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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6-3. 우리들의 사랑 (3)
작성일 : 17-11-06 17:55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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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한 편, 어차피 갈아 입어야 할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라면 미리 갈아입는 것이 낫다는 심정으로 잠시 집으로 들어 간 진명은 사흘만에 돌아 왔는데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고요한 집 안 풍경, 심지어 낡은 인터폰 밑에 옹기 화분에 담겨 부쩍 길게 자라 있는 난초 잎사귀 끝에도 묻어 있는 정취와 공허감이 자아 내는 왠지 모를 친숙함과 안락함을 느낄 새도 없이 옷을 갈아 입고 나서는 길이었다. 흰 와이셔츠와 검은 여름 정장 바지와 마의, 그리고 포인트로 혜연이 스물 다섯 번째 생일에 선물한 붉은 넥타이까지 맞춰 두르고 지하철을 타 코엑스로 향하는 진명의 발걸음은 마치 큰 일을 치르러 가는 것마냥 비장하고도 목적지까지 빨리 가려는 마음이 드러났는지 가볍고 재빨랐다.

 

 모처럼 쫙 빼 입은 진명의 후리후리한 몸매와 단아한 이목구비가 마치 한 세트인 것처럼 꼭 들어맞아 그를 향해 돌아 보는 여자들도 몇 있었지만, 진명은 이를 무시하고 재빨리 코엑스의 인파를 헤치며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보내어진 혜연의 카카오톡을 읽어 보고 있었다. 별 특별한 내용이 아니라 그냥 잘 지내고 있냐는 내용이었지만, 진명은 그 짤막한 말 몇 마디에도 혜연이 얼마나 출장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지, 자신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행보를 응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혜연의 진심에 기특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효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가슴 한 켠이 아려 왔지만, 애써 이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은 채 진명의 발길은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향하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잠시 손을 씻으려 화장실에 들렀다. 다행히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진명이 핑크빛 액상비누를 손에 묻히고 서로 막 비비는 동안, 누군가가 진명의 여름 마의 끝자락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그 당겨지는 느낌에 진명은 슬떡 고개를 들어 거울을 쳐다 보았고, 그 순간 놀란 가슴을 겨우 참아야 했다. 그의 옆에서 옷깃을 잡아 당기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미란이 방과후 선생으로 일하는 충주의 그 초등학교 교실에서 만난 생쥐같이 생긴 남자아이, 그러니까 한수였다. 흰 바탕에 미키 마우스가 그려져 있는 캐릭터 티셔츠와 남색 운동용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처음 그 순간과는 달리, 다시 만난 한수는 어린아이치고는 꽤 말쑥하고 정갈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옷차림이 몸가짐에 영향을 크게 끼치지는 않았나 본지, 한수는 진명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눈동자를 보자마자 씨익 웃더니 매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었다.

 

 “어? ‘설경구 아저씨’ 또 만났네!”

 

 - - - - -

 

 같은 시각, 여전히 호텔의 쇼핑 아케이드를 누비고 있는 효은은 그야말로 런웨이 위의 모델에 빙의했다. 그녀의 마른 몸매와, 키는 작지만 꽤 좋은 비율을 가진 체형 덕분에 그녀에게 어울리는 옷(그러니까 적어도 오드리와 미쉘이 입이 마르도록 그 자태를 칭찬한 옷)은 한 매장에 대여섯 벌 정도는 되었지만, ‘오드리’와 ‘미쉘’은 그 중에서도 유독 한 옷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거듭 추천했다.

 

 “언니한텐 아까 그 빨간 원피스가 제일 좋은 것 같은데.”

 

 “그래요, 그 에스까다 꺼 말이야. 언니한테는 무조건 빨강이야, 빨강.”

 

 그런 말을 듣자마자, 효은은 틈틈히 스마트폰으로 체크하던 롯데 자이언츠 대 SK 와이번스 경기의 문자 중계를 잠시 꺼 두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에스까다 매점 계산원의 옆에 있는 탈의실 안으로 조금 전 구입한 불가리제 검정 하이힐을 벗고 들어 갔다.

 

 탈의실 안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붉은 원피스로 갈아 입는 동안, 효은은 솔직히 만감이 교차되었다. 일단 스마트폰으로 체크했던 문자 중계의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상황이 롯데 공격인 5회 말 2사 만루였기 때문에 빨리 갈아입고 중계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보다 먼저 아예 이 ‘에스까다인지 에스오일인지 모를 곳’에서 최대한 빨리 빠져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효은이 생각하기에 ‘소심하고 일밖에 모르고 모지리 같지만 어떻게 보면 친오빠처럼 자상하고 동질감 있는’ 진명이 자신을 기다리느라 심심해 속이 울렁거리지 않을지라는 괜한 걱정도 해 보았다. 한편으로는 그 빨간 원피스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엘르 킴’이라고 하는, 경이롭고 우아하면서도 근거가 있어 보여 함부로 반박할 수 없는 ‘오만의 결정체’인 음악계의 거물이 왜 하필 재즈 라운지에서 인터뷰를 하길 원하는지, 어째서 효은에게 옷을 사 주기 위해 비서를 두 명씩이나 붙었는지도 궁금했다.

