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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드러그 딜러
작가 : 새롬
작품등록일 : 2017.11.2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단지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자 아버지의 물건에서 조금 비싸보이는 약물을 구해다 주었을 뿐이었다. 그 당시엔 지금 일어날 일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 2029년, 나는 세상의 모든 인류를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2028년, 동대문시장의 총성 (2)
작성일 : 17-11-06 21:03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7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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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준형이 혼란을 추스를 수 있게끔 도와준 것은 희설이었다. 희설은 준형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주사를 맞고 황급히 집을 나섰다. 준형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형사 앞에 앉아 있었다. 행색을 보니 용의자로 조사를 받는 모양은 아니었다. 희설은 안심했다. 그가 가져다준 약물로 인해 곤란해 처하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준형아. 나야.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준형은 애인의 부름에 한 박자 느린 반응으로, 어딘가 나사가 풀린 시선으로 응대했다. 입을 뻥긋거렸으나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희설은 준형의 머리를 조심스레 감싸안았다. 희설은 앉아있는 준형의 정수리에 턱을 기대고 조용히 울었다.

 

 

  “미안해. 그런 일이 있을 줄 모르고. 많이 힘들지?”

 

 

  준형은 희설의 위로에 비로소 목청을 터뜨려 울었다. 삼십분이 지나서야 준형은 안정을 되찾았다. 형사는 희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준형에게 따로 질문을 청했다. 희설은 달갑게 생각지 않았다.

 

 

  “사람 상태가 이런데, 꼭 지금 해야 돼요?”

 

  형사는 유행과는 무관한 짧은 스포츠머리를 오른손으로 휘적이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협조를 요청했다. 얼핏 보기에 살인 등의 강력 사건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인상이었다. 형사는 희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소개가 늦었네요. 강력계 최 춘 이라고 합니다. 보호자분이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겠죠?”

 

 

  “네. 희설이라고 해요. 보호자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니까 얘기는 나중에 부탁드릴게요.”

 

 

  희설은 춘이 건낸 손을 마주잡지 않고 말했다. 매정하게 구는 데는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이틀을 연달아 두 번이나 주사를 맞았으니 지속시간에 문제가 있었다. 슬슬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다리가 뜯겨 나가는 통증은 남들 앞에서 태연히 숨길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희설은 춘의 말에 대충 대답하고 서둘러 서를 나왔다. 마침 서 앞에 대기중이던 무인택시에 준형과 함께 몸을 실었다. 윤형은 서에서 나오자 사건의 충격이 조금은 가신 듯 그제야 희설을 제대로 보았다. 그녀의 목덜미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더운 날이 아니었다. 윤형은 어찌 된 일인지 눈치채고 다급히 연인의 상태를 물었다.

 

  “설아 잠깐. 너… 통증은? 그 약 또 쓴거야?”

 

 

  희설이 숨을 고르고 나서 대답했다.

 

 

  “응. 괜찮아. 아슬아슬하게 견뎠어. 조금만 나오는게 늦었다면 어떻게 됐을 수도 있겠는데.”

 

 

  “미안…, 나 진짜 상황이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 괜찮아. 일단 먼저 집에 가자. 많이 지쳤잖아.”

 

 

  윤형은 희설의 위로를 끝으로 잠에 빠졌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는 희설과 같은 침대 위였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지만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돌아왔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아직 잠에 빠져있는 연인의 얼굴을 보니 꽤나 무리를 하게 만들었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윤형은 평소와 다름 없이 침대에서 빠져나와 희설을 위한 식탁을 차렸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조개다시와 청경채와 명태살을 한데 넣은 순두부 찌개가 주된 반찬이었다. 그녀는 의체화로 입맛을 잃은 뒤로 빨간 국물요리보단 맑은 국물요리를 더 선호했다. 이유는 고추가루가 아까우니까.

 

 

  찌개를 식탁위로 옮겼을 때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형은 침실로 가 희설에게 말을 걸었다.

 

 

  “깼어?”

 

 

  희설은 왼팔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로 대답했다.

 

 

  “응. 일찍 일어났네? 괜찮아?”

 

 

  “덕분에. 얼른 일어나. 밥부터 먹자.”

