 가게들을 지나쳤다. 엘레베이터 옆으로 문이 하나 보였다.

 

  "이제 좀 만 더 가면 될 거에요."

 

  "와, 아직도 무릎 아파....... 너는 모르지? 너도 늙어봐. 팔 벌려 뛰기 두 번 만 해도 저세상이다? 진작에 운동 좀 할걸 그랬어. 그럼 낙법 몰라서 그대로 박는 것 보단 나을 거야. 아야야........이걸 전문 용어로 뭐라더라? 아! '개망신'."

 

  루크는 때 아닌 오로라의 유쾌함에 웃음이 조금 베어 나왔다. 이 아저씨는 아무래도 몸과 입의 에너지양이 천지차이인가 보다. 특히 입에만 몰려있는 조건으로.

 

  문을 열었다. 층을 확인하기 위해 오로라를 계단에 앉혔다. 고개를 올려다 보니 4층이었다. 오로라에게 다가갔지만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이미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어떡하지? 한 시가 급한데."

 

  두고 갈 순 없었다. 그러면 같이 나가야 하는 데 문제는 어떻게 같이 나가냐가 문제였다. 찰나의 순간 핏 하고 생각이 루크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래, 그거!'

 

  소년은 오로라를 등에 엎였다. 아무리 운동선수였다지만 본인도 지친 상태에서 웬만한 아저씨를 들쳐 엎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낑낑 거리며 중심 잡은 루크는 그대로 나갔다.

 

  비상구 근처에 위치한 화장실에 들렸다. 오로라를 세면대 위에 안치 시켜 놓고 첫 칸부터 살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아닌가보네."

 

  다시 밖으로 나왔으나 다른 화장실이 어딘지 몰랐다. 하지만 지체할 수도 없었다. 소년은 망설이지 않고 오로라를 대리고 곧장 직진했다.

 

  킹슬리가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다가 루크와 오로라를 발견했다.

 

  "저기 있구나-! 내가 잡!"

 

  킹슬리는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다시피 뛰다가 제발에 걸려 넘어졌다.

 

  루크는 그녀를 그냥 지나쳤다. 좌우를 살폈다. 11시 방향 10미터 쯤 되는 거리에서 화장실 표지판이 보였다.

 

 -탕탕!

 

  연속 두 발이 차체를 스쳤다. 이정은 차를 오른 쪽으로 확 꺾었다.

 

 -탕!

 

  민트가 탄 쪽의 창문에 균열이 갔다.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꺄-악!!!"

 

  민트의 난리통 사이에 한 번 더 총알이 발사 되었다. 그것은 균열로 인해 생긴 틈을 비집고 들어가 운전대 손잡이 부분에 박혔다.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이정의 손엔 닿지 않았다.

 

  -탕 탕!

 

  유하가 이번에는 엔진을 노렸다. 웬만한 저격수보다 실력이 월등히 높은 그에게 이런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상대 운전수도 만만치 않았다. 총알이 배기가스를 통을 뚫었다. 까만 연기가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더 맞다가는 차가 견디지 못할 터였다. 아니, 이미 한계였다. 위에서 연신 총을 쏘고 있는 적에게 이정은 몸을 가릴 만한 곳이 필요했다.

 

 

  유하는 기존에 들고 있던 권총을 내려놓았다.

 

  '나의 부름에 답 하여라-'

 

  허공에서 빛이 났다. 총구가 어깨 넓이만한 데다가 탄환이 뭉뚝하고 두꺼운 총이 생성되었다. 유하는 총을 확 가로채고는 차에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묵직한 게 날아들더니 이내 차체가 주체를 못하고 옆으로 밀려났다.

 

  민트는 암흑 속에서 눈을 떴다. 난간이 깊이 파여 있었고 그 앞에 수명을 다한 차가 쓰러져 있었다.

 

  이정이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신음 소리를 내며 민트도 상체를 세웠다. 이정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 그녀는 경악했다.

 

  "귀신-!!!!!!"

 

  비명 지를 만했다. 이정의 퀭한 눈빛과 산발이 된 머리, 이마에 묻어 난 핏자국이 으스스한 조화를 이루었다.

 

  차에서 기름이 쏟아지더니 뜨거운 화기가 금세 번졌다. 불이 퇴로를 막아버렸다. 이정은 황급히 주의를 둘러보았다. 텔레비전, 청소기, 카메라, 냉장고 등이 널려 있었다. 그 뒤로 오토바이 전시라는 팻말이 얼핏 보였다.

 

  킹슬리가 다시 일어나서 루크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루크는 유년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루사인 볼트'라는 수식어가 달린 소년이었다. 잡힐 리가 없었다.