 

 자신의 스케줄이 바빠 그런 것이라고 효은의 뇌리가 다시 기억을 되살려 주었지만, 굳이 그런 이유만으로 비서를 붙여 면세점으로 데려가게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효은의 또 다른 직감이었다. 그러나, 괜히 이 어질어질하고 낯설은 상황에 안 굴려도 되는 머리까지 굴려 생각을 짜 내는 것은 싫어 효은은 그런 궁금증과 추측들을 단념하고, 원피스의 뒤에 달려 있는 지퍼까지 조심스럽게 잠근 뒤 탈의실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효은이 밖으로 걸어 나오자마자 ‘오드리’와 ‘미쉘’의 입에서는 진심 어린 감탄과 탄성이 끊이지 않았고, 매점의 직원마저 놀라움과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이 기분에 푹 젖은 효은이 반 바퀴를 빙그르르 돌아 매장 거울을 보고, 만족스러움과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을 잠시 짓고 있다가 곧 풀 죽은 표정으로 ‘오드리’와 ‘미쉘’, 그리고 직원에게 돌아 선 채 이렇게 말을 꺼내었다.

 

 “장난해요? 보소, 이거 억수로 비싸 보이는구마…”

 

 “아, 여사님께서 일시불로 내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걱정 마세요.”

 

 왠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매점 직원이 씨익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자, 효은은 잠시 누군가 차가운 얼음 덩어리를 등에 댄 듯 소름이 죽 돋아 왔지만 곧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물이 자신을 위해 옷을 사 주겠다고 친히 일시불로 대 준다니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효은은 이렇게 놀란 듯이 대답했다.

 

 “일시불? 마...맞나?”

 

 “언니라서 우리가 이러는 거에요! 딴 사람들에게는 안 이래!”

 

 그렇게 쾌활하게 대답하며, ‘미쉘’은 능숙한 솜씨로 지갑에서 꺼낸 김 여사의 수표를 이용해 계산을 했다. 그러고 나서, 세 사람을 호텔 로비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어 가며 매우 친한 친구들처럼 부산스럽게 수다를 떨었다.

 

 - - - - -

 

 그 시간에 코엑스 몰 구석의 남자 화장실에서 손을 씼고 있던 진명의 옷깃을 잡아 당기던 한수는, 자신의 인사표현에 더더욱 당황한 진명의 얼굴색을 알아채자마자 이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 더 활짝 웃으며, 계속 밀랍 인형처럼 진명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었다.

 

 “아, 아저씨? 어휴, 내가 널 포기했다 포기했어, 이제. 그건 그렇고 너 영화 ‘해운대’에서 하지원 상대역이 설경구인 건 또 어떻게 알았냐?”

 

 “제가 그런 건 알아서 다 찾아 보니까 아저씨는 상관하지 마쇼. 그건 그렇고, ‘하지원 누나’랑은 요즘 어때요? 진도는 잘 나가죠?”

 

 진명의 질문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대답하던 한수는 말을 끝내고 나서 능글맞는 표정으로 진명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고, 이에 진명은 괜시리 더 민망해졌다. 사실 진명의 마음 속에는 한수가 ‘하지원 누나’라는 자신만의 언어로 효은을 언급할 때부터 효은을 처음 만났을 때붜 시작되는 은밀한 ‘갈등’과, 혜연이 지금 이러고 있는 진명의 모습을 모르고 효은도 혜연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마음이 차지하고 있었다. 진명은 효은이 재즈 라운지라는 환경에 맞게 옷을 갈아 입는 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무슨 옷을 갈아입을지는 모르기 때문에 걱정되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말들을 한 사람이 어른이라면 진명은 어찌어찌 잘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얼토당토않는 질문을 한 사람이 얄궂게도 까마득하게 어린 남자아이이다 보니 어이가 없어진 진명은 그 황당함을 애써 억누르며 이렇게 대답했다.

 

 “잠깐 화장실 갔다. 그건 그렇고 니가 진도는 어떻게 아냐?”

 

 “에이, 척 보면 다 아는 거죠! 그건 그렇고, 아저씨 멋진데요? 연예인 같아요!”

 

 여느 때와 같이 능글맞게 대답하다가 느닷없이 나온 한수의 칭찬에 진명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애써 웃으며 답했다.

 “그래. 고맙다, 고마워.”

 

 “아, 아저씨. 근데 저건 뭐에요?”

 

 한수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검은 플루트 통이었다. 진명은 그런 말을 하며 짓는 한수의 표정이 왠지 진지해 보여, 그 자리에서 한수에게 그 플루트에 대한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다.

 

 “아, 그래서 아저씨랑 ‘하지원 누나’랑 우리 반 교실로 들어 왔던 거였구나! 아저씨, 우리 엄마 아빠도 유재하 팬이에요!”

 

 한수가 그 말을 하자마자 진명의 얼굴에 갑작스런 화색이 돌았다. 비록 뜬금 없는 질문과 예기치 못한 반응들로 언제나 진명을 당황스럽게 하는 한수였지만, 아이가 자신의 얘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이렇게 나온 대답도 조금 더 호의적이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씨디가 하나밖에 없는데 집에서 그 씨디를 수백 번 듣고 다니고요, 그래서 저 유재하 앨범 순서 다 외웠어요. 1번은 지난 날, 2번은 그대 내 품에, 3번은 가리워진 길, 4번은…”

 

 “신한수! 너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한눈 팔지 말고 빨리 와!”

 

 진명이 한수의 말을 듣고 ‘사랑했기 때문에’를 지긋이 떠올리던 도중 화장실 바깥에서 화가 잔뜩 난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 오자, 한수는 장난스런 미소를 죽 흘기고는 진명을 향해 작별인사의 의미로 얼른 손을 흔들며 이렇게 나지막히 속삭였다.

 

 “저 지금 가야 하니까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안녕, ‘설경구 아저씨’!”

 

 그리고 진명은, 재빨리 사라져 가는 한수가 시야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자마자 아직 축축하게 젖어 있는 손을 핸드드라이어에 죽 말리고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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