 

 

  윤형은 식사를 마치면 다시 서로 갈 예정이었다. 최 춘이란 형사에게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모르는 것을 듣기 위해서였다. 다만 식사 내내 희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윤형은 걱정이 되어 물었다.

 

 

  “어제부터 표정이 안 좋네? 혹시 내가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고.”

 

 

  “그럼?”

 

 

  “혹시 오늘 서에 갈 생각이야?”

 

 

  희설은 밥을 뜨던 숟가락을 멈추고 물었다. 평소와는 달리 그녀 특유의 나른함이나 장난끼 넘치는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가야지. 모르는 게 많으니까. 아버지가 왜 그렇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어.”

 

 

  “꼭?”

 

 

  윤형은 희설의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 허나 여태 보아온 연인의 심성을 근거로 단순한 걱정이겠거니 여겼다. 윤형은 희설이 걱정하지 않게끔 얼굴에 미소를 짓고 말했다.

 

 

  “이런건 그냥 모르는 채로 끝내면 안되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날 키워주신 아버지 일이야.”

 

 

  “위험할 수도 있어.”

 

 

  희설이 경고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장난기 없고 평소보다 낮은 톤의 말투였다. 윤형은 그런 목소리를 언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차후 보상 문제로 군 관계자들과 만났을 때 그런 목소리를 냈었다. 윤형은 그녀의 우려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 아버지도 군대랑 관련이 있으셨어?”

 

 

  “…….”

 

 

  희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윤형은 깊게 추궁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장에서 말하지 못할 이야기도 있으리라. 다만 아버지가 생전에 그런 말을 전혀 해주지 않았던 점이 이제와서 약간 서운할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예정대로 윤형은 집을 나설 채비를 했다. 그를 보는 희설의 속은 복잡했다. 윤준의 죽음이 자신이 받은 약물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으나 적은 시간에 모든 얘기를 풀어내기가 참 복잡한 사안이었다.

 

 

  “그럼 갔다올게.”

 

 

  “응.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하고.”

 

 

  희설은 아파트 복도에서 단지 입구 맞은편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윤형이 버스에 몸을 싣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지금 자신의 신변을 감시 및 보고하고 있는 담당관이었다. 이름은 주 철형이라 했다. 이름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융통성 없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죠?”

 

 

  철형의 앳된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희설이 말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빠르게 다음 할 말을 끼워넣었다. 철형이 하는 일은 기밀 작전에 참가한 전적이 있던 희설이 보안사항을 누설하지 않게끔 감시하는 일 뿐이었기에, 그가 희설의 부탁을 들어 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설은 자신의 입장보다 윤형의 안전이 먼저였다.

 

 

  “제… 그러니까,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약에 관련이 돼 있어요.”

 

 

  “그건 압니다.”

 

 

  “그럼 형이가 거기에 대해 알 수 없게 조치좀 취해주세요. 지금 서로 갔어요.”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겁니다”

 

 

  “믿어도 되죠?”

 

 

  희설의 물음에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공무원이란 책임을 회피하는데 능숙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희설은 확답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부탁드려요.”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무뚝뚝한 대답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희설은 다시 집으로 들어와 윤형이 머물고 간 흔적을 보았다. 싱크대 위엔 오늘 아침에 썼던 접시들이 물에 담겨 있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통증도 잊은 채 수도꼭지의 목에 감겨있는 고무장갑을 꼈다.

 

  윤형은 690번 버스를 타고 바로 중부 경찰서로 향했다. 버스는 을지로 골뱅이 거리를 지나 중부경찰서 맞은편에 멈춰 윤형을 내려주고 갔다. 미리 전화를 해둔 덕에 춘 형사가 정문에 나와 있었다. 그는 어딘지 미안한 표정으로 윤형을 보고 있었다. 그가 먼저 횡단보도를 건너 윤형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거, 먼 길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와야죠.”

 

 

  “헌데 그….”

 

 

  윤형은 춘의 머뭇거림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윤형이 물었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뇨. 문제라기보단. 저희 쪽에선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 같습니다. 아버지 사건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춘이 말을 돌렸다.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잠깐 어디 가죠.”