 

  루크는 그대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오로라를 세면대 옆에 앉혀 놓고 입구 쪽 쓰레기통에 팔을 넣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빌고 또 빌었다. 그곳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은시계가 이번만큼은 너무나도 간절했다. 마시다 만 커피, 축축한 휴지, 비닐봉지 등이 손끝에서 감돌았다. 마침내 차갑고 딱딱한 기운이 손등에 스쳤다. 미소가 번졌다.

 

  "찾았다!"

 

  그는 은시계를 꺼냈다.

 

  "오로라씨, 찾았어요.......일단 좀 씻어야 될......."

 

  킹슬리가 권총 모형의 얼음을 형성 시켜 루크의 뒤통수에 댔다.

 

  "오빠, 오빠! 밖에만 있지 말고 이리와 봐! 내가 잡았어, 은시계도 있다고?!"

 

  "이.......일단.......후린 팀장님에게.......연락 할.......께."

 

  "뭐라고?"

 

  "팀장님.......에게 여.......연락 하.......어? 부.......부......."

 

  코너의 어투가 평소보다 더 깊은 진동을 탔다. 그의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눈앞에 모든 걸 집어 삼키는 화마가 엄청난 속도로 번졌다.

 

  "부? 아! 나도 부자 되고 싶어. 돈 많이 벌어서 많이 쓸 거야!"

 

  킹슬리는 벌써부터 귀부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렇다면 열심히 일해야겠지? 이런 도망자 녀석들을 다 잡을 거야, 내가."

 

  루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빠져 나갈 수 있는 적당한 도구나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익숙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지독한 기억이 머릿속을 울렸다. 가슴이 쿵쾅 뛰었고, 숨이 거칠어졌다.

 

  "아니야, 아니야......."

 

  루크가 머리를 연신 흔들었다. 그러나 물속에 떨어져 퍼지는 검은 잉크처럼 감정은 강렬했다.

 

  "부.......부.......불......!"

 

  코너가 결국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부-울?! 어떡해, 어떡해! 으-악!!"

 

  호들갑을 떨다가 미끄러운 바닥에 킹슬리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띠리링 띠리링

 

  바닥과 접촉한 손목에서 전화가 울렸다. 후린이 건 것이었다. 킹슬리는 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했다.

 

  ".......일단 도망자는 잡았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를 데리고 어서 코너하고 같이 건물 밖으로 나와."

 

  "도망자의 친구? 아버지? 형? 아무튼 그래 보이는 사람은요?"

 

  "데리고 나와, 얼른. 안 그러면 너희들까지 다친다고!"

 

  평소 침착하던 사람이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다급한 목소리였다.

 

  루크의 감정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꼬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꼬마는 거대한 화마가 일렁거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걸 토해낼 듯 울고 또 울고 있었다.

 

  킹슬리가 사색이 된 루크를 일으켰다. 오로라도 억지로 깨워서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코너의 초능력이 결계였기에 불이 화장실까지 오지 못했다.

 

  정체 모를 오토바이 한 대가 화마를 뚫고 공중에서 피어올랐다. 그 옆에 탈 것(사이드카)이 달려있었다.

 

  "야, 소년! 소년-!"

 

  아득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루크가 정신을 차렸다.

 

  오토바이는 결계에 아무런 저항 없이 쑥 들어왔다. 두 사람이 앞뒤로 앉아 있었는데 다 헬멧을 썼기에 얼핏 봐선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갔다.

 

  "소년, 그리고 너도 타."

 

  앞에 앉은 사람이 가리킨 '너'는 오로라였다. 루크와 오로라는 운전수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스피드광인 녀석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루크는 잠시 당황했다. 그런 모습이 답답했는지 이정은 루크와 오로라의 손을 잡아끌었다. 둘은 사이드카 안으로 넘어지듯 들어왔다. 운전대 방향을 틀어 샹들리에 쪽으로 향했다.

 

  "놓칠까보냐-!"

 

  킹슬리가 양 손을 펼쳐보였다. 큼지막한 얼음 조각들이 나왔다. 목표는 오토바이, 하지만 송곳처럼 날카로운 조각들은 천장과 연결된 샹들리에 끈으로 향했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샹들리에가 떨어졌다. 반짝거리는 빛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정은 오토바이 앞바퀴를 들어 난간을 발판 삼아 공중으로 날랐다.

 

  유하가 바짝 따라와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도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소년!"

 

  "네?"

 

  "버튼 눌러!"

 

  루크는 이정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은시계 버튼 누르라고, 당장!"

 

  그제야 루크는 손에 꼭 쥔 은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은시계가 다시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탕탕!

 

  탄환이 사이드카 사이의 연결부위를 강타했다. 사이드카랑 오토바이랑 분리되었다. 사이드카가 공중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아아아악!"

 

  오로라와 루크가 동시에 소리쳤다. 민트가 오로라의 손을 붙잡았다.

 

  "이런......!"

 

  이정이 오토바이를 돌려 루크를 잡으려 했다.

 

 -타앙!

 

  마지막 한 발. 그것은 루크의 오른 쪽 어깨를 스쳤다.

 

 ---

 

  손에서 음악 소리가 터졌다. 라타는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눌렀다.

 

  "아빠? 지금 뭐해?"

 

  "당연히 일하고 있죠, 우리 공주님?"

 

  "선물 뭐 받고 싶어? 가장 원하는 거 아무거나 말해. 내가 다 사줄 게."

 

  "선물? 우리 공주님이 왜 그러실까? 혹시 아빠 몰래 뭔 짓이라도 했나?"

 

  "하하하! 설마 시간 관리자 청장의 딸이 뭔 짓을? 곧 있으면 아빠 생신이 잖아."

 

  "음.......글쎄, 뭐가 좋을까? 아빠는 라타가 해 주는 건 뭐든 다 좋은데?"

 

  "그러면 내가 백화점에서 최고로 좋은 명품 사다 줄께. 기대해요~."

 

  전화를 끊고 라타는 잠시 동안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방 문 앞에 놓인 분홍색 종이봉투에 손을 뻗었다.

 

  그 안에는 라타가 딱 좋아하는 색상인 연분홍 드레스가 들어있었다. 가슴팍에 화려한 자수가 치마 끝자락에도 놓여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길이에 날씬한 허리가 강조되도록 만들어졌다. 리의 생일 파티 연분홍빛 원피스였다. 때문에 미리 제작 주문해 둔 것이 오늘 아침에서야 도착했다. 입어 보더니 거울 앞에서 패션쇼 하듯 자세를 취했다.

 

  라타는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거실을 가로질러 뒷문을 통해 텃밭으로 나갔다. 성같이 화려한 외벽에 붙어있는 초라해 보이는 방문을 활짝 열었다.

 

  "유모, 유모!"

 

  헤스티아가 황급히 뛰어 나왔다.

 

  "이것 봐봐. 오늘 아침에 언니가 나한테 보내주신 의상이야. 예쁘지?"

 

  "그러네요, 아주 잘 어울려요.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선생님이 특별히 아가씨를 위해서 신경쓰신 게 티가 나요."

 

  라타는 헤스티아의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인터넷으로 리의 선물로 뭐가 좋을지 골랐다.

 

  "이거 괜찮은데? 좋았어! 올해는 분홍 넥타이다!"

 

  그녀는 그걸 저장했다.

 

  "이제 올라가 보는 게 좋겠어요. 밤이 늦었습니다."

 

  헤스티아의 차분한 목소리, 언제나 라타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나 오늘 여기서 자도 돼?"

 

  "저는 여기, 아가씨는 저기."

 

  "그래도 난 오늘 유모랑 같이 있을 거야."

 

  "하-아, 어쩔 수 없군요. 잠옷 가져다 드릴 테니까 여기 계세요."

 

  정말 천방지축 소녀라고-헤스티아는 여겼다. 그러나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앗싸!"

 

  라타는 헤스티아를 와락 안았다.

 

  헤스티아는 잠옷을 가지러 올라갔다. 라타의 방에 도착하기 전, 다른 문 앞에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티를 내지 않고 라타의 방으로 성큼 다가갔다.

 

  주인 없는 방에서 라타는 텔레비전을 켰다. 화려한 색채에 휩싸인 연예인들이 쏟아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들은 온 몸에 흙을 뒤집어쓰고, 춤도 췄다.

 

  "으하하하하!"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음이 났다.

 

  문이 열리더니 헤스티아가 잠옷이 담긴 종이봉투 하나와 드레스를 걸 옷걸이를 가지고 들어왔다.

 

  "도대체 뭐를 보시길래 그래요?"

 

  "이리와 봐. 저거 요새 인기 있다?"

 

  짐을 바닥에 놓고 라타와 같이 프로그램에 시선을 맞췄다.

 

  연예인들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웃음 유발 거리였다. 그러다가 방송 화면이 뉴스로 조정되었다.

 

  "긴급속보를 알려 드립니다. 오전 10시경 델라피 백화점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처음엔 5층에서 시작된 불이 점점 번져서 건물 전체를 휘감았습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사진은요, 화재가 진압되고 난 후의 내부 상태입니다. 여기 이 거대한 물체는 델라피 백화점의 상징이었던 샹들리에라고 합니다. 사고 원인은 불명이며 현재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다행히도 사고로 인한 부상자나 사상자는 없다고 전해집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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