 

 

  윤형은 그저 따라갈 뿐이었다. 춘은 윤형을 이끌고 서의 뒷편 명동 성당이 위치한 골목으로 향했다. 건물 외벽엔 희설에게 들었던 다국적 기업의 광고 홀로그램이 수시로 바뀌며 영사되고 있었다. 윤형의 집에서 지근거리인 골목이었으나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윤형이 제발로 찾아온 적은 드문 거리였다. 그렇게 큰 빌딩들 사이에 난 작은 골목으로 춘이 먼저 모습을 감추었다. 윤형도 거기에 따랐다.

 

 

  “무슨 일인데요?”

 

 

  서에서 여기까지 적지 않은 걸음이었기 때문에 윤형은 정강이가 살짝 땡기는 느낌이 들었다. 춘은 서에서완 달리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일전엔 당신을 취조하려 해서 미안하긴 한데, 사건은 이미 우리 손에 없어요. 그러니까 알려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구요.”

 

 

  춘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단호하게 얘기했다. 윤형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는 춘의 대답에 크게 반발했다.

 

 

  “아니,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오라 했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오자마자 뭐? 알려줄 게 별로 없어? 내가 지금 한가해서 이러는 줄 알아요?”

 

 

  춘이 윤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윤형은 당황과 허탈함, 그리고 약간의 배신감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 때 춘으 그의 주머니에 무언가를 살짝 넣었다. 윤형은 그것을 보고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춘은 검지손가락을 입 가운데에 갖다댔다.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마요. 지금 나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니까. 일단 오늘 우리 만난 적은 없는 겁니다?”

 

 

  춘이 먼저 자리를 떴다. 윤형은 지금의 분위기를 통해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겠거니 하고 짐작했다.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주소가 적힌 포스트잇 한 장이었다. 윤형은 그곳의 주소를 본 적이 있었다. 윤형의 호기심이 그를 이끌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포스트잇에 적힌 주소를 검색했다. 검색을 마친 스마트폰의 화면은 구로구에 있는 어느 빌딩을 가리키고 있었다. 빌딩의 소유주는 윤형이 다니는 회사의 것으로 나타나 있었으나, 정작 사원인 윤형은 존재를 몰랐던 지점이었다.

 

 

  윤형은 최 춘이 건네준 주소가 아버지의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으로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구로 디지털 단지에선 가끔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한 여름, 전력 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 아님에도 종종 지역의 전기가 나간다거나 하는 일이 일 년에 서너 번은 있었다. 사람들은 단지에 전기 먹는 하마가 산다고 얘기하고는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저화 공사로 인해 통신 케이블과 전력 케이블 등이 모두 땅속으로 숨었다. 그 케이블들이 지나는 지하의 거대한 터널은 사람이 다닐 수 없게끔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터널 바닥을 밟으며 돌아다니는 사람의 무리가 하나 있었다. 하나같이 청바지에 맨투맨, 혹은 셔츠에 니트 등으로 편의성만 적절하게 맞춘 차림의 사람들이었다. 여자가 셋, 남자가 둘 이었다. 다섯 사람은 몸의 군데군데 핏자국을 묻힌 채로 가파른 호흡을 반복했다. 무리 중의 한 여자가 울먹이며 말했다.

 

 

  “이제 어쩌죠? 저거 본사에 보고도 안 될 텐데….”

 

 

  무리의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몰라! 나한테 묻지 마! 애초에 프로텍트 빡세게 걸어두라고 했는데, 니들이 사람같아서 불쌍하다고 놔 준게 문제잖아!”

 

 

  “그럼 어쩌라구요!”

 

 

  울먹이던 여자 말고 다른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케이블이 터널에서 건물이 있는 상부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금속 덩어리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다섯 사람은 그 소리에 놀라 다툼을 멈추었다.

 

 

  “그, 그놈은 아, 아니겠지?”

 

 

  무리에 있던 남자들 중 가장 키가 큰 남자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갔다. 떨어진 것은 그들이 생각하던 사람의 형태가 아니었다. 먼저 상황을 본 남자가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의 목소리가 터널에 쩌렁하게 울렸다. 다섯 사람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하늘로 통하는 터널에서 방금 떨어진 것보다 더 큰 쇳덩어리가 몇개 더 떨어지고, 키 큰 남자는 거기에 깔려 죽었다. 고철소리 사이에 풍선이 터지는 듯 한 이질적인 소리가 섞였다. 남은 네 사람은 비명을 질렀다. 그때였다. 비명 사이에 네 사람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가 괜찮은지 저한테도 좀 알려 주세요. 전 더 배워야 합니다.”

 

 

  그 목소리가 네 사람의 비명을 멈추었다. 넷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그들이 만들던 로봇이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의체였다. 뇌가 없는 상태의 로봇. 그들은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에 공포감을 느끼고 주저 앉았다. 넷 중 로봇과 가장 가까이 있던 한 여자는 비명을 채 지르기도 전에 로봇에 의해 가슴이 뚫려 죽었다.

 

 

  유일하게 남은 남자 하나는 네 발로 바닥을 기어서 두 여자를 자신의 뒤에 두었다. 그가 로봇을 향해 욕을 뱉었다.

 

 

  “이… 미친 괴물 새끼. 저리 안 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반 쯤 울고 있었다. 로봇은 주저 없이 강철 팔로 남자의 두부를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가 나며 남자가 자리에 쓰러졌다. 남아있는 여자 둘 중 하나가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요.”

 

 

  애원을 꺼낸 여자는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매달릴 뿐이었다.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마른 흔적이 하얗게 번져 있었다. 아마 방금 전에 겨우 울음을 그치고 터널에 내려왔을 때가 되서야 진정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잠깐 사이의 진정은 큰 의미가 없었다.

 

 

  로봇은 애원하는 여자의 뒤를 보았다. 로봇이 본 여자는 방금 전 동료들과 두려움에 떨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목적이 있는 눈빛이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로봇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로봇이 말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울며 빌던 여자는 로봇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머리를 맞고 쓰러진 남자와 같은 방법으로 죽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여자는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으로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입고 있던 니트의 허리춤을 살짝 들어올려 홀스터에 메고 있던 작은 권총 한 자루를 꺼낸 뒤 이미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한 발씩, 총 두 발을 쏘았다.

 

 

  여자는 로봇을 보았다. 터널이 어두운 탓에 언뜻 보면 사람이하고 해도 좋을 외형이었다. 로봇은 쓰러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 여자의 움직임에 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여자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충성, 기특부 최 은하 중사입니다.”

 

 

  최 은하, 그녀는 지금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2년 정도 의체 개발팀에 몸담았다. 물론 이보다 훨씬 오래된 그녀의 신분은 기계 특성화 부대의 군인이었다. 민간 기술을 누구보다 빨리 자신들의 것으로 하고 싶었던 마음에 기꺼이 산업 스파이 역을 자청했던 것이다. 그녀는 관등성명을 마치고 바로 결과 보고에 임했다.

 

 

  “신규 개발중이던 의체는 손상 없이 입수 완료했습니다. 부대로 복귀하겠습니다.”

 

 

  은하는 용건을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로봇을 밖에 데리고 가기 위해 짐을 찾아야 했다. 그녀는 로봇에게 말했다.

 

 

  “따라와.”

 

 

  로봇은 대꾸도 없이 은하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약속해 둔 사인이었다. 로봇은 개발 도중 그녀가 입력한 몇 개의 시나리오를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여기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그녀가 십 분 정도를 걸어 터널 외벽에 있는 소방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미리 준비해놓은 옷가지와 그녀가 갈아입을 옷이 두 벌 있었다. 그리고 여분의 탄창이 하나 더 있었다. 은하는 탄창을 갈아 끼우고 옷을 갈아입었다. 로봇은 알몸으로 서 있었다. 그녀가 로봇을 불렀다.

 

 

  “이리 와.”

 

 

  로봇이 은하에게 다가갔다. 은하는 마치 제 동생을 챙기는 것 마냥 조심스럽게 브래지어와 팬티를 먼저 입혔다. 그리고 웃옷을 입히고, 조금 번거롭게 로봇에게 다리를 한 쪽씩 들어보라 하여 치마를 입혔다. 복장을 전부 갖춘 로봇을 보고 은하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치마도 잘 어울리네. 그 사람은 잘 어울릴 법 한데도 맨날 질색이라며 도망만 다닌단 말야.”

 

 

  그녀의 혼잣말은 지금은 없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다. 절대 로봇을 위한 말은 아니었다. 은하는 마치 동생을 데리고 나들이라도 가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터널 끝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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